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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길 (레위기 26장 14-18절)

by 【고동엽】 2023. 1. 11.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길 (레위기 26장 14-18절)< 과감히 이단을 멀리하라 >

 1987년 여름 오대양 용인공장 천장에서 사장과 종업원 32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동반자살에 응한 이들이 약물을 먹고 실신했을 때 주동자가 그들을 목 졸라 죽인 뒤 자살했다고 결론 내렸다. 사장 박순자는 구원파에서 분파해 나온 오대양 교주였다. 그들은 거액을 빌린 채권자를 집단 폭행한 후 경찰에 쫓기면서 공장 천장에 며칠간 숨었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때 이런 메모도 발견되었다. “못 견디겠다. 고통 없이 갈 수는 없을까?”

 그때 교주는 자살을 교사하며 이렇게 선동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고통 없는 천국으로 같이 떠나 영생을 누리며 삽시다.” 판단력이 떨어진 채 무엇인가에 쫓기고 자기 정체가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다 몸도 탈진하면 그런 선동에 넘어가기 쉽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종교사기에 걸려드는 일이다.

 1978년 11월 18일, 남미 가이아나의 존스타운에서 인민사원(Peoples Temple) 교회 신도들이 집단 자살을 했다. 교주 짐 존스는 처음에는 소외된 자의 대부처럼 행세했지만 점차 신도의 노동력과 재산 탈취, 핵 공포에서 안전한 낙원으로의 이주 사기, 메시야 행세, 음악과 춤을 통한 집단 환각 연출, 치유 조작, 남성 신도와 변태 성행위로 자기 정체가 탄로 나고 돌이킬 수 없게 되자 천국행 집단 자살을 선동하고 명령했다. 결국 음독 집단 자살과 경비원의 사살로 914명이 죽고 이단 교주의 왕국 놀음이 끝났다.

 거짓 위에 진리가 세워질 수 없다. 교주가 자꾸 말이 달라지고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멀리하고 더 나아가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면 더 멀리하라. 그리고 명백한 종교사기는 반드시 고소하고 사법 당국은 종교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종교사기는 최악의 사기로 여기고 엄중히 단죄해야 한다. 그냥 두면 많은 순진한 사람들이 몸과 마음과 가정과 물질을 빼앗기고 수많은 눈물과 이별과 상처를 낳기 때문이다.

 교주의 다른 미혹에도 벗어나야 하지만 혹시 교주가 집단 자살을 선동하면 그때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그 선동에서 벗어나라. 언뜻 생각하면 “믿는 사람이 어떻게 자살 선동에 넘어가나?”라고 하겠지만 교주가 자살을 구원과 특별한 천국행 티켓이라고 선동하면 자살을 영웅시하는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다. 그때 그 선동을 거부하면 구원의 믿음도 없고 비겁한 사람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그 선동에 넘어가는 대열에서 자신을 빼내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깨에 의무적으로 맞았던 천연두 예방 불 주사는 너무 아프고 화상 흉터가 크게 날 정도로 보기에도 무시무시해서 수많은 아이들이 공포에 떨었다. 그때 주사를 맞으려고 선 줄에서 우는 아이, 파랗게 질린 아이, 바르르 떠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겁나면서도 태연히 불 주사를 맞았다. 어린 마음에도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나는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아.”라고 하면서 불 주사를 맞은 것이다.

 만약 사회적 탈출구가 막힌 교주가 공포를 자극하고 구원과 천국 보상을 내세워 자살을 선동하면 “나는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아.”라고 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그 선동에 넘어가기 쉽다. 그때는 마지막으로 남은 정신을 차려서 “이런 극단적이고 비성경적인 선동을 하는 것은 이단 교주의 행태다. 빨리 이 소굴에서 벗어나자.”라고 결심하고 그 선동에서 벗어나라. 그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라 미혹에서 벗어나려는 용감한 행동이다.

 거짓말과 모략의 소굴을 과감히 벗어나는 것은 엄청난 용기다. 화려한 약속을 내세워 교주와 교주 측근들이 얼마나 많이 해먹고 자신을 노예화했는지를 깨달아 그 소굴을 떠나고 더 나아가 명백한 범죄 행위를 목격했다면 차후의 순진한 영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귀찮아도 용기 있게 고소하라. 만약 누군가가 집단적인 극단 행동을 선동하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기 영혼을 지켜서 그런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과감히 그 집단을 벗어나는 것이 진짜 용기다.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나 점차 자기 기반이 무너지면 이단 교주는 상상을 초월한 어떤 일도 벌일 수 있다. 남들이 이단이라고 하면 무조건 “내가 속한 곳은 아닐 거야.”라고 여기지 말고 상습적인 거짓말과 과장, 거짓된 치유와 기적, 능력과 영성 자랑, 종말과 전쟁 얘기로 공포를 조장하는 언행, 돈에 대한 집착 등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런 모습이 있다면 남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 이단 교주는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거짓말의 선수임을 꼭 기억하라.

 요새 코로나 사태로  이단의 실체를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이때 당국과 매스컴은  교주나 지도부가 특별한 구원과 천국 보상을 내세워 극단적인 행동을 선동하지 못하게 하고 그곳 신도들도 그런 선동에 넘어가 비극을 당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계몽해서 불행한 추가 사태나 희생이 없게 해야 한다.  

<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길 >

 본문에는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임할 무서운 심판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 심판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 청종하라

 본문 14-15절에 언급된 말씀은 하나님께 청종하지 않는 삶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께 청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두워지고 생명이 쇠약해질 것이라고 했다(16절). 마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병과 열병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요즘 현실을 잘 묘사한 것 같다. 결국 요즘 전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 사태에는 하나님께 청종하라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만약 하나님께 청종하지 않으면 그 죄로 인해 7배나 더 무서운 벌을 내리시겠다고 했다(17-18절).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앞서 추구하지 말라는 경고다. 하나님께 청종하는 삶을 교회생활에서도 준비하는 삶으로 잘 나타내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높은 자리를 맡으면 무시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고 사기를 잃을 때도 많다. 남은 나를 무시해도 나는 남에게 무시되지 않도록 준비되면 남의 무시하는 행동이 상처가 되지 않는다. 성령 충만하면 자존감이 커지지만 준비가 충만해도 자존감이 커진다.

 준비가 안 되었는데 어떤 일을 맡겨달라고 요구할 때 시험에 들까봐 마지못해 맡기면 요구한 교인의 성숙에도 도움이 안 되고 교회 리더십도 훼손되면서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직분을 달라고 요청하기보다 직분을 맡아 달라고 요청받을 정도로 준비되라. 특히 하나님께 청종하는 믿음을 잘 준비하라. 그러면 상처도 잘 극복할 수 있고 교회생활도 행복해진다. 청종은 화를 면하고 복을 얻게 하는 기초 중의 기초다.

2. 교만을 꺾어버리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심판의 전조다(19-22절). 왜 귀신을 쫓아낸다는 교회에 귀신 들린 사람이 많고 치유를 준다는 교회에 병자가 많은가? 교회 안을 떠도는 교만 바이러스가 문제다. 이번에 성남의 한 교회에서 코로나 집단 확진자가 나온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의아했다. 공중 보건 지침만 잘 지키면 한 명의 감염자가 있어도 예배 참석자 3분의 2가 집단 감염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시 감염된 목회자가 치유기도를 해 준다면서 안수하거나 입으로 “믿쉽니다.”라고 쇳소리를 내며 바이러스를 분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중에 방송을 통해 그 의구심이 풀렸다. 알고 보니 그 교회의 김 모 목사는 안수기도로 10만 명을 치유했다고 선전했다고 한다. 그 정도의 말은 자랑 수준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거짓말 수준이다. 그런 종류의 말에 넘어가 종교사기를 당한 영혼이 많다. 진실한 치유자는 실제로 치유했어도 그렇게 선전하고 다니지 않는다.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눅 8:56).

 그 교회에 첫 확진자 발생 사실이 통보된 날이 3월 12일인데 그 사실을 다음 날 알렸고 3월 15일 주일예배 때는 일찍 나와 안수 기도를 받으라는 문자까지 보냈다. 자신은 치유 능력자니까 안수로 바이러스를 퇴치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치유를 주는 것처럼 하는 교만한 언행을 매우 싫어하신다. 그런 치유 선전으로 교회를 키워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신다. 치유를 주는 것처럼 선전하는 사람은 힘써 멀리해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다. 치유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어떤 목사는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신기하게 나을 때가 많았다.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입이 근질거려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기도하면 병자들이 신기하게 낫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은 몰려와도 신유의 능력은 오히려 사라짐을 알고 그 말하고 싶은 유혹을 참고 기도 응답 후에도 침묵했다. 그런 태도가 계속 능력이 머물게 하는 태도다. 사람이 높아지면 하나님의 능력은 사라진다.

 종교 리더에게는 2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하나는 신기한 치유를 선전해 권위와 인기를 얻고 교회는 커지지만 치유의 능력은 사라지는 길이다. 또 하나는 신기한 치유를 감춰 인기도 없고 교회도 키우지 못하지만 치유의 능력이 계속 머무는 길이다. 그때 후자의 길을 선택하는 리더가 참된 리더다. 치유를 선전해 영혼을 끄는 곳에 가면 진짜 치유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치유를 선전하는 교만한 곳에는 가지 말라. 진짜 능력은 계속 겸손할 때 나타난다.

3. 우상숭배를 버리라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은 이유는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우상화하는 것이다. 예전에 한 연합 집회에서 40대 강사 목사가 70세쯤 된 할머니를 예배 시간에 존다고 쌍소리를 하며 야단쳤다. 그 장면을 보고 참다못해 한 목사가 바로 예배당에서 나와 집회 진행자에게 “저런 강사를 왜 불렀느냐?” 하고 쓴 소리를 했다. 교만한 부흥사가 상스러운 말과 저질 유머를 쓰며 설교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좋게 보시겠는가?

 사람이 아무리 잘났어도 자기 우상화에 빠져 교만한 언행을 보이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능력자라고 선전하는 말에 미혹되지 말라. 사람을 우상처럼 높이면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누구나 진실한 기도를 앞세우면 기도 응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춰 복에 집착하거나 기도 능력을 자랑하고 과시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더 이상 기도 응답도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목사는 자신도 무서울 정도로 기도가 응답되기에 더욱 기도 능력을 감추고 기도할 때도 세심하고 주의 깊게 한다. 또한 자기 기도대로 응답되어도 자기가 기도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마치 기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침묵한다. 그래서 더 무섭게 기도한 대로 응답된다. 그러나 그를 통해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모르니까 많은 무리가 몰려오지 않아서 교회는 커지지 않지만 그는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소통으로 들어간다.

 반면에 어떤 목사는 기도 능력을 수시로 자랑한다. 어쩌다 기도 응답이 되면 자기가 기도해서 그렇다고 바쁘게 자랑하며 기도를 너무 깃털처럼 가볍게 여긴다. 그러면 기도하는 사람이나 기도 받는 사람이나 허상을 쫓아 살게 된다. 그래도 기도 능력을 열심히 선전하니까 사람들이 몰려와서 교회는 커지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소통은 없다. 내용보다 자랑과 선전을 통해 성공하면 언젠가 그 성공은 심판의 재료가 된다.

 사람 보기에 작은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작지 않을 수 있고 사람 보기에 큰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크지 않을 수 있다. 믿음이 허상을 좇는 왕국 놀이가 되지 않게 하라. 믿음의 결과는 나중에 잘 알게 되고 천국에서는 더욱 잘 알게 된다. 외적인 것에 속는 인생을 살지 말라. 아무리 대단한 일이 나를 통해 이뤄져도 자기 우상화에 빠지지 말고 맡겨진 일을 겸손히 감당함으로 심판을 면제받거나 심판이 있어도 회개하고 잘 극복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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