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요한복음 14장 1-6절)

by 【고동엽】 2023. 1. 5.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요한복음 14장 1-6절) 1.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러 가는 상황에서 제자들은 그 상황을 느끼고 불안에 싸여 있었다. 그때 주님은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다(1절). 근심과 믿음은 반비례한다. 믿음이 작아지면 근심은 커지고 믿음이 커지면 근심은 작아진다. 믿음은 큰 힘을 준다. 자신을 믿는 신념도 큰 힘이 되는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믿음은 소유나 학력이나 재주나 인간관계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누가 성공했다고 하지만 하나의 성공이 열 가지 근심을 만들 때도 많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유가 많으면 행복할 줄 안다. 그러나 감옥보다 별장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다. 물질에 집착하면 삶의 본질과 핵심을 잃는다. 소유가 적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박하고 순수한 모습을 통해 오히려 믿음도 쑥쑥 잘 자랐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밥술 좀 먹고 돈을 좀 만지는 민족이 되니까 타락하고 교만하고 믿음이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소유 자체를 정죄하지 말라. 문제는 소유가 많은 것이 아니라 드림과 나눔과 베풂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가 많아질수록 근심과 불행지수도 더 높아진 것이다.

 요새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영성(靈性)이 무엇인가? 예언하고, 방언을 하고, 영서(靈書)를 쓰는 것이 영성의 표시인가? 그런 영성에는 자기 과시가 느껴진다. 진짜 영성(靈性)은 영(零)이라는 숫자의 영성(零性)이다. 자신을 제로(zero)로 알고 주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사는 것이 진짜 영성이다. 살면서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잘 되고 잘못되고 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2. 미래는 보장되었기 때문

 예수님은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다(2절). 그 생각이 머리에 확고히 자리 잡으면 마음의 모든 근심은 사라질 것이다. 한 의료 보고서에 의하면 낮의 해가 짧아질수록 우울증 환자가 늘고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 즈음에 가장 우울증 환자가 많아진다고 했다. 육신조차 햇빛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영혼에도 영적 햇빛이 필요하다. 그 영적 햇빛이 천국 소망이다. 천국 소망이 확고해서 미래가 천국의 기쁜 삶으로 보장되어 있다면 그 소망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오늘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없다. 반면에 현재가 없어도 미래가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다. 현재 가진 것이 부족해도 반드시 미래를 가진 자가 되라. 그 미래에 대한 소망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소망은 천국 소망이다. 그 소망이 확고하면 어떤 고난 중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죽음은 순교이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의식이 될 것이다.

 천국이 예비된 존재는 근심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리고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성도는 죽으면 천국에 가지만 더 중요한 삶의 자세는 천국에 가기 전에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쫓고 쫓기는 삶’보다는 ‘부름에 응하는 삶’을 살라. 아파트 평수를 쫓아가는 삶보다 항상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아야 삶이 밝아지고 얼굴도 밝아지고 마음도 밝아진다.

3. 예수님이 길이 되기 때문

 예수님을 섬기는 길은 좁은 길이기에 처음에는 믿음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믿어도 길이 열리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오하고 그 길을 고수하면 점차 길이 넓어진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처음만 좁고 점차 넓어지다가 나중에 온 천지가 길인 곳에 도달한다. 그곳이 천국이다. 하나님을 위해 포기한 것에 다시 눈을 돌리지 말라. 예수님만 길인 줄 알고 만족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시고 넓혀주신다.

 인생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고 위를 향해 가야 한다. 그때도 정상에서 다시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안내로 무사히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인생에 안내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I am the way).”라고 하셨다(6절). 하나의 길(a way)은 많다. 그러나 유일한 길(the way)은 주님뿐이다.

 성도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다. 어떤 일을 만나고 고난 속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길이 막힌 것 같아도 염려하지 말라. 미래는 예수님을 믿는 자의 것이다. 예수님을 붙잡고 믿고 따르는 발걸음은 결코 헛된 발걸음이 되지 않는다. 가끔 삶에 길이 막힌 것과 같은 상황이 생겨도 너무 근심하지 말라. 그때 예수님이 길임을 의지하고 더욱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리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축복된 존재가 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