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이 되십시오// 20010218
2001-12-08 17:40:17 read : 268
주일낮 예배// 하박국 2장 1-4절(구약성경 1303쪽)
1992년 결혼과 동시에 인천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저는 이런 꿈을 가졌습니다.
"하나님! 40세가 되는 2000년부터 한국 교회를 위해 적극 공헌하겠습니다.
그리고 45세가 되는 2005년부터는 세계의 교회를 위해 적극 공헌하겠습니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개척 사역을 아내는 상당히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꿈의 조정기가 필요하듯이 저희에게도 그 조정기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그 조정기를 사역준비기로 삼기로 하고 내일을 위한 준비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섬기면서 여러 신학교에 출강하여 저 자신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39살이 되도록 한국 교회를 위해 공헌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목사의 경우에는 섬기는 교회가 커야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섬기는 교회가 적으니 작년에 저도 저의 꿈이 공수표라고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인터넷을 전혀 모르던 저에게 하나님께서 인터넷을 알게 하시고
그 동안 준비했던 수천 편의 설교, 칼럼, 강의노트 등을 쏟아 붓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인터넷 사역을 통해서 내 꿈을 이루어보리라!"는 생각이 전혀 없이
그저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생각만으로 게시했는데
점차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3주전부터는 일주일에 17000건씩 접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산나넷, CBS 기독교방송국, 네티앙에는 직접 칼럼을 게시하고 있고,
그 외에 수많은 곳에서 칼럼 섭외가 오는데 시간 때문에 정중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방송국 C3TV, 포탈 사이트 <크리스찬 포탈>, 월간잡지 <가정과 상담>
월간잡지 <교회와 신앙>, 신문사 <크리스찬 타임즈>와 <개혁공보>, <설교은행> 등에서는
저의 말씀과 칼럼을 스스로 인용해서 정기적으로 게재하고 있거나 게재할 예정입니다.
그런 신문사나 잡지사를 제외하고 인터넷 선상에서만 현재 저의 홈페이지를 포함해서
일주일에 약 3만 건 이상의 말씀이 신자뿐만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접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제가 이런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랐을 것입니다.
저도 비전을 세우고 준비하며 기도했던 것이 이렇게 응답될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가끔 기도한 후에 정말 그 기도가 응답되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서울 강남에 한 교회가 있었는데, 그 옆에 있는 큰 술집 때문에 신경을 쓰다가
목사님이 40일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 술집이 없어지게 해 주세요."
그 기도가 정말 응답되어 어느 날 불이 나 술집이 깡그리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응답되었다고 좋아하는데 며칠 후 술집 주인으로부터 고소장이 날라 왔습니다.
술집에 불이 난 것이 교회가 기도해서 그렇게 되었으니 배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법정에 서게 되었고, 판사가 먼저 술집 주인에게 "원고는 피고가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니까 술집 주인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분명합니다. 설교 시간에도 수시로 그런 말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판사가 목사님에게 "인정하십니까? 술집 없애 달라고 40일 동안
매일 열심히 기도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까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판사님!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기도한다고 술집에 불이 날 리가 있겠습니까?"
이 얘기를 들어보면 술집 주인과 목사님 중에 누가 믿음이 좋은지 아리송합니다.
이처럼 열심히 기도한 뒤에 정말 그 기도가 응답되면 깜짝 놀라는 분이 있습니다.
저도 지난 1년간 인터넷 사역이 확장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그런 기분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꿈꾸고 준비하고 기도하는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꿈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는 본문입니다.
하박국 1장에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왜 세상이 이렇게 어둡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미래의 새로운 묵시, 즉 꿈에 관해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꿈과 관련한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 영롱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
본문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뭐라 말씀하십니까?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급박한 상황에서도, 바쁜 상황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꿈을 꾸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이나 공동체에 복을 주실 때 꼭 꿈을 먼저 주십니다.
그리고 그 꿈을 따라 기도하게 하시고, 마침내 꿈을 이루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와 목사는 성도들의 가슴에 항상 영롱한 꿈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꿈이 없이 우연히 그런 위대한 일을 성취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정말 보람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꿈을 가져야 합니다.
며칠 지나면 없어질 꿈이 아니라 오래도록 간직되는 영롱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꾼을 배출하는 교육의 꿈을 가졌습니다.
얼마 후 그는 기부금 700파운드와 자기 책 200권을 기증하고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는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도 보지 못한 채 1년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학교가 지금은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인 존 하바드가 세운 하바드 대학입니다.
꿈은 작은 씨앗입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꿈은 지식보다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꿈꾸었을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만들었습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할 때도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만들었습니다.
꿈은 건물의 설계도와 같습니다. 꿈이 없는 인생이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고 자신을 소중하게 이끌어 갈 꿈을 가지십시오.
꿈은 징그러운 쥐를 월트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트 디즈니는 그 미키 마우스를 가지고 디즈니랜드를 건설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디즈니랜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지 않습니까?
시카고에서 교회를 개척했다가 실패한 한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단돈 500불을 들고 시카고에서 로스엔젤레스로 왔습니다.
그런데 로스엔젤레스에 처음 가는 사람은 거의 들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디즈니랜드입니다. 그 젊은 목사도 그곳을 둘러봤습니다.
그러자 꿈이 생겼습니다. "내게 비록 500달러밖에 없지만 이것으로 시작해 보리라."
그리고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 교회가 바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수정교회입니다.
꿈은 또 다른 새로운 꿈을 낳습니다. 그리고 꿈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대개 찬란하고 영롱한 꿈이 있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장점을 보는 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장점을 보다 보면 장점을 따르다가 자기에게도 그런 장점이 생겨나게 됩니다.
같은 것을 보아도 장점보다는 단점만 보면 어떻게 삶의 전진이 있겠습니까?
어느 날 푸쉬라는 고양이가 런던에 있는 왕궁을 방문했습니다.
한 사람이 묻습니다. "푸쉬야! 왕궁에 가서 무엇을 보았지?"
푸쉬 고양이가 말합니다. "여왕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보았지요."
꼭 모든 사물을 볼 때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성공자와 실패자에게 있는 중요한 태도 차이 하나가 있습니다.
성공자는 성공한 사람을 칭찬하고 실패자는 성공한 사람을 비판하는 태도입니다.
성공한 사람을 보면 존경심을 가지고 장점을 찾아 배우는 사람은 성공하고,
성공한 사람을 보고 질투심을 가지고 단점을 찾아 깎아 내리면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것이 결국 성령충만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자존심으로만 가득 찬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충만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자존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특별히 선구자라고 합니다.
선천적 구제불능성 자아도취증 환자라는 말인데, 그런 선구자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존심으로 가득 찬 삶이 아닌 꿈과 비전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인도 비전이 있으면 청년과 같고, 청년도 비전이 없으면 노인과 같습니다.
꿈이 있어야 절망 중에 희망을 잡고, 현재 속에서 미래를 잡을 수 있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비전을 내 마음에 열정을 일으키는 미래의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비전은 내 영혼을 풍성하게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존재의 미래의 소원입니다.
그러한 소원이 있을 때 우리의 무가치한 삶에 종지부를 찍고 삶이 가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승리자로 살기 위해서 항상 영롱한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우리가 꿈을 꾸고 나가지만 반드시 우리의 꿈을 좌절시키는 환경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꿈이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지연되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도 꿈을 꼭 붙잡고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때로 비전을 가지고 전진하려는 할 때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 분은 상황에 따라 나쁘게 보면 부정주의자이지만 좋게 보면 신중한 분입니다.
신중한 분은 과거의 경험 및 깊은 생각으로부터 가치 있는 지혜를 발굴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신중한 분이 필요하고, 신중하면 실패의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그 신중함이 내일의 발걸음을 약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신중해서 자기의 날개를 잘라버리면 언제 어떻게 날아보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사실은 신중한 사람은 사람을 움직이기 힘듭니다.
주위에 감화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전을 가진 사람이 사람을 움직이고 내일을 소유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꿈과 비전을 가지고 모험을 하는 사람 편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내일의 찬란한 꿈을 향해 도전해 보십시오.
돈이 없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꿈이 있으면 돈이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가슴에 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면 반드시 열매를 쥐게 될 것입니다.
요새 자살사이트가 성행한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요? 꿈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풍요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꿈까지 포기하니 조그만 어려움도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어려워도 그 가운데 꿈을 꾸고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면
열매도 얻게 되고,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삶에 용기를 얻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주님 앞에 나오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은 실패를 모르는 어떤 환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실패 속에서 얻어지는 삶의 소중한 보화가 바로 꿈입니다.
그래서 어려움 중에서 오히려 삶의 목적과 꿈을 구체화시킨 사람이 많습니다.
이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치하에 살고 있던 한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전 가족은 나치에 의해 가스실에서 처형당하고 오직 누이 한 명만 남습니다.
엄청난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기의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결국 그는 무너지고 깨어진 삶의 조각들을 수집해서 훌륭하게 인생을 개척합니다.
그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빅터 프랭클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왜 사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우리에게는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꿈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비전이 있으면 어떤 환경도 충분히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꿈을 가졌는데 어려운 환경이 있다고 불평하고 좌절하면 후퇴만 있을 뿐입니다.
어떤 요술쟁이 집에 생쥐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생쥐는 요술쟁이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주인님! 고양이가 무서워요?"
요술쟁이는 그 하소연을 듣고 생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고양이가 된 생쥐가 요술쟁이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주인님! 개가 무서워요."
그래서 요술쟁이는 또 그 생쥐를 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개가 된 생쥐는 또 호랑이가 무섭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자 요술쟁이는 화가 나서 생쥐에게 말합니다.
"너는 겉모습만 바뀌었지 하는 짓은 항상 생쥐구나! 안되겠다. 다시 생쥐가 되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불평과 원망과 두려움이 지나치면 복을 받을까요?
우리는 주님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히 전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이 잘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다고 생각하고,
일이 잘 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까?
아닙니다. 신앙으로 사는 것은 꿈과 환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삶이 힘들어도 다시 한번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꿈을 잃지 마십시오.
< 꿈을 향하여 구체적인 준비를 하십시오 >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은 마음이 교만해지고 정직함을 잃게 됩니다(3절).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진실한 꿈을 가진 사람은 겸손하게 준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특별히 좋은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시고 모든 기회가 최상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회와 가능성을 누가 살리고 결국 꿈을 이루어냅니까?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꿈의 사람 요셉을 보십시오.
어려운 조건을 원망하지 않고, 그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요셉은 꿈뿐만 아니라 꿈을 뒷받침하는 성실성으로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며서 어렵다 하지만 이때도 땀을 흘리면 반드시 길은 열립니다.
사실상 내일을 위해서 지불하는 현재의 대가는 결코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복의 씨앗입니다. 그것은 영광을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 타령, "내가 왕년에"라는 왕년 타령을 하지 말고
정말 자랑할만한 새로운 자랑거리를 만들기에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자랑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구체적인 꿈과 계획이 없고
그런 꿈과 계획이 있어도 그 꿈을 위해 대가를 치르려는 용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아무 준비 없이 마음만 높아져 있고 서두르기만 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땀의 준비가 없는 꿈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내가 준비만 된다면 기회는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링컨의 말입니다.
땀이 없는 꿈의 성취는 믿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 제가 96-97년에 MBC 신우회 지도목사를 할 때
그 공동체에 있었던 한 집사님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지난 해 증권 투자로 4천 만원을 손해보았지만
하나님 앞에 물질에 욕심을 낸 것에 대해서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아는 한 분은 증권투자로 6억까지 돈을 벌었다가
지금은 몇천 만원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분은 괜찮은데 그분의 남편은 신앙이 증권시세와 함께 자꾸 흔들립니다.
그래서 증권이 오르면 언어부터 달라집니다. "목사님이..."라고 했다가,
증권이 내리면 "목사가..."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신앙이 깊어져서 이번에 안수집사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물질생활에서 떳떳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임하는 건전한 재테크는 잘못이 아닙니다.
지혜가 없어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돈을 다 차지하도록 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러나 돈에 신앙이 좋아졌다 나빠졌다가 하려면 재테크를 하지 않기를 권고합니다.
굳건한 신앙 안에서 재테크를 하시고 재테크를 하면서도 땀을 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형태이든지 땀과 노력이 없는 꿈을 결코 보증해주지 않으십니다.
가끔 보면 일도 안하고 집에서 백마 탄 왕자만 꿈꾸는 처녀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전은 놀고먹으면서 꾸는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야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백마를 탄 왕자를 기뻐하실까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허황된 꿈을 가지고 세월 허송하다가 급하니까 기도 제목이 어떻게 바뀝니까?
"하나님! 조랑말로 좋습니다."
그런 식으로 급하게 생각해 너무 물러서다가 배설물 밟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중요한 것은 허황된 꿈을 꾸기보다 현재의 처소에서 헌신의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땀을 흘리며 나가다 보면 반드시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이 있습니다.
꿈을 가졌으면, 그 꿈을 꼭 붙잡고, 그 꿈을 위해 구체적인 땀을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도 대가를 치르는 만큼 열매를 얻게 됩니다.
대가를 치르겠다는 자세가 없는 꿈은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 꿈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십시오 >
저는 4절 하반부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꿈을 이루리라."
우리의 꿈에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을 때만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버림받고 야반도주할 수밖에 없는 야곱 같은 영혼과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꿈을 가지고 전진할 때에도 그런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다시 한번 꿈을 꾸십시오. 꿈의 씨앗은 작지만 큰 역사를 이룰 씨앗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시시한 시작이 시시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시시해 보입니다. 꿈의 씨앗도 처음에는 너무 시시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시시한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아무도 위대함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꿈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아내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남편의 꿈을 꺾는 일입니다.
남편의 꿈을 격려하려고 해야 하지, 남편을 조종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부모들이 자녀에게 해줄 가장 소중한 일은 꿈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자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환경이 아니라
자녀의 영혼을 감동으로 이끌 수 있는 위대한 정신과 만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작아 보여도 꿈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사단의 특징은 꿈을 깨는 것이고, 성령의 특징은 꿈을 주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일 중의 하나는 교인들에게 꿈을 주는 일입니다.
우리 나라에 꿈이 없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 있습니다.
그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살기도 어렵군 죽으면 편하리 44번지>입니다.
반면에 꿈이 있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 있는데
그 주소는 <은혜도 풍성하군 믿으면 행복하리 77번지>입니다.
어느 곳에 사시겠습니까?
꿈을 가지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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