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왜, 기적은 또 왜? 행28:1~10
*바울일행이 탄 배가 로마로 가던 도중, 큰 풍랑에 휩싸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교의 각오로 로마로 복음 전하러 가는데, 왜 또 풍랑입니까?
혹시 풍랑이 일어나도, 즉시 잠잠케 해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이 있었습니다.
(멜리데 섬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뜻도 있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바울과 함께 승선한 275명이, 로마에서, 모두 바울의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 선교를 아주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감춰진 선하신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난을 주시지만.. 배후에서 하나님은 기적의 역사로 도우십니다...
▲문제 제기
어떤 성도님들이 기도원에서 3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앙선을 넘어오는 덤프트럭과 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사고에 비하면 피해는 너무나 적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지켜주셨음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어느 분이
“왜 큰 사고에서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아예 사고가 나지 않게 해주시지 않으셨을까요?”
하는 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웃었지만 정말 생각해 볼 질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아마 그런 생각을 평소에 하셨던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난 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같은 일들을 통해서
보호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는데,
‘애초에 그런 어려움이 아예 없게는 못해주시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슷한 예로, 암에 걸린 성도님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기적과 같은 여러 가지 일들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 암투병 중에도 되어지는 일들이
하나님이 아니시면 도무지 할 수가 없는, 기적적인 역사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도 우리 마음에 질문이 생기기를
‘암에 걸리고 난 다음에, 이런 기적적인 역사를 주시는 것도 너무 놀랍지만,
아예 암에 걸리지 않게 해 주시면서.. 이런 기적적인 역사들이 나타난다면,
훨씬 더 좋았을 걸...’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꼭 암에 걸리게 하시고 난 다음에,
그런 기적적인 역사들(전도 등)을 이루어 가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주시고, 기적을 끼워주시는 것입니까?
아예 고난 자체를 주시지 않으시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본문 설명 (잘 아시는 분은 점프 하세요)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14일 동안 죽을 고생하였던 바울 일행 276명이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멜리데Malta섬에 상륙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멜리데 섬 원주민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276명이라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조난을 당해서 들어오는데다가
거기에는 로마 군인도 있고, 죄수들도 있었으니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될지 그들도 처음에는 난감했을 것입니다.
비가 오고 날은 추워, 조난당한 자들을 동정하여 불을 피워 주었는데,
사도바울이 땔감 나무를 불에 넣기 위해 집어 드는 순간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순간 멜리데 섬 사람들은, 바울이 대단히 큰 죄를 지어
신의 노여움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풍랑에서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으나,
독사에게 물려 결국 죽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바울이 붓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태도가 180도 바뀌어, 바울을 신이라고 부르며,
멜리데 섬의 제일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가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대접하였습니다.
마침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바울이 들어가 안수하여 기도하니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섬 안의 다른 병자들도, 너도 나도 와서 바울을 통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멜리데 섬 사람들의 대접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군인들도 있고 죄수도 있는 276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난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해 이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바울을 '신'이라고 부르며 일행들을 잘 보살펴주었을 뿐 아니라,
겨울이 지나 로마로 떠날 때가 되자
배에서 먹을 음식과 입을 옷까지 준비해 주었습니다...
▲아예 풍랑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사실 유라굴로 광풍에서 276명이 다 구원받은 일도 기적입니다.
선원들도 믿을 수가 없었던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싸개로 보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런 일을 보면서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이적을 베풀어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시고 도움을 받게 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이 남습니다. 이런 이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왜 풍랑을 (아예) 막아주시지 않으셨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선원들이 겨울을 유흥가에서 보내려는 의도로
무리한 항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났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서 뵈닉스(피닉스)까지 갔을 때,
거기서 편안하게 겨울을 잘 지내고, 로마로 가게 할 수도 있었지 않겠습니까?
풍랑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게 하고,
겨우 목숨을 살려 주신 후, 멜리데 섬에 올라갔을 때,
이적이 일어나 뱀에 물려도 살고 병든 자들을 고치게 하셔서 잘 대접받게 하시고,
로마로 가게 하셨다니 ... (하나님은) 왜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바울에게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고난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섭리
▲1. 사도바울이, 죄수 신분이지만, 로마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
이미 로마에 살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따뜻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행28:16절에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립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들어갔을 때, 분명히 재판을 받을 죄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감옥에 들어가지 않고
군인 한 사람과 함께 따로 지내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자유인처럼 삽니다.
23절에 보면 마음껏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집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찾아오고
그래서 로마에서 복음을 마음껏 전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에 살았던 적도 없고, 아는 일가친척도 없었으며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을 죄인의 신분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인이
무려 275명이나 함께 로마로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폭풍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보았던 275명이
한결 같이 자기들 입으로 하나님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말하라/말라 했겠습니까?
자기들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란 분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그가 전하는 복음은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을.. 우리가 다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몇 번 씩이나 죽을 뻔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다 살았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아마 275명이 광고하고 다녔다면 로마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죄인 취급을 받지 않고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비밀이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풍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2. 고난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오묘한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일행이 유라굴라 풍랑을 피하게 하여
뵈닉스 항구에 무사히 도착하여 겨울을 잘 보내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군인들과 선원들, 그리고 많은 승객들이, 유흥도시 뵈닉스에서 3개월 동안 지내면서
온갖 쾌락을 즐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랬다면 편안한 여행은 했을지 모르지만,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 하게 될 때,
누가 바울의 고백과 증거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었겠습니까?
복음 증거는 사도 바울 혼자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무슨 관심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참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에 도착하기 이전에 바울의 일행에게
왜 그렇게 극심한 시련을 주셨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3. 그래서 고난을 주시지만, 배후에서 기적으로 도와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적은 왜 일으키시는 것입니까?
역시 십자가의 예수님의 증인을 세우시려고, 이적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power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275명 다 살려 주셨습니다.
그들 중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도 버리지 않고 다 살려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증인을 만드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는 중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모든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로 하여금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의 증인되게 해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진짜 살아 계시구나, 예수님 십자가 복음이 참 복음이구나.’
하는 것을 증거 하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4. 기적은 좋은 거고, 고난은 나쁜 것이다? -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이 오든 이적이 오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고,
고난이 일어나면.. 뭐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많은 성도들은,
고통스런 환경의 고난은.. 하나님이 안 계신 증거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여깁니다.
아닙니다. 고난이냐 이적이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증인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닥쳤다고 낙심할 것도 없고
이적이 일어났다고 흥분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증거 하시려는 성령님께 민감하면 됩니다.
무턱대고 기적을 따라가다가는.. 미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이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자는 미혹 받기 쉽습니다.
마귀도 얼마든지 이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표적이나 기사나 이적만 보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면,, 반드시 실족합니다.
마지막 때가 오면 다 넘어갑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한 순간에 다 무너져 버립니다.
▲5. 고난에 삼켜지지 않으려면, 믿음의 방패를 가지도록 기도하십시오.
엡6:16절에서 마귀가 불화살로 공격을 하여 성도도 넘어뜨리려고 역사하니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우리는 보통 믿음을.. ‘기적/축복’에 초점을 맞추어서 가지고 있습니다.
기적을 자기 믿음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은.. 지금 가짜 방패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종이로 된 방패 들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불화살을 쏘면 그것은 견디지를 못합니다.
왜요? 눈에 보이는 기적/축복은 마귀도 얼마든지 흉내 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려면, 하나님의 성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사랑이시고, 지혜가 충만하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에 초점을 맞추어야
마귀의 불화살 공격을 능히 이길 믿음의 방패가 됩니다.
▲6. 고난의 범위와 한계는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사탄이 고난을 주더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 행해지는 것입니다.
욥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여러분, 사단이 나를 참소해서 (사탄이 욥을 하나님 앞에서 참소했듯이)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점검하시려고
때때로 우리에게 고난/시험을 주셔도
하나님은 다 사단에게 맡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사탄이 머리카락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어떤 어려움과 시험이 있다 할지라도 한번 따져 보십시오.
하나님이 절대 마귀가 손대지 못하도록 지켜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아야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셔도
끝까지 지켜주시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정신 놓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면..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고난과 시험도..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관가운데.. 다 필요하니까.. 알아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목숨까지라도 다 맡겨야 합니다.
욥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말할 수 없는 시험이 자기에게 닥쳐왔을 때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왜요?
욥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었습니다.
자기 재산 다 날아가고 자식들 다 죽고 자기 몸에는 악창이 났어도
그는 사랑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셨습니다.
욥은 고난이냐/축복이냐를 보고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믿기로 결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방패’입니다.
욥이 믿음의 방패를 제대로 가지고 있었으니까.
마귀가 욥의 입에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하도록 그렇게 역사했지만,
오히려 욥의 입에서는 하나님께 찬송이 나왔지 않습니까?
그래서 욥이 나중에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신실히 믿어야 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든/기적을 경험하든..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로 인해서 예수님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난을 통해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증거되도록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주와 복음전파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믿어서, 기적이 일어나고 축복을 받자고 하는 성도들은..
이런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에 불평해서 안 되는 이유..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랜드그룹 회장이신 박성수 장로가 창업 10년쯤 된 어느 날,
지난 10년을 회고하다가,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10여 년 동안 자기를 몹시도 괴롭히던 직원 세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참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세 사람과 동거동락을 했습니다.
시일이 지나서, 그 세 사람은 차츰 많이 변화되어
지금은 그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인물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성수 회장은, 자신이 이러한 인내와, 오래 참음과 본을 보인 일에 대해서
늘 뿌듯함과 자랑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이렇게 질문하시더랍니다.
‘너는 그 세 사람 중에, 누가 가장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을 받은 박성수 장로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누구보다도 제일 많이 변화된 사람은,
그 세 사람 중에 누구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많이 변화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세 사람을 변화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 세 사람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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