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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365일 설교 11월1일~30일

by 【고동엽】 2022. 12. 3.
365일 설교[ 11월 1일]강퍅한 마음의 비극    {목록 돌아가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뼈를 묻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성령의 인도를 뜻하는데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받고 마귀의 사슬에서 놓여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불과 구름 기둥으로 광야의 인생길을 가는 성도 앞에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에 생명이 넘쳐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강건하게 지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회개하고 말씀 중심에 서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섭리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태어난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신앙인은 환난의 태양이 작열하는 이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결코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값없이 받았으면 믿음과 순종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꿈과 환상을 통해, 직감과 마음의 소원을 통해, 그리고 마음의 평안과 확신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자격이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거역하면 성령의 인도하시는 궤도에서 이탈하고 맙니다.

  열차가 궤도에서 이탈하면 비극이 발생하는 것처럼 성도가 성령의 인도에서 이탈하면 광야에서 고아처럼 버림받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강퍅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입니다.

  여러분은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65일 설교[ 11월 2일]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육신의 생활이 아무리 편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록 육신은 고달플지라도 마음속에 참된 안식을 소유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된 안식은 육신의 평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안식하며 살다가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 하나님의 안식 속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진리를 밝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이미 우리들의 영혼 구원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 예비해 놓으시고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도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고전 2:9,10). 우리가 이 진리를 바로 알 때 우리는 진리 안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예비해 놓으셨어도 우리가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으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고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믿는 자들을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추호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안식에 들어갑니다. 인간의 아집을 버리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신본주의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요,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진리를 밝히 알고,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육신적으로는 고달프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와 절망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신앙 생활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3일]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씩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모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피를 언약궤 위에 뿌렸습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1년 동안 지은 죄를 하나님께 속죄했던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우리들의 대제사장이 되셨을까요?

  첫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정하심을 통하여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되려면 하나님의 택정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지 아니하시면 대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정하심(5절)을 따라 성육신하셔서 만인의 죄를 대속하는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아론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게 하셨으며, 아론의 자손이 아닌 자는 그 누구도 대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론을 비롯한 모든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는 율법의 보존자요 증거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보존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은혜의 증거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시대의 율법 아래에서 세운 옛 언약을 폐하시고 새로운 언약, 즉 신약을 세우시기 위하여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레위 족보에서 나지는 않으셨으나 레위 족속의 제사장보다 훨씬 뛰어나신 만인의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이 되심으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육신의 연약함을 체험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고난 속에서 드리는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65일 설교[ 11월 4일] 성도의 언어 생활
 

인간의 생활 가운데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해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에 못지 않게 어떻게 말을 하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떠한 언어 생활을 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언어를 사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다른 열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자신들을 가리켜 ‘메뚜기 같다’고 비하했을 때, 그들은 그 땅의 아름다움과 비옥함을 말하면서 ‘그 땅의 백성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승리와 자신에 가득찬 말을 했던 것입니다. 똑같은 땅을 똑같은 기간 동안 보았는데도 그들의 말은 이처럼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그 결과 부정적인 보고를 한 자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관과 낙심,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찬 말을 버리고 믿음과 소망, 사랑과 감사로 가득찬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절제하는 언어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필요한 말만 적절하게 하되 야비하거나 거친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공손하고 차분한 태도로 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뼈아픈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말은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고 이치에 맞는다고 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가슴 아픈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매사에 절제하는 마음으로 언어 생활을 함으로써 이웃에게 덕을 세우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성공적인 언어 생활이 우리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혀를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5일]극한 고난을 당할 때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극한 고난을 만나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극한 고난을 만났을 때 통회 자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향하던 관심을 자기 중심으로 돌이키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이 다가오기 전에는 세상 일에 동분서주하다가도 고난을 당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의 지나온 발걸음을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경은 고난을 당할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지시하시는 때임을 깨닫도록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삶을 깨끗이 청산하고 돌아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닮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극한 고난의 때를 회개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 통회 자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올 때 하나님이나 주위 사람들이나 환경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고난을 온전한 순종과 겸손을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모든 죄를 통회 자복하여 죄 사함을 받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뜻대로 사용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금식과 철야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는 금식하며 철야하며 부르짖을 때입니다. 금식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음식물의 섭취를 중단하는 것이므로, 금식 기도는 생명을 내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식 기도할 때는 음식만 금할 것이 아니라 ‘행위의 금식’과 ‘생활의 금식’이 뒤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환난 날에 몸과 마음과 생활 전체로 금식하며 기도할 때, 모든 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먼저 통회 자복함으로써 정결함을 입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환난과 고통을 이기고 승리하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1월 6일]사랑의 징계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가 올바른 길로 가지 않는 것을 보면 엄하게 꾸짖고 훈계합니다. 참사랑은 과보호에 있지 아니하고 자녀의 참된 인격 성숙과 생활을 위해 아픔을 감수하며 사랑의 매를 드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신앙 성숙과 생활의 열매를 위해 사랑의 매를 드시고 징계하여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는 성도의 양심에 세미한 음성으로, 혹은 설교나 교인들의 권면을 통해 나타납니다. 또는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기도 하며 사고나 질병, 극한 경우에는 죽음을 통해서라도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의 영적, 도덕적, 지적, 생활적인 면을 성령을 통해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연단시키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질을 갖추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징계를 당하게 될 때 낙심하고 불평하며 징계로 인해 괴로워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랑의 징계를 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 12:5,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면서 자신이 징계받게 된 원인을 찾아내어 철저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나아가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 12:11)라는 말씀을 믿고 우리의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징계 후에 맺혀질 많은 열매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는 성도는 그 의미를 잘 살펴 온전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데 필요한 밑거름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1월 7일]더 나은 언약의 보증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의 피로써 맺은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큰 희생을 치르시고 맺은 언약이기 때문에 이 언약을 파기할 때에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지만, 인간이 그 언약을 지킬 때는 큰 은총을 받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 언약을 지킬 때 죄 사함을 받습니다. 이 언약을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심판에서 해방을 얻고 마귀의 모든 억압에서 해방을 얻습니다. 이 언약을 지키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셔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심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이 언약을 지키는 사람은 죽음을 이기고 지옥을 이기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됩니다. 이 언약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진실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언약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과거 구약 시대의 모든 언약은 행위의 언약이었으며 이 행위의 언약은 인간이 모두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은 보혈의 언약은 행위의 언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언약입니다. 사람이 행위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철폐하시고 인간이 행위로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담 이후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다 청산해 버리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언약은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믿음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은혜의 언약을 우리에게 제시해 놓았는데 이 은혜의 언약조차 지키지 않고 등을 돌린다면 그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어떠하겠습니까? 이 언약에 대한 배신은 하나님의 가장 큰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이 믿음의 언약을 맺고 그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365일 설교[ 11월 11일]적극적으로 나아가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을 통하여 큰 일을 이루십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간직한 사람은 내일을 가슴에 잉태한 사람입니다. 꿈을 품은 사람만이 내일을 향해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용기 있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심겨진 사람은 어떠한 역경도 이기며 달려가게 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꿈의 사람은 꿈에 사로잡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탄생합니다.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역경과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망했다고 느껴지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담대해야 합니다. 담대함이란 용기 있게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담대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 담대해집니다. 또한 우리가 담대하기 위해서는 모험적이어야 합니다. 흥하든지 망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뛰어가는 모험적인 용기가 필요합니다.

  삶은 일종의 전쟁터입니다.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꿈과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전진하여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65일 설교[ 11월 12일]믿음은
 

오늘날은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더욱 믿음과 평안을 필요로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첫째, 믿음은 우리 마음속에 간절히 바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없는 사람은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마음속에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간절히 바라고 기도할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하여 기도할 때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을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믿음이 생겼을지라도 그 믿음 자체가 응답은 아닙니다. 믿음은 응답을 올려놓는 받침대인 것입니다. 받침대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그 위에 응답을 갖다놓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그 받침대가 튼튼한지 그렇지 못한지를 살펴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반드시 시험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다가와도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주님을 의지하고 찬미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세찬 시험을 통과하면서 성숙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속에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아직 응답이 다가오지 않았어도 우리는 응답받은 증거를 내 놓아야 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입술의 고백입니다. 마음속에 믿음이 꽉 들어차면 입술로 확실한 증거의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믿음의 씨앗을 심어야 되는 것인데 이 믿음의 씨앗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믿음의 능력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65일 설교[ 11월 13일] 결론은 하나님께서 내리신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서론, 본론, 결론을 자신들이 내릴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인생의 서론을 계획하고 본론을 전개해 나가는 것까지는 그대로 묵인하시지만 결론은 반드시 하나님이 내리십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인생의 바벨탑을 쌓을 때 우리 스스로 계획하고 진행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천국으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은 심판과 지옥으로 결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나 지옥을 부인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내려놓은 결론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미래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그 중간에 사람들이 온갖 계획을 해도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 결론도 내려놓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어떤 일을 계획한다는 것은 무용한 일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절대 주인이고 우리는 그의 종이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종이 할 일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죽어 마땅한 우리를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서 천국 백성을 삼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종인 것입니다. 우리가 좌지우지할 권한이 전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시며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가 그의 양인 이상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놓고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개인이나 인류 역사의 결론을 인간이 내리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결론을 내리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그 아들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세계로 가는 사람은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14일]천국 마라톤
 

인생은 흔히 마라톤 경주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 경주를 잘 마치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떤 자세가 요구될까요?

  첫째, 우리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얽매이게 하는 것들이 우리의 생애를 붙잡고 있으면 결코 인생 마라톤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해도 인간 스스로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 마라톤 경기에서 천국까지 뛰어서 골인하기 위해서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목표 달성에 대한 희망을 굳게 하고 뛰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실패하는 것은 인생 마라톤 경기를 하면서 목표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고 큰 일에 상관없이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경주할 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골인 지점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은 경기를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 마라톤 코스를 뛰어갈 때 어려운 길이 눈앞에 보일지라도 목표를 바라보고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인생 마라톤 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합니다. 마라톤은 전반에 열심히 잘 뛰어도 후반에 지쳐 뒤로 처진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 시작 때 잘 뛰었다고 해도 후반 인생에 뒤처지면 안 됩니다. 후반 인생을 더 잘 달리면 더욱 좋습니다. 청년 시절의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 초년에 고생을 하더라도 인생 후반에 고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시련을 이기고 악착같이 포기하지 않고 뛰는 사람은 성공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단 한번의 마라톤입니다. 되돌아가 두 번 뛸 수 있는 인생이 아닙니다. 한 번 있는 인생 마라톤의 승자로 골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예수 이름으로 벗어버리고 목표를 갖고 끝까지 인내로써 경주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써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1월 15일]하나님과 동행하는 삶(히 12:14)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입으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실상은 영적인 가뭄이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사라져 버린 것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면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화평함을 좇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화평함을 좇아 살 수 있을까요? 먼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 세상 일이 자기의 욕심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공동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하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삽니다.

  그래서 집도 우리 집, 교회도 우리 교회, 나라도 우리 나라, 하나님도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내 욕심대로만, 내 생각대로만 살겠다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분쟁을 일으켜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 서로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거룩함을 좇아야 합니다. 우리 생활이 거룩해지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노력하고 애써서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와야만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을 받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거룩하게 살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고 공의를 행하며 진실을 말한다면 거룩함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정직과 공의와 진실을 행해야 합니다. 남을 참소하거나 훼방하는 언행을 삼가고 망령된 자를 멸시하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손해가 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지속할 때, 우리는 거룩함을 좇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화평치 못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죄를 모두 회개하여 청산하고 나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넘쳐나 우리의 영혼에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16일]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잠 17:3)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운명과 환경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더욱 깊은 불행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과 환경도 다스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사랑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 환경을 축복으로 누릴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그 어떤 일을 행할지라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결로써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축복하시고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은혜를 더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십자가 밑에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으로 우리의 행실을 바로잡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성령의 청결케 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강함과 담대함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이 약해지고 용기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비록 질그릇과 같이 약한 존재이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과 능력을 우리 안에 담고 있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갈 때, 우리는 어떠한 역경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꿈과 환상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꿈과 환상은 미래의 찬란한 열매를 맺게 하는 씨앗입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롱한 꿈을 꾸고 그 꿈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미래의 삶은 우리의 마음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점검하여 마음을 늘 새롭게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365일 설교[ 11월 17일]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인간에게 있어 지혜는 매우 중요합니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오늘날 한 개인의 우열과 국가의 우열은 지혜의 유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인본주의적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마귀의 지혜를 따라 탐욕을 가진 사람은 시기와 분노와 질투와 분쟁을 일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려면 인간의 탐욕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탐욕이 우리 안에서 제거될 때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더러움이 씻겨진 깨끗한 그릇에 정갈한 음식이 담기는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으면 순종하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되면 따르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를 하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는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길들여 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 드리며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매일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성경을 세 장 이상 읽으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 일에 전념하여 있으면 하나님의 지혜는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경건한 개인, 경건한 가정에 지혜를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경건에 충실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이 지혜를 얻을 때 우리는 능력 있는 주님의 증인이 되고 강건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18일] 마음의 병과 그 처방
 

인간에게는 육체의 병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인간의 생명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병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무서운 적인 마음의 병을 가져오는 요소들과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처방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병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첫째, 육신의 생각이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죄악된 생각들을 말합니다(갈 5:17-22).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고 진리를 거역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면 우리는 병들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이 마음을 점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 주일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지게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말미암아 생기는 염려와 근심이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수에 넘치는 일을 탐욕으로 시작해 놓으면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와 근심으로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힘만 의지하면 언젠가는 절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열등 의식과 좌절감은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열등 의식과 좌절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어렵게 보이고,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열등 의식과 좌절감에서 해방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됨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만왕의 왕, 만유의 주되신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사실을 믿고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열등 의식과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병든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잘 지킴으로써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19일]실천하는 믿음(약 2:26)
 

 본문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는 말씀은 믿음이 행함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꿈과 환상을 가질 때 믿음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믿음을 통해 창조하려고 하는 대상은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믿음은 꿈과 환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꿈을 담는 그릇이므로 우리가 꿈꾸지 않고는 결코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꿈과 환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씨앗으로 심어 놓으면 여기서 이성을 초월하는 꿈이 피어납니다. 이 꿈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자라서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도함으로 믿음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호흡과 같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도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기도의 호흡을 통하여 성령으로 숨쉬어야 믿음에 생명력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같이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성령 안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은 언어를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언어와의 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혀는 극히 작은 지체이나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부정적이거나 원망하는 말을 계속하면 사단은 그 말을 통해 우리의 영과 몸과 생활 전체를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말씀에 의지하여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그 말이 여러분의 전 운명을 변화시키고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추상적이거나 개념적인 것이 결코 아니므로 이 행함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며,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실천을 통하여 믿음을 산출시킬 때 기적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20일]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구할 때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경우를 체험합니다. 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한 죄가 있을 때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죄악을 하나님 앞에 청산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씀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한다면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습니다.

  둘째, 고난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가시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없애 달라고 세 번 간구했으나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교만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하여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신 것입니다(고후 12:9,10).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고난이 우리에게 더 큰 유익을 줄 때, 하나님은 그 고난을 없애 버리지 않으십니다.

  셋째, 잘못된 동기로 구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탐욕이나 정욕으로 쓰려고 기도하면 응답받지 못합니다. 본문 말씀에도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탐욕으로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넷째, 믿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응답받지 못합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고 하고 있습니다(약 1:6-8).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는 마음의 확신과 더불어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까지 오래 견디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죄와 불순종과 탐욕을 청산하고 믿음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21일]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올 때
 

인간의 삶은 ‘역경의 숲’과 ‘고통의 늪’을 헤쳐가며 살아야 하는 고난의 노정(路程)입니다(욥 5:7). 그러면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대응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고난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고난이 다가올 때 ‘왜 내게 이와 같은 고난이 다가온다는 말인가?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그 고난에 대해 심히 반발함으로써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으로, 우리 인간이 고난당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고난이 다가올 때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남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음속에 쓴 물로 가득차게 만들어 결국에는 파멸시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왔던 고난을 찬란한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셋째, 우리는 내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말고 길이 참아야 합니다. 꿈은 인생을 만들어 가는 창조적인 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하여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앞길이 칠흑같이 캄캄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꿈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여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게 함으로써,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면, 우리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고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고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고난은 좋은 것으로 변할 수도 있고 나쁜 것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다가오는 고난을 지혜롭게 대처함으로써 고난을 신앙 성숙의 계기로 삼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받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22일]고난의 긍정적인 의미
 

당시 소아시아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네로 황제의 폭정 밑에서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긍정적인 면에서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긍정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새로운 삶의 창조에 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장,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보내 주십니다. 이에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는 태도로 그 고난에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인격 변화의 원동력이 됩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인간적인 것들이 찢겨 나가는 아픔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말씀의 검과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다듬고 계십니다.

  셋째, 고난은 강인한 인격을 만듭니다. 고난은 신앙의 밥입니다.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 연약한 것처럼, 고난을 먹고 소화시키지 않는 신앙인은 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경을 많이 당하고 기도를 통해 그 역경을 이긴 신앙인은 강인한 힘이 있어 어떠한 경우에라도 파멸당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맡기려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넷째,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게 합니다. 세상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원망하고 불평하여 마음에서부터 병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이 하나님의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병들어 보아야 건강의 고마움을 아는 것처럼 고난을 당한 다음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맛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된 고난은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그러나 계속된 축복도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과 축복을 번갈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고난과 축복에 잘 대처하면 우리는 이 땅에 살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23일]영적 성장의 3대 원리
 

하나님께서는 마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후 계속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떠한 생활을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여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1-3절). 성도는 값없이 구원을 받았지만 신앙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끊임없이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착실하게 지키는 성도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증명하면서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고,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요 14:23,24).

  둘째, 예수님과 하나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4-8절).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삶과 신앙의 주춧돌로 삼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죄 용서함 받고 성령과의 교통, 치료와 저주에서의 해방, 영생 천국의 은총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함으로써 이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우리의 것이 되었음을 굳게 믿고 바라보며 항상 입으로 시인할 때, 예수님과 하나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선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9,10절). 우리는 선전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라디오를 들어도, 신문을 보아도, 상품 선전은 다 육신에 속한 것뿐이요,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전해야 할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구원의 위대한 은총입니다. 세상에서 물건을 선전하는 사람들도 최선을 다해 자기 물건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최상 최대의 가치인 복음을 우리가 어찌 소홀히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은 인간이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고, 또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여 항상 주 안에서 복된 신앙 생활을 하며 새로운 능력을 체험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24일] 생각의 위대성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우리가 이 생각을 잘 활용하고 계발하면 현재보다 더욱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 빌립은 인간의 계산에 근거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무리들을 먹이기에 떡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예수님의 기적을 기대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로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의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우리의 긍정적인 생각은 예수님의 기적을 산출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적극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적극적인 생각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경험하는 이유 중에 중요한 것은 바로 소극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성경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침노하려면 소극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창조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창조적인 생각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각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이디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적인 생각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창조적인 꿈을 주시고 지혜와 명철이 솟아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을 계발하십시오. 그 생각이 여러분에게 행복으로 보답해 줄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25일]3대 신앙 체험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 성도들이 반드시 겪어야 할 세 가지 신앙 체험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겪어야 할 신앙 체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중생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중생은 거듭나는 것입니다(요 3:3). 요한복음 3장 5절에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악의 깊은 골짜기에서 깨워 회개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줍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열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회개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중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죄와 세상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성결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이 일어나지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 세상 자랑이 우리를 잡아당겨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우리의 육신 가운데 있는 죄의 세력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줄 때 가능한 것입니다(롬 8:1,2).

  그러므로 중생한 성도들은 “주여 성령의 능력으로 성결의 은혜를 주셔서 마음속의 정욕과 죄지을 생각을 제거시켜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성령 세례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중생하고 성결의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성도들은 기도의 능력, 마귀를 내어쫓는 능력, 믿음의 능력, 전도의 능력, 봉사와 섬김의 능력이 있어야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오직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진실로 능력과 권세 있는 신앙 생활을 하려면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중생하고 성결을 체험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능력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26일]마귀의 미혹을 물리치려면
 

죄란 과녁, 즉 하나님의 말씀에서 빗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빗나간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마귀의 미혹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는 죄지을 만한 유혹의 장소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유혹의 장소에 있다가 마귀의 덫에 걸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담과 하와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의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거기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삼손도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었습니다. 이방 여인 들릴라의 무릎에 누워 있다가 마귀의 미혹에 넘어갔던 것입니다. 술꾼이 술집에 가서, “술 안 마시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술을 안 마실 수 있겠습니까? 마귀는 죄의 현장에서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킬 덫을 놓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죄악의 분위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인간은 상상력의 노예입니다. 마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오늘날 책이나 비디오 테이프, 영화나 세속적인 모임 등을 통해서 우리의 상상력을 점령하려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상상력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활자 매체나 영상 매체를 선별해서 대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죄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듣고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등불이며(시 119:105), 우리가 마귀를 대적할 때 사용하는 검입니다(엡 6:17). 또한 우리는 늘 회개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회개할 때 우리의 심령은 눈과 같이 희어질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죄를 이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은 우리를 붙드시고 끊임없이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유혹하여 파멸시키려는 마귀의 궤계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있는 곳을 살펴보고 성령의 분위기 속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65일 설교[ 11월 27일]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삶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삶, 즉 그리스도인의 성결된 삶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하시고 인자와 긍휼이 많으신 고결한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인간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하여 그 성품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상실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성품이 완전히 부패하여 회복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마음으로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심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는 길을 친히 걸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청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고, 그 생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어떠한 교육이나 제도에 의해서도 자신의 죄악된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어떠한 종교적인 의식이나 행위에 의해서도 상실한 마음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의롭게 되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늘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거룩케 하시고 깨끗케 하심으로 옷 입어 거룩한 성품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성도의 도리인 것입니다

 

 

365일 설교[ 11월 28일]하나님을 수종드는 생활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크게 하나님을 수종드는 사람과 세상을 수종드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수종드는 사람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인간의 정욕이나 자랑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을 수종드는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어 인간의 정욕과 자랑을 좇아 살아가므로 그 결과는 허탈과 멸망뿐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규례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수종들며 사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수종들 때는 땀나는 옷을 벗고 가는 베옷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17, 18절). 하나님께 수종드는 사람은 먼저 땀나는 옷인 저주의 생각들, 인간적인 노력과 의지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의의 세마포 옷, 은총의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는 가까이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절). 우리가 하나님을 수종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 주일을 성수하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가까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는 기름과 피를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피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말합니다. 또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 두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역사 없이는 하나님을 수종들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아직도 세상을 수종드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후로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인본주의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사심으로 하나님을 수종드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365일 설교[ 11월 29일]신앙의 발전 단계
 

신앙에는 성장의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바로 이런 신앙의 모습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전 동편 문지방에서 나온 물이 불어나는 과정은 신앙인의 성장 단계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인데 오늘은 이 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물이 발목에 잠기는 단계입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성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세상에 살던 사람이 성령의 역사로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게 되면 바로 발목잡힌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발목이 잡힌 사람은 원숙한 신앙인은 아니나,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족쇄가 발목에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물이 무릎에 차는 단계입니다. 신앙의 두 번째 단계는 꿇어 앉는 단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난을 통해 성도를 무릎 꿇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람만이 원숙한 신앙의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올바른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당한 성도일수록 그 영혼의 깊이는 깊습니다. 영혼의 깊이는 깨어지는 과정, 무릎을 꿇는 과정이 있어야 생깁니다.

  셋째, 물이 허리에 오는 단계입니다. 물이 허리에 찼다는 것은 성도가 존재의 중심을 성령께 내어 맡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의 삶이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이란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맡기며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허리를 주님께 맡기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돌보아 주십니다.

  넷째, 헤엄칠 물이 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헤엄치는 물이란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에 완전히 잠겨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신앙 생활의 모습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넘쳐나면 우리의 삶 전체가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성령의 생수에 잠겨 살게 되면 사망의 권세가 사라지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신앙 단계에 들어와 있습니까?

 

 

365일 설교[ 11월 30일]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잠 22:6)
 

 오늘날 우리 사회의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청소년 문제입니다.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잘못된 길로 빠져 범죄를 일삼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무너진 인륜과 함께 부모의 가정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자녀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올바로 양육할 수 있을까요?

  첫째, 마땅히 자녀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의 말씀 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녀를 훈계해야 합니다. 그 말씀 교육을 통해 자녀들은 삶의 좌표를 결정하고 인생관을 확립할 뿐 아니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둘째, 자녀들을 기도로 양육해야 합니다. 배후에 부모님의 기도가 있는 자녀는 세상에서 때로 실족할지라도 반드시 주께로 다시 돌아옵니다. 역사상 존경을 받는 위인들의 배후에는 기도하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사무엘, 어거스틴, 그리고 웨슬레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환경적으로 자녀를 잘 돌보아 주어야 하지만 자녀의 영혼과 앞날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로 양육해야 하는 일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 부모가 친히 본이 되어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부모의 언행심사는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지상에 세우신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면서도 공의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통해 자녀들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고 범사에 그리스도를 본받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기업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말씀과 기도와 모범된 신앙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녀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 RED COMPASS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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