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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답게 사는 길 (신명기 14장 1-2절)

by 【고동엽】 2022. 12. 27.

성민답게 사는 길 (신명기 14장 1-2절) 1. 우상의식을 멀리하십시오

 모세 당시 우상숭배자들 중에는 죽은 자를 애도하고 죽은 넋을 위로하고 신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일종의 고행의식으로 자기 몸을 베고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절). 그처럼 고행으로 신의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미신적인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 중에도 하나님을 바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미신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민은 신비적이고 이단적이고 무속적인 모습과 의식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언뜻 보면 영성주의와 신비주의가 더 신앙적인 것 같지만 영성과 신비는 타 종교나 이단 종교에서도 내세우는 것들입니다. 신비나 영성도 하나님 중심적이고 말씀 중심적인 토대 위에 형성되어야 합니다. 왜 우상적이고 무속적인 의식에 기웃거립니까? 하나님의 시간을 믿지 못하고 빨리 응답받고 성취하고 성공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시간을 넉넉하게 기다릴 줄 아는 것도 믿음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단이 영성과 은사와 기적과 치유를 내세워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보면 “저런 행동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더 늦기 전에 이단을 떠나십시오. 이제까지의 바친 시간과 물질과 정성과 마음이 아까워도 과감히 돌아서십시오. 불법과 사기의 혐의가 짙으면 반드시 고발하십시오. 그래야 추가 피해자의 양산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보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저런 모습은 성도의 모습이나 참된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것을 쉽게 분별해낼 수 있습니다.

2.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히브리인들은 머리털을 미는 것이나 없는 것을 수치로 여겼지만 나라와 민족이 패망하면 머리털을 깎아 애도했습니다. 다만 개인이 죽으면 그 정도로 애도하지 말라고 합니다(1절).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너무 슬퍼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위로 여긴 것입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세상 고통과 작별하고 천국으로 가는 복된 통로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확신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상처나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깊이 파야 맑은 샘물도 터지고 귀한 보석도 얻습니다. 믿음 안에서 고통의 깊이는 영성의 높이가 되고 걸림돌이 디딤돌이 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만들어내는 역전의 역사를 이루십시오. 미련한 곰처럼 여겨지는 사람도 하나님 안에서는 축복의 문처럼 될 수 있습니다. 어둠의 터널에서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 어둠의 터널이 축복으로 가는 직통로가 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런 순간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을 몇 번 거쳐 지금까지 왔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극심한 고난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통을 혼자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다 알아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이별하게 될 때도 그때부터 천국에서 재회하는 날을 소망하며 열심히 살면 삶은 황홀해지고 그 후에 죽음은 더욱 황홀해질 것입니다.

3. 사명을 따라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성민으로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이행할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2절). 선택된 것은 과시하고 자랑하라고 선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명대로 살라고 선택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하게 사느냐?”에 가장 관심이 많지만 세상 행복은 안개나 연기처럼 금방 사라집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것으로는 지속적으로 행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신자에게는 구원받는 것이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자기 사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명을 인식하면 힘이 생기고 기다림이 힘들지 않습니다. 사명은 힘든 현실을 극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명감도 없이 힘든 현실을 상처나 운명이나 절망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운명의식이 아닌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면 축복의 때는 조만간 반드시 찾아옵니다.

 살다 보면 낙심의 순간도 수시로 찾아옵니다. 그 순간에 한 단계씩 올라가는 시험을 치릅니다. 그 시험에 통과해야 학년이 올라가고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듯이 시험을 잘 이기면 영적인 학년도 올라갑니다. 그렇게 중단 없이 나가면 사탄이 질겁하면서 오히려 크게 낙심할 것입니다. 낙심된 현실을 부정적인 운명의 길로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진 일로 여기고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따라 사는 모습이 성민답게 사는 모습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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