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8.30 (사도행전 강해3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좌절이 없다
사도행전 13장 42~52절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
지난 목요일, 친구 목사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5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고 100 명이 넘게 모이는 부흥을 주셨는데, 교회가 세들어 있는 건물이 부도가 나 경매에 들어갔는데, 유찰이 계속되다가 전세 보증금도 받지 못할 형편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차라, 길가 제과점에 들어가 팥빙수를 하나 시켜 놓고 근황을 물었습니다. 대책없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어떨까 안타까왔습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목사, 오늘은 이런 절망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만 5년이나 10년 뒤에는 이 일이 반드시 큰 간증 거리가 될 거야.” 제가 말을 해놓고도 ‘내가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말을 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주님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이 하셨다고 생각되는 것이 그 말 한 마디에 그 목사님도 저도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렇지? 유목사, 이 일이 분명 간증 거리가 되겠지?” 어떤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생각만 하면 좌절만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그 어려움이 큰 간증 거리가 될 것이란 믿음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우리를 낙심하지 않게 하시는 분임을 그 때 놀랍게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더라도, 좌절의 순간이 수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낙심과 좌절에서 건져내십니다.
여러분 중에도 기가 막힌 어려움, 좌절에 빠지신 분이 혹시 있다면 여러분도 동일하게 얼마 가지 않아서 이 일이 큰 간증 거리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확신을 심어주시는 시간이 오늘 이 시간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가면서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설교를 듣고 같은 설교를 또 해달라고 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얼마나 은혜가 되었으면 그러했겠습니까? 그리고 모임이 끝난 후에 집에 가지 않고 남아서 바울을 따라 다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때가 있지요? 집회 후에 설교자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서 기다려 본 적이 있었습니까? 은혜가 되니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안식일에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했습니다.
그다음 안식일에 바울이 말씀을 전하려고 갔는데 그 시의 거의 모든 사람이 모였다니 그 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이웃 사람들에게 얼마나 꼭 말씀을 들으러 오라고 전했는가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지간하면 오라고 한다고 또 옵니까? 그런데 비시디아 안디옥 시민들이 거의 다 모였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말씀에 보면 병자를 고쳤다거나 귀신을 내좇았다는 이적을 행하는 일이 없이, 오직 복음만 전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대단한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울의 복음 증거에 성령님이 크게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부흥이 일어나고 말씀에 역사가 일어났는데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 일행이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 일행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이유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 일행을 시기하여 그 지역 집권자들을 충동하여 쫓아내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가게 된 사도 바울은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 뭐 하십니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는 계신가요?” 할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니 참 신기한 말씀이 나옵니다.
52절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지금 되어지는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전도하다가 말씀의 역사는 강하게 일어났는데 그 지역 집권자들에게 쫓거나가는 제자들 마음에 도대체 기쁨이 충만했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오늘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동일한 역사를 경험하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도 그 일 속에 처음에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말씀의 역사는 일어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놀랍게 일어나는데 핍박이 오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내좇길 형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이 낙심 중에 주님을 바라보다가 해답을 얻었습니다. ‘아, 이렇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구나. 이것이 복음의 장벽이 되고 훼방이 된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이 이렇게 되도록 만드신 일이었구나.’ 하는 답이 오고 나니까 기뻤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실 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셨던 것을 기억한 것입니다.
47절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예수를 믿을 것 같은 유대인은 핍박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복음의 열매가 풍성히 맺힌 것입니다.
환란을 당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핍박이 일어나서 전도 역사가 일어나는데도 좇겨나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끝까지 가게 할 거야.” ‘아, 그렇구나, 내가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여기서 좌절을 당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빨리 이방인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구나. 할렐루야! 알겠습니다. ’ 이렇게 됐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이방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48~49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그렇습니다. 유대인의 핍박은 복음 전파의 좌절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게 된 것을 이제 다른 곳에 가서 전할 때가 되었다는 싸인으로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이것을 깨닫게 하시니 좌절이 될 상황에서도 기쁨이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어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오늘 바울과 바나바처럼 반드시 좌절에서 다시 일어나서 기쁨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이시려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환란과 핍박이 있어도 반드시 기쁨을 주십니다.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환란이 있어도 성령의 기쁨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 지금 건강 때문에 또는 재물의 문제로 인간관계로 인해서 또는 어떤 불의의 사고로 기가막힌 어려움이 있어 실족하고 낙심하고 좌절한 분이 있으시다면 오늘 예수님을 더욱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어떤 일도 그 속에 기쁨을 발견하게 되고 어떤 사람도 다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왜 복음을 비난하고 반대했을까요?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다시 와서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말입니다. 바울의 설교에서 어떤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이 없습니다. 성경은 시기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45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유대 지도자들은 말씀 사역자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이 말씀을 전할 때는 이방인들이 별로 모이지 않았는데, 바울이 와서 전한 후에 성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모인 것을 보고 시기심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시기심이 얼마나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지 알려줍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인 큰 이유도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이 점을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시기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기심을 이기지 못하면 신앙이 좋다고 하면서 오히려 복음의 걸림돌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D.L. 무디(1805-1898)는 ‘인간은 깨진 그릇과 같으므로, 계속 충만하게 되는 방법은 물이 쏟아지는 수돗물 아래 그 깨진 그릇을 갖다 놓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정말 깨진 그릇과 같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다 깨진 그릇인 것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성령으로 충만해졌다고 해서 그 충만함이 계속 지속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성령으로 충만하려면 계속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일으키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때 성령 충만한 제자로서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40세에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모님은 그만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남편 목사가 미웠습니다. ‘남편 때문에 내가 병이 났어! 개척 한다고 고생만 시키더니 내가 이렇게 된 거야!’ 어느 날 심방을 온 한 목사님이 사모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오셔서는 노트를 한 권 꺼내주시면서 “사모님, 감사 거리를 찾아 적어보세요.” 하시더랍니다, 그 목사님이 앞에서는 “예.”하고 받았지만 속에서는 불같이 화가 나더랍니다. ‘내가 이 꼴이 되어서 감사 거리가 어디 있어? 뭘 적으라는 거야!’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감사 거리를 한번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내 육신은 죽어가지만 내 영이 구원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첫째는 영혼 구원에 감사드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을 옷을 입히지는 못하지만 공부도 잘하고 부모 말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런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거리가 생겼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남편 때문에 속상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남편이 좀 고지식한 것 말고는 이런 남편도 없다 생각하니 감사 거리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감사 거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감사 거리를 적다보니 노트 한 권이 부족하더랍니다, 그러면서 회개가 터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불평하고 원망했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회개를 하면서 사모님의 마음 속에 성령이 기름 부어졌습니다. 기도 문이 열리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암이 치유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좌절할 수 밖에 없어. 지금 내게는 절망 밖에는 없어.” 이런 처지에 있어도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지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주님은 반드시 내 절망 가운데 형편에서 살아날 믿음을 주시고 감사를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여러분, 일이 힘들다고 생각 되는 것은 내가 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싫다.’ 사람을 이렇게 판단하는 것도 은혜가 내게서 빠져나가니까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은혜가 넘치면 힘들다, 어렵다 하는 생각도 없어지고 좋다, 싫다 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는데 내게는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가?’ 탄식하고 원망하지 마시고 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주님을 더 바라보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가 막힌 수렁에 빠졌고 절망과 좌절이 와도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는 중에는 넉넉히 이길 힘을 얻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분명히 깨닫게 하셔서 여러분이 능히 기쁨이 충만해서 위기와 시험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십니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무거운 율법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축복입니다. 18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라”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까?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예수를 바라볼 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지니까 이런 말씀을 하셨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으니까 그 말씀을 하셨는데, 단 하나 조건이 필요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 그대로 우리의 삶에도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산을 옮기기는 커녕 범사에 감사도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진정한 믿음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계속 보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좌절에서 이겼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에 비추어 보니, 유대인의 핍박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습니다. “이방인에게로 가라는 것이구나!”
좌절과 낙심이 올 때, 우리는 더욱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무덤에 묻혔을 때,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다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제 끝났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혔을 때 여인들이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 시신에 발라드리려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 속에는 슬픔, 낙심, 좌절로 꽉찼습니다. 그 때 천사들이 나타나서 여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제발 좀 슬퍼하지만 말고 놀라지도 말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한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너 왜 그렇게 낙심 가운데 있니? 너 왜 그렇게 좌절하고 있니? 내 말 좀 기억해 봐!’ 예수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주님이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지게 됩니다. 양떼들이 많고 목자들도 많아서 같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카 롯은 먼저 좋은 땅 소알을 선택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이제 헤브론 산지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때 순간 마음이 너무너무 허전했던 모양입니다. 좋은 땅은 조카 롯이 차지하고 이제 남은 산지 자신이 살아야 되는 땅 헤브론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잠시 롯이 내려간 소알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마음도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일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 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브라함이 너무너무 잘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억울해 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조카 롯을 떼어 놓은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에게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정을 이기지 못해서 조카 롯을 계속 데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완전한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조카 롯은 좋은 땅을 차지한다고 좋아서 가긴 했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 것입니다. 롯은 어차피 떨어져야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보라. 동서남북의 모든 땅이 다 너에게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사는 동안에 누구로부터 배신 당했다고 느끼고 또 어떤 재물을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게 이런 어려운 손해가 오는가? 섭섭한 일이 생기는가? 배신 당하는 일이 생기는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예수님이 내 생명인 것만 고백하고 주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러면서 심령에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죽임을 당할 처지에 이르고 애굽에 노에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니 애급의 총리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 한 형들이지만 복수할 마음이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겪는 좌절 중에 제일 큰 좌절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온전히 예수님만 바라보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아십니까?
지난 안식월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분명히 주신 말씀이 선한목자 교회가 교인 수나 건물 크기로 소문난 교회가 아니라,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멘 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 목적이 달라지자 사람이 달라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안되는 사람, 부흥에 걸림돌 되는 사람이 너무나 귀한 존재로 부각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려고 허락한 사람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전에는 ‘선한목자 교회가 교인도 많고 예배당도 크고 부흥되는 교회로 소문 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마음 한쪽에 있다 보니까 사람이 구분이 되었습니다. 교회 부흥에 큰 도움이 될 좋은 사람, 문제가 있는 걸림돌이 될 사람으로 구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소문 난 교회를 세우리라는 교회 목표가 정해지고 나니까 문제가 많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가 많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입니다. 문제가 하나도 없는 사람끼리 모이면 사랑으로 소문날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랑으로 소문 날 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쩌면 그 교회는 저런 사람들끼리도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런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품을 수 있을까? 그래야 사랑으로 소문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문제 많은 사람이 다 하나님의 계획이더라는 것입니다.
1944년, 35세 된 어느 목사님이 사냥을 갔다가 멀리서 노루 한 마리를 보고 정조준을 해서 쐈는데 달려가 보니까 노루가 아니라 사람이 총에 죽은 것입니다. 목사님은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와 언론이 들끓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당연이 교회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교인들이 모여 이 일로 의논하다가 “사람 죽인 젊은 목사님을 어느 교회가 받아주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용서하지 않으면 목사님은 평생 갈 곳이 없습니다. 지금 한번 큰 결정을 내려 봅시다! 목사님을 한번 용서합시다!” 교인들의 용서로 그 분은 계속 그 교회에 남게 되었고, 그 뒤부터 그분 목회 중심 철학은 ‘용서’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인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있었고 54권의 저서를 쓴 크리스웰목사님 입니다.
새들백 교회 릭워렌 목사가 19살 때, 이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았던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 젊은 설교자에게 내게 주신 영감을 갑절이나 부어주소서.”
크리스웰목사님은 교인들로부터 받은 용서의 은혜를 2002년 93세에 죽을 때까지 평생 잊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용서에 관해 설교할 때는 매번 눈물을 펑펑 쏟았고, 끊임없이 용서의 삶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용서 받았기에 평생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그만 미워하시고 용서하십시오.”
크로스웰 목사님만 그렇습니까? 우리도 다 예수님 때문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이 용서받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사람 때문에 좌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번 지방연합 성회에 강사님의 간증에서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그 목사님에게 형이 한 분 계신데, 아버지의 유산을 나눌 때 “저는 목사가 될 사람이니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형이 다 가지세요.”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래도 되겠느냐?” 하며 두말도 않고 다 가지시더랍니다. 또 목사님 결혼식 때, 형이 축의금을 받았는데, 그 축의금을 가지고 도망가 버려서, 하객들을 대접했던 갈비탕 집 주인의 손에 붙잡혀 신혼 여행도 가지 못하였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지만 그런 형이 있다면 어찌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그 형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나는데, 그것 때문에 혈기내고 실수하고 좌절할 뻔 하였지만 다 이겨냈답니다. “그래도 우리 형보다는 낫다.” 그러니 용납 못할 사람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회가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으면 사람으로 인해 실족하는 일이 다 사라집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기가 막힌 수렁에 빠진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 좌절이 왔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데 내가 예수 안에 죽고 예수로 산다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가? 이런 처지에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을 바랍보십시오. 주님이 반드시 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길 힘도 주십니다. 놀라운 기쁨으로 복을 주십니다.
오늘 마음 상한 이들 실족하고 낙심하고 좌절에 빠진 이들을 주님이 일으키는 시간입니다. 정확하게 주님께 구하십시오.
“예수님, 제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저를 건지실 말씀을 주십시오.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십시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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