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나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살면서, 새벽기도회로 유명한 M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걸핏하면 신문을 통해서 근처 H 교회 광고지가 날아들었습니다. 광고지는 ‘40일 금식기도 3번!’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아래에 여러장의 사진이 있었으며, 그 사진 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40일 금식기도하신 목사님의 모습! 목사님이 40일 금식기도 하시던 기도굴...” 당시 교회의 생리를 잘 모르던 평신도 시절에도 그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코미디를 하는 것 같다! 정말로 수상한 사람이다! 성공을 위해 경건까지 파나?” 그런데 결국 그 교회의 ‘경건하신 목사님(?)’은 본인이 그렇게도 원하던 ‘교회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교주처럼 행세하며 각종 물의를 일으킨다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지내다 보면 상식을 벗어난 경우를 많이 목격합니다. 심지어 어떤 목사님은 명함에 ‘40일 금식기도 3번!’이라는 타이틀까지 집어넣고 명함을 돌립니다.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갑자기 학교 수업시간이 즐거운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웃지 않는 학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 학생들에게 진지하게 당부했습니다. “지금은 웃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경건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내면적 인식’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외면적인 모습으로 경건을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이 광고의 수단이 되어버렸고, ‘사람 앞에서의 외면적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한 경건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 자랑은 하나도 없습니다. 순전히 자기 자랑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이미 그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혹시 ‘몇 시간 기도’를 자랑하십니까? 경건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자랑거리가 되는 순간 내면적 경건은 사라지게 되는데, 내면적인 경건이 없으면 외면적인 경건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경건은 ‘기도응답’의 척도요, ‘삶의 보람’의 척도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무엇을 경건으로 보고 계시며, 경건을 위한 영적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고 계십니까?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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