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살아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행복을 가장 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또는 행복한 세계를 찾기 위해 오늘도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행복이 저 산 너머에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가 많은 인생들이 눈물만 흘리고 돌아오는데 아마 이러한 모습이 현대인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은 소유의 철학으로 사는 자에게는 다가오지 않는다. 행복은 헌신의 철학으로 사는 자에게 다가온다. 소유의 철학으로 사는 자는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헌신의 철학으로 사는 자는 조그마한 것을 베풀고도 행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신앙인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인이란 헌신의 철학으로 살겠다고 역사의 장으로 뛰어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헌신의 철학으로 살겠다는 사람에게도 고통스러운 역사의 장이 펼쳐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이 고통스러운 역사의 장을 넘기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새벽이 있음을 알기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어두워지면 별이 나오는 법입니다. 꿀벌이 꽃에서 꿀을 도적질할 때 꽃가루가 옮겨져 꽃이 피게 되고 열매를 얻게 됩니다. 신앙의 길이란 눈부신 세계를 향한 화려한 출발을 하고 광야라는 고난의 과정을 통과한 후 가나안에 도착하게 되는 길입니다. 즉 화려한 출발이 곧바로 가나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려한 출발의 잔영에 도취되어서 스스로의 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다가 인생이라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소모시킨 인생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화려한 출발의 발자국을 남겼을지라도 땀과 눈물과 피의 삼대 액체를 흘리지 않으면 행복이라는 월계관은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큰 비전을 가지고 힘차게 용솟음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어떤 경영자가 있어 아프리카에 두 명의 판매원을 구두 팔러 보냈습니다. 얼마 후 두 명으로부터 전보가 날라 왔습니다. 한 판매원의 전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와보니 아무도 구두를 신고 있지 않음. 사람들이 구두에 대한 개념조차 모르고 있어 전혀 구두를 팔 가능성이 없음." 다른 판매원의 전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와보니 아무도 구두를 신고 있지 않음. 그래서 구두를 팔 가능성이 무한히 있음." 그 경영자는 어느 판매원을 더 아끼겠습니까? 하나님은 꿈을 가지고 용기 있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앞세우고 나가는 인생들에게 위대한 역사를 펼치실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멘트 부대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물과 자갈 및 모래와 반죽되지 않으면 콘크리트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믿음의 행위 및 실천적 삶과 반죽되지 않으면 축복의 역사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힘차게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때로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침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 배에 타고 있을 때 어느 정도의 풍랑은 오히려 유쾌한 일이 되는 것처럼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우리들의 삶에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투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들은 담대하고 강인한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적자 인생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아멘'을 하지 않을 것입니까? 어찌 '아멘'을 주저하겠습니까? 때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건강을 빼앗아 가지만 그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지 않습니까? 때로 인생들에게 고난의 어려움을 허락하시지만 그로 말미암아 인생들이 진실함의 영역에 한발을 더 들여놓게 되지 않습니까? 항상 강하고 담대하여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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