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8일(목)■
(누가복음 10장)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묵상/눅 10:17-20)
◆ 믿는 자에게 주신 권세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왔다.
이들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냈다.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권능은 당시에 칠십 인에게 주신 일시적인 권능일까?
아니다. 주님께서는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에게서 권능을 회수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부여하고 계심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다시 말해서 당시 칠십 인에게 부여하신 권능은 모든 믿는 자에게 부여하신 권능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권능이란 헬라어 '엑수시아'를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동일한 단어다.
권세의 의미를 아는가?
오늘 처음 경찰관 복을 입고 거리에 나선 앳띤 여성이 있다. 거대한 덤프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자, 그녀는 호루라기를 불어서 멈추어 세웠다. 그러자 즉시 멈춰섰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리 호루라기를 분들 조금도 개의치 않을 사람들인데, 갑자기 자기 말에 고분고분해졌다. 신기하다. 어째서일까? 대한민국 정부가 경찰에 준 권세때문이다. 만일 이 여성 경찰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것은 곧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반항이며, 법적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게 권세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 성도가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귀신이 우리를 두려워해야 한다.
◆ 진정으로 기뻐해야 할 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사역자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면 신나고 기쁘다. 사역할 맛이 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경계하신다. 이런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고 하시고, 진짜 기뻐해야할 것을 알려주신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 영생을 얻어서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신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면 사람들은 나를 주목하고, 대단한 사람인 것으로 여긴다. 이것을 기뻐하고, 즐기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절하는 데, 임금을 태운 나귀가 으스대는 꼴이 되는 셈이다.
베드로는 하반신 장애인를 일으켰을 때 처신을 잘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주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부담스럽다. 주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느낌이다.
베드로는 자기 능력의 출처를 알았다. 이것은 단순히 겸손을 취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본 정직한 자세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매우 잘 설명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 3:16)
병자가 낫게 된 이 메카니즘을 잘 숙지하라. 예수의 이름을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했다. 오, 내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낫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내 믿음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그 믿음이 병자를 낫게 한 것이다. 우리가 '믿-쑵니다'를 반복하며 짜아낸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다. 그 믿음이 임하면 베드로처럼 말할 수 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그러므로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고자 하면, 당신이 할 첫번째 일은 당신의 힘을 빼는 것이다. 모세처럼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두들기면서 마치 자신의 힘으로 반석을 쪼개어 물을 내는 것처럼 행세하지 말라. 오직 그분의 선하심에 결과를 맡기고 기도할 따름이다.
사역자들은 어떻게 설교하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감동을 받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러나 영적이 아니면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음을 왜 모르는가?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내 힘부터 빼야 한다.
나는 평생에 병자를 고쳐본 경험이 거의 없다. 소리를 지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기도해도 그런 기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꼭 한번 진짜 내 힘을 빼고 마음을 비운 상태로 기도하자 병자가 나았다. 그것은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아, 주님
저는 여전히 저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설교도, 기도도, 글도 온통 제 힘이 가득차 있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제 진짜로 기뻐해야할 이유를 바꾸어야 한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고, 그렇게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멘. 주 예수여,
제가 택함 받은 자며, 영생을 얻은 자가 됨을 기뻐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누가복음 10장)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묵상/눅 10:17-20)
◆ 믿는 자에게 주신 권세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왔다.
이들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냈다.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권능은 당시에 칠십 인에게 주신 일시적인 권능일까?
아니다. 주님께서는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에게서 권능을 회수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부여하고 계심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다시 말해서 당시 칠십 인에게 부여하신 권능은 모든 믿는 자에게 부여하신 권능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권능이란 헬라어 '엑수시아'를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동일한 단어다.
권세의 의미를 아는가?
오늘 처음 경찰관 복을 입고 거리에 나선 앳띤 여성이 있다. 거대한 덤프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자, 그녀는 호루라기를 불어서 멈추어 세웠다. 그러자 즉시 멈춰섰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리 호루라기를 분들 조금도 개의치 않을 사람들인데, 갑자기 자기 말에 고분고분해졌다. 신기하다. 어째서일까? 대한민국 정부가 경찰에 준 권세때문이다. 만일 이 여성 경찰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것은 곧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반항이며, 법적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게 권세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다. 성도가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귀신이 우리를 두려워해야 한다.
◆ 진정으로 기뻐해야 할 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사역자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면 신나고 기쁘다. 사역할 맛이 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경계하신다. 이런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고 하시고, 진짜 기뻐해야할 것을 알려주신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 영생을 얻어서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신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면 사람들은 나를 주목하고, 대단한 사람인 것으로 여긴다. 이것을 기뻐하고, 즐기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절하는 데, 임금을 태운 나귀가 으스대는 꼴이 되는 셈이다.
베드로는 하반신 장애인를 일으켰을 때 처신을 잘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주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부담스럽다. 주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느낌이다.
베드로는 자기 능력의 출처를 알았다. 이것은 단순히 겸손을 취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본 정직한 자세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매우 잘 설명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 3:16)
병자가 낫게 된 이 메카니즘을 잘 숙지하라. 예수의 이름을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했다. 오, 내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낫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내 믿음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그 믿음이 병자를 낫게 한 것이다. 우리가 '믿-쑵니다'를 반복하며 짜아낸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다. 그 믿음이 임하면 베드로처럼 말할 수 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그러므로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고자 하면, 당신이 할 첫번째 일은 당신의 힘을 빼는 것이다. 모세처럼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두들기면서 마치 자신의 힘으로 반석을 쪼개어 물을 내는 것처럼 행세하지 말라. 오직 그분의 선하심에 결과를 맡기고 기도할 따름이다.
사역자들은 어떻게 설교하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감동을 받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러나 영적이 아니면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음을 왜 모르는가?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내 힘부터 빼야 한다.
나는 평생에 병자를 고쳐본 경험이 거의 없다. 소리를 지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기도해도 그런 기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꼭 한번 진짜 내 힘을 빼고 마음을 비운 상태로 기도하자 병자가 나았다. 그것은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아, 주님
저는 여전히 저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설교도, 기도도, 글도 온통 제 힘이 가득차 있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제 진짜로 기뻐해야할 이유를 바꾸어야 한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고, 그렇게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멘. 주 예수여,
제가 택함 받은 자며, 영생을 얻은 자가 됨을 기뻐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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