고난의 때 순종을 배우라 히5:7~10
제가 은퇴 이후에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또 집회를 인도하면서
목사님들도 많이 만나고, 또 많은 성도들을 만나면서 이런 질문을 흔히 듣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정말 믿는데
왜 내 삶 속에서는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역사해 주지 않으시나요?'
물론 그 질문하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좀 더 명확히 알아야 알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제가 목사가 될 사람으로 그렇게 정해진,
그런 정말 운명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좋은 목사가 되고 싶었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목사의 기준은.. 그저 착하고 성실한 것이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것이 나쁜 것일 리는 없잖아요.
그런 목사 찾기도 쉽지 않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실제로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착하고 성실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이 정말 (내 삶에) 현실이시냐?' 하는 거죠.
제가 어느 교회 부흥회를 갔는데 그 부흥회의 주제가
'하나님이 현실이 되게 하라' 였습니다.
그 주제가 제 마음에 굉장히 강하게 와 닿았어요.
왜냐면 제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걸 기도하고 고민하면서, 제게 부딪혔던 가장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현실인가?' 하는 거에요.
우리가 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은 내 삶속에서 '현실'이 아닌 것이
많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제 삶 속에서 가장 많은 연단을 받은 기간이, 제가 군목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훈련 받을 때부터 제대할 때까지였어요.
'그렇게 많은 연단을 받은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어요.
이유는, 제게 있어서 하나님이 현실 reality 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군목 훈련을 받다가 한쪽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는데
그때 저는 제 아버님을 찾았어요. 하나님이 아니었고요.
나중에 가서야 제가 하나님을 찾았지만
당시 저는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찾지 않았습니다.
당장 현실적 도움은 저희 아버지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현실'이 아니었어요. 목사였는데도... *그저 이론적인 하나님
제가 군목 입관을 하고 난 다음에, 부대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 군목이 해야 될 중요한 일이 병사들을 방문하는 위문활동이었습니다.
근데 위문을 그냥 갈 수 있나요?
(보초서는) 병사들에게 뭘 하나라도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준비해서 가야 되는데
그 많은 부대원들을 방문할 것을 준비하려면, 상당한 재정이 들어갑니다.
그때 저는 '어느 교회를 가면 도움을 받을까?'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하나님이 제게 '현실'이 아니었어요. 내가 도움 받을 교회가 '현실'로 느껴졌었죠.
군인 교회를 지어야 하고, 또 수리해야 될 일이 일어났을 때
그때 여전히 제 생각 속에는 '이걸 어느 교회에 가서 도와달라고 해야 되나?'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저와 함께 하시고 저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당시 제게 실제로는 '현실'(실제)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 점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시 저를 신앙적으로 훈련하셔야 될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제게,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제가 포기하게 하셨어요.
제가 회심을 체험할 때, 그때 저는 제 (부러진) 오른쪽 다리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하나님 앞에 제가 대학원 석사학위를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학교를 포기함
목사도, 아주 좋은 교회에 가서 목회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게, '제가 돌짝밭 사명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게 하셨어요.
저도 편안한 삶, 대우받는 삶을 원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안락한 삶에 대한 것을 다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정말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고요. 그리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창피할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 제가 점점 깨달아진 것이,
하나님보다 제가 더 의지하고, 더 좋아하고, 제가 더 바라던 것들이
다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편하고 대우받는 삶)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버리게 하시고 포기하게 하셨던 것이죠.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제가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면서
제 삶속에 하나님이 실제 reality 가 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다'고 본문에 말씀하셨습니다. 히5:7
그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근데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의 삶을, 힘들고 어려운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지나야, 푸른 초장이 나오게 되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실 때가 있어요. 그때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때때로 원치 않는 고난이,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
그때가 예수님처럼 순종을 배우는 기간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일, 정말 원하는 일은.. 특별히 순종을 할 필요가 없죠.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야 될 때, 무슨 순종이 필요해요?
배가 고프니까 그날 밥을 먹는 거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금식할 마음을 주세요.
어떤 간절한 기도의 제목과, 그리고 주님 앞에 내가 온전히 서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내게 금식을 원하신다고 느낄 때... 그때는 순종이 필요한 거죠.
배는 고프고 먹고 싶은데, 그것을 내려놓고 금식하는 일은 순종인 거죠.
그러니까 순종은, 고난을 통하여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순종이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왜냐면 고난을 통하여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분명히 말할 수 없는 탄식, 애통함, 정말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길이었어요. 그렇게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순종이 힘들다, 어렵다' 말할 만 하죠.
실제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순종 없이, 고난 없이) 그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그런 기도가 나올 법도 합니다.
'하나님, 지금 너무 힘들어요. 너무 어려워요. 그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근데 여러분 충분히 우리가 그런 상황에 부딪치지만
이제는 아주 명확하게 깨달아야 됩니다. 그런 믿음에서 빨리 벗어나야 되는 거에요.
'그저 도와주시기만 원하는..' 그런 마음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현실 reality 이 되어줄 수가 없어요.
어려움도 없고, 순종도 없이 살았던 사람의 삶은
하나님은 그의 삶의 실제(현실)가 아닙니다. 그저 이론적 하나님, 추상적 하나님일 뿐이죠.
▲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만 주목하며 살아보려고' 하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제게 다가왔던 회개 제목이
늘 기도할 때마다 도와달라고 했던 거예요.
제가 뭘 나쁜 것을 도와달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목회 잘 하게 도와주세요.
-설교 잘 하게 도와주세요.
-오늘 심방 잘 하게 도와주세요.
다 성도들을 섬기고, 교회를 세우고, 목회 일에..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기도였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예수님께서 저의 주님 Lord 이시기 보다는
예수님을 그저 '저를 도와주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저를 도와주시기만 하는 분이라면 *helper, 도우미
주님이 어떻게 제 주님이 되실 수 있겠나요? *King and Lord
그것이 제게 있어서는 정말 뼈아프게 회개가 되는 것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그런 관계니까
하나님은 제 삶의 실제(현실)가 되실 수가 없었던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제 기도가 바뀌었어요. 무조건 도와달라는 기도에서
'주님, 제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순종하기 원합니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 속에 하나님은 '현실'이 되셨어요. 단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요.
▲어느 선교단체 수련회를 갔더니
그 선교단체에서 아주 신실하게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자매가
아주 어려운 상담을 해오더라고요.
'목사님, 제가 훈련도 많이 받고, 또 성경말씀도 많이 배웠는데
솔직히 예수님께서 제 마음에 현실적으로 늘 살아계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꾸 의심이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실까?' 참 어려운 질문이죠.
그렇게 신실하게 그 선교단체에서 리더이고, 성경도 많이 공부했고, 훈련도 받았는데
예수님이 현실적으로 자기와 함께 동행하신다는게.. 의심이 된다'는 거예요.
(*늘 도와달라고, 기도할 때 도움만 구하면..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매에게 그렇게 권했어요.
'이제는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에서부터
순종의 삶으로 한번 바꿔 보십시오!'
말씀을 배웠으면, 말씀을 알았으면, 거기서 만족하지 말고
말씀대로 순종해 보는 삶을 살아보라,
그러면 어느 순간에 '예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구나' 하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요...
▲제가 목회하면서 우리 교우 중에 한 분이
'목사님 계시록 3: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면서
우리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린다고 하셨는데
제가 예수님을 이미 영접했는데, 그런데 왜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제가 그 성도님에게 그렇게 대답을 드렸어요.
'예수님을 정말 영접했는지 아닌지는... 순종을 보고 아는 겁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영접했다면, 예수님께 늘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란 뜻이고,
예수님을 영접했다고는 하지만, 평소에 순종이 없는 삶을 산다면,
그는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 문 바깥에 세워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진짜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현실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이 정말 여러분 안에 역사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체험하며 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여러분도, 고난을 당할 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때 '힘들다, 어렵다, 죽겠다' 하지 마시고
'아, 내가 순종을 배울 시간이구나!' 하는 점을 명심하셔야 돼요. *주제
'순종하며 살자' 그러면 다들 힘들어합니다. 어려운 일이긴 해요.
고난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순종이니까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그때 예수님도 그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고...
그래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5:7
근데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순종의 결과가 너무 놀라운 거예요.
우리가 고난의 어려운 때에 주님께 순종하면
그러면 비로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진짜 살아계심을 알게 돼요. 주님이 내게 '현실 reality'이 되심을 바로소 알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신 것을
히5:7절에서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의 경건하심이 어떤 것일까요? 이건 우리의 문제이기도 해요.
도대체 '경건하심'이라는 게 뭐길래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신 것일까요?
그건 예수님의 기도에 나와 있습니다.
마26:39절에 보면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드리셨어요.
그 기도가 무슨 기도길래, 그렇게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하신 걸까요?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게 경건함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디모데후서에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아주 간곡하게 명합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거짓 경건에서 벗어나라'는 거예요.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는 거예요. 딤후3:5
'그들 가운데서 네가 빨리 돌아서라!'
여러분,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주일이면 교회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분명히 '경건의 모양'입니다.
기도생활도 그렇고, 성경을 읽는 것도 그렇고..
여러분이 그동안 교회 다니면서, 교회 생활하는 여러분의 외적인 모습은
다 '경건의 모양'이에요. 이 '경건의 모양'도 물론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경건의 능력'도 있느냐? 하는 거예요.
'경건의 능력'은 뭐죠?
'경건의 능력'은.. 은밀한 죄가 사라진 거예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이 분명히 믿어지니까
은밀히 죄짓는 시간이 없는 거예요.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은밀한 시간인가요?
지금 주님은 내 안에 계시니까,
그러니까 모든 상황과 모든 순간에, 그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게 '경건의 능력'이에요.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아요.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세요.
그래서 어떤 일에도 불평과 원망이 없어요.
왜냐하면 결국은 하나님이 그 일도 선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이 어렵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니까
사람 탓할 마음도 없어요. 오히려 모든 어려움에 감사해요. 이건 엄청난 능력이죠.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겉으로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실제로는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 있어요.
거짓말하고.. 사람이 보지 않으면 불법을 저지르고..
그리고 늘 불평과 원망으로 살고.. 두려움과 염려로 살고..
이 사람은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도가 다른 거예요.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하나님, 이것 좀 해주세요. 저것 좀 해주세요.' 기도가 그렇게 밖에 안 나와요.
실제로는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인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이유가 없어요.
왜냐면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아니까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영광과, 그 놀라우신 위용과 능력을 바라보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주세요. 하나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게 경건의 능력이에요.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신 예수님의 이 경건하심을 보시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히5:7
여러분, 합리적인 것, 아주 그럴 듯한 생각이라고...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니에요.
우리가 '자기 몸을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즉 사랑 없이도,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훌륭한 행동을 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에 '그저 이스마엘 정도로 만족하자'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죠.
모세는, 자기 힘으로 자기 민족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고요.
다윗은 자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자기 손으로 하나님의 성전도 지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무슨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어요.
여러분,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내 생각과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하나님 뜻에 순종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우리가 순종을 배워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있는 거에요.
가정적으로.. 건강상의.. 개인적인 어떤 삶에.. 사업이나 비즈니스에..
또한 자녀들의 문제로.. 별의별 형태의 문제들이 우리 속에 다 생깁니다.
그때 '아, 이것이 순종을 배울 기회이구나!'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돼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신 것은
히5:8~9절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함이라'
예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신 것은
앞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님과 우리 사이의 순종의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순종 없이 사는 삶은
그는 교회는 다니는 사람일지 몰라도,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닌 거예요.
우리가 이처럼 순종을 배우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인도에서 20년간 신학교 사역을 참 열심히 잘 하셨던 조동욱 선교사님이라고 계세요.
근데 그 사역이 참 너무나 놀랍게 커지고,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인도 정부가 강제로 조동욱 선교사님을 추방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많은 신학교의 자원들, 교수님들, 학생들, 건물, 개척한 학교들을
인도의 현지인들에게 다 넘겨 드리고
그리고 인도를 떠나게 되는 날, 그 조동욱 선교사님이 쓰신 글이에요.
「저의 선교지는 히말라야 산자락입니다.
네팔과 부탄 중간에, 중국으로 넘어가는 히말라야 길목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역 초기 몇 년 동안은, 저희 부부 주변은 아무것도 없는 형편에 둘러싸여 지냈습니다.
먼저는 한국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를 지도해 줄 교회 감독님이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꼬집어 줄 장로님도 없었습니다. 한국말로 설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설교를 한다 할지라도, 그 설교를 들어줄 성도도 없었습니다.
물론 김치도 없었고 커피도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처럼 없는 곳으로 가득한 그 자리에, 나를 가득 채워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평안이 넘쳤습니다.
하는 일들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넘쳤습니다.
무엇보다 기쁨이 넘쳤습니다. 왜였을까요?
나의 주권이 사라진 그곳에, 예수님 그분이 나를 다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선교지를 떠나야 해서,
신학교의 지도력과 선교 재산을 현지 형제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목록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신학대학 캠퍼스의 건물들, 개척된 교회들, 호산나 스쿨의 동산과 부동산,
그리고 신학생들과 교수들, 목회자들과 교인들,
그리고 호산나 스쿨의 학생들과 교사 등
우리는 선교 재산 점검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들을 행하셨구나!' 하는 사실에 감탄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겼느냐는 것입니다.
그 감격이 너무나 커서, 큰 선교 재산을 인도 형제들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인하여
조금도 아깝지 않았고, 선교지를 떠날 때 감격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교사님의 삶 속에 기가 막힌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선교사님의 지난 20년은
동일하게 그 선교사님을 위한 중복기도 하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신 분도
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유가 뭐죠?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고
그래서 하나님의 실제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많이 생기는데
그때 항상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어디든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이끄시면,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 저는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이 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뜻이라면 목숨까지라도 버릴 각오가 되어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질문의 여하에 따라,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현실 reality 이 될 수도 있고
여전히 하나님은 답답한 분(비현실, 이론)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게, 절대 어려운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간섭할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하나님, 내 삶에 주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내 가정에서, 내 일터에서, 내 교회 생활에서 저는 주님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럴려면 반드시 여러분에게 있어서, 이 순종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YWAM 이라는 세계적인 젊은이들의 선교 단체를 만드신 로렌 커닝햄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에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많은 청년들이,
바닷가에서 큰 파도가 해안선에 밀려 들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전 세계로 젊은이들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아 하나님이 많은 젊은이들을 세계로 보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이제 YWAM 이라는 선교단체를 만드신 거예요. *Youth With A Mission (선교하는 청소년)
그런데 이런 선교단체를 만들고 난 다음에, 교단에서 나가야 된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초교파 단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 교단에서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 순간에 또 어느 큰 교회에서 '우리 교회에 담임목사로 와달라'는 청빙이 왔습니다.
그런데 또 친척 중에 한 분이, 자기가 세운 큰 회사를
당신이 좀 책임 맡아 달라는 그런 요청도 왔어요.
그때 로렌 커닝햄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셨던 그 비전 하나를 붙잡으려고
그 좋은 기회들을 다 포기합니다.
교단을 떠나야 되었고, 담임목사로 가는 청빙을 거절하고,
그리고 회사를 책임지는 일도 다 사양하고...
그리고는 사무실을 둔 캘리포니아로, 아내와 함께 짐을 꾸려서 장거리 운전해서 가는 도중에
큰 교통사고를 만났어요. 차가 몇 번을 뒤집어져서 뒹구르고,
그리고는 정신을 차려보니까 옆에 아내는 심정지 상태였어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아요.
정말 끔찍한 교통사고를 만난거에요.
하나님께 순종하고 가는 길인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가는 길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기나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래도 너는 나를 섬기겠느냐?' 기가 막히죠.
'이래도 너는 나를 섬길 수 있겠느냐?'
그때 로렌 커닝햄 목사님이 '예스'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지금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이지만
여전히 저는 주님만을 섬기겠습니다.' (아무리 역경이 와도 저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말씀하세요.
'네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라!'
이미 숨이 끊어진 아내였어요.
그래서 손을 펼쳐서 숨이 끊어진 아내에게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아내를 살려주십시오'
정말 너무나 놀랍게 다시 숨이 돌아왔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가 다시 살아납니다.
자, 이 일을 겪으면서, 로렌 커닝햄 목사님은 정말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웠어요.'
그리고 YWAM 선교단체를 이끌어 가는 동안에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 앞에서
그는 훌륭하게 주의 이끄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YWAM 선교단체가 그렇게 세워지게 된 거예요.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사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폐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제가 울었어요.
'내가 종일 손을 펴서 내 백성을 불렀나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사랑하는 자녀들이 가지 말아야 될 길을 가겠다고 할 때,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라'고
그렇게 애타게 부르고 불렀던 경험들이 있으실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 정말 아끼는 사람.. 그런데 그가 온전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망하는 길, 패역한 길로 가고 있어요. 그 심정을 여러분도 다 아시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그렇다는 거예요.
'종일 손을 펴서 내 백성을 불렀나니..'
그 심정은, 눈물 아니고는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우리를 향하여 '네가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지금 힘들고 어려워요' 라고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너무 어려워요. 너무 힘들어요' 라고만 고백하지 말아야 돼요.
살 길이 반드시 있어요.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세요.
우리가 이렇게만 기도하면 돼요.
'하나님, 저는 완전히 순종하겠습니다. 제게 말씀만 해주세요!' 그거예요.
먼저 여러분이 준비되어야 돼요.
'하나님, 저는 아버지 뜻에 완전히 순종할 겁니다.
주님이 뭘 원하신다는 걸 분명히 말씀하시면, 저는 순종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이 말씀하세요.
여러분이 지금 해야 할 것, 여러분이 살 길이 무엇인지를.. 주님이 알게 하세요.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그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초청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의 삶을 드리기를 원하시는 분,
'하나님 제가 완전한 순종을 약속합니다. 주님, 제게 말씀해 주세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세요.'
개인적인 문제든, 가정의 문제든, 여러분의 사업의 문제든, 또는 인간관계의 문제든
참으로 난감한 상태에 있는 분들,
하나님이 내게 현실 reality 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하나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제게 말씀해주세요. 제 삶에 간섭해주세요.'
정말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자리에 일어나셔서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마음의 고백을 올려드리세요.
(*늘 하나님께 나와서, 저를 도와 주세요, 저를 축복해주세요... 그렇게만 하지 말고,
제가 주님 뜻에 순종하게 해 주세요. 제가 돌이키게 해 주세요. 제가 어려운 일도 헌신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해 보세요. 주님이 현실로 내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길을 알고 계시는 분이세요.
여러분이 정말 마음을 활짝 열고 순종을 결심하고
이 시간에 여러분이 처해 있는 문제를 주님께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주의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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