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미국 기독교선교연맹 총회에 참석한 후 선교지로 가기 전에 잠깐 한국에 들린 아프가니스탄의 L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춘천에서 닭갈비로 식사하고, 춘천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구봉산에서 야경을 보며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모슬렘지역 선교는 소금이 녹아지는 것처럼 신중하고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하면 반발을 부르고 오히려 선교에 마이너스가 됩니다.” 그 말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할 때 교회 청년봉사 팀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보자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교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무수한 댓글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길을 일으켜 세상을 밝히기보다는 작은 불똥이 튀어 큰 불길이 일어나 교회를 태우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댓글들 중에는 무조건적인 비판도 있었지만 귀담아들을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 문제로 기도하면 마치 하나님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목사야! 네가 그 교회 담임목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탈레반에게 ‘나를 대신 인질로 잡고 청년들은 풀어주시오.’라고 하겠는가?” 그 질문에 대해 “당연하지요.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지요. 나는 그렇게 할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교회 리더에게 요구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비판은 상당부분 교회리더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람들은 말이 아닌 삶으로 감동을 주는 교회리더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정치가나 경영자보다는 목자를 원하고, 지배자가 아닌 지도자를 원합니다. 지도자는 자기를 부정하고 백성을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지만 지배자는 자기 영광을 위해 백성을 도구화합니다. 사람들에겐 ‘진정한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때로는 자율적인 것보다 타율적인 것을 더 원하고, 앞에서 모범을 보이며 이끄는 지도자보다는 뒤에서 채찍을 가지고 모는 지배자를 더 원합니다. 그래서 지배자를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며 더 매력 있게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타율은 타락으로 가는 미끄럼틀입니다. 지도자는 앞에서 피리를 불고 이끄는 사람이고, 지배자는 뒤에서 휘슬을 불며 몰아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뒤에서 몰아대는 지도자가 더 지도력이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런 경향 속에서 삶의 모범을 보이는 지도자는 점차 사라지고 각종 프로그램과 무대예술로 몰아대는 지배자는 점차 부각됩니다. 결국 교회리더는 점점 정치가와 경영자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신자들보다 불신자들이 더 거부합니다. 교회의 타락은 상당부분 교인들 책임입니다. 교인들이 ‘진실한 목자’보다 ‘카리스마적 목자’를 더 찾고, 외형을 따라 교회를 찾으면 교회와 지도자의 타락은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스타가 없어야 건강해집니다. 교회리더는 스타 기질을 버려야 합니다. 드러난 스타는 적고 숨은 스타가 많아질 때 교회는 건강하게 됩니다. (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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