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설교 6월1일 ~30일 {목록 돌아가기} |
365일 설교[ 6월 1일 |
긍정적 사고방식..물한병만 팔아도
어떤 시골 청년이 서울에 가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그의 친구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서울은 물 한병도 사서 마신데. 잘 생각해.” 그때 이 청년이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거봐, 물 한 병만 팔아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거야.”
지혜자가 길을 가는데 한 젊은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젊은이 왜 우시우?” “제가 이곳에서 넘어졌는데, 팻말을 보니 여기서 한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산다잖아요.” 지혜자가 다시 말합니다. “이보게 젊은이 그럼 3천번쯤 넘어지시구려.” 그가 삼천갑자 동방석입니다. 언제나 죽는 길이 있고 사는 길이 있습니다.
365일 설교[ 6월 2일 |
교회생활이 재미없는이유
어떤 부인이 남편에게 상처를 받고 실망을 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울면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아요. 주님 계신 곳으로 주님 나라로 절 데려가 주세요.” 너무나 간절히 기도하니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딸아 나와 천국에 가자. 그런데 하늘나라에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좀 요청할 일이 있는데 몇 가지만 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첫째로 네가 하늘나라 오려면 장례식을 해야 할텐데 집안이 너무나 어지럽혀져 있는 것 같다. 장례식에 왔을 때 사람들이 네가 끝까지 깨끗하게 잘 정리하고 갔다는 얘기를 듣도록 집안 청소 좀 할래?”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하겠습니다.” 집안을 깨끗이 정돈했습니다. 며칠이 걸렸습니다.
예수님이 또다시 “다음으로 장례식을 치루려면 마당에서 머물러야 되는데 사람들이 네 정원을 보고 ‘풀을 깎은지 오래된 것 같은데 저 정원 한번도 손도 대지 않고 갔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이왕 가려면 정원 손질 좀 하고 가겠느냐?”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며칠동안 열심히 땀을 흘려서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꽃도 새로 심고 열심히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그러자 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됐다. 그런데 가기 전에 아이들이 어미가 죽은 다음에 얼마나 허전하겠니? 평생 어미의 사랑을 먹고 살았다는 추억은 남기고 가자. 그걸 느낄 수 있도록 자식들에게 며칠 동안 네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을 해 봐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 봐라.” 여인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격려하고 소중하다 귀하다 말해주고 밥 해주고 머리에 손 얹고 축복기도 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정성껏 섬겼습니다.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또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너 네 남편이 너 속 썩인 것 내가 잘 안다. 밉지? 그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겠느냐? 그러나 남편이 장례식 하면서 ‘참 좋은 여자였는데...’ 하는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이왕이면 정성껏 따뜻한 밥을 지어서 먹이도록 해라. 그리고 남편을 사랑해 주어라.”여인은 남편에게 “사랑한다.” “똑똑하다.” “잘났다.” 말해주고 따뜻한 밥을 정성껏 지어 함께 먹었습니다. 저녁에 남편이 들어오면 옷 받아 걸어주고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편이 달라졌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오시더니 “하늘나라 갈 시간이 되었구나. 네 집을 한번 더 돌아보려므나.” 여인이 집을 둘러 봤더니 아주 잘 정돈된 정원에서는 꽃이 피어 있었고 집안도 깨끗이 정돈이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실로 자녀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여보 밥 먹자.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야. 일찍 들어옵니다.
여인이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여기가 천국입니다. 주님 여기가 천국입니다.”
주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섬기는 그 곳이 천국이란다.”
가정에서도 섬김 받으려고만 하니까 그곳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섬기는 그곳이 천국입니다. 교회생활에 재미가 없어졌어요? 교회 생활에 행복을 잃었다고요?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고요? 생각해 보세요. 언제 행복했는지. 주일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리가 아프도록 교회를 섬기고 오는 사람을 섬길 때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미친 듯이 교회생활을 할 때 행복했습니다. 섬길 곳. 사역지가 있어서 지치도록 그곳을 위하여 울면서 기도하고, 물질을 바치고, 시간과 몸 바치는 그 자리가 행복했습니다.
교회생활 재미없다는 얘기는 구경꾼으로 전략했기 때문에 방관자로 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섬길 곳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역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행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교회 섬기면 당신이 섬기는 그곳이 천국으로 됩니다.
365일 설교[ 6월 3일 |
식당 벨....벨만 누르면 예쁜 아가씨가
산골마을에서 외롭게 사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서울 아들네 집에 왔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식탁에 놓인 조그만 벨을 누르면 금방 예쁜 아가씨가 들어와 심부름을 해 줍니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신 할아버지가 얼른 방에 들어가시더니 “왜 안와, 왜 안와” 앓는 소리를 하셨습니다. 신기한 식탁벨을 슬쩍 해 오셔서 어디서든 그 벨만 누르면 예쁜 아가씨가 오는 줄로 알고 벨을 누르며 “왜 안와, 왜 안와” 앓고 계셨던 것이지요.
365일 설교[ 6월 4일 |
인간 보고 듣는것의 한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경험한 것만을 믿는다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일이지요. 우리의 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빛의 5%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95%의 빛은 우리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습니다. 만일 보이는 것만 인정하겠다고 하면 이 세상의 존재하는 것의 95%를 부정하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귀는 진동수 16Hz~20,000Hz 사이의 소리만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동물들은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만일 들을 수 있는 소리만을 인정하겠다고 하면, 40,000Hz까지 들을 수 있는 개만도 못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렇듯 엄청나게 제한된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극적으로 향상시켜 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암흑 속에서도 우리는 믿음으로 희망을 볼 수 있으며, 엄청나게 세미한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각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고후5:7). 험한 인생길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은 믿음입니다.
365일 설교[ 6월 5일 |
천장 만장 그림을 그려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십자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스타인 벡이라는 사람은 화가입니다.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요청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부활하시는 예수님, 승천하시는 예수님, 말씀을 증거하시는 예수님,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예수님에 관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어느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는데 늘 그 집에 들락거리는 어린아이 한 명이 왔습니다. 아저씨 이분은 왜 이렇게 피를 흘려요? 오 예수님이시란다. 하나님의 아드님이야.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지금 죽으시는 거야. 우리의 죄요? 그럼 아저씨 죄도? 내 죄도 이 분이 다 담당하시는 거예요? 잠시 후에 아이가 떠났습니다.
이 아이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무심코 설명하는 가운데 아저씨의 죄도요?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그림 밑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 주님, 수많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면서도 당신이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많은 그림을 그리고 돈 받는 것은 감사했지만 내 죄를 담당하신 당신앞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내 부활을 거듭남을 확정하시기 위하여 당신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내가 알지 못했습니다.
승천하시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나를 위하여 천국을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내가 알지 못했습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천장 만장 그림을 그려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십자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면 예수님과 우리가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죽임이 나의 죽음이 되며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준비하신 그 천국 영원한 세계가 나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6월 6일 |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
일제시대 때 최봉석목사님은 “예수 천당” 하시며 전국을 다니기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한번은 기차에 타서 앞 칸부터 “예수 천당, 예수 믿으시오. 예수 천당, 예수 믿으시오” 하고 가는데 저만큼 가니까 동기동창인 채필근 목사님이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채필근 목사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귀에 대고 “예수 천당, 예수 믿으시오”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채필근 목사님이 “여보게, 봉석이 날쎄. 나 채목사야” 했더니 다른 얘기는 않고 한번 더 “예수 천당, 예수 믿으시오” 소리지르더랍니다. “나, 채목사라니까!” 그러자 최봉석목사님이 채필근 목사님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녀석, 벙어리 아냐? 목사가 여기 입 다물고 앉아 있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옆에 수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렇게 멍청히 앉아 있어. 이 녀석 말 못하는 자페증 환자 아니야.” 그리고는 다음 칸으로 가서 다시 “예수 천당 예수 믿으시오” 외치더랍니다. 그것이 채필근 목사님에게 얼마나 충격이 되었는지 여행하면서 계속 울면서 회개하고 자신도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영적으로 말하기 싫어하는 자페증 환자가 아닙니까? 말 못하는 영적인 벙어리가 아닙니까? 이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365일 설교[ 6월 7일 |
전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미국의 한 기독교 문서전도협회에서 문서전도를 위한 자원자들을 모집하여 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훈련생 가운데 말을 더듬는 말더듬이가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육을 담당하는 책임자가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감동시켜 이곳에 보내셨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어떻게 역사를 일으키시는지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며 계속 훈련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몇 달이 지나자 그 말더듬이는 상상 할 수 없는 많은 책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본부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그처럼 많은 책을 팔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혹시 강요하며 책을 떠맡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본부요원 하나를 파송하여 그 사람과 함께 나서게 했습니다. 말더듬이 전도자는 걸어서 한 집 한 집을 방문하며 전도 책자를 보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떤 집이든 그 집에 들어가기 전에 길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성령께서 먼저 저 집을 방문하여 그 사람을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만 믿고 갑니다." 라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방문하는 집마다 말더듬이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듣고도 책자를 사기로 약속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전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6월 8일 |
이반 로버츠...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반 로버츠란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1904년, 웨일즈지역 부흥운동을 일으켜 1904년 한 해만 11만면이 예수믿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는 데 이 사람은 본래 가난한 광부였습니다. 그러다 교회에서 어떤 장로님이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제목이 “나를 굴복하게 하소서’였습니다. 그때부터 그가 기도하기 시작했는 데 ”주여, 나를 굴복시키소서. 그리고 이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앞에 굴복하게 하소서“. 이 기도를 10년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한지 10년, 어느날 설교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부탁했습니다. ”설교를 하게 해 달라고“. 그러나 나이 어린 탄광 노동자에게 누가 설교하게 하겠습니까? 하도 간청하니까 어느 수요저녁예배를 허락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들을까 했습니다. 그날 밤 17명이 모여 이반 로버츠의 설교를 들었는 데 메시지는 단순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생각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만 한다. 둘째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좋지 않은 습관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즉각 순종해야 한다. 넷째 우리는 예수님을 전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나가야 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설교했는 데 그 설교를 들은 목사님과 17명의 교인들이 하나님을 뜨겁게 체험했습니다. 그 다음날 밤에도 사람들이 모였고, 그 다음 날도 모이고, 순식간에 부흥의 불길이 다른 교회로 퍼져갔습니다. 그후 30일 안에, 3만 7천명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5개월 안에 10만명이 웨일즈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당시 신문은 그 사건을 이렇게 썼습니다. “이반 로버츠는 무명의 청년이지만, 어느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종하였다. 그는 자신이 지금의 사역에 인도된 것은, 성령님의 직접적인 인도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의 의심이나 망설임도 없이 그는 사람들에게 그 가 만난 그리스도를 선포했다.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붙었다.”.
365일 설교[ 6월 9일 |
더불어 사는 삶
옛날 어느 마을에 두 거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 모두가 장애자였습니다. 한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고, 한 사람은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였습니다. 그들은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없이 걸식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 움막에 기거하면서 서로 협력을 하며 살았습니다. 소경은 앉은뱅이를 등에 업고서 앉은뱅이의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앉은뱅이는 소경의 등에 업혀서 소경의 눈 역할을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두 거지가 서로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서 그들을 매우 동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걸하러 올 때마다 자신들의 음식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거지였고, 또 장애자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그 지방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살림 자체가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자연히 두 거지에게 돌아오는 음식의 양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의 마음 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꾀를 부렸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의 밥그릇에 있는 음식을 조금씩 자기의 밥그릇에 슬쩍 슬쩍 옮겨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앉은뱅이는 배불리 얻어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은 늘 허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눈보라가 몹시도 휘몰아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두 거지는 구걸을 하기 위해서 움막을 나왔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경은 앉은뱅이를 등에 업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매우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앉은뱅이는 그동안 잘 얻어먹었기 때문에 몸이 많이 불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제대로 얻어먹지를 못해서 몸이 약해질 때로 약해져 있었습니다.
일순간 소경은 현기증을 일으키더니 그 자리에서 푹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소경의 등에 업혀져 있던 앉은뱅이의 몸도 나동그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두 사람은 눈 위에 꽁꽁 얼어죽은 시체로 발견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때 두 사람은 서로 더불어 협력하면서 나름대로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앉은뱅이의 마음 속에 욕심이 생기면서, 꾀를 부리면서 그 행복은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너'의 소중함을 무시했던 '나'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두 사람 모두의 죽음이라는 공멸로 나타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찌기 고대의 어떤 철학자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 혼자 살수는 없습니다. '너' 없는 '나'가 있을 수 없고, '나' 없는 '너'는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 이웃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삶,
365일 설교[ 6월 10일 |
잘못지적 사람을 못고침
어떤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무엇인가 종이에 빽빽하게 적은 것을 목사님에게 건너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도 사실은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과 교회를 위해서 제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은 그 교인이 주는 종이를 받아서 보았습니다. 그 종이에는 목사님이 고쳐야 할 것 50여가지가 조목 조목 적혀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것을 읽고 나서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그리고 그저 한 마디만 나중에 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교인이 돌아가고 난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목사님은 사표를 썼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당회에 사표를 제출하고서 그 교회를 떠나 버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비판하면 그 사람이 쉽게 변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기가 쉽습니다. 일할 의욕을 상실시키고, 좌절감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365일 설교[ 6월 11일 |
포기한만큼 주시는 하나님/야구 감독 하나님만 보기
슈바이처 박사는, 『나의 생활과 사상』이라는 자서전에서 자신은 아프리카 밀림으로 갈 때 하나님을 위해 세 가지를 포기하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첫째, 그는 바하의 음악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유명한 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했습니다. 셋째, 연주와 저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장된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를 위해서 평생 희생과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포기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큰복과 은총으로 보상해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첫째로 그는 음악을 포기했지만, 바하 협회로부터 열대지방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대형 페달 오르간을 기증 받아 계속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독일의 유명한 대학에서의 강의는 포기했지만, 세계 여러 대학에 명사로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그는 연주와 저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나의 생활과 사상'이란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어, 오히려 그가 더 넉넉하게 아프리카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을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하기만 하면 우리가 많은 것을 포기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상하여 주십니다. 물질을 포기하면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인생을 포기하면 인생의 축복을 주시고, 재능을 포기하면 더 좋은 재능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쓰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생을 멋대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여, 주의 뜻대로 쓰이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운동경기 중에서 신앙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경기는 야구입니다. 야구 선수들은 경기에 나가기만 하면 감독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립니다. 감독이 치라는 사인을 보내면 치고, 달리라는 사인을 보내면 달립니다. 야구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대로만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그릇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감독 삼아‘하나님, 우리에게 사인하여 주시옵소서. 달려야 합니까, 멈춰야 합니까? 사인만 하옵소서.' 하고 하나님의 사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인을 받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크게 들어 쓰실 줄로 믿습니다.
365일 설교[ 6월 12일 |
전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날마다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이 있다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말씀은 읽지도 않는 것,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기적은 불필요한 기적입니다. 하늘비전 성도 여러분, 날마다 성경을 읽고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려는 심정으로 힘써 전도합시다.
[세 개의 의문]이란 톨스토이의 글이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글에서 인생론과 행복론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행복론입니다.
(1)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2)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3)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톨스토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1)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은 현재다.
(2)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3)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예수님 믿는 성도에게, 교인에게 가장 선한 일이 무엇일까요? 영혼을 살리는 일, 전도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웃들을 전도하여 천국가게 하는 일이 가장 선한 일입니다. 결실의 계절에 천하보다 비싼 영혼들을 전도하여 열매로 천하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365일 설교[ 6월 13일 |
돈지갑도 세례를 받아야
천주교는 침례를 물속에서 받는데 달러를 많이 가지고 있던 한 성도가 침례를 받게 되었는데 돈까지 물 속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신부님, 잠깐 기다리시죠. 호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신부님이 하는 말이 “형제여, 가만히 두시오. 이번에 당신의 지갑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호주머니가 세례를 받을 때까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다스리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호주머니를 다스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호주머니를 예수님께 맡기지 못하고 ‘호주머니는 내가 맡고 그저 마음 한구석만 주님이 맡으시죠.’ 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365일 설교[ 6월 14일 |
예수님을 거지로 아는 사람
미국의 뉴저지에 한 교회가 있었는데 여전도 회장이 부자입니다. 3에이카의 대지에 잔디밭이 있고, 풀장이 있는 으리으리한 집을 가진 사람인데 이 회장이 이런 광고를 해달라고 목사님에게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폐품을 모아서 주의 선교사업을 위해서 쓰려고 하니까 광고를 좀 해 주시죠.” 그날 아침 목사님은 이런 광고를 했습니다. “본 교회 여전도 회장님께서 이 시간 폐품을 모집하기를 원합니다. 바라기는 회장을 위해서 폐품 수집을 시작하겠습니다. 각 교인 가정에 버려둔 폐품을 전부 수집해서 교회에 가져오시면 교회에서는 그것을 팔아서 부인 회장의 생활비와 용돈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은 여전도 회장이 얼굴이 빨개가지고 예배가 끝나자 마자 목사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목사님, 저를 거지로 알았습니까 제가 언제 폐품 팔아서 먹고 산다고 했습니까?”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놀라지 마시오. 당신은 예수님보다 부자입니다. 예수님을 폐품이나 쓰레기같은 것 주워다가 예수님께 드리려고 했으니 예수님을 거지로 알았습니까” 그때 여전도 회장이 무릎을 꿇고 “오 주여,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하고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신앙고백이 어떻게 되어지는가 상상해 보십시오. 항상 폐품을 모아드리는 것처럼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이것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고백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365일 설교[ 6월 15일 |
죽어야 좋은 사람
대구 어느 크지않은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목사님의 주일 설교는 “성령”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설교 후 광고를 하고 마지막 파송 찬송을 합니다. 그 주일 마지막 광고가 한 집사님의 장례 광고였습니다. 이 집사님은 교회에서 목사님과 당회원들의 속을 썩이고 교인들과 갈등을 일으키기가 일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무개 집사님이 별세하셨습니다.
내일 새벽 6시 아무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예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파송 찬송멘트를 합니다. 모두 함께 일어나 찬송가 185장
“이 기쁜 소식을 온세상 전하세” 힘차게 부르시겠습니다.
365일 설교[ 6월 16일 |
노는 물이 중요하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관상어 가운데 “고이”라는 잉어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어항속에서는 기껏커야 5cm정도 되는 예쁜 물고기입니다.
그런데 이 “고이”를 연못에서 키우면 25cm,
강물에 방류해서 키우면 무려 20배 – 100cm까지 자란다는 겁니다.
어떤 물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영적인 능력도 그렇습니다. 어떤 물에서 노느냐에 따라 믿음의 그릇이 달라집니다
365일 설교[ 6월 17일 |
모르면 엄청난 손해
최목사님, 박목사님 두 분이 비행기를 탔더랍니다. 그런데 최목사님은 스튜어디스가 지나갈 때마다 포도주 주세요, 음료수 주세요, 식사시간이 되니까 양식 주세요, 빵 좀 더 주세요... 시간마다 시켜 먹습니다. 그런데 박목사님은 스튜어디스가 뭘 드시겠습니까? 물어보면, 전 먹지 않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자꾸 거절을 하고 목적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최목사님이 박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안 드셨습니까?”
“제 주머니 사정이 좀 안 좋아서 아무것도 시킬 수가 없었노라고” 하십니다. “아, 목사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거기서는 밥을 열 그릇 잡수셔도 돈 받지 않습니다. 음료수 열병을 잡수셔도 괜찮은데 왜 그랬습니까?” 앗뿔사! 무식이 죄였구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며칠후 일을 마치고 나오려고 하니까 청구서가 날아 왔는데 이게 왠걸? 엄청나게 돈이 나왔습니다. 알고보니 박목사님이 호텔안에 있는 냉장고안에 있는 음료수를 모두 꺼내 먹은 겁니다. “아니 비행기 안에서 공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비행기가 공짜라고 했지, 호텔이 공짜라고 했습니까?”
무식이 죄였지요.
성령님 주시는 것은 아무렇게나 드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것 먹으면 큰일 납니다.
365일 설교[ 6월 18일 |
담배한개피만도 못한 감사
토요일 오후에 결혼식 주례가 있었습니다. 토요일 길 사정을 예견하기가 힘들어 조금 일찍 출발했더니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차안에서 쉬다가 나와서 팔운동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어떤 분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끄집어내더니 담배가 다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저에게 다가오더니 담배 한 대만 얻어 피겠습니다. 제가 담배가 없습니다. 이분이 몇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담뱃갑을 끄집어내니까 벌써 90도 절을 두 번 합니다. 담배 한 대 받아들고는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입니다. 불을 붙여 주었더니 굽실거리면서 계속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더라구요.
야 담배 한 대 얻어 피우고 “감사합니다”를 여러 번 하는데, 우리 교인들이 은혜 받으러 오면서 저렇게 감사하는 사람 있을까? “아이고 은혜 받으러 왔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러고 인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학창시절에 담배를 피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쓰레기통에서 담배를 찾는데 꽁초 하나 주우면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러다 반쯤 피우고 버린 새끼 손가락만한 것을 장초라고 합니다.
장초 하나 주우면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담배꽁초 하나마도 못한지, 우리가 정말 어떻게 감사하고 사는 것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365일 설교[ 6월 19일 |
불평 불만 제조기
한국 초기 교회 시절 어느 시골교회에 “제조기”라는 별명을 가진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뭘 제조하는 사람이길래 “제조기”, “제조업자”라는 별명을 가졌을까? 이 분은 어떤 사건,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그 문제를 가지고 비판을 합니다. 불평 원명거리로 만들어 내는 기가 막힌 재주가 있습니다. 이분은 불평 제조기, 비판 제조업자라는 별명이 붙은 집사님이십니다.
이 분이 회갑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먼곳에 있는 선교사님을 초대해서 회갑잔치 예배를 인도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눈이 많이 와서 선교사님이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쯤 뒤늦게 도착했는데 한 시간 동안 이 제조기 집사님은 온갖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온갖 비판을 쏟아 냅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시간 후에 선교사님이 도착해서 미안합니다. 예배를 인도하십니다.
선교사님이 오면서 모시고 오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잔치 무슨 잔치입니까?”
“네. 회갑잔치입니다. 회갑잔치라고 하고 육순 잔치라고도 합니다.”
예배를 인도하는데 선교사님이 헷갈리셨습니다. 회갑잔치도 아니고 육순잔치도 아니고 육순회갑이 아니라 육갑이 된 겁니다.
“오늘 육갑잔치 축하합니다. 육갑 맞으셨는데...” 이렇게 예배를 인도하신 겁니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아이고 육갑 떨더니 오늘 육갑 잔치 한다...” 이렇게 된 겁니다. 이 집사님이 크게 회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불평 제조기들이 의외로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을씨년스럽다고 불평합니다.
여름이 되면 더워도 너무 덥다고 불평합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많이 떨어져 청소하기 힘들다고 불평하고
겨울이 되면 눈 쌓여 얼음길 외출하기 힘들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감사 제조업자들은-
봄에 꽃 기가 감사하고, 여름에 무성한 가지가 감사하고
가을에 맛난 과일들이 있어 감사하고, 겨울에 흰 눈 쌓여 온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불평촌에서 살던 사람들이 감사 촌에 놀러 갔더래요.
입만 벌리면 감사를 하거든요. 별것 아닌데 감사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배워 와서 하잘것없는 일들을 만날 때마다 감사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불평촌이 달라지기 시작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감사란 흉내만 내어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6월 20일 |
중보기도의 위력
내게 상처를 준 사람, 내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 내게 결정적인 손해를 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용서를 선포할 수 있고 그를 위하여 중보기도할 수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서라는 구약의 책이 있습니다. 42장으로 구성된 긴 이야기입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욥만큼 커다란 고난을 당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욥은 1장부터 42장까지 얼마나 쓰리고 아픈 고통을 겪는지 모릅니다.
열 아들이 모두 죽습니다. 모든 재산이 바람에 날아가듯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그를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친구들이 위로한답시고 욥을 찾아왔지만 욥의 가슴을 난도질했습니다.
온몸은 질병으로 자기 몸은 지금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럽고 아파서 기왓장으로 가려운 데를 벅벅 긁으며 피를 줄줄 흘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 고통이 42장에 걸쳐서 절절히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42장 10절에 놀라운 한 기록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에게 상처를 준, 결정적인 아픔을 주었던 친구들을 용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이 떠나가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욥의 환난이 깨끗이 없어져 가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들을 용서하고 그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시작했을 때에
고통이 사라져 갔습니다. 질병이 떠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프레미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전의 모든 소유보다 갑절을 욥에게 주었더라.
우리는 욥이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행 사실 즉 중보기도에 대해서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용서했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했습니다.
그때 질병이 떠나갔습니다. 갑절의 축복을 욥에게 하나님께서 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가 가져다 주는 축복입니다.
365일 설교[ 6월21일 |
20%의 개미들만이
개미는 열심히 일하는 곤충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만
정작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20%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20%의 개미들만이 열심히 땀흘려서
나머지 80%를 먹여 살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경영학의 80대 20 법칙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국민의 총 생산량의 80%가 20%의 사람들에 의하여
생산이 되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음하는 80%의 사람들을 살려낼 중보기도자들,
피흘리고 쓰러져 고통에 겨워하는 사람들을 건져낼 사람들,
아픈 상처에 울부짖는 사람들을 건져낼 수 있는 20%의 역군들을
우리교회가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교회의 미래에 승패를 가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6월 22일 |
두세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에
두세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에 주님도 거기에 계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며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일본의 장수 가등청정이란 사람이 백두산의 호랑이를 생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호랑이를 풍신수길에게 선물로 보냈지요.
일본에 도착할 때까지 개 세 마리를 잡아먹고 잘 도착하라고
큰 우리 안에 넣어 보내 주었습니다.
일본에 도착하고 보니 호랑이가 죽어있고
개 세 마리가 멀쩡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 개가 바로 일본이 몰랐던 한국의 용맹한 개 풍산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위기가 있을 때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능히 그 문제를 물어 뜯을 수 있습니다. 위기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365일 설교[ 6월 23일 |
존경하면 닮는다
미국의 어느 흑인 부부가 아브라함 링컨을 너무 존경했답니다. 링컨이 노예를 해방해서 자기들도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아이를 임신했는 데 존경하는 링컨을 닮은 아이가 나오라고 방안에 링컨 사진을 걸어 놓고 매일 바라 보았답니다. 태중의 아이에게는 매일 링컨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링컨을 사모하고 링컨만 생각하며 열 달을 살았습니다. 드디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아이를 낳고 보니 흑인이 아니고 백인이었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해외토픽감입니다. 그만큼 좋아하고 존경하면 닮는다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6월 24일 |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가지..감사
오츠 슈이치하는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가지>라는 책을 썻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죽어가면서 무엇을 후회하는가를 연구했습니다. 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내가 가고 싶은 여행을 했었더라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그런데 그 중에서 1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이 말 못한 것이 후회 1번이랍니다.
365일 설교[ 6월 25일 |
선택의 조건....소유가 많다고 해서 행복한것은 아니다
<선택의 조건>이란 책입니다. 이 책은 사람은 언제 가장 행복할까를 연구한 책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하겠습니까? 하나 밖에 고를 수 없는 사람과 여러 개중의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사람, 누가 더 행복하겠습니까? 우리 생각에는 당연히 여러 개 중에 하나 고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잼으로 실험해 보았습니다. 자, 여기에 두 종류의 잼을 진열합니다. 하나는 세 종류의 잼을 놓고 하나를 고르라 했습니다. 또 하나는 23종류 잼을 놓고 선택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잼의 맛이 어떻냐 물었습니다. 잼은 똑같은 잼입니다. 가격도 같습니다. 셋중 하나 고르는 데서 하나 골랐습니다. 23개중에 하나 고르는 사람도 골랐습니다. 그리고 맛을 보게 했는 데 놀라운 것은 23게중 고른 사람의 10%정도만 잼이 맛있다. 세 개 중 하나 고른 사람은 90%가 맛있다 대답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왔을까요? 많은 잼중에 하나 고른 사람은 하나를 고른 대신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 고른 그것에 더 많은 기대를 갖습니다. “내가 너 하나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이 버렸는지 알아?” 그러다 보니 맛이 떨어집니다. 고를 게 별로 없는 데서 고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버린 것이 적습니다. 그래서 별 기대를 안합니다. 그래서 맛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가 결론내렸습니다. “잼의 많을수록 식욕이 떨어진다”. 이 실험의 결과는 우리가 이렇게 부요하고 가진 것이 많고 고를 것이 많은 데도 행복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이 행복은 소유순도 아닙니다. 많이 가져야 행복이 아니라 꼭 가질 것을 가져야 행복합니다. 성경적으로 말해 볼까요? 하나님을 소유해야 행복합니다.
365일 설교[ 6월 26일 |
참쉼....기도
이현주가 쓴 “쉼표가 주는 여유”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우리가 지금 쉬어야 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도 소리만 들릴뿐 마음에 감동이 흐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식구들 얼굴을 마주 보고도 살짝 웃어 주지 못한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떳을 때 창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때입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바쁘다는 말만 하고 끊었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기 위해 한 번 더 뒤돌아 보지 않는다면 지금은 쉴 때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합니까? 뭔가 쉬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일만 하는 세상에서 쉬는 것은 시간 낭비요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우리는 여가를 위해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쉬어야 합니다. 쉬지 않으면 우리가 살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쉬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하면서 쉬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6월 27일 |
난치병 소녀의 기도
미국의 어느 지역에 한 소녀가 난치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소녀는 어느날 병상에서 전도를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출석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데 어느날 목사님이 방문하여 병상에서나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게 되었고, 놀라운 부흥이 그 지역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소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죽은 다음,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소녀의 베게 밑에서 56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 적인 56명은 하나님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각 사람의 이름 앞에서 빨간 십자가 표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기도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 사람씩 표시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부흥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몸을 쓰지는 못하지만 병상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 한 소녀로 인해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365일 설교[ 6월 28일 |
전도는 순종
전도는 순종입니다. 우리가 다 설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행정가이거나 목회자도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입니다. 전도할 명단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한 사람 한 사람씩 기도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D L Moody) 목사님이 1872년 영국의 조그마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었는데 열흘 동안 400명이 구원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는 데 다고 교인가운데 선천적 장애로 누워있는 아들라르드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가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나는 예배에 나갈 수는 없지만 우리 교회에 부흥을 보내주시옵소서. 부흥을 보내주시옵소서.” 이 여인의 숨은 기도로 말미암아 교회는 크게 부흥했던 것입니다. 누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누가 “기도하라”,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겠습니까? 전도는 기도입니다. 전도는 순종입니다
365일 설교[ 6월 29일 |
혹시 예수님처럼 아내도 부활하지 않을까?
미국의 한 부부가 성지순례 차 이스라엘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에 갑자기 아내가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남편은 장의사를 찾아 시신 처리와 장례 절차를 물었습니다. 장의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미국으로 가는 방법인데 고향으로 가서 좋지만 절차도 복잡하고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에 묻히는 방법인데 고향은 아니지만 대신 돈이 너무 싸다는 것입니다. 노인이 한참 생각하다 말했습니다. “돈이 들어도 미국으로 가야죠. 이스라엘 땅에 묻히면 다 좋은 데 한 가지 염려가 돼서요”. “무슨 염려요?” “혹시 예수님처럼 아내가 부활하면 어떻게 합니까?” 결국 이 사람은 비싼 돈을 들여 미국으로 갔습니다
365일 설교[ 6월 30일 |
출처 : RED COMPASS 선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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