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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나베의 삶을 위한 규례 (신명기 14장 22-29절)

by 【고동엽】 2022. 12. 27.

드나베의 삶을 위한 규례 (신명기 14장 22-29절) 1. 제2의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본문 22절에 언급된 토지 소산의 십일조란 1/10을 바치고 나머지소출에서 다시 1/10을 구별해 축제 용도로 바친 제2의 십일조를 뜻합니다. 제2의 십일조는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에 가서 감사 축제를 하며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배우는 용도로 드렸습니다(23절). 십일조를 드리는 삶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암시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땅을 분배받은 지파 사람들은 제물이나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까지 가지고 가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그 드릴 것을 돈으로 바꾼 후 그 돈으로 중앙 성소에 가서 제물들과 축제에 필요한 포도주나 독주와 같은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25-26절). 하나님은 인간의 편의를 위한 제도를 나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듯이 제도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제도를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것입니다.

 그 제도를 악용해 예수님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순례자가 가지고 온 외지의 돈을 성전에서 받는 현지의 돈으로 바꿔주면서 엄청난 커미션을 떼는 환전상들이 활개를 쳤고 제물을 시중가격보다 고가로 팔고 폭리를 취하는 장사꾼들도 활개를 쳤습니다. 또한 그 환전상들과 장사꾼들의 편의를 봐주면서 제사장들이 뇌물을 받아먹는 폐단이 만연했습니다. 그처럼 드리는 삶의 의미를 훼손시키지 말고 정성껏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2. 레위인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먹고사는 문제는 가장 기초적인 문제입니다. 사람은 물질 문제에 아주 민감해서 어떤 일 때문에 혹은 어떤 사람 때문에 자기 수입이 줄어들면 크게 흥분합니다. 또한 경제 문제를 앞세운 공격은 사람을 가장 흥분시키기 좋습니다. 목회자에 대한 비판도 경제 문제와 관련된 비판이 많습니다. 어디서든지 앞자리나 윗자리에 있으면 비판의 표적이 되기 쉽기에 목회자는 물질 문제에서 최대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양떼는 목회자의 기본적인 생계 문제에 대해 사려 깊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당시 레위인은 백성들을 위한 종교 업무 수행자로서 생업을 위한 기업이나 분깃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 지역민들이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게 했습니다(27절). 물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서 결격 사유가 있거나 인성과 도덕성에 결함이 있거나 사명에 게으른 자는 이심전심으로 외면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양떼들은 목회자가 사명을 게을리 하면 목회자의 필요에 애틋하게 반응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 것입니다. 반면에 목회자의 삶을 지켜보면서 목회자가 영혼 구원과 변화의 사명에 충실하면 최선을 다해 목회자의 필요를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성도가 가진 영적인 본능 중의 하나는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을 목회자와 힘써 나누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나눔도 기쁨을 주는데 목회자에게 좋은 것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쁨이 크겠습니까? 양떼들이 힘써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목회자이기를 바랄 것입니다.

3. 가난한 자들을 배불리십시오

 안식년을 제외하고 6년 중에서 매 3년마다 2번 제3의 십일조를 드려 성읍에 저축하게 했습니다(28절). 제2의 십일조와 제3의 십일조는 사실상 같은 것입니다. 제2의 십일조 중 3년 째와 6년째 되는 해에 드리는 십일조가 제3의 십일조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의 총 수입의 20%를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바친 셈입니다.

 제3의 십일조는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배부르게 먹이기 위한 십일조입니다. 쉽게 말하면 제1의 십일조는 ‘제사와 제사장을 위한 드림의 십일조’이고, 제2의 십일조는 ‘축제와 교제를 위한 나눔의 십일조’이고 제3의 십일조는 ‘선교와 구제를 위한 베풂의 십일조’입니다.

 모세는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면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29절). 소외된 자를 살펴서 사회의 중심으로 한 발자국 더 이끌면 자신도 하나님 나라의 중심으로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집니다. 축복과 저주는 무속인의 말이나 점이 좌우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가혹하게 대하면 저주받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가상하게 대하면 축복받습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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