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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재림 때까지 참으십시오//야고보서 5장 7-11절

by 【고동엽】 2023. 1. 24.

주의 재림 때까지 참으십시오// 20010923

2001-12-07 23:45:01 read : 168

 

주일 낮예배// 야고보서 57-11

 

< 의로운 부자가 되십시오 >

 

여러분들은 물질을 바라볼 때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십니까?

물질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가난함은 죄의 결과가 아닙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부자를 아주 싫어하는데, 부자가 되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곳곳에서 부요함과 풍성함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을 추구하면서 이 4가지는 결코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 건강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둘째, 가족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없다면 그것은 가족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타인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의 눈물로 얻은 물질은 저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물질은 내게 큰 고통을 주면서 '굿바이!'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넷째, 신앙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돈과 영혼을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물질을 어떻게 모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의 1-6절에 나오는 부자는 많은 것을 희생시키며 부자가 되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부자는 품꾼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품꾼의 우는 소리가 하나님께 들린다면 이런 부는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회사를 경영할 때 지출의 일 순위는 직원 봉급인 줄 아는 것이 경영의 기본입니다.

만약 그런 기본과 상식이 없는 사람은 절대 회사를 경영해서도 안되고,

회사의 재정팀, 인사팀에는 절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써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인사관리에서 큰 맹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정말 돈이 없어 봉급을 주지 못해도 그런 기본적인 자세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봉급부터 깎으려고 합니다.

때로는 헌신을 핑계삼아, 신앙을 핑계삼아, 비전을 핑계 삼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회사 예산 삭감의 최후 순위가 바로 봉급인 것은 상식이고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돈 버는 과정에서 남을 울려서도 안되고, 돈을 쓸 줄 몰라서도 안됩니다.

돈을 벌어 직원과 이웃을 위해 쓰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앞의 2-3절을 보십시오. 재물을 쌓아놓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옷도 썩고, 살도 썩는다고 합니다. 명성도 건강도 다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물질을 땀흘려 잘 벌기도 해야 하지만 지혜롭게 잘 사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록펠러는 아들에게 물질을 그냥 남겨주지 않고, 물질 훈련을 철저히 시켰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키고 일주일에 25센트씩 용돈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마다 금전출납부를 조사해서 지출 명목이 나쁘면 5센트를 빼앗습니다.

그러나 지출 명목이 좋으면 5센트를 보너스로 더 주었습니다.

그리고 수입 중에서 10%는 하나님을 위해 쓰고, 10%는 이웃을 위해 쓰게 하고,

10%는 예금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70%만 가지고 잘 쓰도록 훈련시켰습니다.

 

자녀들에게 그런 <청지기 의식>을 심어주십시오. 반드시 축복된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의로운 부자는 적고, 그래서 부자에 대해 한을 품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 야고보는 어떤 말씀을 줍니까? 무엇보다 인내하라고 말합니다.

 

< 인내하십시오 >

 

오늘 본문 7-11절을 보면 인내와 관련된 단어가 무려 5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필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너무 조급합니다.

교통신호가 바뀌고 1초 이내에 차가 출발하지 않으면 뒤차 운전사가 짜증을 냅니다.

컴퓨터, 인터넷도 빨라야 하고, 심지어는 명 설교의 제일조건이 짧은 설교라고 합니다.

빨리 열심히 사는 것! 필요합니다. 그러나 참아야 할 때는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원래 은근과 끈기가 있는 백성으로 참는 데 도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제개발 시대를 지나면서 그런 끈기와 인내가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해외를 여행하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비슷하여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을 알아보는 세 가지 식별 법이 있다고 합니다.

1) 관광 안내원이 한창 설명하는데 중간에 말을 끓고 질문하거나 아는 체 하는 사람

2) 식당에서 음식 빨리 달라고 화난 표정을 하고, 음식이 나오면 10분내에 먹는 사람

3) 버스나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서두른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도 설교가 조금만 길어져도 화가 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다가 빨리 응답을 안 해준다고 쉽게 포기하고 낙심도 제일 빨리 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인의 삼대 미덕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믿고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농부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재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신앙생활도 농사를 짓는 것과 같아서 땀을 흘리고 기다려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어느 아버지가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공부 못한다고 마구 때려 그만 죽었습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공부 못한다고 죽을 정도까지 때리면 어떻게 합니까?

자식 키우는 것을 흔히 자식 농사라고 합니다.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열매를 얻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경우, 대기만성의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부관계도 농사와 다름없습니다. 서로 참아줄 줄 알아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불평거리가 있으면 불평하기 전에 내가 잘 내조하거나 외조하지 못한 것,

그리고 배우자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한 것부터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참고 기다리고 회개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성공한 분들을 보면, 재주나 능력보다는, 대개 뛰어난 인내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재능이 많고, 교육을 많이 받고, 기회가 많아도 인내가 없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재능과 연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항상 좋은 것만 아니기 때문에 안 좋을 때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 좋다고, 자존심 상한다고 금방 뛰쳐나가면 무슨 작품 인생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제일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내의 증거이고,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재림하시지 아니하신 것도 하나님의 인내하심의 결과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시간을 주시는 인내하시는 분입니다.

 

기도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지금 당장 우리들의 기도에 응답을 주실 수도 있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품과 진실한 신앙을 심어주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방법을 조용히 배우는 일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신앙 성장을 위해서도 너무 서두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속성 코스로 은혜 받는 비결을 찾는데 인내가 없는 영적 성장이란 없습니다.

꾸준히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해 가노라면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 마음을 주님께 고정시키십시오 >

 

기다릴 때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 할까요?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여기서 '마음을 굳게 하라'는 원어적인 의미는 '굳게 고정시키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을 굳게 어디에 고정해야 합니까?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고정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흔들리는 사람, 흔들리는 생각과 계획 속에서는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면 신뢰할 수도 없고, 어떤 일이든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우리는 주님의 신부요 약혼녀로서 주님께 우리 마음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조금 어렵다고 신랑을 향한 마음이 흔들리거나 고무신 거꾸로 신어서는 안됩니다.

 

결혼을 약속한 한 남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유학은 갔지만 수시로 편지를 통해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편지가 옵니다. 남자가 어떤 여자와 동거한다는 편지였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침착하게 그 동안 남자가 보낸 편지를 샅샅이 살펴봤습니다.

분명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 편지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를 굳게 믿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남자 친구를 사모하는 한 여자가 농간을 부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농간에 속아서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면 그 삶이 얼마나 불행하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믿고 기다린 결과, 마침내 약혼자는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이며, 성경은 신랑이 보낸 사랑이 담긴 약속의 편지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주님과 우리를 갈라놓기 위해 농간을 부리지만 그때 넘어가면 안됩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마음을 단단히 주님께 고정시켜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외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 원망의 말을 조심하십시오 >

 

어떤 분은 자기의 모습은 살피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다!"고 원망합니다.

자기 모습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외면 받기 딱 좋은 행동을 하면서도 원망부터 합니다.

자기가 실패의 씨앗을 뿌리고, 남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망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원망은 심판을 초래합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왜 원망을 합니까? 대개 어떤 문제가 자기 탓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원망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33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자기 죄, 자기 미련, 자기 어리석음은 잊어버리고 원망을 하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고난이 오면 원망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죄를 살펴보고 회개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죄 때문이 아니라면 성숙을 위해 주어진 줄 알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우리보다 원망할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내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너무 짜증내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을 믿고 기다려보십시오, 그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며칠 전 미국에서 목회하는 동료 목사님의 후배인 이희돈 씨가 이번 테러 참사에서

15분 차이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를 교단 총회 게시판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월드 드레이트 센터 회사의 부사장 겸 집행위원으로 워싱턴에 살고 있었는데

911일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뉴욕의 5인 집행위원회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었습니다.

너무 중요한 모임이라 밤늦게까지 회의를 준비하고 나서 침실로 가니

평소에 몸이 약한 아내가 아침에 마신 커피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뒤척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커피를 끊을 테니 당신도 커피를 끊으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다음날 아침, 늘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였지만 어제 한 말 때문에 그냥 집을 나섰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평상시라면 바로 탑승했지만 이 날은 커피를 사러 잠시 상점에 들렸는데,

커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짜증을 내며 대신에 얼음 채운 딸기주스를 마셨습니다.

뉴욕 공항에 예정대로 8시에 도착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차편에 올라야 했지만,

조금 전에 마신 주스 때문인지 속이 뒤틀려 화장실로 가서 15분을 지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를 탔습니다. WTC 건물에 접근하면서 수석부총재에게 15분 늦겠다고 전화하는데,

갑자기 통화중이던 부총재가, "불이다. 여길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위쪽을 올려다보는데,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머리 위로 한 대의 대형 여객기가 낮은 고도에서 전 속력으로 달려오더니

WTC 두 번째 건물을 정면으로 들이받았습니다. 바로 머리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돌진한 장소가 바로 회의 장소였기에 만약 15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그분은 영락없이 그 층에 있었을 것이고, 충돌 직후 생명을 잃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아내가 뒤척인 것, 커피 줄이 긴 것, 딸기주스 먹고 설사로 15분 늦게 된 것이

그때는 짜증난 일이었지만 나중에 보니 하나님이 살려주시려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손해보고, 답답한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선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아픔이 어떤 축복을 가져다줄지 인내하고 기다려 두고 보면서

하나님도 원망하지 말고, 상황과 환경도 원망하지 말고, 남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의 할 일이 아닙니다.

원망은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결정적으로 막습니다.

그러므로 참아야 합니다. 특히 참을 때 가장 먼저 참아야 할 것은 바로 원망의 말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가장 먼저 범죄한 것이 바로 하와를 원망한 <원망의 죄>였습니다.

원망은 내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사람도, 누구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가장 큰 책임은 자기에게 있습니다.

 

잠언 19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미련한 사람들이 원망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이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지만,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그 길을 굽게 하십니다.

특히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는 사람입니다.

 

원망하는 사람 치고 성공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예외 없이 망합니다.

혹시 성공해도 그 성공은 불행의 예고편일 뿐입니다. 자녀는 틀림없이 헐벗게 됩니다.

현재의 처지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세계를 소유해도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원망은 무서운 병입니다. 암보다도 무섭습니다. 원망은 많은 사람을 같이 망하게 합니다.

반면에 감사는 치유의 능력입니다. 어떤 보약보다도 귀한 약이 바로 감사의 약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이 어떤 공동체에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공동체는 일어설 것입니다.

원망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감사는 많은 축복을 예비하는 태도입니다.

 

< 선진들의 인내를 본받으십시오 >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다 감사하며 인내했던 사람들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다 오래 참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이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려운 때 끝까지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이 언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까? 어려운 때 은혜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기도를 가장 많이 했고, 그때 가장 하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다윗이 고난을 참고 기다릴 때 어떻게 기다렸습니까? 칼을 갈면서 기다렸습니까?

아닙니다. 축복의 씨를 심으며 기다렸습니다. 그 축복의 씨를 언제 심었습니까?

왕이 된 후가 아니라 왕이 되기 이전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도전을 주지 않습니까?

그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더욱 선한 일에 힘썼다는 것이 훌륭한 태도입니다.

우리도 어려울 때 더 이웃을 살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주님이 기뻐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씨를 뿌리려는 마음은 잊지만 그 때를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자 되면, 생활이 안정되면, 건강해지면 씨를 뿌리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성경은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권합니다.

즉 부족한 중에서도 축복의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소중한 태도입니다.

열매를 딸만한 곳에 가서 맹렬히 활동하기보다는 씨를 뿌리는 일에 맹렬해야 합니다.

 

< 인내하는 자의 축복 >

 

인내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반드시 축복의 열매를 얻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

 

욥은 끝까지 참고 견디며 인내했고, 그 결과 그는 2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의 축복과 성숙을 위한 훈련과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시험과 훈련을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인내로 잘 참아야 합니다.

참고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갑절의 축복을 허락하실 때가 반드시 오게 될 것입니다.

 

요새 큰 교회 목사님들이 너무 잘 먹고 잘 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이 들립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 개척목회 할 때 먹을 것도 없어 고생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돈이 없어 아이들 학비도 못 주고 울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주고, 무턱대고 그분들을 잘 산다고 비판하기보다

현재의 그런 모습을 인내의 열매로 보아줄 줄 아는 관용정신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목사님들도 겸허하고 평범하게 사는 삶의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그것은 그분들 몫이고, 우리들은 그분들의 뼈아픈 과거에 심은 축복의 씨앗을 살피고,

우리 자신도 축복의 씨앗을 심는 모습을 갖춰야 더 복된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십시오 >

 

오늘 우리는 참는 것의 중요성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참으라는 말은 참을 때 주님을 사모하며 참으라는 말입니다.

마음속 중심에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의 참고 기다림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마스터키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50여 년 전에 미국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으로 큰 부자가 된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세 친구의 이름은 죤 뉴우턴, 루이 웨더포드, 사무엘 프레스톤입니다.

석유산업 호황으로 억만장자가 된 이들은 전세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놀러갑니다.

그들은 엠배서더 호텔 69층 전체를 예약하고, 첫날 뉴욕 관광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취한 채로 호텔에 돌아와 보니 일이 생겼습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입니다. 프론트 직원은 하룻밤만 2층에 지내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는 술기운에 객기가 생겨 69층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결정합니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어올라 가는데, 처음 몇 층은 괜찮았으나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마지막 몇 층은 거의 기어올라가면서 2시간 반만에 겨우 69층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올라와 보니까 프론트에서 방 열쇠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갈 것을 생각하니 그만 정신이 아찔해지고 고민이 됩니다.

마침 그때 구세주가 등장합니다. 청소하는 흑인 아주머니가 손에 마스터키를 들고,

활짝 웃으면서 객실 문을 열어주며 농담 비슷하게 말합니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고 많이 고생하셨지만 방 열쇠가 없으면 방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마스터키가 없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마스터키는 예수님이지요."

 

그리고 방문 안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마스터 키입니다'라는

흑인 아주머니의 농담이 존 뉴우턴의에게 어린 시절의 교회생활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두 친구에게 "예수님은 정말 우리의 마스터키이다"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두 친구도 그 고백에 동의하고 그날 밤 그들은 눈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 밤에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그날 이후로 그들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됩니다.

텍사스 제일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평생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기도의 후원자, 재정적 후원자가 됩니다.

빌리 그래함이 지금의 빌리 그래함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주님 오실 날도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아무리 어둡고 답답하여도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오래 참고 기다리면 그 날에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기쁨이 되는 자가 될 것이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오래 참아야 합니다.

주님 재림을 준비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삶은 바로 끝까지 인내하는 삶입니다.

가정에서도 오래 참고, 직장에서도 오래 참고, 교회에서도 오래 참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오래 참는다는 말을 듣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열 가지를 잘하다 참지 못하는 것보다 한가지를 잘하고 잘 참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참을 때도 불평, 불만하며 참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조용하게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교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내 것과 내 처지가 최고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할 때 그 눈물과 땀은 반드시 열매맺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기다림과 관련이 깊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참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오래 참음으로 사랑하는 주님 만나는 날 칭찬 받는 귀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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