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패망의 3가지 전조 (이사야 19장 5-15절) 1. 자연재해를 겪습니다
본문은 애굽에 관한 경고의 말씀 중 일부입니다. 본문 5-6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이 구절에서 “바닷물이 없어진다.”는 말은 거대한 나일 강마저 마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갈대와 부들’은 나일 강 주변에 많은 갈대와 풀을 뜻하는데 가뭄으로 그것들이 시드는 것처럼 애굽의 영화도 시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연은 그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서운 재해를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칼 발트는 성도는 한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고 시대의 돌아가는 상황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새 자연재해가 옛날보다 잦아졌다고 합니다. 자연재해는 지구를 파괴하는 사람에 대한 지구의 보복인지 모릅니다. 녹색 환경을 적색 환경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재해도 많아지지만 나라의 패망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잦은 자연재해는 자연의 가치와 생명의 가치를 성찰하라는 지구의 경고음이고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과거에는 수준 낮은 과학기술로 지구를 파괴하며 진보를 추구했지만 앞으로는 수준 높은 과학기술로 지구를 살리면서 진보를 추구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려는 사람이 많아질 때 나라도 살아납니다.
2. 산업이 도산합니다
본문 7-9절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여러 산업에 파급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결국 농업도 망하고(7절), 어업도 망하고(8절), 의류업도 망합니다(9절). 그래서 계층을 불문하고 모든 백성들의 마음에 근심이 임합니다(10절). 대개 하나님을 멀리하면 산업도 망가지지만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산업도 일어납니다. 기업의 도산보다 무서운 것은 신앙의 도산입니다. 바른 신앙을 가졌다면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망가질 것 같아도 하나님이 일으키시기로 작정하면 순식간에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백성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과 성실로 경제적인 성공을 이뤄내려고 해야 한다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돈 자체를 나쁘게 여기지 마십시오. 동기와 목적이 선하다는 전제 하에 돈도 추구하십시오. 불신자들은 자나 깨나 돈 생각만 하고 어떤 사람은 사탄에게 미혹되어 수많은 검은 방법들을 동원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그냥 방치하고 돈을 다 빼앗기면 안 됩니다.
성도들은 각성해서 사탄에게 빼앗긴 경제적인 영역을 되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 지장 받지 않도록 바른 동기와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힘쓰십시오. 잠언 기자는 가난해서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잠 30:9). ‘하나님이 없는 부요’는 쓸모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있는 가난’도 장려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가난해도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며 사십시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말고 힘써 가난을 탈피해서 거룩한 비전과 어려운 사람을 위해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고 하십시오.
3. 지혜가 사라집니다
본문 11절에서 ‘소안’은 애굽 북동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소안의 방백’은 당시 애굽에서 가장 지혜로운 지도자들로 여겨졌는데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들의 지혜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본문 13절에 나오는 ‘놉’은 애굽의 주요 도시인데,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는 말은 애굽 전체에 지혜로운 사람이 거의 사라졌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이 구절을 보면 마음이 어지럽게 되는 것도 일종의 심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게 되면 매사에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결국 생각할 때마다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이 드는 것도 하나님의 심판 때문입니다.
사람은 생각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인생도 좋아지지만 나쁜 생각을 하면 인생도 나빠집니다. 아인슈타인은 나쁜 생각을 몰아내려면 열배 이상의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쁜 생각은 최대한 버리십시오. 사람은 생각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생각대로 행동도 나오고 생각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생각의 주인이 되어 좋은 생각을 주시도록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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