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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과의 여행 LA로 출발 전날

by 【고동엽】 2022. 12. 7.

나는 아이들 학원 비용은 가급적 줄이고 아이들 여행 기회는 가급적 늘리는 편입니다. 우리 집 비공식 가훈은 “믿음을 키우고 시야를 넓히자!”입니다. 여행은 시야를 넓혀주고, 꿈을 심어주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도 줍니다. 이번 어머님과의 여행에 아이들을 동참시킨 이유도 여행의 교육효과를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더 중요한 이유는 기억력이 감퇴된 어머님에게 사랑 많은 아이들을 통해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출발 전날 밤, 아이들이 한참 업(up) 되어 있었습니다. 한나가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는 목사님이라 돈이 없는데 어떻게 여행을 갈 수 있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아빠는 돈은 못 벌지만 여행을 중시하기 때문이야. 아빠는 아파트를 살 생각을 하지 않잖아? 아빠는 너희들이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여행을 통해 많이 보고 느끼고 마음과 생각과 사랑의 크기가 커지기를 더 원해! 이번 여행에는 그런 목적도 있어.” 그때 한나가 말했습니다. “또 목적이 있잖아요. 할머니 즐겁게 해 드리는 거요.” 한나의 고운 마음씨에 기분이 흐뭇했습니다. 한나가 계속 말했습니다. “아빠! 저는요. 나중에 좋은 아내가 될래요. 그래서 남편을 즐겁게 해주고, 맛있는 요리도 해주고, 남편 친구들도 잘 대해주고, 손님들한테 쿠키도 만들어 줄 거예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네 남편 행복하겠다. 앞으로 그런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한나가 말했습니다. “아빠! 나중에 남편이 설거지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가끔 설거지는 남편한테 맡길래요. 요새 1등 남편은 설거지 도와주는 남편이죠? 2등 남편은 가끔 설거지 도와주는 남편이고요. 그런데 아빠는 5등 남편이에요. 설거지는 도와주지 않지만 다른 것은 다 잘해주고 엄마를 즐겁게 해주니까요.” 칭찬인지 질책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칭찬 같은데 1등이나 2등이 아니라 5등 남편이라니.... 약간 실망이 되어서 내가 말했습니다. “겨우 5등 남편이야!” 한나가 대답했습니다. “5등 남편이면 얼마나 훌륭해요. 300등도 있잖아요.” 내가 다시 말했습니다. “응! 그렇구나! 고맙다! 5등 남편으로 알아줘서.” 한나의 립 서비스는 안마와 흰머리 뽑아주기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곧 발밑에서 스르르 잠들었는데, 자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미소를 보자 나도 기분이 좋았고, 이제 곧 어머님을 볼 생각을 하자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잠자리에서 LA에 혼자 계신 어머님을 생각하자 다시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지난 봄, 한국을 오셨을 때, 어머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어머님의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떠나시기 전날 분당 중앙 공원을 둘이 걸으면서 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셨어요. 더 떨어지지 않게 힘써 노력하세요. 특별한 일이나 전화 통화는 꼭 메모하시고, 운동과 대화를 많이 하세요.” 어머님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습니다.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파 형님과 누님들에게 미국 이민을 넌지시 제시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실 어머님 곁으로 가장 잘 갈 수 있는 사람은 미국 교단의 목사로 있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것도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님은 한국으로 들어오시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 아픈 모습으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명을 따르려고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석별’입니다. 그런 때일수록 가족은 더 생각납니다. 일제 때, 한 목사님은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의 길을 가다 자식 우는 소리로 그 길에서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희망의 길은 희생의 길입니다. 이번 여행으로 기억력이 떨어진 어머님 곁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이 조금 해소되고, 어머님의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새 나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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