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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노예제도 규례 (신명기 15장 12-18절)

by 【고동엽】 2022. 12. 27.

히브리 노예제도 규례 (신명기 15장 12-18절) 1. 7년째 놓아주십시오

 히브리인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원래는 종으로 삼지 못했지만 현실에서는 히브리인도 동족이나 이방인의 종이 되기도 했습니다. 빚이나 가난 때문에 스스로를 종으로 팔거나 부모에 의해 종으로 팔렸고 범죄로 인해 종으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족인 히브리인을 종으로 삼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7년째에는 해방시켜주어야 했습니다(12절).

 종을 안식년이 되는 7년째에 놓아주게 한 것은 현실적으로는 종 제도를 용납했지만 원칙적으로 사람을 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암시입니다. 또한 사람을 종이나 물건처럼 취급하지 말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고 사람에게 자유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7년째에 종을 놓아주는 규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속성이 인간사회에 널리 선파되고 깊이 투영되도록 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무한하신 예지력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죄를 짓는 길을 선택할 줄 아시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자유는 최상의 가치입니다.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과 길을 선택할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도 억압하지 않는 자유라는 최상의 가치를 사람이 오래도록 억압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부르는 최악의 죄가 될 수 있습니다.

2. 후히 주어 보내십시오

 7년이 되어 종을 놓아 보낼 때는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하나님이 복을 주신 만큼 양과 같은 가축과 타작마당의 수확물과 포도주와 같은 음료를 후히 주어 보냄으로 종의 생계 대책을 마련해주라고 했습니다(13-14절). 그런 실질적인 대책이 없으면 종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제도가 의미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종은 6년 동안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했기에 7년째에 해방되어도 생계유지가 힘들어 가난에 시달리다 또 종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종을 내보낼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신 만큼 후히 주어 보내라고 한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회사가 복을 받아 여유가 있으면 퇴직금을 많이 주라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대개 종 한 사람의 가격인 은 30세겔 이상을 주었습니다. 당시 품꾼 한 사람의 1년 임금이 약 10세겔이었는데 종이 열심히 6년간 충성했다면 60세겔의 노동력을 제공한 셈이기에 종의 몸값 30세겔을 제하고도 30세겔을 퇴직금조로 주라는 뜻입니다. 결국 히브리인의 개념에서 종은 주인을 섬기는 동반자이자 나눔의 대상이지 착취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게 종을 후히 대접해주었습니까? 이스라엘도 과거 400년간 애굽에서 종노릇 했지만 해방되면서 애굽의 수많은 보화와 의복과 가축들을 지니고 나왔는데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종에게 은혜를 베풀라고 한 것입니다(15절). 그처럼 후하게 대접받으면서 자유를 얻으면 종 시절의 아픔과 상처도 많이 씻기면서 사회적 통합에 큰 보탬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죄의 종에서 해방시켜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어려운 이웃에게 힘써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남을 배려해야 하나님의 배려를 받습니다.

3. 자유종을 귀히 여기십시오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는 종을 잘 대해주는 주인이 많았고 종의 신분도 상당히 보장된 편이었기에 7년이 되어도 자유를 찾아 주인의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16절). 특히 주인의 호의로 종이 결혼해서 처자가 생기면 더 그랬습니다. 그때 자신은 제 7년째에 해방되어도 처자는 주인의 소유로서 여전히 종으로 남았기에 처자를 사랑했던 종은 자유를 포기하고 그대로 종으로 남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처럼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종은 재판장에게 데리고 가서 그 사실을 법적으로 확인시키고 종의 귀를 주인집의 대문이나 대문 기둥에 대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었습니다(17절). 귀는 예속과 복종을 상징한 몸의 지체로서 그 의식은 그 종이 주인과 주인의 집에 영원히 예속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식이었습니다. 그처럼 자유의지에 따라 주인의 영원한 종이 되겠다고 귀를 뚫고 귀걸이를 한 종을 ‘자유종’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언뜻 생각합니다. “아무리 주인이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평생 종으로 자처하며 살까?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네. 배부른 종이 되기보다 가난한 자유인이 되지.” 그런 생각은 자유종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생각입니다. 자유종은 말만 종이지 주인이 거의 가족처럼 대하면서 상당한 자유가 보장되었고 사회적인 인식에서도 귀걸이를 한 자유종은 일반인처럼 존중했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성도는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이지만 새롭게 예수님의 사랑의 노예가 된 ‘자유종’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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