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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서 녹취 2

by 【고동엽】 2023. 1. 12.
욥기는 논쟁이 주입니다. 욥과 세 친구 사이의 논쟁입니다. 의견의 충돌이고 세계관의 충돌입니다. 이 충돌은 누구의 충돌을 상징하는 거냐면 바벨론 1세대와 바벨론 2, 3세대의 충돌 그리고 이방 제국의 압제 가운데에서 승승장구 하던 자들과 이방 제국의 압제 가운데에서 고난을 받았던 의로운 사람들 사이의 충돌을 대변하는 겁니다. 우리가 뭘 기억하셔야 되냐면 욥과 세 친구의 충돌이라는 것이 단순히 욥과 세 친구 사이의 개인과 개인의 충돌이 아니고 바벨론 포로 1세대와 2, 3세대 간의 충돌이고 그다음에 이스라엘 역사를 보시면 이스라엘이 끊임없는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까. 이방 제국의 압제 가운데에서 승승장구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 제국의 압제에서 고난을 받았던 의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충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욥과 세 친구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기억하셔야 될 것이 뭐냐면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붙잡고 있던 신학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사건들 그것들을 설명해 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해석의 틀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뭐라고 하냐면 신명기 신학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신명기 신학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신명기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응보의 논리인 겁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겁니다. 네가 순종의 씨앗을 뿌렸다면 복이라는 열매를 거두는 것이고 네가 불순종의 씨앗을 뿌렸으면 심판과 저주라는 열매를 거둔다는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을 해석했던 가장 중요한 잣대였습니다. 주전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 당합니다. 그리고 남유다의 엘리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때 바벨론 포로 1세대들, 그때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을 신명기 신학의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깨뜨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고 하는 심판과 저주를 행하시고 계신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이라는 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바벨론 포로 1세대들은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 1세대들의 후손으로 태어났던 2, 3세대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약속의 땅이 아니라 이방 땅에서 생활하는 겁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포로들의 자녀라고 하는 고된 삶이 시작되는 겁니다. 한 마디로 바벨론 포로 2, 3세대들은 전통적인 신명기 신학을 수용할 수 없는 겁니다. 왜냐 하면 자기들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 잘못한 것은 조상들이고 부모들인데 왜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유 없는 고난을 짊어져야 하는가 라고 문제제기를 하며 바벨론 포로 2, 3세대들은 신명기 신학을 수용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것은 이방 제국의 압제 가운데 이스라엘이 놓여있을 때 의로운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도 나타났던 문제제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박수를 받았습니다.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방 제국의 압제 가운데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승승장구합니까? 이방 제국과 손 맞잡은 사람들이 승승장구했습니다. 도리어 이방 제국에 대해서 문제 제기했던 사람들은 이방 제국에 의해서 고난을 받는 겁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에 쳐넣어짐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느부갓네살 같은 사람이 신상을 만들어서 모두 절해라 라고 명령했을 때 끝까지 나는 하나님께만 머리를 숙이겠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느부갓네살이 만들었던 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의롭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현실 속에서 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뭡니까? 고난인 겁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자들이 고난을 받고 도리어 하나님을 저버리고 이방 제국과 손 맞잡은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신명기 신학이 적용되지 않는 겁니다. 이 욥기 안에 보면 욥의 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사고 방식이 신명기 신학입니다. 인과응보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는 것이다 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욥이 처해 있는 현실을 보니까 재산을 다 상실했죠. 자녀들 다 죽임당했죠. 욥의 온몸에 악창이 나서 욥이 끊임없이 기왓장으로 자기를 긁고 있죠. 욥이 처한 현실을 보니까 너는 지금 하나님께 엄청난 심판을 받고 있어, 네가 이런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까 너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어, 따라서 지금 이 비참한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너는 빨리 회개해야 해, 이것이 친구들의 주장입니다. 친구들의 주장은 뭐냐면 전형적인 인과응보입니다. 신명기 신학입니다. 이것이 누가 갖고 있었던 세계관입니까? 바벨론 포로 1세대입니다. 그리고 이방 제국의 압제 가운데에서 승승장구했던 사람들, 이들은 자기를 옹호하기 위해서 여전히 신명기 신학을 강조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복을 받은 이유가 뭔 줄 알아, 현실에서 성공하고 승리한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이것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바벨론 포로 2, 3세대들입니다. 이방 제국의 압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만 순종하려 하다가 도리어 고난을 받았던 의인들은 이런 신명기 신학과 인과응보를 수용할 수 없는 겁니다. 욥기 안에서 이런 전형적인 인과응보 신학을 수용하지 못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욥입니다.


이처럼 욥기는 논쟁이 핵심인 본문입니다.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이스라엘 신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저항하고 있는 겁니다. 욥과 세 친구는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 겁니까? 바벨론 포로 1세대와 2, 3세대, 이방의 압제 가운데에서 승승장구했던 불의한 악인들과 하나님께만 순종하려고 하다가 고난을 받았던 의인들을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욥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욥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논쟁이 주인 본문이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신명기 신학, 인과응보 이것이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인과응보 신학에 대한 문제 제기를 누가 하고 있는 겁니까? 바벨론 포로 2, 3세대들이 하고 있는 것이고 이방 제국의 압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만 순종하고자 하다가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이 전통적인 인과응보 신학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누구의 입을 통해서 선포되고 있는 거죠? 욥의 입을 통해서 선포되고 있는 것이 바로 욥기이다, 이것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야기했던 것을 정리해보면 욥기가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인가 그렇지 않은가 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계시에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 따라서 이것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기를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라고 믿으시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또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교훈을 주기 위한 문학 작품이다 라고 믿으시는 것도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성경은 일차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라 계시의 책이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이것을 더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본문은 본문이 말하는 배경이 1이고 본문이 쓰여진 시점이 2이고 본문이 정경으로 확정된 시점이 3이다, 모든 본문은 1, 2, 3의 차이가 있다, 욥기의 경우는 본문의 배경은 족장 시대이고 욥기가 쓰여진 시점은 페르시아 시대이고 욥기가 정경으로 확정된 시점은 AD 90년이다 라는 것, 그다음 욥기는 성경의 다른 본문과 달리 토론, 논쟁이 주인 본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욥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한 주간도 강건하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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