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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무지한 자의 신앙고백! (시 73:10-23)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 니다. 미국의 펜실바니아주에 큰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 다. 그는 농사하면서 만족한 생활 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은 어느 날 그의 사촌형
하나가 캐나다에서 석 유사업에 착수해서 큰 돈을 벌었다 고 하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여
기 서 그는 시험에 빠집니다. 그리고 형님에게 편지하기를 나를 그 석유 사업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합니다. 회답이 왔습니다. 석유공학에 대하여 지식이 전혀 없 는
사람은 이 석유 사업과는 무관하 니깐 동생은 그저 농사를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
다. 이 사람 은 오기가 나서 다시 대학에 들어가 서 석유공학을 공부했습니다. 상당 한 수준
의 공부를 한 다음에 또 편 지를 했습니다.
"형님, 내가 이제 석유공학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했 으니 나를 취직시켜주고 함께 사업 을
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형님 은 그를 그러라고 허락을 했고 받아 들이게 됩니다. 그는 23
년 동안이 나 농사하면서 지내던 그 큰 농장을 833불에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캐 나다로 석
유사업을 위해서 갔습니 다. 그 농장을 사서 물려받은 새로 운 주인이 가축에게 물을 마시
려고 개울물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보았더 니 농장에 있는 개울물에서 아주 이 상한 냄새가
납니다. 이래서 전문 가를 불러다가 알아보았더니 아주 큰 유전이 거기에 있는 것을 발견하
게 됩니다. 이 농장을 팔고 캐나다 로 간 사람은 23년 동안 살면서도 자기 농장에 엄청난
유전이 있음을 몰랐습니다. 다음에 온 사람이 이 유전을 개발해서 더 큰 부자가 되었 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습니까? 인생사가 다 이렇습니다.
인간에겐 늘 숨기지 못하는 고민 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겉을 보고 속을 못 본다는 것입니
다. 자기 농 장에 엄청난 유전이 매장되어 있는 것을 그는 못 보았습니다. 캐나다 를 방문할
때에 생각합니다. 그 넓 은 땅, 버려진 것 같은데 엄청난 자 원이 거기 있고 알라스카를 방
문할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주 헐값에 러시아로부터 미국이 사들인 겁니 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얼음 덩어리 가 그 속에 엄청난 자원이 매장되어 있답니다. 사람마다 겉을 보고 속 을
못 봅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도 외모를 보고 속을 못 봅니다. 그 사람의 진실, 그 사람의 사
람됨, 그 속을 알 재간이 없어요. 이것이 답 답합니다.
또 하나는 사람마다 현재를 보면 서 미래를 보지 못 합니다. 아시는 대로 과거는 지나간 것
이요 현재는 또 과거로 밀려갈 것입니다. 현재 라고 하는 것은 그저 껌뻑껌뻑 지나 가는 겁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붙들리고 다음 다음에 있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 의 어리석음입니다. 우리에게 참으 로 부끄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 이 바로 빨리빨리
문화라고 하는 겁 니다. 언제든지 그저 빨리빨리……. 제가 쿠알라룸프에 갔을 때에 중국 식
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중국 집의 식사라는 것은 한 접시씩 음식이 나 오고 끝난 다음에 또
다른 접시가 나오는 것이 이게 정도입니다. 그 런데 이 집에서는 우리에게 세 접시 씩 대접
을 하더라구요. 거 왜 그러 냐 물었더니 한국사람들은 빨리빨리 그런대요. 빨리빨리 재촉하
기 때문 에 세 접시 네 접시씩 급하게 대접 을 해요. 우리는 빨리빨리 하다가 다 망조가 들
었잖아요. 공사도 빨 리 하다 무너지고 출세도 빨리 하려 다가 망하고, 쇠고랑차고. 이 놀음
이 아닙니다? 자연대로 순리대로 해야지 법대로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마음만 급해 가지고,
출세 지향적인 인간들이 급하게 서두르더니 인격은 그 모양인데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가
떨어지면서 온 국민의 마음을 이 렇게, 이렇게 아프게 만들지 않습니 까. 왜 이러는 겁니까?
뭐 하나 제대로 좀 기다려 주지 못하고 왜 이렇게 서두르냐 그 말입니다. 이 것이 바로 미
래를 볼 줄 모르기 때 문에 인내가 부족한 탓이에요. 보 다 더 먼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
은 내 발은 현재에 있지만은 내 생각은 벌써 저기에 가 있어요. 그건 당연 히 이 자리로 올
거예요. 그런고로 넉넉하게 오늘을 참을 수 있는데 우 리는 멀리 보는 그런 지각이 없어서
늘 이렇게 시행착오를 많이 합니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은 보면서 나는 못 봅니다. 이게 또한 문제입 니다. 세상도 보고 남의
이야기 많 이 알고 있어요. 뭘 어떻고 어떻 고…… 그러나 언제 한 번 자기 자 신을 생각하
지 못해요. 결정적인 약점이에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남의 눈의
티를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다고. 여러분 생각의 방향을 돌리십시다. 남의 얘기
그만 합시 다. 강 건너 불처럼 제멋대로 평가 하는 일, 이젠 그만하십시다. 자기 성찰이 먼
저 앞서야 합니다. 기도 하는 걸 보아도 그저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뭘 위해서……
저렇 게 기도하는 거 같은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입니 까?' 자기 자
신을 위한 기도가 어쩌 면 전혀 없는 거 같아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또한 우리는 세상을 봅니다. 역 사를 봅니다. 많은 사물에 부딪치 고 도전합니다만은 사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역사 그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손 길을 보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 니다. 어떤 재벌이 늘 입버릇처럼 그런 얘기를 했답니다. 그래서 여
러 사람으로부터 그 분에 대한 이야 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이름은 실 례가 돼서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그 재벌 말씀이 나는 뭐든지 나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무엇도 무엇도 무엇
도 다 할 수 있었다. 딱 두 가 지가 마음대로 안 된다. 하나가 골 프가 마음대로 안되고, 그
래 그게 마음은 잘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 안되던가 보죠. 또 하나가 자식이 마음대로 안
되더라. 내 자식이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소원대로 그 렇게 자라주지 않더라. 이 두 가지
가 마음대로 안 된다고 늘 말했대 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 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
니다만은 속 으로 '그러니까 문제지' 하고 생각했 습니다. 하나 더 있어야 하는 데……
"내가 내 마음을 내 마음대 로 할 수가 없었노라"
좀 근사하게 철학적인 말도 한 마디 있을 법 한 데, 안 그렇습니까? 돈도 마음대로, 권력도
마음대로 무엇도 무엇도 마 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내가 내 자 신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아픔이 있었다고 이 정도 됐으면 정말 민족 적 존경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건 모르더라구
요. 거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가장 큰 수수께끼는 종말 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결국이 라고 되어있습니다만은
번역을 바꾸 면 종말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 이 변합니다. 모든 것이 흘러갑니 다.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궁금한 것은 그 마지막은 어 떻게 될 것입니까? 그 종국이
우리 의 관심사입니다. 세상에는 역시 문제가 있고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우리 또한 어리석
은 생각에 사로잡 힐 때가 많습니다. 그 하나가 악인 의 형통을 보는 것입니다. 악한 사 람
잘 되는 것, 그게 문제입니다. 그저 악한 사람은 망하고 악한 사람 은 잘 못된다라고만 보여
지면 좋은 데 안 그래요. 어떨 때는 악한 사 람이 잘 되는 거 같아요. 진실하게 사는 사람
다 가난하고 어렵고, 정 직하게 사는 사람 다 형편없고, 수 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저 못된 인간들이 득세하고 출세하고. 이런 걸 볼 때, '이거 어찌하여 이렇 게 되는 겁니
까?' 이런 생각이 들어 요. 거기에 우리의 생각이 거기에 매혹되게 된단 말입니다.
또 하나는 나 자신의 진실된 노 력을 헛되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래 오늘 성경 말씀에
도 그런 말씀 이 있자나요. 내 손을 씻어 무죄하 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깨끗하 게 정결
하게 바르게 진실하게 살아 보았는데 그까짓 게 뭐냐 이거예요. 결과가 이거냐? '헛되다'
그런 생각 이 들어요.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 는 거예요. 설문조사로 여론을 조 사해 보니깐
그렇다고 합디다. 교 통 법규를 지키는데 있어서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차를 운전하면서
"교 통 법규를 지키면 나만 손해다"
이 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60프로랍니 다. 반이 넘는답니다. 여기에 망조 가 든 거예요. 교통
법규를 지키는 것이 내게 이롭고 내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교통 법규
남을 위해 지키는 줄로 착각하 고 있어요. 그래서 교통 법규를 지 키는 것은 내게 손해다.
이 의식구 조가 문제란 말이예요. 그런가하면, 그러면 안 지키느냐 물어 봤더니 대 답이 이
렇답니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지킵니다"가 80프로랍니다.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왜 이 모
양입니까? 나의 진 실이 나의 행복이요, 나의 정직함이 이것이 성공이라고 왜 생각을 못하
느냐 이거예요. 이걸 손해라고만 생각하니 우리의 장래는 어떻게 되 는 겁니까?
또 하나는 '나 하나의 의나 선이 라는 것은 전혀 무력하다. 세상에 거친 세상, 이 홍수같이
밀려오는 이 엄청난 많은 혼란 속에서 나 하 나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 하나 정직하
고 바로 살고 진실하고 겸손하고 믿음으로…… 이게 아무 소용도 없다 이거.' 그렇게 생각
되는 데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런고로 여러분 생각하면 고민될 수 없는 것 을 고민하는 것
이 우리의 고민입니 다. 나의 의, 정말로 허무한 것입니 까? 정말로 무력한 것입니까? 정 말
로 아무 소용도 없는 겁니까? 나 하나의 진실이 이렇게 아무 소용도 없는 겁니까? 우린 여
기서 정말로 억울한 것입니까?
여러분 이제 시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잠언이나 시편에서 계속 강조합니다. 악인
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악한 사람 잘 되는 거 보고 침 흘리지 말라고. 못된 사람 잘
사는 거 보고 그거 부 러워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왜 요? 곧 망할 테니까.
"악인이 사 라지리니 다시 흔적을 못 보리라"
그랬어요.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 야 되요.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부 러워하지 않는 그런 사
람으로 키워 져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생 각합니다. 종말을 생각합니다. 의 인의 종말
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보상하십니다. 악인의 종말이 무엇 인가? 하나님이 심판이 저 앞에
있 단 말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종말이 무엇입니 까?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 빈둥거리는
거 보면 참 답답합니다. 더구나 이제 또 뭐 여름이 되어서 캠프다 뭐다 하고 뭐 바캉스다
해 가지고 놀고 하는걸 볼 때, 글쎄 제 나이 때는 그렇게 못살 아서 그래서 질투가 나서 그
런 진 모르겠습니다만은 나는 속이 답답합 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그렇게 놀고
지낼 수가 없습니다 지 금 세상이, 그래 가지곤 살아 남을 수도 없습니다. 뻔한 세상이에요.
저렇게 놀고 나면 다시 또 공부하려 면 워밍아워(Warming Hour)가 필 요합니다. 정신이 집
중되질 않습니 다. 놀아도 아주 진실하게, 잠깐 지 혜롭게 놀아야지 왕창 놀아놓으면 운명이
곤두박질하는 거 아닙니까? '왜 이 정신을 못 차릴까, 이렇게 하 면 안 되는데……' 마음
아픕니다. 여러분 제가 젊은 사람들을 놓고 결 혼 주례할 때도 늘 얘기합니다.
"이 사람들아"
얼마나 예쁩니까. 좌우간 어쨌든 결혼 주례하는 걸 대 단히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신랑 신부
딱 앞에 놓고 나 혼자서 감상 하니까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일 생에 제일 예쁜 시간! 그러
나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쁘고 발랄하 고 정말 좋잖아요. 요새도 보니까 결혼 주례할
때 반지 끼워 주자나 요, 반지 끼워주라고
"사랑합니다"
하라고 하면 요 신부가 신랑에게 딱 끼워주고는요 그냥 끼워주는 게 아 니에요. 끼워주고는
손을 요렇게 잡아요. 그래 내가 '참 되게 좋은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손을 만 져봐요
이렇게 한다고요. 그러나 내 생각을 합니다. 이제 신랑 신부 죠. 곧 이어서 아버지 어머니지
요. 그러다 얼마 꾸뻑 지나가면 할아버 지 할머니요. 눈앞에 있습니다. 오 늘 이 순간이 이
대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먼 훗날에 할아 버지 할머니가 됐을 때 되돌아보면 서
"'나는 참으로 행복하게 잘 살았 다' 할 수 있게 살아다오."
간곡하 게 부탁을 하는데 뭐 정신없는 거 같더라고요 보니까. 그러나 여러분 신랑 신부가
그대로 있습니까, 젊음 이 그대로 있습니까? 인생의 종말 이 앞에 있잖아요. 그 시간을 생각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것 이에요. 물질, 도대체 돈이 뭡니까? 이 물질이야 말로
가고 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많은 돈을
가진 이 부자, 먹고 마시고 즐 기자 할 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아 오늘 밤 네 생명을 도로 찾으면 그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 바보 같은 사람아
"
막 그래요. 이 물질이 어찌 내 것 입니까? 그 래서 유명한 앤드류 카네기는 말합 니다. 자기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걸 알아야 되요. 다 써
버리세요 빨리. 그리고 갈 것이 지 그것이 왜 남아돌아 가지고 사돈 의 팔촌이 와 가지고
내 거라고 합 니까. 이 멍청한 짓이지요. 빨리빨 리 유서를 쓰세요. 이 중요한 거예 요. 다
써버리고 가야지. 안 그렇 습니까? 물질 가는 거예요. 건강 도 가는 거예요. 종말이 옵니다.
명예도 가는 거예요. 권세, 화무십 일홍(花無十日紅)이예요. 이거 참 답답한 일입니다. 축하
할 것이 못 되더라구요. 그 얼마나 무거운 짐 인데, 부러워할 거 아무 것도 없어 요. 종말이
어디로 갑니까? 끝을 보세요. 그걸 모르고 생각하면 되 겠습니까? 권좌에 올랐다면 내려올
때도 있는 거지요. 청와대에 올라 갔으면 이제 내려 갈 때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 때를 생
각하지 않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교 훈 하십니다. '성전에 들어갈 때에 야 결국을 깨달았나이
다' 성전에 들어갈 때에야……. 종교 심리학자 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교 회에 나가
잖아요. 그저 갔다가 졸 고 올 때도 있고 은혜 못 받을 때도 있겠지요. 그래도 계속 나가는
사 람하고 안 나가는 사람하고는 다르 답니다. 수명이 다르답니다 수명이. 계속 나가면 그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비해서 사개월만 교회에 안 나가면 어떻게 되느냐? 완전히 비
기독교인으로 바뀌어지고 맙니다. 그 의식과 생각 전체가. 이 교회에 나온다는 게 엄청난 의
미를 가지는 거예요. 여기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말씀을 듣
고 기도하는 중에 우리의 정욕과 끝없는 욕심과 집착과 이 모 든 고집과 불의로부터 내가
자유해 서 내 영이, 내 영이 깨끗해져요. 그리고 세속된 것으로부터 신령한 것으로 의식을
바꾸게 됩니다. 매 우 중요합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 면,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
님을 만납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그는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만 은 의심과 고통이 있었
으나, 하나님 의 전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하나님을 보고 자기를 보고 세상
을 보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나 타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오
는 것, 매 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 의 모습을 압니다, 죄인됨도 압니다, 진실도 압
니다, 내가 혼자가 아님도 압니다, 내게 전개되는 미래 내 종 국 내 운명을 압니다. 저 앞에
있 는 내 운명을 내가 관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새롭게 되며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고 그 하나님 앞에 가 있는 그 내 모습에서 돌이 켜서 오늘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새로
운 세계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결국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신 앙적 가치관이 문제입니다. 오직 성전에서, 이 성전에서 깨닫
고 성전 에서 충만한 바로 그 심령으로 여기 서 공급받는 생명력으로 세상을 향 해 나가는
것이올시다. 성전에 들 어가서야 비로소 내 앞에 있는 운명 을 알게 됩니다. 저는 바로 며칠
전에 16일날 새문안 교회에서 있어 진 그 교회장으로 지낸 서재현 장로 님이라고 하는 분의
장례식을 인도 하러 갔었습니다. 그 분은 본래 인 천 제일 교회 장로님이기 때문에 제 가
인천 제일 교회에 있을 때에 장 로님이어서 돌아가실 때에 제가 장 례를 인도해 줄 것을 요
청을 해서 그러자고 한 결과 그대로 하게 되었 습니다.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주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 보다 더 겸손한 사람을 못 보았고, 그 보다 더 진실한 사람도 못 보
았 습니다. 그 손녀가 나와서 할아버 지를 생각하며 추모사를 읽고 있습 니다.
"할아버지, 우리는 할아버지 를 사랑합니다. 진실과 겸손과 바 르게 사는 길의 표본이 되어
주시고 말없이 실천해 주신 할아버지. 할 아버지를 할아버지로 모신 것을 저 는 행복하게
생각하고……"
특별히 이렇게 말하더만요
"할아버지 우리 가 할아버지 같은 신랑 얻게 해 달 라고 소원했던 것을 아시지요"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앞길에 는 어떤 말이 들
려질 것 같습니까? 할아버지 같은 신랑감 얻게 해 달라 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그 소녀, 그
관계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러 분 성전에서 깊이 깨닫고 저 앞에 있는 내 운명을 보면
서 그리고 되돌 아 오늘을 보세요. 비로소 밝은 세 상,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 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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