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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감사의 일상화 : 빌립보서 1:3-11

by 【고동엽】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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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감사의 일상화 (곽선희목사)
성경 : 빌립보서 1:3-11

공산주의 국가나 혹은 수십 년 공산주의 지배 하에 있었던 사회를 방문하게 되면 누구나 느끼는 뚜렷한 특징이 두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같이 “못한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둘째는 “감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감사'나 혹은 '사랑'이라는 말의 개념조차 그만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공산주의 사회의 기본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반합의 원리에서 나옵니다. 그런고로 변증법적 관계라고 하는 것은 그방법론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투쟁'이요 '혁명'입니다. 그래서 농사도 투쟁이라고,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투쟁이라고, 결혼도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이러한 투쟁적 관계, 변증법적 관계에서 소화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뿌리는, 그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난한 것도 부자 때문이고 내가 못사는 것은 잘사는 사람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 이러한 철학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런고로 계속적으로 '혁명''쟁취'를 외칩니다. 혁명과 쟁취를 통해서 얻어진 일에 무슨 감사가 있겠습니까? 불평, 불만, 원망으로 가득한 사회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가 만든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중으로 불행합니다. 가난해서 불행하고, 감사할 줄 몰라서 불행합니다. 모든 것에 원망과 불평으로, 감사할 줄 몰라서 불행합니다. 모든 것에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다 불행합니다. 철저하게 불행합니다.

여러분, 행복이 무엇입니까?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감사를 듣는 마음입니다. 부자라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감사가 없어서 불행합니다. 부자일수록 더 감사가 없어요. 끝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불행한 것입니다. 감사 없는 이유로 가장 큰 것은 '무지'입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감사가 없습니다.

<예> 61세된 어느 사업가가 종업원 176명을 데리고 조그마한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업가는 1년에 한 번, 감사절 때마다 각 종업원 가정에 한 마리씩 칠면조르르 선물했습니다. 칠면조를 구워 먹으면서 감사절을 같이 보내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20년 동안 해마다 이렇게 선물해왔는데도 고맙다는 인사하는 사람은 딱 네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카드를 보내서 고맙다 했고 두 사람은 길에서 만나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업가는 칠면조 선물 하는 것을 이제는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마음이 없어졌다고 해요. 사장이 종업원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율법적 관계에도 감사가 없습니다. 내 수고 내 공로의 결과로 주어진 것인데, 내가 수고해서 얻은 것인데 무슨 감사가 있습니까? 교만한 자도 감사가 없습니다. 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가 없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도 감사가 없습니다.

<예> 멕시코의 어느 지방에 이야기입니다. 들판에 나갔더니 한쪽에는 찬물이 나오고 한쪽에는 온천물이 나오더랍니다. 우리네 백두산에 가도 그런 것을 볼 수 있지요. 어쨋든 그곳에서 목욕을 하면 이렇게 서면 물이 뜨겁고 또 저렇게 서면 물이 차갑습니다. 여인들은 여기서 빨래를 합니다. 더운 물에서 빨래하고 찬 물에서 헹구고, 그래 이 사람들은 자연의 혜택을 기가 막히게 누리고 있구나 싶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당신들은 참 좋겠군요. 이런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얼마나 행복하겠소?" 그런데 그들은 뜻밖에도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 자연은 비누를 안주는 걸요" 보세요. 끝도 없는 것입니다. 욕심많은 사람은 감사가 없어요. 이상하게도 돈이 많을수록 욕심은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니까 더 감사가 없지요. 또한 은혜로운 마음이 없는 사람은 감사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예>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강한 자는 자신을 제어하는 자요, 가장 참된 자는 모든 것에서 배우는 자요, 가장 행복한 자는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만족함이 없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 보면 끝도 없는 것입니다. 똑같은 장미를 보고도 마음이 좋은 사람은 '가시나무에 장미꽃이 피었구나'하고 아름답게 봅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정적인 사람은 '왜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지?'합니다. 이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장미를 멀리서 보기만 하고 즐기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장미를 겪으려고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가시가 있으니까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사람만이 항상 마음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의 차원이란, 먼저는 물질적인 것이 많습니다. 주고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비인간적입니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감사는 철학적인 것입니다.

<예> 헬라의 어느 철학자가 비가 많이 쏟아지는데 일부러 우산을 스지 않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늘을 향해서 "오! 신이여, 감사하나이다"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이 "대체 무엇이 감사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해 보세요. 콧구멍이 밑으로 뚫렸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약 그렇지 않고 위로 뚫렸다면 이렇듯 비오는 날에 내가 어떻게 밖에 나오겠습니까?"--이것이 철학적 감사입니다.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하나 부러진 것이 둘 부러진 것보다야 낫지 않습니가? 무릇 환경이 달라짐으로써가 아니라 생각 속에서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감사는 은총적 감사입니다. 그리스도인됨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존재에 대한 감사입니다. 나의 나됨에 대한 감사입니다. 여러분, 여자로 태어났습니까? 여자로 태어 났으면 여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남의 아내가 되었으면 아내됨을 감사하고, 자식이 되었으면 자식된 존재 그것을 감사하는 것, 또 이것을 은총으로 받고 오직 은혜로 받고, 은혜 안에 있는 나임을 알고 감사하는 것, 이것이 절대적 감사입니다.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바 그것을 철저하게 감사하고 보면 모든 것에, 주변의 모든 관계에, 모든 환경에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으면서 오늘의 본문인 이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만도 기쁨이라는 말을 16번이나 쓰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을 자세히 음미해보세요.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3,4절)"--이 말씀을 거꾸로 한번 뒤집어보세요. '생각할 때마다 원망이고 기도할 때마다 불평이고...'--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생각합니까? 무엇을 생각하든지 생각만 하면 감사합시다. 하나님을 생각해도, 가정을 생각해도, 교회를 생각해도, 자녀들을 생각해도, 모든 일에서 생각 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의 괴로움을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오로지 저 멀리 빌립보교회를 생각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과, 빌립보 교인들의 봉사오, 빌립보 교인들의 아름다운 지성과 헌신을 생각합니다. 저들은 로마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위로하고자 얼마간의 성금을 모아서 자기 교회 교역자를 통해서 로마로 보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받고 지금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은 감옥에서 이대로 죽는다 할지라도 빌립보 교인들이 성장하는 믿음을 보면서,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할 때 마다'라는 말은 '항상 그러하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이면서 성도의 교제를 통한 현실적 감사를 말합니다.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이것을 생각해도 저것을 생각해도, 모든 일이 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렇게 아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또한 감사는 기쁨의 간구로 이어집니다. 감사하며 또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 가운데 '감사함으로 기도하라'하고 말씀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기쁨으로 간구합니다. 눈물로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간구합니다. 감사, 기쁨, 축복, 은혜--사실 이 단어들의 어원은 다 같습니다. 기쁨이 있어야 감사하고, 감사해야 하나님 앞에 바른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에서, 은혜는 다시 감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기쁠 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감사함으로 나는 행복하고, 마침내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연구를 했습니다 열 살난 아이가 얼마나 많은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 보았더니 6천 단어랍니다 그러나 그 6천 단어 중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한 단어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인은 2만 5천 단어를 구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마디, 감사하다는 말뿐입니다. 여러분, 어떤 때에는 사랑한다는 말도 이기적일 때가 있습니다. 남을 기쁘게 하기 보다 귀찮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남을 얽매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남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습니다. 부담을 줄 수도 있습니다. 오직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감사하다는 말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습니까?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고맙다고 하십시오. 감사하다고 말하는 순간 여러분의 마음 속에 기쁨이 올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 속에 마음 속에 기쁨이 올 것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주고받는 바로 그 시간이 행복의 극치 입니다. 이것이 없는 한, 어떤 여건에 있어도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그곳에서 많은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나중에는 세 사람의 총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발탁됩니다. 이스라엘사람으로서 바벨론나라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바벨론사람들이 이를 질투 시기하여 어떻게든지 다니엘을 죽이려고 계책을 꾸몄습니다. 그래 '왕 이외 다른 어떤 것에 기도하든가 무엇을 구하는 자가 있다면 사자굴에 처 넣어서 죽일 것이다.

우리는 왕만 섬기고 왕만 찬양한다'--충성을 빙자해서 이런 조서를 만들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이 조서의 숨은 뜻도 모르고 어인을 찍었습니다. 자, 일이 이렇게 되면 다니엘은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 사형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세요.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끓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였더라(단 6:10)"--보세요. 어인이 찍혔습니다. 내가 오늘 기도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면서도 다니엘은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더라 함입니다.

여러분, 감사가 습관이 되고 성품이 되고 인격이 되야 합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늘 감사하는 사람은 죽음이 앞에 와도 감사합니다. 병원에 들어가서 수술을 받을 때에도 나를 좀 아프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의사선생님을 보고도 '감사합니다' 간호원을 보고도 '감사합니다', 잠깐 방문해주는 사람을 보고도 '감사합니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가 일상화하지 못한 사람은 이런 일에 조금 감사하는 듯하다가도 저런 일이 생기면 또 원망합니다. 이것 원망, 저것 원망, 하늘 원망, 땅을 원망, 자기 자신도 원망합니다. 이것이 절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원망과 불평뿐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할 때에 찬송하고,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 때 마다 기쁨으로 기도할 때에 그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감사하게 될 때에 곧 자기를 이길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 될 때에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 될 때에 모든 원망과 불평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감사함으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순간에 나는 내가 원망하는 자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은 내가 그에게 붙들리는 시간입니다. 내 영혼이 감옥으로 떨어지는 시간입니다. 오직 감사함으로만 그 영이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의 자녀 되고 모든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게 될 때에 그는 온전한 자유인으로 모든 일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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