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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갈수록 더 아름다운 사람 사44:21 여러 글 모음
▲퇴직 후에 충격 받는 분들
대기업에서 이사급 이상 요직에 계시다가 퇴직하면
보통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 달 동안 그래도 등산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마음에 심한 상실감이 생긴다.
별 하나 달고 있다가 떨어지면, 1층 높이에서 떨어지고
별 두 개 달고 있다가 떨어지면, 2층에서 떨어지고
별 네 개 달다가 떨어지면, 4층에서 떨어지는 충격을 느낀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하다가 떨어지면 7층에서 떨어지는 격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낙차가 더 커진다.
심하면 쓰러져 건강을 다치기까지 한다.
높은 자리에서 항상 명예와 존경을 받고 살다가
이제는 아파트 경비원까지 나를 괄시하는 것 같은
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해외로 가면 편할까?
요즘 필리핀에 아름다운 곳에 실버타운을 마련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한달에 2백만 원 정도의 생활비만 쓸 수 있으면,
그림 같은 집에서 매일 골프 치면서 가정부를 두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데...
그러면 정말 행복할까?
그저 한두 달 행복할 것이다.
친구나 친척들이 방문하여 부러워할 때만 행복할 것이다.
한두 달이 지나고 친구와 친척들이 떠나게 되면
다시 외로워 질 것이고 불행해 질 것이다.
▲늙을수록 일을 하여야 한다. 일이 있어야만 한다.
제가 개인적으로 모델로 삼고 있는 분이 있다.
실로암 안과병원은 ‘무료 개안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인데,
이 병원의 초대원장님은 이 장로님이라는 분으로
이대병원의 교수로 계시다가 정년퇴직하신 후
실로암 병원이 개원되자 원장님이 되셨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분이 무보수로 일하셨다는 것이다.
평생 교수로 계시다가 은퇴를 하셨으므로 연금이 나왔고,
자기 생활은 연금으로 충분하다며 무보수로 원장 일을 봐 주셨다.
저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어서 돈을 제법 번 사람이, 늙어서도 돈 욕심 때문에 그것을 놓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돈만 벌다가 죽는 것도 추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문지기라도 좋사오니
세인 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다.
일반 학교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소위 문제아들이 모인 학교다.
선생님들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그 아이들이 마음을 잡아
높은 대학 진학률을 기록한 것으로 유명한 학교다.
그 학교에서 처음으로 수위를 하셨던 분은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셨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분이 전직 학교 교장이셨다는 것이다.
제가 학교를 찾아가서 그 장로님을 직접 만나 뵌 적도 있었다.
여러분 근사한 일 아닌가! 저도 꼭 그렇게 제 인생을 마치고 싶다.
우리 아버지가 학교 수위셨으니, 저도 인생을 수위로 마치면 참 근사할 것이다.
전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제 꿈과 소원은, 앞에서 말씀드린 세인 고등학교의 수위 장로님과 같이
은퇴 후에는 나도 사역의 문지기 같은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다.
◑노년에 갈수록 더 아름다운 야곱
야곱은 장자권을 빼앗은 후 밧단 아람에 피신 가서 20년을 지내는 등
장년 시절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험악한 삶’을 살았으나 창47:9
노년으로 갈수록 더욱 성숙하며 더 강해지는 신앙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짓는 등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타락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노년은
그가 신실히 살아온 만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다.
자신은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며 자고 있었고,
아들 함이 아비의 부끄러움을 덮지 않고 아비를 조롱거리로 삼았다.
그 결과 두 아들은 축복을 받았지만, 함은 저주를 받았다.
물론 그렇게 한 함의 잘못이 크지만, 그 문제의 근본 뿌리는 노아가 제공했다.
술에 취했다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셨다는 정도를 넘어서
어떤 ‘사명감, 받은 소명의 상실’을 의미한다.
단지 지난날의 방주에서의 놀라운 체험만으로 만족한 것일까?
아들 함을 저주한 것도, 이해는 하지만, 최선은 아니었다.
세 아들을 모두 다 잘 키우고, 모두 축복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결국 함의 후손들에게서 하나님을 거스리는 니므롯이 나왔다. 창10:8
니므롯의 본거지는 바벨탑을 쌓았던 시날 땅이었다. 창10:10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새로운 사람을 찾으셔야 했을까?
갈대아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아브라함도 매우 훌륭한 믿음의 조상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 역시 주님께 약속의 후손 언약을 받았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첩들을 통해서 자식들을 계속 생산해냈다. 창25:1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도 육체를 완벽히 다스릴 수 없는 존재이다.
육체는 늘 기회만 있으면 늘 실족할 기회를 찾아간다.
▲이삭도 훌륭한 믿음의 조상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조상이 물려준 소유한 풍요함을 평생 누리며 일생을 보내다보니
하나님의 뜻에 의한 언약의 흐름이
야곱인지 에서인지 분간을 썩 잘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 에서를 축복하려고 덤볐다.
▲야곱은 아브라함, 이삭에 비교하면 (장년의) 삶의 수준이 더 낮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당대에 그는 교활하고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노년에 이를수록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더욱 잘 표현하는 것을 본다.
아버지 이삭처럼 일생을 편안하고 평탄하게 살다가 간 사람이 아니라,
일생을 고난과 환경을 통하여 성숙되고 변화된 사람이다.
야곱의 시작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이기적이고 거짓되었지만
그의 노년은
지극히 영광스럽고 거룩한 하나님을 표현할 정도로 변화되었다.
바로를 축복한 장면이라든지
12아들을 축복하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게 했다.
비록 불명예스런 아들도 있었으나, 모두를 품었고 하나도 잃지 않았다.
하나님은 타고난 뛰어난 사람보다
하나님의 안에서
점점 성숙하고 점점 변화된 사람을 원하시나 보다.
▲야곱의 허물을 간과하시는 주님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민23:21
이런 말씀은 구약 성경에 매우 자주 등장한다.
야곱은 형편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변화시켜서 쓰시겠다는 말씀이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사41: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사44:21
성경은 하나님의 광채와 의로우심 앞에
사람의 타고난 의로움과 육체가 얼마나 가치 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쫓겨 갔고, 쫓겨 왔으며,
다리를 절게 되었고, 그의 딸은 더럽혀졌고,
그의 아들은 살육을 행하는 등 험난한 인생의 연속이었지만
하나님은 지렁이를 택하셔서, 변화시키셔서 쓰신다.
그럼으로 오늘날 당하는 고난과 시련으로 인해 실망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된다.
그것으로 인해 노년이 더욱 영광스럽고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드러낸다면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사람을 택하여,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이루어 가신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8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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