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9일(금)■
(누가복음 10장)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묵상/눅 10:21-24)
◆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대학 시절에 내가 복음을 전한 친구가 자신이 믿지 않는 여러 이유를 말하면서 무신론자 니체가 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책을 내게 내밀었다. 다 읽지는 않았으나,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인간의 사랑은 유한하다. 그런데 인간끼리 사랑하기도 버거운데, 만일 하나님까지 사랑하라고 하면 그만큼 인간끼리의 사랑은 빈약해질 것이다. 논리가 제법 그럴싸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풍성해지고, 더 샘솟는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아는 순간, 그는 무한을 체험할 것이다. 무한은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줄어들지 않는 세계다.
무신론자들의 논리는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에게나 그럴싸하지, 실제로는 유치하다. 우물 안 개구리의 좁은 소견이며, 유한의 세계에서 통하는 논리일 뿐이다. 마치 시각 장애인이 무지개를 논하고, 청각 장애인이 음악을 평가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강의에 감탄하는 똑같은 장애인들을 볼 때 한숨이 나온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박사일지 모르나, 영적 세계에서는 백치다.
주님께서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하신 말씀이 어찌 그렇게 꼭 들어맞는지!
진리를 알려면,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 놀라운 영적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바다 위를 어떻게 걷겠는가?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다. 거기에 무슨 논리가 필요한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체험할 수 없는 세계다.
논리적으로, 학문적으로 아무리 따져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을 참으로 믿으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다. 그것은 내 머리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계시'라고 한다.
◆ 계시를 받은 자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계시'는 헬라어로 '아포칼립토'라고 하는데, 그것은 덮개를 제거하다, 또는 폭로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덮개를 제거할 때 드러나고, 폭로해야 드러나는 지식이다. 가령 내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가가 내 얼굴을 그릴 수 있겠는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화가 머릿속에는 내 얼굴이 없다. 내 얼굴을 보여주어야 비로소 알게 되고 그릴 수 있다. 이렇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 머릿속에서 나온 분이 아니시다. 우리 머리 밖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신다면 인간은 절대로 자기 머리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프랜시스 쉐퍼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거기 계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 되어서 내 손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이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게 다가오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감사하다. 정말로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가? 내 명철과 내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하라. 유한이 무한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내 머리와 경험에만 붙들려있는 편협한 사고를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대하는 길뿐이다.
◆ 복 받은 자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인류 역사상 가장 복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것을 직접 보게 되었고, 듣고 싶었던 것을 육성으로 들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엄청난 분이 이 지구에 왔다 가셨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보고 범했던 무례와 악행이 죄송스럽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감사하다.
우리도 제자들 못지않게 복 받은 자들이다. 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세대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구약 세대와는 비교가 안 되게 복 받은 자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특별히 은총을 받은 자'들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특별 은총을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불공평함을 따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따지기 전에 자신이 특별히 택함받은 것을 감사해본 적은 있는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이 많은 척하고, 더 공평한 척 하지 말라. 따지기 전에 먼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러면 이해는 못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평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계시를 주신 것이며, 큰 은혜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더욱 깨닫게 된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겸손하자. 내 명철, 내 지혜 의지하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자.
주 예수여,
주님을 믿습니다.
참으로 이 진리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진리 앞에서 더욱 어린아이와 같아지기를 구합니다.
(누가복음 10장)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묵상/눅 10:21-24)
◆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대학 시절에 내가 복음을 전한 친구가 자신이 믿지 않는 여러 이유를 말하면서 무신론자 니체가 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책을 내게 내밀었다. 다 읽지는 않았으나,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인간의 사랑은 유한하다. 그런데 인간끼리 사랑하기도 버거운데, 만일 하나님까지 사랑하라고 하면 그만큼 인간끼리의 사랑은 빈약해질 것이다. 논리가 제법 그럴싸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풍성해지고, 더 샘솟는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아는 순간, 그는 무한을 체험할 것이다. 무한은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줄어들지 않는 세계다.
무신론자들의 논리는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에게나 그럴싸하지, 실제로는 유치하다. 우물 안 개구리의 좁은 소견이며, 유한의 세계에서 통하는 논리일 뿐이다. 마치 시각 장애인이 무지개를 논하고, 청각 장애인이 음악을 평가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자들의 강의에 감탄하는 똑같은 장애인들을 볼 때 한숨이 나온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박사일지 모르나, 영적 세계에서는 백치다.
주님께서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하신 말씀이 어찌 그렇게 꼭 들어맞는지!
진리를 알려면,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 놀라운 영적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바다 위를 어떻게 걷겠는가?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다. 거기에 무슨 논리가 필요한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체험할 수 없는 세계다.
논리적으로, 학문적으로 아무리 따져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을 참으로 믿으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다. 그것은 내 머리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계시'라고 한다.
◆ 계시를 받은 자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계시'는 헬라어로 '아포칼립토'라고 하는데, 그것은 덮개를 제거하다, 또는 폭로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덮개를 제거할 때 드러나고, 폭로해야 드러나는 지식이다. 가령 내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가가 내 얼굴을 그릴 수 있겠는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화가 머릿속에는 내 얼굴이 없다. 내 얼굴을 보여주어야 비로소 알게 되고 그릴 수 있다. 이렇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 머릿속에서 나온 분이 아니시다. 우리 머리 밖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신다면 인간은 절대로 자기 머리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프랜시스 쉐퍼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거기 계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 되어서 내 손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이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게 다가오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감사하다. 정말로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가? 내 명철과 내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하라. 유한이 무한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내 머리와 경험에만 붙들려있는 편협한 사고를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대하는 길뿐이다.
◆ 복 받은 자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인류 역사상 가장 복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것을 직접 보게 되었고, 듣고 싶었던 것을 육성으로 들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엄청난 분이 이 지구에 왔다 가셨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보고 범했던 무례와 악행이 죄송스럽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감사하다.
우리도 제자들 못지않게 복 받은 자들이다. 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세대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구약 세대와는 비교가 안 되게 복 받은 자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특별히 은총을 받은 자'들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특별 은총을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불공평함을 따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따지기 전에 자신이 특별히 택함받은 것을 감사해본 적은 있는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이 많은 척하고, 더 공평한 척 하지 말라. 따지기 전에 먼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러면 이해는 못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평하심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계시를 주신 것이며, 큰 은혜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더욱 깨닫게 된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겸손하자. 내 명철, 내 지혜 의지하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자.
주 예수여,
주님을 믿습니다.
참으로 이 진리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진리 앞에서 더욱 어린아이와 같아지기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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