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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 없어야 하는 3가지(고린도전서 1장 1-3절 )

by 【고동엽】 2022. 12. 9.

< 고린도전서의 개요 >

초대교회 당시에 고린도는 방탕하기로 소문난 악명 높은 항구도시였습니다. “고린도 사람처럼 행한다”는 뜻을 가진 코린티아조마이(Corinthiazomai)라는 말은 “부도덕을 행한다!”는 뜻의 관용구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의 소녀’는 창녀의 동의어였습니다.

항구 도시였던 고린도는 당시에 아주 크고 유명한 세계적인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에서 열린 운동경기 대회는 아테네에서 열리는 올림픽 다음가는 것이었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신전들과 사당들 그리고 제단들이 세워져 있었으며, 천 명 가량의 신에게 바쳐진 창기들이 헬라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에서 몸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큰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말처럼 고린도 지역에 세워진 교회는 크게 부흥해서 초대 신약교회에서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교회는 컸지만 교회 내에 수많은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징계와 책망을 목적으로 이 서신을 썼는데 이 서신에서 그는 파당, 부도덕, 소송,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파괴하고 있었던 성만찬의 남용 등의 문제를 단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결혼 문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문제, 부활 문제 등에 관해 고린도인들 사이에 제기된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는 여러 가지 신약 교리에 대해서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는데 특히 교회 문제, 은사 문제, 부활 문제 등에서는 더욱 탁월한 교리적 공헌을 하고 있는 서신입니다.

< 성도에게 없어야 하는 것 >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짧은 구절이지만 사도 바울이 어떻게 살았고,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성도에게 없어야 하는 몇 가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성도에게는 ‘내 뜻’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이 구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처음으로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힘들게 선교 사역을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축복의 도구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든지, 명예이든지, 권세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반드시 축복의 도구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축복받기를 원하면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기도합니까? 기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응답을 달라!”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기도는 환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평강과 성령의 위로가 주어질 것이고, 곧 이어서 가장 선한 응답도 주어질 입니다.

2. 성도에게는 ‘내 교회 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이 구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내 교회’가 아닌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가 교회를 ‘내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라고 생각하면 교회 내의 수많은 분쟁은 거의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소유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교회는 내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입니다. 즉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내 교회 의식’은 필요하지만 인간의 추악한 본성인 기득권을 주장한다는 의미에서 ‘내 교회 의식’은 절대적으로 버려야 합니다.

그 ‘내 교회 의식’을 가장 버려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 교회를 개척한 목사님과 창립멤버들입니다. 아무리 내가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켰어도 교회는 한 개인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교회여야 합니다.

왜 한경직 목사님이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존경받습니까? 영락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교회라는 의식을 버리고 은퇴 후에도 존경받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교회 의식’에 탁월하면 우리도 존경받는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3. 성도에게는 ‘내 것 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소스데네는 고린도의 회당장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구절을 보면 바울은 동역자 의식이 탁월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바울의 사역에는 거의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1차 선교여행 때에는 바나바와 함께 동역했고, 1차 선교 여행 때에는 실라와 함께 동역했습니다.

본문 2절 하반부에서 3절 말씀까지 보십시오. 세 번이나 ‘우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의식’이 탁월했습니다. 거기에 바로 승리하는 교회생활의 원리가 있습니다. 성도가 ‘내 것’을 고집하면 교회는 끊임없이 분쟁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 의식’을 가지면 교회에는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내 것 의식’을 배제하고 ‘우리 의식’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십자가를 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선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서로 낮은 자처럼 생각하며 섬겨주어야 합니다.

왜 고린도교회에 갈등이 많았습니까? 바른 십자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하는 십자가의 수직축은 좋았지만 성도와의 관계를 뜻하는 십자가의 수평축은 부족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다른 성도들의 잘못이 잘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지적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십자가가 없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 어려움이 많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철저히 십자가를 지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많은 욕을 얻어먹고, 당시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시기하고, 나중에는 강도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하면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마음을 끝까지 천국의 마음으로 지켜가야 합니다.

찬송가 327장 1절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내 맘속에 주 영접하며/ 새 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 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우리가 죄인으로서 구원받은 새 사람이 되려면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또한 4절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즐거운 찬송을 하려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평안한 복지에 가려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 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일은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찬송과 평안이 넘치는 삶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 교회생활을 아름답게 하려면 끊임없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계속 영접함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채우고 우리도 십자가를 지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성공적인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도에게 없어야 하는 것 3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성도에게는 내 뜻이 없어야 하고, 내 교회 의식이 없어야 하고, 내 것 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을 거꾸로 말하면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교회 의식을 가져야 하고, 나를 죽이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런 삶을 통해서 내가 섬기는 교회를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만들어 가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글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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