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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공동서신 녹취 12

by 【고동엽】 2022. 11. 29.
2장 14절에 보면 거짓 교사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나옵니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다.” 거짓 교사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과 성적인 탐닉입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면 이런 거짓 교사들이 추종하는 모델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브올의 아들 발람입니다. 2장 15절입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결국은 돈과 권력과 성적인 탐닉을 추구하는데 그 하나의 모델이 누굽니까? 돈과 권력을 추구하다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넘어뜨린 바알브올 사건을 조언했던 사람이 브올의 아들 발람입니다. 민수가 31장 8~16절에 잘 나옵니다.


2장 20~21절을 보시면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 20~21절을 보시면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올바른 신앙 안에 계속해서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공부할 때 이것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착각했던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자기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라는 것을 면책특권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그들은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가 등장해서 ‘너희가 지금의 삶을 지속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할 때에도 이스라엘은 그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된 우리를 심판하시겠어’라는 자신만만함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뭘 강조했습니까?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언약을 신실하게 준수하는 것이다, 언약은 체결했지만 언약을 신실하게 준수하지 않게 되면 그 언약은 파기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지금 베드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올바른 신앙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세례 받은 이후에 세례 받았을 때의 다짐과 결단에 걸맞게 신앙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세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과 무관했던 옛 삶을 죽이고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고 결단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받았는데 세례 받은 이후에 자신의 다짐과 결단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통치 바깥에 거하는 것을 훨씬 더 기뻐하고 죄된 삶을 지속한다면 그 세례 받음이라는 것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결혼할 때 배우자에게 배타적인 사랑을 죽을 때까지 쏟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합니다. 멋진 고백을 하고 결혼을 하였는데 이후에 계속 바람을 피운다면 그 멋들어진 고백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체결만을 중시했습니다. 자신들이 언약의 내용을 신실하게 준수하지 못한다는 것을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언약이 파기되었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중시합니다. 그 믿음을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지, 그 믿음이 지금 성장하고 있는지,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고 있는지는 예의주시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말씀이 바로 2장 20~21절 말씀입니다.


3장 1절을 보시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전서의 수신자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둘째 편지라는 표현입니다. 전서가 첫 번째 편지라면 이것이 두 번째 편지로서 후서가 되는 것입니다. 3~5절을 보시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후서의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3장 3~5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쓸 때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 뭐냐면 당시 교회 안에 팽배해 있던 예수 재림에 대한 불신앙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후서는 데살로니가전후서와 비슷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재림 신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경고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베드로후서를 통해서 교회 안에 팽배해 있던 예수 재림에 대한 불신앙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당시 교회 안에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최후의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경고하고 대적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베드로후서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한 마디로 사두개파적 신앙인들이 교히 안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사두개인들은 부활, 내세, 심판 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신앙인들이 점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경계하는 것이 바로 베드로후서의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3장 10절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으 드러나리로다.” 여기 10절에 보시면 주의 날은 도적같이 임합니다.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10절을 통해서 학자들 간에 논쟁하는 것이 있는데 여기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도래하게 되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이 완전히 소멸된다는 소멸론이 고 또 하나는 이 세상은 새롭게 갱신된다고 하는 갱신론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도래하게 되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소멸론과 새롭게 갱신된다는 갱신론 중에 어떤 입장이십니까? 과거만 하더라도 소멸론이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요즘은 갱신론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세계를 하나님이 버리실 이유가 없다는 것과 첫 창조가 회복된 곳이 하나님의 나라로 보기 때문입니다.


3장 15절에 보시면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는 것은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된 중요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넘어지고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허락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허락해 주십니다. 그래서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죠? ‘자비로우신 하나님’, ‘인자와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여기 15절 후반부에 보면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라고 나오고 16절입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렀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베드로후서가 기록될 당시에 이미 바울의 편지를 잘못 해석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잘못 해석한 거죠? 예를 들어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을 때 그 믿음을 헤브라이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적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인지적인 동의와 어떤 문장에 대한 수용을 믿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했던 믿음 안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참된 순종의 행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믿음입니까? 하나님만을 내 인생의 주인 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바대로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분에게 우리 인생을 거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것과 공동 서신이 말한 참된 믿음인데 여기 3장 16절에 보시면 바울의 편지를 자의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자들이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후서를 함께 살펴보았고 다음 시간에는 요한1서를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요한1서에는 영지주의에 대한 반박이 많이 나옵니다. 요한1서를 한 번 미리 읽어보시고 다음 시간 강의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주간 강건하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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