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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녹취 3

by 【고동엽】 2022. 11. 29.
여러분 한 주간 건강하셨습니까. 오늘은 요한계시록 두 번째 시간으로 계속해서 개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이야기 나누었던 것을 복습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다, 하나가 지나친 결핍이고 또 하나가 지나친 과잉이다, 지나친 결핍이라고 하는 것은 오랜 세월 정통 교회가 보였던 반응이고 지나친 과잉이라고 하는 것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나 천년 왕국을 강조했던 자들이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보여주었던 반응이었다, 그래서 AD 2세기 때부터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나 천년 왕국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했던 본문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요한계시록을 강조하고 요한계시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이단과 사이비가 아닌가 라는 식의 혐의를 받았습니다. 정통 교회는 점점 요한계시록과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에라스무스나 루터나 쯔빙글리 같은 사람들은 계시록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전체 주석을 썼던 칼빈 같은 경우에도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개신교도들도 요한계시록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창세기부터 유다서까지 65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마지막 때 일어나는 일을 알려주는 그런 부록 같은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때 앞에 나와 있는 65권과의 연관성 속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상징과 환상과 수라고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65권에 이미 나와 있는 환상이고 상징이고 수인 겁니다. 예를 들자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환상은 이사야 65장에 나오죠. 그리고 천상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것은 에스겔 40장부터 48장에 나옵니다. 그다음에 네 종류의 말을 탄 사람의 이야기는 스가랴 6장에 나오고 보좌와 네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에스겔 1장에 나옵니다. 그다음에 두 감람나무 두 증인 이것은 스가랴 4장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 구약의 본문에서 이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이해를 가져야만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뭡니까?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누구죠? 로마 제국입니다. 특히 도미티안 황제 때는 황제가 신의 위치로 자기를 격상시켰습니다. 그래서 도미티안은 주님과 신으로 자기를 고백하게 만들었고 에베소에서 발견된 도미티안의 동상을 보면 로마의 신들만큼 동상의 크기가 7~8미터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신적인 존재로 주장하면서 자기에게 숭배할 것을 요청하는 그 때에 신앙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엄청난 박해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고난 받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거죠? 너희들이 눈으로 볼 때는 로마 제국이 천하를 호령하고 천하 만국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로마 제국을 반드시 심판하시고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 에덴의 회복이라는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로 허락하실 것이다 그것을 믿으면서 황제에게 무릎 꿇지 말고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의 충성심을 지켜내라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네 가지 해석의 방법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어려운 것은 학자들 간에 합의된 해석의 방식이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과거주의적 해석을 하고 어떤 학자들은 미래주의적 해석을 하고 어떤 학자들은 이상주의적 해석을 하고 어떤 학자들은 역사주의적 해석을 합니다. 물론 가장 많은 학자들이 선택하는 해석의 방식은 과거주의적 해석입니다. 과거주의적 해석이라는 것은 뭐냐면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썼던 AD 1세기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받았던 AD 1세기의 맥락 속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유가 뭐냐면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많은 묵시의 말씀들은 속히 되어질 일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과거주의적 해석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초대 교회를 핍박하고 괴롭혔던 유대교와 로마 제국, 그래서 반유대, 반로마가 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포인트다 그리고 결국 로마 제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그리고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그때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모든 말씀들은 성취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과거주의적 해석입니다. 그다음에 미래주의적 해석은 뭐냐면 요한계시록 4장 1절 이하가 주님의 재림과 마지막 때에 대한 미래에 대한 묵시적인 내용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대환란, 아마겟돈 전쟁, 주님의 승리, 악인의 멸망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그런데 이런 미래주의적 해석을 우리가 붙잡게 되면 가장 난해한 것이 뭐냐면 그 AD 1세기의 맥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되는 겁니다. AD 1세기의 고난과 고통, 핍박의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인데 편지를 쓴 사람이나 편지를 받은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미래주의적 해석의 가장 큰 난관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 안에 보시면 주님의 재림이라든가 아마겟돈 전쟁이라든가 백보좌 심판이라든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미래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그 외의 것들까지 다 미래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큰 비약이다 잘못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주의적 해석이라고 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과 사탄, 선과 악, 기독교와 이교도간의 영속적인 투쟁에 대한 상징적인 구조로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된다 이것이 이상주의적 해석이고 역사주의적 해석은 오순절 성령 강림부터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하나의 타임 테이블을 기록한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 속에서 우리 시대는 지금 여기쯤 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바벨론은 무엇이다 우리 시대의 짐승의 표인 666은 누구이다 이런 식으로 적용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역사주의적 해석입니다. 루터 같은 경우에도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교회를 타락과 부패로 이끌었던 교황을 자기 시대의 적그리스도, 666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전형적인 역사주의적 해석입니다. 여기까지 저희가 지난 시간 이야기 나누었던 것을 복습해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시면 6~19장까지가 재앙 시리즈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라고 하는 연속적인 재앙이 계속 일어납니다. 결국 재앙이라는 것은 뭡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는 자들, 더 나아가서는 큰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 재앙 시리즈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뭐냐면 재앙이라는 것과 심판이라는 것은 조금 구별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생태 위기 상황 속에서 환경 재앙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환경 심판이라는 말을 잘 쓰지는 않습니다.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이 재앙의 결과 의인과 악인 모두가 피해를 입는 것이 재앙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 지진이 일어나면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그 지진이 일어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코로나는 재앙이라고 하죠. 이런 코로나 재앙이 있게 되면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누구나 코로나에 걸릴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겁니다.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열 가지 재앙 가운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재앙은 고센 땅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도 그 피해가 임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재앙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유월절에 애굽의 장자들이 죽임 당하는 것은 재앙이라기 보다는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악인들만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심판이라고 한다면 의인과 악인, 선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모두가 다 피해를 입는 것은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19장까지 넓게 보면 사탄, 그리고 사탄의 하수인이었던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승, 큰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로마 제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바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야기인데 여기에 보면 항상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이 악인들만 타겟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재앙도 있고 심판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6~19장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여기까지 기억하시고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이 땅을 지배하는 듯 보이는 로마 제국, 큰 바벨론 그리고 큰 바벨론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 그리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권세를 부여했던 큰 용, 사탄과 마귀를 하나님께서 소멸시키시고 심판하시는 내용이 바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라는 겁니다. 특별히 재밌는 것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재앙을 자세히 보시면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열 가지 재앙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재앙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시면 예를 들자면 물을 피로 바꾼다든가, 우박이 임한다든가, 황충의 재앙이 있다든가,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다든가 이런 것들이 출애굽기의 재앙과 똑같습니다. 그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뭡니까? 결국 그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재앙을 통해서 히브리인들을 억압하고 괴롭혔던 애굽이라고 하는 반 하나님 세력이 멸망을 당했잖아요. 그래서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열가지 재앙을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에서 그대로 기술함을 통하여서 뭐를 강조하고 있는 거냐면 히브리인들을 괴롭혔던 애굽이 하나님의 재앙을 통해서 멸망을 당한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교회 공동체를 핍박하고 있는 큰 바벨론이 있는 겁니다. 이 큰 바벨론이 AD 1세기 애굽입니다. 이 애굽이라고 하는 것을 보통 명사로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큰 바벨론인 로마 제국도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당할 것이다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재앙에서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그 재앙을 반복하고 있는 핵심적 이유입니다. 그런 것들을 기술함을 통하여서 결국 그 재앙을 통해서 애굽이 어떻게 되었냐,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멸망당했다 마찬가지로 이런 하나님의 재앙을 통해서 지금의 로마 제국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일곱 대접과 일곱 나팔 재앙의 중요한 의미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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