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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이정익목사 명설교(385편)

성령의 바람

by 【고동엽】 2023. 1. 14.

성령의 바람

 

 

 

 

 

 

 

 

                                2:1-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성령을 보내주신 것도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700년 동안 세상에 오신다고 예언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께서 오시기를 학수고대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사람들과 33년 동안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언하신 그대로 죽으셨습니다.

 

 

 

죽으신 후 무덤에 묻혀 3일 동안 지내시다가 마침내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마침내 승천하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하신 말씀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으라는 당부였습니다.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받기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한 후 열흘 만에 그 다락방에 마침내 성령이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기도하던 120여명의 제자들이 모두 성령을 흠뻑 입고 체험하게 됩니다. 그 성령이 강림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이 바로 오늘 주일입니다.

 

 

 

 

오늘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성령강림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날 다락방에 불어온 성령의 강림은 그 후 이 세상에서 2천년동안 끊임없이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날 다락방에 불어왔던 성령의 바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 바람이었습니다.  

 

 

 

 

 

 

 

 

“수직적 바람”

 

 

 

 

 

 

 

 

성경 2절을 보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성령은 마치 바람과 같이 위로부터 아래로 수직적으로 불어왔다고 했습니다. 그 바람은 그냥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바람이고 부흥하게 하는 바람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래서 해골들이 살아나 군대를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또 사울이 다메섹을 걸어갈 때 이 바람이 불어와 마침내 벼락 맞듯 고꾸라져서 변화를 받아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다락방에 이 바람이 불어와 모두 성령의 체험을 하고 마침내 모였던 사람들이 방언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수직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형태는 여러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지성적인 만남입니다. 그런데 이 만남은 수평적인 만남입니다. 우물은 수평으로 파면 물이 나지 않듯이 이 지성신앙은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개념적인 신앙도 있습니다. 어렴풋이 아는 어설픈 신앙입니다. 그리고 모태신앙도 있습니다. 이 신앙은 대각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이를테면 반쯤 체험한 신앙입니다. 내 어머니가 만난 하나님을 전수받은 신앙인데 그 후 내가 또 다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수직적인 만남의 신앙입니다. 그 신앙이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만남 만남입니다.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던 다락방에 이 수직적인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순간 다락방은 불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방언을 말하고 영적 체험을 이루었습니다. 영적 변화는 수직적인 이 바람을 만나야 가능합니다. 수평적인 바람은 파괴만 일으킵니다. 태풍, 폭풍을 보십시오. 엄청난 피해만 남깁니다. 그리고 유행바람을 보십시오. 유행바람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정신이 없습니다. 또 치마 바람도 있습니다. 이 바람이 한번 불고 가면 인간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투기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바람이 한번 불고 지나가면 온갖 부작용만을 일으키고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 수평적인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락방에 불었던 바람은 수평적인 바람이 아니고 수직적인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모두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뜨겁게 하는 바람”

 

 

 

 

 

 

 

 

성경 3절을 보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불꽃을 보면 끝이 갈라집니다.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는데 그 모습이 영적 눈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보니까 마치 혀처럼 불꽃이 갈라져 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간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방언이라는 말은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그 순간 그곳에 14개국의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했는데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하나 된 언어가 방언입니다. 그 말은 그것에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 인종의 장벽이 허물어 졌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렇게 장벽이 허물어집니다. 체질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니까 다락방이 순간적으로 열의 도가니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곳에 있던 제자들의 마음에 대로가 훤히 열렸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그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나와 상관없이 저절로 성령의 움직임에 의해서 입이 움직여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내가 할 일을 알지도 못했는데 저절로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시기적절하게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갈 바도 몰랐는데 성령이 나를 이끌고 할일이 있는 곳 마다 끌고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나를 성령의 뜻대로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은 내 안에서 불같이 뜨겁게 하고 체질을 변화 시킵니다. 성령의 은혜를 입으면 병이 낫는 이유가 그래서 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가장 잘 치유되는 병이 암 병입니다. 왜냐하면 암 병이 열에 가장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은혜를 입으면 온 몸이 뜨거워지고 체질이 변화되기 때문에 암 병이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입게 되면 내 속이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뜨거운 눈물이 나오고 성격이 변화되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바람이 오늘 여기 이곳에도 불어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을 모두 뜨겁게 해서 도무 체질을 변화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결과 체질이 변화되고 병이 치료되고 차갑던 마음이 뜨겁게 변화를 받는 축복이 있었으면 합니다.

 

 

 

 

 

 

 

 

“몰아내는 바람”

 

 

 

 

 

 

 

 

그날 다락방에 성령이 뜨겁게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방언하고 마음의 대로가 활짝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났더라면 별로 특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 성령이 임하시더니 제자들의 마음을 달구고 체질을 변화시키고 마음에 대로가 열리게 하시더니 곧 바로 그들을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줄기차게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행동하는 사역자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그 자리에 그냥 앉아있게 하신 것이 아니고 움직이게 하고 밖으로 몰아내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성령은 적극적인 영이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그 성령은 자꾸만 움직이게 하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앉아서 나아가려 하질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밖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안주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복음이 더 멀리 더 넓게 퍼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만족하고 움직이려하질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박해의 바람을 불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두 박해를 피해서 야밤중에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평소에는 사마리아 땅은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인데 박해가 시작되니까 너무나 급한 나머지 야밤중에 도망간다는 것이 사마리아 땅으로 도망가 들어가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맨 정신으로는 그 땅을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로 하여금 사마리아 땅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박해의 바람을 불게 하셨던 것입니다. 때로 박해도 시험도 실패도 아픔도 하나님이 주시는 섭리이고 선물이고 은혜일 수 있습니다. 그런 아픔과 실패와 시험을 통해서 길을 보게 되고 눈을 뜨게 되고 귀를 기울여 듣게 하십니다.

 

 

 

이 같은 경우는 우리 기독교 역사만 보아도 나옵니다. 1907년 평양을 중심으로 성령운동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매일 그리스도인들이 새벽기도를 통해서 구름 떼같이 모여서 기도했고 그렇게 기도할 때마다 그곳에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평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재미를 보며 신앙생활 할 때 모두 평양에만 모여 있을 뿐 흩어지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기도운동은 평양에만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복음전파도 평양에만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저 부산에서도, 거제도에서도, 제주도에서도, 목포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평양에만 머물러서 움직이질 않고 떠나려 하지 않고 안주하려 하니까 하나님이 김일성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박해의 바람을 불게 하시듯이 평양에 일대 박해의 회오리바람을 불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모여 안주하려던 그리스도인들이 엉겁결에 야밤중에 짐 보따리를 싸 들고 피난의 길을 떠났는데 그들이 어디까지 피난을 갔는가 하면 부산으로, 거제도로, 목포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평양에서 거세게 불던 성령의 바람이 다시 남쪽 거제도에서부터 부산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하여 마침내 남한 전역과 서울을 점령하게 되어 오늘 한국 땅에 골고루 복음이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고 섭리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흘러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교회사를 보면 성령이 어떻게 어떤 경로로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어떻게 나아가시는지 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전도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모여 있기만 하면 반드시 불화가 일어나고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냥 앉아있으면 안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성령은 몰아내는 바람입니다. 그날 제자들이 모두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는데 그날 이후 굳게 잠겼던 다락방 문이 활짝 열리고 숨어있던 제자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그날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몰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그 결과 제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까지 복음을 들고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고 마침내는 로마로 퍼져가게 하였고 구라파 전역과 영국을 휩쓸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다시 대서양을 건너 북미대륙으로 건너가게 하였고 또 다시 태평양을 건너 오늘은 아시아 전 지역에까지 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들을 그냥 놔두질 않습니다. 자꾸만 체질을 뜨겁게 해서 눈을 뜨게 해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뜻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 중에 무디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 구둣방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나갑니다. 두 주째 나갔을 때 그를 가르치던 담임교사 킴볼이라는 분이 구둣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와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의 영혼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디의 몸속에서 전율이 일어났고 격정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무디는 뜨거운 성령의 감화를 입어 놀라운 변화를 입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렇게 변화하게 하고 힘으로 능력으로 임하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이고 체험입니다. 그래서 무디가 그날 그 순간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평생 전도자로 헌신하기로 서원한 것이 마침내 역사적인 전도자가 되는 동기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움직이지 않고 동아리를 틀고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냥 두고만 보질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움직이게 만드십니다.

 

 

 

 

 

 

 

 

“뒷맛을 좋게 하는 바람”

 

 

 

 

 

 

 

 

비가 오던지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 서울 하늘이 맑게 빛납니다. 그래서 시야가 넓어지고 하늘이 푸르고 공기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먼 산이 훤히 보이는 것이 마음이 밝아지고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 라일락꽃이 만발했을 때 그 곁을 지나가면 라일락 꽃 향기가 얼마나 향긋하게 풍깁니까. 그때 그 맛이 얼마나 상큼하고 신선합니까. 그래서 공기를 더 많이 마시려고 자꾸만 들이키지 않습니까. 그 맛이 향기롭고 상쾌하고 뒷맛이 감미롭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내 맘에 임하시면 마치 삶에 그런 느낌이 주어지고 상큼한 맛이 납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감사함이 넘쳐 올라옵니다. 내 마음속에서 벅찬 감격이 넘쳐 올라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온 천하를 다 가진 사람처럼 마음속에서 만족함이 솟구쳐 올라옵니다. 그것이 참 신비로움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입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삶의 맛을 이렇게 좋게 합니다. 느낌을 좋게 합니다.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언제나 만족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때 찬송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 찬송이 495장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던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얼마나 감미롭고 감동적인 고백입니까. 성령이 나에게 임하시고 함께 하시면 비로소 우리 마음에 눈이 열리고 시야가 넓어지고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 같은 고백이 터져 나오고 감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으라. 성령은 이렇게 눈을 뜨게 하고 보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알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무능과 부족함을 채우시고 보강하시고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하시고 연약한 믿음을 깊게 하시고 크게 하시는 선하신 영이십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 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은 사모하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오늘 그 성령의 강하게 하심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생활 속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능력 있게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건강하고 건전한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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