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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365일 설교 10월1일~31일

by 【고동엽】 2022. 12. 3.
365일 설교[ 10월 1일]삶과 기쁨          {목록 돌아가기}
 

기쁨은 인간으로 하여금 분발하여 큰 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크나큰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하면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육체적 향락에서 오는 거짓된 기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치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그냥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적 향락에서 근원적인 기쁨을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은 조만간에 정신적 영양 실조에 걸려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육체적인 향락은 순간적이며 이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처절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전도서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생활의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건전한 생활의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획득한 사람은 행복을 향유하며 보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길에 들어설 때 영원한 기쁨, 참된 기쁨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성령의 계시를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들로서 영원한 기쁨을 간직한 사람들이요, 진리를 발견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들은 이 가치를 알고 있으므로 잘살아도 방탕치 않고 못살아도 낙심치 않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 가운데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도 헤쳐 나갑니다.

  우리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살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만 영원한 기쁨,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을 얻은 우리의 생활에는 활기와 관용과 마음의 평안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2일]사도 바울의 성공적 삶의 비결
 

사도 바울은 종교가로서, 사상가로서, 복음증거자로서 감탄할 만큼 뛰어난 주의 일꾼이었습니다.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같이 초인적으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였을까요? 본문을 통해 그 비결을 알아봄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바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생활에 임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큰 올무라 할 수 있는 것은 크든 작든 성공했을 때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자만하지 않고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는 겸비한 삶의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잊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실패를 생각함으로 고통 속에 빠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과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죄책감을 잊어버리고 오직 주님께만 충성했던 것입니다.

  셋째, 바울은 목표를 향해 전력 투구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실패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푯대가 없어 나아갈 방향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푯대가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푯대를 향해 꿈과 이상을 갖고 전력 투구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 바울은 불타는 마음의 소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소원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난관을 만나도 능히 헤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 증거에 미칠 정도로 열정을 갖고 전심 전력하면서 뜨거운 사랑으로 주의 복음 사역을 위해 뛰었던 것입니다.

  다섯째, 바울은 성공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자신이 어떠한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바울은 마음속에 상을 받는다는 기쁨과 복을 받고 인정받는다는 기쁨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삶을 살 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3일]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
 

어떠한 사람도 그 마음에 평안이 없이는 참 기쁨이나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물질, 명예, 권세가 행복의 플러스는 될지언정 행복 그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첫째, 죄책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죄책감으로 인해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떨쳐 버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죄책감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때 죄책에서 해방되어 참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염려는 독한 연기가 가득한 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영혼을 질식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심을 감사드리며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뢰되,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평강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맡아 주셨다는 징표입니다.

  셋째, 자족함을 배움으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족함을 배우지 아니하고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면서 살면 절대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임할 때 마음에 평화가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시기, 질투, 분노를 버림으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남을 지나치게 부러워함으로 마음속에 시기, 질투,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시기, 질투, 분노의 감정을 주의 보혈로 씻어내야 합니다.

  다섯째,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인 화평의 열매가 맺어짐으로 불안이나 두려움, 우울증이 사라지고 평안이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짐을 하나님께 기도로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자족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4일]하나님의 사랑의 아들 나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거대하고도 근원적인 제도적 변화를 세 번이나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거대한 제도적 변화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제도하에서 어떠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에덴의 낙원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동방에 에덴을 창설하여 아담과 하와를 거기 두시고 그가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오직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모든 복을 누리며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즉 탐욕을 가지고 하나님을 반역하였으므로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낙원 제도는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둘째, 세상 제도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마귀의 사주를 받아 죄와 탐욕과 불의와 거짓으로 충만한 세상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고 돈과 권력이 있는 자는 없는 자를 누르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찾아 볼 수 없는 죽음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절망과 무의미 속에 몸부림치게 되었습니다.

  셋째, 천국 제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천국 제도를 심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이 세상 제도를 주관하는 마귀의 모든 무장을 해제시켜 그 모든 권세를 깨뜨리시고 천국 제도를 심어 놓으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천국 제도 속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천국 제도 안에는 의가 넘쳐나고 성령 충만과 사랑과 성결이 가득하며 치료와 생명과 건강이 있고 축복과 성공의 역사가 있으며 천국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누구든지 천국 제도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은 이러한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 제도 안에 들어온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백성답게 기도와 믿음으로 천국의 의와 성결, 부요와 생명을 취하여 누리고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5일]나의 기뻐하는 금식
 

우리가 음식을 끊고 금식한다는 것은 인간의 관심과 욕망을 포기하고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금식이 그저 굶기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과 이로 인해 얻게 되는 축복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회개를 통해 마음과 생활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금식할 때 우리는 마음을 찢고 자신의 죄에 대해 통회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또한 경건한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락과 세상적인 일을 금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다투지 말고 용서하는 겸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에는 ‘행위의 금식’이 뒤따라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흉악한 죄의 사슬에 매여 죄짓고 망가진 육신으로 고통하는 사람들과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괴로움의 멍에에 매인 사람들을 찾아가 말씀을 증거하고 기도해 줌으로써 그 멍에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마귀에 눌려 시달리는 사람들과 죄와 질병, 저주, 절망의 멍에로 인해 괴로워하는 이들의 멍에를 기도와 말씀으로 꺾어 주며 용서와 치료와 희망을 얻도록 인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혈육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면 하나님의 위대한 복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의 영혼을 충만히 채워 주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은사를 나타내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병들고 약한 육체를 치료받게 하여 강건케 해 주십니다.

  그리고 메마른 우리의 환경과 가정을 물댄 동산과 같이 시원하고 촉촉하게 적셔 주심으로 생활 속에 풍요로움과 기쁨과 사랑이 넘쳐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와 정결한 생활과 행위의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영혼과 범사와 육체에 하나님의 복을 넘치도록 받아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6일]평화의 원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참만족을 얻지 못했고, 작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으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던 중에 순박한 시골 농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골 농부의 얼굴에는 유난히도 평화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에게 가서 평화스런 삶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 마음은 기쁨에 가득차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과거의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친히 쓴 50항목에 이르는 유서의 한 구절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영혼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자비에 맡깁니다

 

 

365일 설교[ 10월 7일]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지금도 사용하실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찾으실까요?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돈이나 명예, 권력이나 쾌락 대신 하나님이 가득차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몸과 시간, 그리고 물질을 통해 하나님을 섬깁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속 전도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를 전하고, 앉으나 서나 전도가 그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 꿈이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요셉도 모두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있는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잠 29:18 영어성경KJV). 꿈이 없는 민족, 꿈이 없는 백성, 꿈이 없는 가정은 모두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꿈이 있는 자를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셋째, 믿음의 사람을 찾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란 어떠한 환경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자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며,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뒤로 물러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남을 성공시키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성공하기를 바라듯, 남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시키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다섯째, 천국의 상을 바라는 사람을 찾습니다. 성경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 무소 부재 하시지만 우리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8일]새로 피조된 삶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이전 것은 다시는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피조된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먼저, 십자가의 사진틀에서 주님이 찍어 주신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우리도 그와 함께 못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부활했고, 질병에 대하여 죽고 건강에 대하여 부활했으며, 저주에 대하여 죽고 축복과 형통에 대하여 부활했고, 나아가서 우리는 죽음과 지옥에 대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과 천국에 대하여 부활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찍어 주신 우리의 새 모습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새로 지어진 사진틀을 우리의 마음에 걸어야 합니다. ‘마음에 걸라’는 말씀은 항상 생각하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셨는데도 우리가 아직도 죄와 마귀, 질병과 저주의 종 노릇하며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면, 이는 우리가 십자가에서 새로 찍혀진 우리의 사진을 마음에 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변화된 모습을 마음의 사진틀에 걸었으면 이제는 믿음으로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강력히 주장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 10:38).

  마지막으로, 새롭게 변화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일 때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 분으로서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화되었다 할지라도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며 의지함으로써도우심을 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변화된 새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우리의 모습을 바로 알고 그 모습을 우리의 마음에 걸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명실상부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9일]예레미야의 소명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모태에서 나오기 이전에 우리를 아시고 구별하여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신 분이십니다(5절). 우리 인생을 우리 스스로 개척하기 이전에 하나님은 먼저 주권적으로 우리의 길을 작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주님께 받은 소명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예레미야는 자신의 소명자로서의 부적절한 처지를 고백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말할 줄을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6절). 종종 하나님은 나의 뜻과 상관 없이 소명을 주십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지만 성령님께서는 마게도냐(유럽)로 가도록 강권하셨습니다(행 16:6-9). 하나님은 우리가 원치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일을 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 38)라고 고백한 마리아처럼 순종할 때 주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입에 안수하시고 그에게 필요한 능력을 채워 주셨습니다(9절).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은사와 능력을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비록 두렵더라도 담대하게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소명받은 일에 봉사하거나 종사할 때에, 하나님은 필요한 은사와 능력도 이미 함께 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담대한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돕는 능력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을 미리 아시고 우리를 그의 뜻과 계획대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정적인 믿음으로 범사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10일]지혜로운 삶의 자세
 

현대 문명은 가공할 만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전 공학과 의료 기술, 그리고 전자 통신 기술의 놀라운 혁명을 이루면서 자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약 4:14). 이렇게 덧없고 찰나적인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가장 지혜로운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4절에는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원리를 무시하고 탐욕으로 하나님 중심에서 떠난 결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리고 멸망의 길로 빠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 진정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우리 중심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고 그의 자녀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보다 더 지혜로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위해서 예비된 하나님의 모든 복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온전히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마음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지고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 잠깐 후면 지나갈 이 세상 풍조에 밀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11일]심판의 3단계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죄했을 때 회개하면 용서하시지만, 계속 범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결국 징벌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세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경고”의 단계입니다. 본문 1절에는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하나님은 먼저 경고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설교를 통해서, 또는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아니면 우리가 정신이 번쩍 들 만한 계기를 만들어서 빨리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촉구하십니다.

  둘째 단계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징계”의 단계입니다. 본문 3절에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께 징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징계를 받고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그 얼굴을 더욱 굳게 하고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우연히 생긴 불상사이다.”라고 계속 저항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 이를 순순히 받고 철저히 회개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징계를 받으면서도 ‘세월이 지나가면 무마되겠지.’라고 버티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보다 고통스런 다음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이방인의 손길에 의한 멸망”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마저 무시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이방인과 마귀의 손에 넘어가도록 허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사자와 이리와 표범은 문자적으로는 흉악한 바벨론을 말하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악한 마귀의 세력을 뜻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끝까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그들의 성전이 훼파되는 비극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으면 지체없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12일]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영적 성장과 풍성한 축복에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 뜻대로 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기쁨의 날보다 염려, 근심, 걱정의 날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마음의 태도를 밝은 쪽으로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밝은 마음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된 삶을 살 때 가능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과 성령의 교통과 치료의 축복과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누구든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아무리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신학을 공부했어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 나라와의 교제를 잃기 때문에 신앙 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쉬는 성도의 영혼은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 도움을 구하는 기도, 마귀를 대적하는 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에는 쉽게 감사할 수 있지만 고통스러운 일에는 감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은 우리의 마음을 부정적이고 파괴적이 되게 하지만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듭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할 조건에서도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나그네 길을 가는 동안 이 세 가지 하나님의 뜻을 근원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능력 있는 천국 백성으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13일]갈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갈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실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슨 문제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루 하루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다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리 마음대로 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항상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갈 때, 하루하루를 온전한 길로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방향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인도하시는 방법은 우리 마음에 소원을 불러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2장 13절에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인생의 길은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 나라 말에도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며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야웨 이레’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소원을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14일]올바른 재림 신앙을 갖자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로나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하는 자들의 말에 쉽게 동요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종말적 삶의 자세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요?

  먼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릅니다. 예수님조차도 그 날과 그 시는 모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36).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고 주님을 기다렸던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기름 준비를 하지 못했던 다섯 처녀는 예수님께 외면당했습니다(마 25:1-13).

  이와 같이 우리가 깨어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하고,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이 기름은 성령 충만을 말하며 늘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둘째,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부탁이요 (마 28:18-20),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몸이 찢기시면서도 온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야 합니다(딤후 4:2). 영혼 구원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이요, 목표입니다.

  셋째,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천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세로 이 말세의 마지막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식어질 때마다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에 대한 확신과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우리를 미혹하는 말과 사건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혹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깨어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해야 할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15일]개미에게 가서 배우라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자들을 교훈하실 때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첫째, 부지런함입니다. 본문 6절은 개미의 부지런함을 배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미는 날이 추워지면 땅 속에 있지만 추워지기 전까지는 밖에 나와 열심히 일합니다. 무더운 여름에 땅 속에서 낮잠 자고 있는 개미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근면할 것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 11장 16절에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선지자들을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습니다(렘 25:4). 이처럼 하나님도 친히 그의 사역에 부지런하신데 그의 피조물된 우리가 범사에 근면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둘째, 성실함입니다. 본문 7절에 보면 개미는 두령이나 간역자나 주권자가 없어도 성실히 할 일을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불성실한 사람은 상전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일합니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은 주인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상관 없이 최선을 다하여 책임 있게 일합니다. 골로새서 3장 22절에는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예비하는 지혜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개미는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풍족할 때는 부족할 때를 위하여 하늘 창고에 저축할 줄 알아야 하겠고, 건강할 때는 일하지 못할 때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고 일하여 예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평안할 때는 환난의 날을 대비하여 기도로 예비해야 할 것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함으로써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예비하는 지혜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근면함과 성실함, 그리고 예비하는 지혜는 개미가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지혜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16일]하나님의 신령한 복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신령한 복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는 대상자의 공적이나 가치에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하는 일이란 죄를 짓는 일뿐입니다. 죄 지은 인생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주셔서 그의 자녀로 삼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신령한 복에는 ‘긍휼’이 있습니다. 이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죄의 대가로 형벌을 받아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에는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힘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이웃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도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신령한 복에는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와 기도로 모든 것을 맡길 때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본문에 기록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우리가 일평생 잃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복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17일]하나님의 그릇이 되는 과정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입니다(롬 9:24).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먼저, 산과 들에서 파내지는 과정입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기 위해 진흙을 구하러 다니듯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내셔서친히 택하신 백성들을 찾으십니다.

  그 다음에, 토기장이는 구해 온 진흙을 물로 깨끗이 씻고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친히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씻으시고 성령과 말씀으로 정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 전체를 씻어 줍니다. 또한 성령과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제 토기장이는 씻은 진흙을 쳐서 말랑말랑하게 만듭니다. 진흙을 보드랍게 부수지지 않으면 그릇을 만드는 데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고난이라는 방망이로 진흙인 우리를 치셔서 우리 속에 있는 온갖 탐욕, 자아 중심, 아집, 불순종 등을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깨어짐으로 순종함을 배운 성도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그릇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토기장이는 말랑말랑하게 빻아진 진흙을 녹로에 얹어 그릇을 만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을 녹로에 얹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어떤 그릇인지 깨닫고 그 직분에 따라 충성해야 합니다. 구제하는 그릇으로 만들어진 성도는 구제하는 일에, 가르치는 그릇으로 빚어진 성도는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토기장이는 그릇을 불에 굽습니다. 가장 좋은 천국 그릇은 성령의 불에 구워진 그릇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천국 그릇으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 원한다면 이 성령의 불도가니 속에서 구워져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는 빛나고 강한 그릇으로서 맡은 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어느 단계에 있는지 살펴보고 더 나은 그릇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18일]전도자의 사명
 

전도자의 사명(렘 20:9)
선지자 예레미야는 패역한 세대를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 좌절감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전파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다시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의 진리는 개인적인 각성이나 주관적인 생각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인간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고전 9:16)고 했습니다. 부득불 해야 된다는 말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자가 그 사명을 회피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화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밤길을 가다가 어느 집에 불이 난 것을 보았는데, 그 집 사람들이 모두 자고 있다면 자기 집이 아니라고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냥 지나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임할 것입니다. 집에 불이 붙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 집 사람들을 결사적으로 깨워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장차 이 땅은 멸망할 것입니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이 열렬한 불에 녹아질 것입니다(벧후 3:10). 주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에게는 전해 줄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경고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때에 우리는 더욱 힘써 전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19일]경건에 이르는 연습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와 유혹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거룩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 성경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 연습하는 생활은 어떠한 생활일까요?

  첫째, 절제하는 생활입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라 할 때 그 연습이라는 것은 마치 운동 선수가 승리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누르고 강 훈련에 임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운동 선수가 스스로 절제함이 없이 자신의 욕구대로 생활한다면 그 선수는 시합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죄로 향하게 하는 잘못된 것들을 다 잘라 버리고 오직 거룩함과 성결함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치 운동 선수가 훈련에 임할 때 무섭게 절제하는 것처럼 우리도 끈질긴 절제를 통해 경건에 이르도록 힘써야 합니다.

  둘째, 헌신하는 생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헌신하는 생활은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생활이요,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또한 그것은 능력 있는 삶이요 복된 삶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몸과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드릴 때, 우리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히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금생과 내생의 약속을 믿는 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 생활에서도 성실과 근면의 생활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금생에서의 복을 누리게 하고 아울러 내생의 복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신앙 생활하다보면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고 또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라도 우리는 믿음을 굳게 지켜 경건한 신앙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경건한 신앙 생활은 우리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까지도 겸하여 얻게하는 축복된 생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경건한 삶을 살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20일]가족에 대한 성도의 의무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며 입술로는 신앙 고백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직계 가족마저 돌보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에게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 첫째가 믿음을 배반했다는 경고입니다. 믿음이란 입술의 고백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행함이 뒤따라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면(약 2:17),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믿노라고 외식하는 것은 더없이 가증한 행위가 됩니다. 바울은 그것을 두고 믿음을 배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증한 믿음, 배반하는 믿음을 멀리 하려면 우리의 행함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요일 3:18). 그러다 보면 자연히 부모를 공경하게 되고 가족들을 사랑하게 되며 이웃과 친척들까지도 아끼고 살펴 주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을 외면하는 사람에게 하는 두번째 선고는 불신자보다 악하다는 선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가족들에 대한 부양 의무를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도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부름받은 성도가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마땅히 하나님께로부터 책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는 물질적인 부양 이외에도 영적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아직 거듭나지 못한 가족에게 전도하며 그들이 변화될 때까지 씨앗을 뿌리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가족이 합심하여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가족에 대한 책임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고르반’하며 부모 봉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것처럼(막 7:11,12)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써 가족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할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21일]물질의 선한 청지기
 

물질은 사람이 생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입니다. 그러나 물질을 악한 곳에 사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죄와 불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청지기로 부름받은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지녀야 할 물질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물질은 좋으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모든 천지 만물 중에 하나님께서 짓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그 분이 지으신 물질 세계도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딤전 4:4) 하나님께서는 물질 세계를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주셔서 다스리고 마음껏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범죄했기 때문에 물질 세계에 대한 왕적 지배권을 상실하고 저주 가운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과 만물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물질이 선한 것이며 이 물질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물질을 위해 살 때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가 생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서 돈을 하나님보다더 귀하게 여김으로 불행한 삶고 있습니다(딤전 6:10).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은 …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의 본분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서서 열심히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수고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께 넘치는 축복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22일]기도의 위력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가 깊은 신앙을 유지하며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힘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기도의 위력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기도는 우리의 내면 생활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기도는 회개를 가져오고 아집을 깨뜨리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뜻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우리는 회개할 때 하나님의 법을 거역한 죄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기도는 마귀와 싸우는 영적 무기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마귀는 그 세력을 잃고 물러나게 되므로 우리가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기도를 방해하는 원수 마귀가 있다 할지라도 낙심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기도는 성령의 역사를 불러 일으키는 불씨입니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가서 말씀을 담대히 선포한 것같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의 비상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도는 성령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때문에 기도할 때 성령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아니하고는 성령으로 충만할 수도 없고 하늘 나라를 알 수도 없습니다. 성령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신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며 신앙 생활을 하게 해 주십니다. 기도는 바로 이런 성령과 교제할 수 있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넷째,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과부의 간절한 호소와 이를 들어 준 재판관의 비유에서 우리는 응답을 가져오는 인내의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눅 18: 1-5). 한두 번 기도하고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는 사람은 기도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을 결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고 마귀를 이기며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어 응답받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23일]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좋은 군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에 합당하게 행하여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군사로 부름받은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께 군사로 부름받은 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 부름받은 자의 특징은 자기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생활 전체를 주인되신 예수님께 맡기고 주님께 속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받은 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공생애의 사역을 하셨습니다(행 10:38). 오늘날도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기름 붓듯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여 성령의 권능을 넘치게 받아 마귀의 진을 훼파하고 신앙과 생활에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사로 부름받은 자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전쟁에 임하는 군사는 자기 이익이나 욕심을 위해 싸우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6.25 전쟁이나 월남 전에서 부하를 살리기 위해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내고 빗발치는 적군의 총탄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전세를 호전시킨 군인들의 감동적인 일화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받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만 위한다면 어찌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받은 자는 먼저 하나님과의 수직 관계를 올바르게 맺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과의 관계도 바르고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의 본이 되므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써 싸우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때 우리를 통해서 하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24일]말세에 고통하는 때
 

바울은 본문에서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예언했습니다. 왜 마지막 때 사람이 고통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살펴봄으로 말세를 사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파멸당할 수밖에 없고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 또한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만약 우리의 모습이라면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으로 잘못된 사랑을 극복해야 합니다.

  둘째, 자긍하기 때문입니다. 자긍이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웃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만 잘났다고 이웃을 무시하는 사람은 사회와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 원망, 불평 때문입니다. 감사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낳고, 불평은 부정적인 사고 방식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감사로 일관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대할 때도 항상 감사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원망, 불평하는 삶에는 오직 파괴만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거룩하지 않은 성품 때문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잘못된 사람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이 오염되면 우리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오염되면 그에 따라 생활이 파괴되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거룩하지 않은 것들을 제하여야만 합니다.

  이 세상의 고통은 인간성의 타락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우리는 잘못된 인간성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끊임없는 경건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때 우리는 이 말세지말의 시대를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25일]일을 행하시는 야웨
 

유다 왕 시드기야 10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끊임없는 공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나라를 걱정하여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다가 왕의 노를 사서 그만 시위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 좁은 감옥 속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일을 행하시는 분은 바로 야웨이심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예레미야처럼 우리들이 모든 일을 해야 하며, 운명이 우리들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제쳐 놓은 채, 자신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수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커다란 착각임을 하나님께서는 깨우쳐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왕을 회개시키고,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 그 시선이 자기의 중심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이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자 예레미야는 비로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은 야웨 하나님의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삶의 감옥인 환난을 보내셔서 일은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고, 귀를 하나님께 기울이며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섬겨야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죽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필요를 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6:31,32).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야웨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야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야웨,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야웨를 의지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26일]구원받은 자의 변화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첫째, 구원을 받은 자는 양심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구원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우리의 양심이 살아납니다. 화인맞은 양심이 살아나고, 악한 양심이 정결하게 되며, 더러워진 양심이 씻음을 받고, 약한 양심이 강하여져서 하나님 앞에서 양심이 고개를 들고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기 전에는 양심을 속이며 살았지만 구원 얻은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하면 양심에 심한 가책을 받게 됩니다.

  둘째, 구원을 받고 나면 하나님의 계명이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큰 죄나 작은 죄나 사람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에서 죄를 그대로 방치하고 살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성결하게 살려고 애쓰며, 하나님의 계명 속에 파묻혀 살게 됩니다.

  셋째, 자신이 절대 무능력자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자 양심도 밝아지고 하나님의 계명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 힘으로 선을 행하며 살아 봐야지.”하고 ‘내가 내가’하고 몸부림쳤지만 결국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라는 처절한 절규를 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육신으로써는 도저히 양심대로 살 수도 없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에는 너무도 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자신도 절대 무능력자인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때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죄악된 인생도 아니고, 구원을 받았지만 ‘내가 내가’ 하다가 늘 넘어지는 인생도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새로워지고 성숙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계명을 좇아 살아갈 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27일] 각계 각층의 교인들에 대한 권면
 

사도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 섬에 머물게 하면서 그 곳에 있는 각계 각층의 교인들을 바른 교훈으로 인도하게 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노인들에게는 경건하고 거룩한 행실을 촉구하되 특히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습니다(2,3절). 2절에서 늙은 남자로 절제하게 했는데, 이 말의 원문적 의미는 “술을 멀리 하고 절제하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늙은 여자들도 술의 종이 되지 말도록 했습니다.

  둘째, 젊은 여자들에게는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집안 일을 충실히 하도록 권면했습니다(4,5절). 자매들이 교회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가정 일을 충실히 하고 나서 교회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봉사가 됩니다. 가정 일을 하지 않고 교회 일로 분주하게 다니는 것은 봉사하는 자의 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가정 일에 충실하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셋째, 젊은 남자들도 근신하도록 권했습니다(6절). 근신(謹身)이란 말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잘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근신해야 할까요? 본문 7절과 8절에 보면, 범사에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른 교훈과 경건함과 바른 말을 하여 모범을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 종들은 순종하고 충성하며 떼어먹지 말아야 합니다(9,10절). 우리는 소속한 직장에서도 충성스럽게 일하고 범사에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날마다 이렇게 살려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입술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과 가정과 직장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퍼뜨리고 선한 인상을 심어주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바른 교훈을 충심으로 받아 마음에 새기고 그 교훈대로 살기를 힘쓸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65일 설교[ 10월 28일]의인과 악인의 차이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삶의 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또한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으로 부터 의인이 받는 삶의 분깃은 무엇일까요?

  첫째, 의인은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져도 악인에게는 그 마음에 두려워하는 것이 임합니다.

  죄를 지으면 양심이 괴로워지고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데, 결국은 자기가 두려워한 대로 모든 나쁜 결과를 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신기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삶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의인에게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원이 있고, 또한 신기하게도 그 소원대로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 의인은 장수하지만 악인은 단명합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바는 사람이 태어날 때 자기의 연한을 타고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인들은 그것을 다 채우고 죽는데, 악인들은 자기의 연한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인에게는 이 땅에서의 생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아무리 보약을 먹고 몸조심을 해도 자기의 연한을 채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의롭게 사는 길이 장수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 의인은 땅에서 뿌리를 내려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땅이 그들을 토하여 내칩니다. 시편 37편 29절에는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악인들이 득세하여 여기 저기서 땅을 차지하고 사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그들은 땅에서 끊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시 37:34).

  넷째, 의인은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결과 자기의 경험으로 남들에게 지혜로운 말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아무리 많은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참된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의인이 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365일 설교[ 10월 29일]용서하는 삶
 

사도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는 동안 주인의 재산을 훔쳐 도망친 오네시모라는 노예를 만나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원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사람은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 필요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죄인된 오네시모의 모습을 통해서 바울은 자신이 행했던 과거의 죄악들을 생각하며 오네시모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전했습니다. 또한 오네시모는 바울의 전도를 받고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섬기며 바울의 심복으로서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죄가 크든 작든 우리는 모두 오네시모와 같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예수님께서는 온갖 허물을 덮어 주시고 그 품에 안아 주십니다. 이러한 용서에는 반드시 희생적인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의 심복으로 삼고자 하여 빌레몬에게 허락을 요청하면서, 아울러 오네시모가 주인의 재산에 입힌 피해는 바울 자신이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불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희생의 값진 대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웃을 용서할 때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요청대로 그의 종 오네시모를 기꺼이 용서해 주고 형제로서 대접하였을 것입니다. 빌레몬은 자기의 물건까지 도적질한 오네시모를 용서함으로써 골로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고, 또한 그의 용서는 오네시모를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함으로 모든 이들의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은혜로 용서받은 사람으로서 용서해 주는 삶을 통해서 더욱더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0월 30일]위대한 경영자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과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차질 없이 진행됩니다. 이러한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의 삶 또한 계획과 섭리에 따라 경영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삶의 경영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와 자연을 그 기이한 능력으로 운행하시듯 우리 성도의 삶을 아름답게 운영하시기 위해 놀라운 계획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공중의 새도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아름답게 가꾸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의 생명과 육체를 돌보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위대한 경영자의 계획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운행하는 섬세한 능력으로 성도를 돌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능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분의 경영하심에 대해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내어 맡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시편 37편 5,6절에 “너의 길을 야웨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환난과 절망적인 현실이 주어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경우에 낙심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인내해야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절망적인 환경으로 인해 불평하는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아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위대한 경영자 하나님께 삶을 맡겨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65일 설교[ 10월 31일]푸른 잎사귀 같은 삶
 

때로 우리는 성도의 삶 속에도 혹독한 환난과 역경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좌절과 고통의 차디찬 절망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푸른 잎사귀같이 피어오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이 역경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훌륭한 도구로 단련되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형들의 음모로 애굽에 팔려가 10여년의 오랜 시간을 종살이한 후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던 요셉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무서운 시련의 밤이 지나자 국무총리로 세움을 받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볼 때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와 인내로 환경에 대처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선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이나 지위, 명예에 소망과 목표를 두고 살아 가다가 그것이 무너질 때 극심한 좌절과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푸른 잎사귀는 그늘진 어둠 속에서는 시들어지나, 광명한 햇빛을 바라보며 그 빛 아래 있을 때에는 활짝 피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도 이 땅의 썩어질 것에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둘 때에는 영혼과 육체가 쇠해져 결국에는 말라 버리게 되지만 하늘의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살 때에는 위로부터 공급받는 생명의 힘으로 새롭게 피어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영원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 실망과 고통의 환경이 다가오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푸른 잎사귀처럼 번성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RED COMPASS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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