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둑이 터져야 성령의 강물이 흐릅니다 요7:37~39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역사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3:37~39
(*성경에 이름과 같이 : 구약에 예언된 것처럼, 겔47장을 가리킴)
이 말씀은, 성령님은 단지 그를 영접한 사람이
‘영생’을 얻게 하시는 정도로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수가 흘러나와서 강물이 되면.. 강물이 흐르는 곳의 주위를
다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내게 성령의 역사가 오늘날 일어난다는 것은
성령님은 나를 통해서.. 내 가정을 변화시키고, 내 직장을 변화시키고,
내가 사는 도시가 소생되게 하고, 내 민족을 부흥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터지는 것을 막는 ‘강 둑’
▲그런데 <내가> 성령의 역사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약속은 분명한데
현실은 강과 같은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지요?
예수님의 약속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은혜의 강을 막고 있는 ‘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성령님께서 마가 다락방 120문도에게 임하셨을 때,
120문도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까지 나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님이 주신 복에 취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도 한 동안 예루살렘에만 갇혀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오셨지만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 성령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역사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엄청난 핍박이 일어남으로써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을 때,
성령님의 역사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이 성령의 강 같은 역사를 가로막는 둑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강 둑은 어떻게 터지는 것입니까? 우리 고집과 불순종이 꺾어지면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고집, 불순종, 자기중심의 생각이 얼마나 강한지 아십니까?
잘 모르시면 가족들에게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고집이 보통 고집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싶으셔도 우리 자신의 고집 때문에
성령님이 원하시는 일을 못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완고한 성품이 보통이 아닙니다.
▲‘내 자아의 강둑’이 무너져야.. 가족들이 나틀 통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저는 평소에 ‘착하다, 성격이 유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영적으로 완고한 사람이 많습니다.
성격 착한 것하고 순종하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가정 안에서부터 여러분에게 오신 성령님의 엄청나고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셔야 되는데,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이 성령님 안에 무너져야 합니다.
강둑이 무너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님의 은혜가 우선 가족들에게 흘러나가게 됩니다.
▲자기 자아의 강둑이 무너진 어느 목사님
과거에 어느 목사님에게 거짓말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매우 엄격한 분이라 거짓말하는 아들에게 매를 대었는데,
매가 10대가 되고 점점 늘어나 100대까지 때렸답니다. (아주 과거 얘기입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매 100대를 때리게 되었고
아이도 울고, 때린 아버지도 울었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물으시더랍니다. ‘너는 항상 잘했니?’
‘아닙니다.’
‘네가 잘못했을 때마다 네게 매를 댔다면 너는 어떻게 되었겠니?’
그제야 십자가 사랑과 용서의 복음이 마음 깊이 깨달아지더랍니다.
하나님 앞에 울면서 자기가 아들에게 매로 다스린 것을 회개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또 거짓말한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때, 탕자를 위하여 잔치를 베푸신 아버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온 집안에 풍선을 달고 장식을 하고 “웰컴”이라고 써 붙이고
음식을 준비하고 파티를 했습니다.
아들은 오늘은 진짜 죽었다고 생각하며 집에 들어왔는데
잔치 분위기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안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울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알겠더랍니다.
아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반신반의하더랍니다.
아버지가 저러지만 언제 폭발할지 몰라 하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도 계속하여 사랑을 표현하고, 고백하고, 때린 것에 대하여 용서를 구했답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변하는 것입니다.
후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농담을 건네던 날,
목사님은 비로소 이 아이가 자신을 아버지로 여김을 깨달았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모든 교인들에게 적용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니 모든 문제가 다 풀리더랍니다.
모든 목회 전략, 목회 계획이 그 속에 있더랍니다.
▲한 선교사의 고백
9년 째 일본에서 사역하시는 김 선교사님을 일본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일본에서 제가 한 번 크게 마음이 흔들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독도 문제로 한일간 갈등이 커졌을 때,
그렇게 일본 사람들이 밉고 용서가 안 되더랍니다.
일본에 있다 보니 더욱 힘들어 일본 선교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지더랍니다.
그 때 필리핀에서 (소속 단체) 세계 선교사 대회가 열렸는데,
저녁 기도회 시간에 눈물로 기도했답니다.
한국말로 울면서 “하나님! 도무지 용서가 안 됩니다! 그들이 사랑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나는 일본을 이미 용서하였는데 너는 왜 용서하지 못하느냐?’는 음성이 들렸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용서와 사랑이 일어나지 않더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고 눈을 뜨니
바로 앞에 일본인 목사님 한 분이 무릎을 꿇고 계시더랍니다.
그리고 일본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김 선교사님, 우리 일본을 용서해 주세요!”
하시더랍니다.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며 일본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뜨겁게 일어나더랍니다.
그 일본인 목사님을 붙잡고 울었답니다.
주위에 있던 세계 선교사님들이 다 둥글게 모여서 같이 기도하더랍니다.
그 날 이후로 일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완전 해결 받았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문제는 여건이 어렵고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의 완고함이 꺾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강물의 역사를, 나의 견고한 ‘강 둑’이 막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대담해 집니다.
1999년, 제가 부산에서 목회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흐르는 교회>라고
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표어를 정하고 너무 멋있어서 처음에는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큰 일 났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 파악을 해야지.. 부산의 인구가 얼마인데,
그것도 300여 명의 작은 규모인 우리 교회가
어떻게 강 같은 역사를 이룰 수 있는가? 교인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비웃지나 않을까?’
신년 설교를 앞두고 답답해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갑자기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가 다락방의 120문도였습니다.
그들은 온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했고,
로마가 변화시켜 전 세계로 복음이 전해지는 발판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120명보다 적은가? 예배당 건물이 마가 다락방보다 작은가?
왜 네가 작다고 하느냐?’ 는 성령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부흥시키시려는 계획이 있으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일을, 우리를 통하여도 이루시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깨끗한 통로’를 통해서 일어납니다.
▲시류를 따라가지 않는 크리스천
이번에 감리교 목회자 기도 모임에 갔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교회 개척 10년이 되셨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생각하는 것은 ‘돈’이었고,
가장 큰 두려움은 ‘목회 실패’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청약저축 통장’을 만들었는데
얼마 후 교회 근처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발표가 있었답니다.
부동산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 때부터 목사님 머리에는 부동산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만약 내가 청약통장으로 아파트가 당첨되면 얼마나 남을까?’
기도 시간에도, 예배 시간에도, 부동산 생각만 나더랍니다.
그러니 너무나 괴롭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무엇을 믿느냐? 나냐 돈이냐?’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청약저축 통장을 해지하려고 여러 번 은행 앞까지 갔었지만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답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다가 당첨만 되면 몇 억이 생기니.., 늘 신경이 거기에 쏠렸습니다.
결국 용기를 내어서 통장을 해지하겠다고 하니
창구 직원이 ‘왜 그러냐?’고 말리는 말에
“내겐 더 큰 집이 생겼습니다.” 하고 은행 문을 열고 나오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랍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돈을 비교할 수 있는가?
그러나 내게는 비교가 된 것이 너무나 애통하고 죄송했다’는 그 목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거룩한 당신의 백성을 세우고 계시구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재정을 다루실 때, 깨닫게 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교회 재정이 너무 힘듭니다. 은행 이자와 관리비 부담이 너무 큽니다.
남은 것이 없습니다. 언제쯤 여유롭게 살게 하시렵니까?
좀 넉넉하게 교회 살림을 할 수 없습니까?”
그 때 이런 내적 음성이 제게 들려왔습니다.
‘너는 왜 네 혈관이 깨끗하기를 원하느냐?
왜 내장은 깨끗하기를 원하느냐?
왜 수도관은 깨끗하기를 원하느냐? (건강을 위해서 깨끗하기를 원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왜 교회 통장에는 돈이 쌓이기를 원하느냐? (동맥경화 걸릴 수 있다.)
교회 재정도 깨끗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부채 이자가 다 해결된 후에,
이자 대신에 선교비로, 구제비로 재정을 깨끗하게 흘려보낼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시기 전에
만나로 훈련하신 교훈을 모르느냐?’ (매일 먹을 분량만 주셨음, 저축하지 못하게..)
하나님은 쌓아 모으지 않는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민족 가운데서 거룩한 자들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누가 이 민족을 책임질 세력입니까?
통일을 이룰 중심 세력이 누구입니까?
지금 이 땅에 사명을 감당할 거룩한 세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 하면 손해 보고, 뒤쳐지고, 속고, 무시당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거룩한 세력을 키우려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이 나라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보라는 소리를 뻔히 듣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
민족을 맡길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 다시 오지 않을 만큼, 중요한 복 받을 기회를 우리가 얻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욕심이 은혜의 역사를 막는 것입니다.
민11:4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울면서 간청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몰아서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은 답답하셨던 것 같습니다,
민11:19절 이하에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1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드디어 메추라기 떼가 몰려왔습니다. 하늘이 온통 시커멓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이 뒤집어졌습니다.
메추라기를 적게 모은 자도 10호멜을 모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11:32
10호멜은 쉽게 말씀드리면 대략 열 가마 정도를 말합니다. 그것도 하루에 그렇습니다.
그리고는 탐욕스럽게 그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민11:33절부터 성경에서 가장 허무하고 슬픈 장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고기가 입속에서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큰 재앙이 내리고 수많은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넘쳐도, 욕심 있는 사람을 통해서는 흘러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이 둑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을 감당하고 전 세계 복음 전도를 감당하려면
<부자>가 아니라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 : 구별, 차별되었다는 뜻. 완벽이 아니라.
여러분, 주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주님, 은혜의 강둑이 터지고, 내가 깨끗한 통로가 되어
성령님의 강 같은 은혜가, 가정에/ 교회에/ 직장에/ 세상에 흘러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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