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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번의 속죄 제물 되신 예수님 히10:14 --데릭 프린스

by 【고동엽】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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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설교문 거룩한 교환  

The Exchange At The Cross

 

▶히10:14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거룩하게 만드신 사람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해주셨습니다.’

For by one offering he hath perfected for ever them that are sanctified.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그리스도는, 영원히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를 위해서

십자가로, 모든 면에서 모든 필요를 영원히 만족 시키는 유산을 주셨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영단번의) 희생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선언의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림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구원을 통한 유산을 받는 것이 ‘지속되는 과정 on going process’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단 한번으로 완전합니다. once for all

그러나 우리가 누리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것은 계속적입니다. progressive(발전적)

 

이 과정progress은, 예수님의 희생이 완전하고 온전한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1년 반전에 파키스탄에 갔습니다.

 

그 국가는 8천 4백만 인구 중 90%가 무슬림입니다.

그 중 기독교인은 인구 10%의 소수자로서, 멸시받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5명의 다른 사역자들과 함께, 9일 동안, 5개 도시에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집회 중, 병 든 자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광고했습니다.

첫 집회는 8백만 인구가 사는 카라치에서였습니다.

 

우리가 그 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그곳 원주민 기독교 지도자가 가라치의 기독교인 거주 지역으로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그곳의 빈곤은, 제가 경험한 것 중 최악이어서, 저는 거의 병이 날 뻔 했습니다.

저는 무슬림 지역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다른 강사들이 그 지역에 방문한 적이 있기에

카라치에서는 단 한 번의 집회만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지도자에게 집회가 어디에서 열릴 것인가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교회에서 열린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가난한 형편을 본 후라,

저는 어떤 집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몇 명이나 올 것이라 예상 하는지 물었습니다.

600명이 온다고 했습니다.

 

▶저희 소규모 그룹은, 작은 차를 타고 달렸는데,

파티스탄 스타일로 1시간 늦게 도착했습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았고, 길거리 교차로에 3천여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온 것입니다.

 

간신히 성경을 펼쳐놓을 탁자 한 개를 놓고, 제가 섰습니다.

그 공간을 빼놓고는 사면에 모두 파키스탄 인들로 완전히 둘러싸였습니다.

사람이 다닐 통로, 이런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묻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들이 모두 배가 고프고, 저는 오렌지 농장을 갖고 있다면

두 가지 방식의 선택을,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한 방식은, 오렌지를 따서 여러분에게 주어, 당장 임시로 먹게 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은, 오렌지 농장을 이곳에 만들어

당신들 스스로 길러서 계속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오렌지 농장을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여러분이 오렌지를 공급받기를 원합니다.

제가 가진 오렌지 농장이란,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제가 파키스탄인들에게 한 그 짧은 설교를, 여러분과도 나누겠습니다.

 

저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기를 원하는 분이 있는가를 물었더니

1,000여명이 손을 들었는데 그중 500명은 무슬림이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를 설명할 긴 시간은 없었습니다.

무슬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통역자를 통해서, 거기 길거리에 무리지어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기도를 따라하게 했습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고,

내 죄를 사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 하셨음을 믿습니다.’

 

저는, 그들이 이런 기도를 한 번 따라했다고 해서

물론 다 구원받았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 같은 무슬림 국가에서, 500여명의 무슬림들이,

다른 (구경꾼) 무슬림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치유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차례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 한 사람씩 붙잡고 치유기도를 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치유를 위해 기도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더니

90%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병들어 있습니다.

제3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픈 곳에 손을 대시면,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지실 것입니다”

 

신유기도하고 난 후, 제가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셨다고 믿는 사람은 손을 들으시오”

소수가 남들 눈치를 보면서 손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제 3미터 앞에서 무슨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한 파키스탄 목사가, 상황을 파악하러 다가갔습니다.

 

나면서부터 귀먹고 벙어리인 한 12살 무슬림 소년이

제가 기도할 때 듣기 시작했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년을 설교단으로 불러내니, 모두가 흥분했습니다.

 

파키스탄 여인들이 안수기도를 받겠다고,

우리 팀의 손을 끌어다가, 자신들의 머리에 얹었습니다.

 

그런 소문이 퍼져 나가서인지, 다음 지역집회에는 1만6천명이 모였습니다.

9일 동안 약8~9천명이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일 년 후 다시 갔을 때, 그 지역에 5개 교회를 담당하던 지도자 목사는

18개 교회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오렌지 농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비아에 갔습니다.

 

그 곳에는 7천명의 현지 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십자가에 대해, 6일 아침 연속으로, 체계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독교인들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놀라운 창고가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영적이든, 물질적이든, 건강이든, 시간 안에서든, 영원에서든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 창고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쓰려면, 그곳 문지기와 친구가 되어야합니다

그 문지기를,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라고 대답 했습니다.

‘좋은 대답이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그 문지기는 성령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의 모든 보화는,

지금 성령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바르게 교리와 신학을 이해하고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만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그 하나님의 모든 보화가 가득한 창고를 지키고, 관리하십니다.

 

성령님은 오직 한 개의 열쇠만 가지고 있는데,

그 열쇠는 매우 특별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성령님은, 십자가를 사용해서, 그 창고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주제를, 서론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또한 제 개인적인 경험도 이것을 지지합니다.

 

 

◑나의 개인적 신유체험

 

▶제가 당시, 군대 막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이미 해드렸습니다.

당시는 2차세계 대전 중이었고, 한 밤 자정쯤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저는 너무 무지한 불신자였기에,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었지만,

제가 혼자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즉시로 저는 교회에 나갔죠.

 

그리고 10일 후에, 제가 침실에서 기도하던 중 성령세례를 받았고,

그 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방언통역 은사를 받았습니다.

 

보통 신자들은, 교회에 성실히 다니는 가운데, 이런 구원과 성령세례를 체험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저는, 스스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가.. 구원을 받고, 성령세례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저는, 영국군 의무병으로, 북 아프리카로 파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3년을 보냈는데

그동안 저는 의사들이 고칠 수 없는 피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상자>라는 책은, 그때 제가 어떻게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게서 어떻게 기적적으로 나를 고치셨는지, 자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당시 저는 환자로서, 군대 병원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습니다.

한 번은, 수에즈 운하의 알바라에 있을 때,

카이로에서 온 구세군의 한 특별한 여전도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당시 67세로 방언을 말했습니다.

‘구원’만을 강조하는 구세군의 분위기에서,

그녀는 강력한 방언을 말하며, 성령사역을 주장하는 분이었습니다.

*구세군이란 이름 자체가 ‘salvation’ army, 구원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25년 전에 인도에서, 말라리아에서 기적적으로 치유 받았고,

그때 이후로 당시 67세까지, 한 번도 약을 복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귀한 분이, 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한 영국군인(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분을 생각할 때면, 지금도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분은, 한 영국군 운전병과, 다른 미국 여선교사(동역자)와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를 병실에서 불러내어, 타고 온 자동차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자동차 앞좌석에는 운전사와, 그분(구세군 여전도사)과

뒷 자석에는 저와 미국인 여선교사가 앉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제 옆에 앉은 미국 여인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온몸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앞의 두 사람도 흔들리기 시작했고. 차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엔진은 정지되어 있었는데, 차도 흔들렸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네 사람은 모두 진동하며 기도했습니다.

 

한동안 방언 기도가 있은 후, 여선교사(20대 후반)는, 방언 통역을 했습니다.

 

저는 매우 영국적인 사람으로, 캠브리지 졸업생 같은 고상한 영어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 여선교사는, 오클라호마의 사투리 같은, 사투리 영어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미국 여인은 방언 해석을 할 때는

아주 아름답고 품위 있는 고대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저는 세익스피어를 공부할 때 그의 문장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는데

그 미국여인이 그렇게 유창하고 아름다운 고대 영어를 사용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1942년에 제가 들었던 그 말(방언 통역)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 말은 제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갈보리에서 주께서 이루신 사역을 기억하라.

그것은 모든 면에서 완전한 사역이다’

 

그분은 매우 고상한 영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영어를 묘사할 수 없습니다.

 

▶저는 희랍어를 수년 동안 공부했고, 신약성경을 희랍어로 읽습니다.

신약을 영어로 읽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입니다.

 

희랍어로는 ‘테텔레스타이’라는 단 한 단어로,

어떤 일을 완벽하게 끝냈을 때 사용하는 완료시제 동사 입니다.

‘완전하게 온전히 다 이루었다’고 강조해서 번역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단번에 완전히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구원을 progress로, 계속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방언통역으로 성령께서 제게 ‘십자가의 사역을 기억하라’고 하실 때

제가 십자가에서 어떤 것이 이루어졌는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저의 모든 필요가 다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랍어를 공부한 후에믿게 되었습니다.

(즉 제가 ‘오렌지’가 아니라 ‘오렌지 농장’을 얻은 셈입니다.)

 

저는 그 날, 아주 중요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제가 그 차에서 나왔을 때, 그 차에 들어갈 때와 똑같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방언통역을 통해, 제 문제가 무엇이며,

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 통변을 통해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 집회에서, 그 “십자가”를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내일 저녁, 치유 사역을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겠지만, 모두 다 치유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집회에서 다 기적적으로 치유하시지는 않습니다.

 

치유를 받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그 계시(방언 통역)를 받은 후,

나중에 성경을 읽으면서, 특별히 잠언 4:20,22를 통해 치유를 받았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 이니라’

 

제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이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이라는 약을 통해, 내 모든 병을 치유하신다면

나는 더 이상 질병을 짊어지고 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약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당시 영국 군대에 속해 있어서

그들이 어떻게 약을 복용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매일 식후 세 번 약을 먹습니다.

저도 그렇게 성경을, 식후에 세 번 읽었습니다.

 

그 말씀은, 저를 완전히 영구적으로 치유했습니다.

메마르고 삭막한 그 북아프리카 기후에서,

저를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치유가 되든지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기반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고 하셨을 때.. 거기엔 여러분의 치유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오렌지 나무가 아니라과수원으로 데려 가겠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하나님의 과수원은 늘 풍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유산으로 받은 것, 즉 다 이루신 것들>

을 연구하기로 결정했었는데

여전히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있습니다. 끝없는 연구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이해하는 열쇠는, 신성한 교환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모든 악의 결과를, 예수그리스도가 감당하셨고

예수그리스도의 흠 없는 순종의 결과로 얻게 된 모든 선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게 신성한 교환 divine exchange 이지요.

 

더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가 저지른 악의 결과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결과인 모든 혜택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그렇게 하실 줄도 몰랐습니다.

주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거저주시는, 주권적이며, 측량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성경에 예언 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예언은 이사야53장입니다. 이사야53장을 봅니다.

 

이곳에 ‘여호와의 종’이 나오는데, 그 종이 이름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사도들은 모두 이사야53장의 그 종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고 동의합니다.

 

이사야53:6은 이사야서의 중심 구절이며, 속죄에 관해서도 중심인 구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진 죄는 무엇일까요?

모두가 은행 강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간음이나 도둑질을 하고, 과하게 술을 마시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범하지 않는 많은 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로 가는 죄’입니다. 53:6

 

그 ‘각자의 길’은 한 단어로 말하면 ‘반역 rebellion’입니다.

‘반역’은 인류의 보편적인 죄입니다.

 

어느 민족이나 인종이나, 우리 모두 하나님을 반역 rebellion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에 매달았을 때

인류의 불법과 죄와 반역을 그분께 지게 했습니다.

 

오늘밤 구약의 구절을 일일이 찾지는 않겠지만, ‘반역’은 히브리어로 ‘아본’입니다.

‘반역(아본)’은, 죄나 반역 뿐 아니라, 죄의 모든 악한 결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게 죄와 반역뿐 아니라

인간의 죄의 모든 악한 결과도 담당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그 악한 죄의 결과에서 자유하게 되고

대신 의의 유익을 누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거룩한 교환’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53:4-5절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말씀에는 영적인 측면과, 육적인 측면,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영적 측면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악과 허물 때문에 징계를 받았기에,

우리가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용서를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받지 못했다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오직 용서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악을 대신해서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형벌을 받았기에, 우리는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교환’이죠.

 

저를 따라서 선포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징계를 받았기에 우리는 용서를 받았다!”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주님이 우리의 고통을 당하고, 우리의 질병을 지고 가셨기에

그 결과 우리의 상처가 나음을 입었습니다.’입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질병을 예수님이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나음을 주셨습니다. 거룩한 교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아셔야합니다.

 

▶이제 신약도 함께 봅니다.

마태가 이사야53:4-5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8: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도 이사야53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래서 십자가에서 주님이 우리의 죄악과 허물과 질병을 지셨고

그분의 상처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분이 대신한 것입니다.

 

거룩한 교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교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대가가 치러졌습니다.

주님이 상처를 입었기에,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신학자가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상처를 입었기에,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교환입니다.

 

1.예수님이 징계를 받아서, 우리는 용서를 받을 수 있었고

2.예수님이 상처를 받아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사야 53:10에는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들이, 계속 설명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의 영혼을 속죄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인데

즉 ‘그의 영혼이 속죄 제물이 되었을 때’ ..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은, 모든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 sin offering이 되셨습니다.

 

레위 제사장직에서 죄를 지은 자가 용서 받으려면

희생 제물로 양이나 염소나 소를 제사장에게 몰고 와서 죄를 고백하면

제사장은 손을 동물의 머리에 얹고 상징적으로

그 사람의 죄를 그 동물에게 전가하고, 죄지은 사람이 아닌 동물을 죽입니다.

동물이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신약은 소와 염소와 양이 인간의 죄를 속죄하지 못한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속죄제의 예비 된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영혼은 속죄 제물이 되었습니다.

속죄 제물이 됨으로써, 그분은 죄가 된 것입니다.

 

고후5:21절을 보면 이런 사실에 대한 바울의 해석이 있습니다. (다음 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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