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골로새서1)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이미 복음을 받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목회 서신이다(골 1:1-12; 4:16-18).2) 전통적으로 골로새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등과 함께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쓴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에베소서의 경우처럼 에베소에서 쓰여졌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골로새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약 60km정도 떨어진 브루기아(Phrygia) 지역에 위치해 있다. 골로새는 소도(小都)이지만, 이 도시에는 고대로부터 마술, 신비주의, 금욕 사상 등이 헬라 종교와 결탁된 혼합 종교가 성행했다(참조 골 2:8,20). 즉 이곳에서는 신을 아는 지식(theosophy)을 터득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특별한 훈련과 금욕주의, 그리고 갖가지 의식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골로새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를 통한 유일한 구원 사상을 부인하고 금욕주의를 내세우는 여러 가지 이단 사상들이 쉽게 침투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바울이 직접 골로새를 방문하여 이곳에 교회를 세웠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교회가 바울의 선교 사역의 영향에 의해 세워졌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동안 그 자신이 직접 방문했든지, 아니면 바울 자신이 이곳에 사람을 파송했든지, 아니면 골로새 출신인 에바브라가 에베소를 방문했을 때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고 돌아가 골로새 교회를 세워 바울의 지도 아래 목회했을 수도 있다(행 19:10; 골 1:7; 4:12-13).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 때문에 이 편지를 썼으며, 이 편지에서 제시되는 바울의 핵심적인 신학 주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 핵심적인 신학 주제는 골로새 교회가 당면한 역사적 정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골로새서에 나타나는 이 핵심적인 신학 주제는 오늘의 교회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 주는가?
1. 우주론적 기독론
최근의 학자들은 골로새서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신학 주제가 그리스도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포함하는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죄로 오염된 온 우주를 새롭게 재창조하신 유일한 구속주이시며, 온 우주의 통치자이심을 강조하는 ‘우주론적 기독론’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한다. 학자들이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 주된 이유는 바울의 기독론의 최고봉(最高峰)이라고 불리우는 골로새서 1:15-20 때문이다.3) 그러므로 골로새서의 중심적인 신학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골로새서 1:15-20의 연구가 필수적이다.
3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15 o{" ejstin eijkw;n tou` qeou` tou` ajoravtou,
prwtovtoko" pavsh" ktivsew",
16 o{ti ejn aujtw`/ ejktivsqh
ta; pavnta ejn toi`" oujranoi`" kai; ejpi; th`" gh`",
ta; oJrata; kai; ta; ajovrata,
ei[te qrovnoi ei[te kuriovthte" ei[te ajrcai; ei[te ejxousivai:
ta; pavnta di j aujtou` kai; eij" aujto;n e[ktistai:
17kai; aujtov" ejstin pro; pavntwn
kai; ta; pavnta ejn aujtw`/ sunevsthken,
18kai; aujtov" ejstin hJ kefalh; tou` swvmato" th`" ejkklhsiva":
o{" ejstin ajrchv,
prwtovtoko" ejk tw`n nekrw`n,
i{na gevnhtai ejn pa`sin aujto;" prwteuvwn,
19 o{ti ejn aujtw`/ eujdovkhsen pa`n to; plhvrwma katoikh`sai
20kai; di j aujtou` ajpokatallavxai ta; pavnta eij" aujtovn, eijrhnopoihvsa" dia; tou` ai{mato" tou` staurou` aujtou`, di j aujtou ei[te ta; ejpi; th`" gh`" ei[te ta; ejn toi`" oujranoi`".
15 그는(그리스도)4)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서(그 안에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서 유지되고 있느니라.
4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18 또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는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그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시고,
그를 통해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5)
골로새서 1:15-20은 그 특이한 시적인 구조 때문에 빌립보서 2:6-11과 함께 초대 교회의 기독론적인 찬송가 가사로 간주되고 있다.6) 그러나, 설사 우리가 이 본문을 초대 교회 찬송가 가사였을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찬송가 가사가 바울 자신에 의해 작사되었거나 혹은 바울에 의하여 자신의 본문으로 선택된 이상, 우리는 이 본문에 나타나는 내용을 바울로부터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7)
이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1:15-17과 1:18-20로-나눌 수 있다. 골로새서 1:15-20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15절에서 그리스도가 모든 만물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했는데 18절에서 동일한 말을 사용해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한 점, 1:16에서 만물이 ‘그 안에서’(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말하면서 역시 19절에서 모든 충만이 ‘그 안에’ 거한다고 한 점, 1:16에서 만물이 그를 통해 ‘그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하면서 역시 20절에서 만물이 ‘그를 위해’ 화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점 등에서 확인된다.8) 첫 부분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옛 창조의 중보자임을 말하고 있으며, 둘째 부분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서 구속, 곧 새 창조의 중보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5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1) 그리스도는 모든 창조물의 주님(1:15-17)
골로새서 1:15-20의 본문에서 제일 먼저 발견되는 중요한 신학 사상은 “그리스도가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주님이다”는 것이다.
(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15절 상반절)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완전히 계시하는 자이며, 그런 점에서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9) 즉 하나님이 존재하는 그 때부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을 계시하는 자로 있었으며, 따라서 그는 창조를 위시한 모든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빌립보서 2:6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본체로 계셨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24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다”와 동일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바울이 1:18 이하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가 또한 구속의 중보자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에는 그리스도가 아담 이후 인간이 잃어버렸거나 훼손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는 자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10)
6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2) 모든 만물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15절 하반절)
이 말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 가운데서 제일 먼저 지음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먼저 나신 자’를 가리키는 헬라어 ‘프로토토코스’(prwtovtoko")는 창조의 순서가 아니라 권위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다(시편 89:27 LXX). 즉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 가운데서 최고의 권세를 가진 자이며,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11) . 이 점은 17절에서 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는 말에서 분명해진다.12)
(3) 만물의 창조주(16절)
16절의 본문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들,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 보좌들과 주권자들과 정사들과 권세자들을 포함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 어떤 권세자들도 그리스도의 주권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이러한 역할은 히브리서 1:2과 요한복음 1:3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4) 모든 창조의 목적(16절 하반절)
16절 하반절에서 바울은 만물은 그리스도를 통해 지음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의 최고 목표라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의 존재 의미는 물론 만물의 궁극적인 종말론적 완성도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만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의미를 갖고 있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7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5) 만물의 유지자(17절 하반절)
바울은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창조된 만물을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분이심을 강조한다(17절 하반절). 이것은 모든 창조물이 그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자연 세계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모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권세까지도 통제하신다. 즉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인 동시에 그 창조된 만물을 통치하시고, 만물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주권자이시다.
이처럼 골로새서 1:15-20의 첫 부분인 15-17은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한다. 그는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재하셨으며, 또한 만물의 창조에 관여하셨다. 지음받은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그를 떠나서 된 것은 없다. 그는 만물의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창조된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들로 하여금 창조된 궁극적인 목적으로 이끌어간다. 그는 결코 단순히 만물의 중보자가 아니라, 그 자신이 친히 만물의 주권자다. 그리스도가 만물의 창조자와 주권자가 되는 것은 그는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는 새 창조물의 주님(1:18-20)
1:18-2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또한 모든 새 창조 사역의 주권자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어떻게 새 창조물을 다스리는 주님이신가?
(1) 몸된 교회의 머리(18절 상반절)
그리스도의 주권은 모든 창조물에게 나타나지만, 특별히 그리스도의 새 창조 사역을 대변하는 자신의 몸된 교회를 통해 나타난다. 바울은 이것을 머리와 몸의 비유를 통해 제시한다. 즉 몸이 머리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 머리인 그리스도의 인도와 보호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주장에는 그리스도는 교회를 다스리고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계속 자랄 수 있는 생명이 원천이 된다는 교훈이 들어 있다.13)
8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2) 새 창조의 근원자(18절 하반절)
18절 하반절에서 바울은, 일찍이 그리스도가 만물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가 됨으로써 모든 창조물에 대해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15절 하반절), 그리스도는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가 되심으로써 모든 새 창조에 대해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는 분이심을 강조한다.14)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신 자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부활을 통해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적인 죽음까지도 정복하신 분임을 가리켜 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든 새 창조의 근원이 되시며 으뜸이 되신다. 그 어떤 영적 세력도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없다.
(3) 모든 신적인 충만을 소유하시는 분(19절)
1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을 거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모든 권세와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임재임을 가리킨다. ‘충만’이란 헬라어 ‘플로레마’(plhvrwma)는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도 나타나지만(예를 들어, 롬 11:12,
25; 13:10; 15:29; 고전 10:26; 갈 4:4), 이 말이 특별한 신학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는 골로새서가 처음이다. 아마도 골로새서에서 사용되는 ‘모든 충만’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성령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15) 하나님은 자신의 충만함의 표현인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과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님이 되신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로 불리어진다.16)
9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4) 그리스도는 우주적 화해자(20절)
바울은 20절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시는 화목의 중보자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질서를 혼란시키고 인간에게 불안을 가져오는 악령의 세력들과는 달리 오히려 우주적인 평화를 가져오는 분이시다.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화평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현재적인 것인 동시에, 또한 장차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적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인간의 속죄에 대한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 즉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화평의 우주적인 범위는 바울의 다른 어느 서신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것이다.17)
3) 기독론 강조의 배경
바울은 왜 골로새서에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주권을 이토록 강조하는가? 골로새서에서 강조되는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주권 사상은 아마도 바울 당시 골로새 교인들이 처한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정황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18) 대부분의 고대 세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울 당시 골로새 사람들 역시 자연의 재난이나 인간의 생사 화복, 질병, 우환 등은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인 권세자들에 의해 통제된다고 보았던 것 같다.19)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권세자들을 두려워했고, 어떻게 하든지 그들로부터 재난을 당하지 않기 위해 금욕, 제사 등 여러 가지 제의적 방법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힘썼던 것 같다.20)
10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이와 같은 당시의 풍조는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2:4),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 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라”(2:8),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셨다”(3:14-15),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2:16),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2:18),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3:2)고 말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골로새 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정사와 권세와 주관자들을 정복하셨음을 말하기 때문이다(고전 2:6-8; 15:24; 엡 1:21; 3:10; 6:12). 그러나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절대 주권 사상에 대한 강조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영적 존재나 권세자들의 실체를 바로 알아 더 이상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며, 따라서 영적 권세자들을 의지해 그들을 미혹하는 어떤 철학이나 이설 등에 미혹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21) 이처럼 바울은 확고한 기독론의 교훈에 근거해 2:6 이하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11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2. 실현된 종말론
우주론적인 기독론과 함께 골로새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신학 주제는 에베소서의 경우처럼 ‘실현된 종말론’ 사상이다. 물론 이것은 골로새서에서는 주님의 재림이나 주님의 재림을 통해 주어질 ‘미래의 구원’에 대한 말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골로새서에도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래적 종말론’ 사상도 분명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바울은 1:22에서 신자가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으며, 1:28에서는 신자의 완전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그래서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미래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으며, 3:4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3:6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그리고 3:28에서는 신자가 장차 유업으로 받을 상급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새서에서 미래적 종말론보다 현재적, 혹은 실현된 종말론에 대한 교훈이 강조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 1:13-14
13 o}" ejrruvsato hJma`" ejk th`" ejxousiva" tou` skovtou" kai; metevsthsen eij" th;n basileivan tou` uiJou` th`" ajgavph" aujtou`,
14ejn w|/ e[comen th;n ajpoluvtrwsin, th;n a[fesin tw`n aJmartiw`n:
13 그는(하나님) 우리를 흑암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겼으니
14 그 안에서(그리스도) 우리는 구속, 곧 죄사함을 누리고 있느니라.
바울은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신자인 우리를 사탄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과거시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과거시제)고 말한다. 이어 14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을 누리고 있다(현재시제)고 말한다. 즉 신자는 이미 사탄과 흑암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주권이 지배하는 나라로 옮겨졌기 때문에(영역적으로나 주권적으로나), 더 이상 신자는 정사와 권세, 마술, 미신 등 어두움의 세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 사건을 통해 바로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 것처럼, 신자는 새로운 출애급 사건인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다.22) 단순히 해방만 된 것이 아니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영역, 곧 사탄의 어두운 세력이 지배하는 나라로부터 자유와 평화와 구원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어졌다. ‘옮겨졌다’라는 과거시제는 이미 신자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고한 종말론적인 해방(사 63:15-19)이 이미 일어났다는 것이다.23) 14절에 나오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을 누린다는 말이 이것을 보여 준다.
12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2) 2:11-13
11 jEn w|/ kai; perietmhvqhte peritomh`/ ajceiropoihvtw/ ejn th`/ ajpekduvsei tou` swvmato" th`" sarkov", ejn th`/ peritomh`/ tou` Cristou`,
12suntafevnte" aujtw`/ ejn tw`/ baptismw`/, ejn w|/ kai;
sunhgevrqhte dia; th`" pivstew" th`" ejnergeiva" tou` qeou` tou` ejgeivranto" aujto;n ejk nekrw`n:
13kai; uJma`" nekrou;" o[nta" ejn toi`" paraptwvmasin kai;
th`/ ajkrobustiva/ th`" sarko;" uJmw`n, sunhgevrqhte uJma`" su;n aujtw`/, carisavmeno" hJmi`n pavnta ta; paraptwvmata
11 그(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들은 육적 몸을 벗는,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통해 손으로 행하지 않는 할례를 받았으니.
12 너희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되고, 그 안에서 또한 너희가 죽 은 자들로부터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 키심을 받았느니라.
13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13 너희가 한때 허물과 육체의 무할례로 죽어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허물을 용서하여 주심과 같이, 하나님께서 너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느니라.
아마도 골로새서에서 실현된 종말론의 특징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구절은 2:11-13일 것이다. 11절에서 바울은 신자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육적인 할례가 아닌 영적인 할례를 함께 받았다(perietmhvqhte, 과거시제)고 말한다. 또한 12절에서는 신자들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고(suntafevnte", 과거시제), 죽었던 신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함께 부활했다(sunhgevrqhte, 과거시제)고 말한다. 13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며(sunhgevrqhte, 과거시제), 따라서 신자의 모든 죄가 이미 사해졌다(carisavmeno", 과거시제)고 말한다.24) 그런 다음 바울은 골로새서 2:11-13을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이 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는 신학적 근거로 삼고 있다. 즉 2:11-13은 그 이하에 나타나는 바울의 모든 명령법적 교훈과 권면의 기반이 되고 있다.25)
우리는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하는 내용-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할례를 받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다는 진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바울은 로마서 6:6에서,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며, 갈라디아서 5:24에서도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그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바울의 선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준다. 첫째,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바로 우리를 위한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과, 둘째는 신자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최초의 신앙고백 중 하나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5:3-4의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사”와 로마서 4:25의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해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해 살아나셨느니라”는 성경 구절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우리를 위한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동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12-13에 나오는 세 가지 헬라어 동사, suntafevnte", sunhgevrqhte, sunezwopoivhsen가 모두 전치사 sun(‘함께’)과 함께 복합동사로 나타나는 점이 이를 입증해 준다.
14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바울이 로마서 6:3-11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했다는 것은 바울 신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26) 신자의 죄 용서, 죽음으로부터의 승리, 구원, 새로운 생명과 삶, 종말론적인 영생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했다는 사실에 근거해 있다. 신자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수 있는가? 앞에서 지적한 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위한 죽음과 부활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초역사적이며 종말론적인 죽음과 부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역사 안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마치 첫 사람 아담의 출생과 범죄가 우리의 출생과 범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역사의 마지막에 우리 인류가 당해야 할 죽음의 심판과 부활을 대신하는 종말론적인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신자의 죽음과 부활을 분리시킬 수 없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신자가 함께 참여했다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모든 구원의 축복에 신자가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즉 고린도전서 1:30이 보여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으며” 골로새서 2:3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따라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한다(3:1). 다시 말해, 땅의 것-우리의 옛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죽이고, 위엣 것-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3:10-11).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신자의 연합을 강조함으로써 신자에게 주어진 구원의 완전성, 충족성을 제시하고 거기에 근거하여 신자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찾고 있다.
15 제2부 바울과 그의 서신
바울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현재성, 실현된 종말론을 강조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주된 이유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사탄의 세력은 물론 죽음까지도 정복되고, 그리스도를 통해 신자들에게 이미 구원이 현재화되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신자들이 더 이상 정사와 권세 등 어두움의 세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신자들은 이미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어두움의 세력들은 더 이상 신자들을 노예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신자들은 더 이상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실현된 종말론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바울은 매일의 일상적인 삶까지도 어두움의 세력의 지배 아래 있으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골로새 교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으려 하는 것이다.
3. 우주론적인 기독론, 실현된 종말론, 그리고 신자의 삶
골로새서에 강하게 제시되어 있는 ‘실현된 종말론’과 ‘우주론적인 기독론’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 골로새서에 나타나 있는 실현된 종말론은,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종말론적인 구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광 중에 살아 계시다. 신자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이미 이루어진 종말론적인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골로새서에 나타나는 강한 실현된 종말론과 높은 우주론적인 기독론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즉 실현된 종말론은 어떤 의미에서 우주론적 기독론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우주론적인 기독론과 실현된 종말론이 다같이 바울의 목회적, 윤리적 권면의 기반으로 제시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신학은 삶(교회/윤리)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참된 삶은 바른 신학에 근거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1) 골로새서의 최근의 중요한 주석은 다음과 같다: J.N. Aletti, Saint Paul Épitre aux Colossiens (Paris: Gabalda, 1993); M. Barth and H. Blanke, Colossians (AB 34B; New York: Doubleday, 1994); H. Binder, Der Brief des Paulus an Philemon (THKNT 11.2; Berlin: Evangelische, 1990); F.F. Bruce, The Epistle to the Colossians, to Philemon, and to the Ephesi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84); J.D.G. Dunn, The Epistles to the Colossians and to Philemon (NIGTC; Grand Rapids: Eerdmans, 1996); G. Gnilka, Der Kolosserbrief (HTKNT 10.1; Freburg; Herder, 1980); A. Lindemann, Der Kolosserbrief (ZBK; Zurich: Theologischer, 1983); P.T. O'Brien, Colossians, Philemon (WBC 44; Waco: Word, 1982); P. Pokorny, Der Brief des Paulus an die Kolosser (THKNT 10.1; Berlin: Evangelische, 1987); M. Wolter, Der Brief an die Kolosser: Der Brief an Philemon (ÖTK 12; Gütersloh: Mohn, 1993); N.T. Wright, The Epistles of Paul to the Colossians and to Philemon (TNTC; Leicester: IVP/Grand Rapids: Eerdmans, 1986).
2) 전통적으로 골로새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와 함께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로 알려져 왔다. 지난 세기 이후 골로새서의 바울 저작권을 부인하는 적지 않은 학자들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골로새서의 바울 저작권은 R.P. Martin, N.T. Wright, P.T. O'Brien, P. Benoit, G. Fee, M.D. Hooker, F.F. Bruce, D. Guthrie, M. Barth, N. Kehl, C.F.D. Moule, W.G. Kümmel, F.W. Beare, W. L. Knox, E. Percey 등 상당한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3) P. Beasley-Murray, “Colossians 1:15-20: An Early Christian Hymn Celebrating the Lordship of Christ,” in Pauline Studies, FS. F.F. Bruce (Eceter: Paternoster, 1980), 169.
4) ‘그는’이란 인칭대명사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1:13로 볼 때 부인할 수 없다.
5) 이 본문의 우리말 번역은 NA27판 헬라어 본문에 근거한 필자의 사역(私繹)임을 밝혀둔다.
6) L. Helyer, “Recent Research on Col 1:15-20 (1980-1990),” GTJ 12 (1992) 51-67.
7) 예를 들어, 이 구절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용어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말은 이미 다른 바울 서신에 바울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고후 3:18; 4:4; 빌 3:21; 고전 15:49). 그리고 이 구절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인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주권 사상도 고린도전서 8:6과 로마서 8:38-39에서도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C. Maurer, “Die Begründung der Herrschaft Christi über die Mächte nach Kolosser 1, 15-20,” Wort und Dienst NF 4 (1955) 71-93; N. Kehl, Der Christushymnus im Kolosserbrief (SBM 1; Stuttgart: Katholisches Bibelwerk, 1967) 162-64; S. Baugh, “The Poetic Form of Col 1:15-20,” WTJ 47 (1985) 227-44; J.F. Balchin, “Colossians 1:15-20: An Early Christian Hymn? The Arguments from Style,” Vox Evangelica 15 (1985) 65-94; N.T. Wright, “Poetry and Theology in Colossians 1.15-20,” NTS 36 (1990) 444-68, in The Climax of the Covenant (Minneapolis: Fortress, 1991) 99-119을 보라.
8) James D.G. Dunn, 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 (Grand Rapids: Eerdmans, 1998), 275.
9) 유대교 문헌인 솔로몬의 지혜서 7:25-26에서도 인격화된 지혜가 하나님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리우고 있다.
10) 바울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그가 창세기 1:26에 있는 첫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하나님의 형상됨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롬 5장, 고전 15장)에서 예수님을 아담과 연결시킨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하나님의 형상됨은 우리가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거나 훼손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은 바울이 18절 이하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가 또한 구속의 중보자라고 말하는 것에서 분명해진다.
11) Clinron E. Arnold, The Colossian Syncretism. The Interface between Christianity and Folk Belief at Colossae (Grand Rapids: Baker Books, 1996), 256
12) P. Beasley-Murray, “Colossians 1:15-20: An Early Christian Hymn Celebrating the Lordship of Christ,” 173.
13) Arnold, The Colossian Syncretism, 259.
14)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새 창조의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계시록 1:8; 21:6; 22:3에서 그리스도가 처음과 마지막, 알파와 오메가가 된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15) A.J. Bandstra, “Pleroma as Pneuma in Colossians,” Ad Interim (FS. R. Schippers; Kampen: Kok, 1975) 96-102.
16) 그리스도가 모든 신적인 충만을 소유하신 분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종종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부른다(1:26,27; 2:2; 4:3). 바울은 2:2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1:27, 4:3에서는 그리스도와 ‘그 비밀’을 동일시한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째서, 그리고 무슨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 혹은 그 비밀이라고 말하는가? 구약과 쿰란 문헌 등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의 계획과 관련하여 ‘비밀’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M.N.A. Bockmuehl, Revelation and Mystery in Ancient Judaism and Pauline Christianity [WUNT 2/36; Tübingen: J.C.B. Mohr, 1990], 221-30; R.E. Brown, The Semitic Background of the Term “Mystery” in the NT [Philadelphia: Fortress, 1968] 1-30, 56-66; G. Bornkamm, TDNT 4. 824).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비밀’이라고 말할 때,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 역사의 중심적인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그 성취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떠나서 참된 구원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말은 기독론과 구원론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7) F. Büchsel, TDNT 1, 254.
18) A.J.M. Wedderburn, “The Theology of Colossians,” in The Theology of the Latter Pauline Letter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15-16; F.F. Bruce, “The ‘Christ-Hymn' of Colossians 1:15-20,” BibSac 141 (1984) 103.
19) 이 점은 주후 1세기 전후의 여러 유대 문헌(예를 들어, 1 Enoch 6:7-8; 61:10; 2 Enoch 20:1; Test. Levi 3:8; TSol 20:15; 3:6; 3 Baruch 12:3; Testament of Abraham 13:10)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 Darrell L. Bock, “A Theology of Paul's Prison Epistles,” in A Biblical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Chicago: Moody Press, 1994), 304-305.
21) Clinton E. Arnold, The Colossian Syncretism, 252.
22) G. Shogren, “Presently Entering the Kingdom of Christ: The Background and Purpose of Col 1:12-14,” JETS 31 (1988) 176-77.
23) Arnold, Colossian Syncretism, 290-91.
24) 우리는 이와 유사한 내용을 에베소서 2:4-8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최갑종, “바울과 종말: 에베소서 종말론 연구,” [바울 연구 1: 수정 증보판]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209-212를 보라.
25) P. Pokorny, Colossians. A Commentary (Peabody: Hendrickson, 1991), 126.
26) G. Vos, The Pauline Eschatology (Grand Rapids: Baker Book, 1979), 45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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