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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뿐입니다! (왕상 19:1-10)

by 【고동엽】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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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뿐입니다! (왕상 19:1-10)

 

 

1952년 7월 4일 아침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덮여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21마일 떨어진 곳에 “카타리나”라고 하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이 곳은 작은 휴양지입니다. 이 섬에서 34세 된 한 여인이 힘차게 물 속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21마일 밖에 있는 해안을 향해서 헤엄쳐 갔습니다. 플로렌스 채드윅이라고 하는 이 여자는 수영선수로서 세계적인 기록을 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1마일 앞에 있는 육지를 향해서 수영을 시작한 것입니다. 수백만 명이 같은 시간에 이 장면을 흥분된 모습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았습니다. 가끔 총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모여드는 상어 떼를 쫓기 위해서 총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험을 위해서 그녀는 전심전력을 다했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디찬 바닷물이었습니다. 15시간이 지났습니다. 추위로 인해서 다리가 마비되어서 가끔 경련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결국 포기하겠다는 신호를 뒤따라오는 배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배에 타고 있는 어머니와 그를 가르치는 코치는 “힘을 내라, 육지가 앞에 있다, 힘을 내라! 힘을 내라!”라고 외치며 포기하지 말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15시간 55분만에 수영을 포기했습니다. 포기하고 나서 보았더니 바로 앞에 육지가 있었습니다. 20마일 반을 헤엄치고 단지 반 마일을 앞에 놓고 포기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애석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눈앞에 캘리포니아 해변이 전개되고 있는데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자 그만 지쳐서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각에는 이것이 문제이고 저것이 문제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눈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약속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요, 약속에 대한 확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데,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인데,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우리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현대인이 가진 문제들

의사요 심리학자인 폴 투르니에의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고독으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Loneliness)」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의 공통된 시대적인 병이 있다. 그것은 고독이다.” 옛날 사람보다 우리가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발에 밟힐 만큼 많은데 고독합니다. 여러분, 고독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누군가에게 주면서 살아야 되는데 아무에게도 나를 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내 사정을 말 할만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만날 사람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전화를 걸 만한 그런 대상도 없을 때 이걸 고독이라고 합니다. 폴 투르니에는 현대인의 이러한 고독의 원인은 지나친 경쟁과 비교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러분, 혼자선 고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고독합니다. 거기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삶이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혼자 태어난 것 아닙니다. 혼자서 살아온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혼자라는 극단적 개인주의에 빠져서 고독해 합니다.

저는 결혼주례를 많이 합니다. 1년에 200번 정도 하니까 정말 많이 하는 편입니다. 결혼 주례할 때마다 제가 꼭 강조하는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은 너희 둘만 사는 게 아니다. 이걸 잊지 마라.”입니다. 어떻게 신랑신부 둘 뿐입니까? 둘이 행복하면 부모님에게 효도가 됩니다. 또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은 신랑신부지만 머지않아 아빠 엄마가 됩니다. 그 다음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제 나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불행할 수도 있고 나로 인해서 저들이 행복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디 나 혼자 일수 있습니까? 결혼과 함께 나의 의미가 얼마나 크게 평가되어야 하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혼자서 존재하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한 지나친 탐욕이 문제입니다. 분에 넘치는 지배욕, 탐욕, 편협, 소유욕 이런 것들이 지나쳐서 문제가 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만족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진 것에 대해서 만족하질 못합니다. 현재 처지에 대해서 만족해지지 못할 때 고독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반항과 비판과 질투입니다. 이러한 것에 자기 자신을 빼앗기면서 인생이 고통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닥친 문제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 가면 고독한 사람이 보입니다. 이 고독은 아주 현대판 고독입니다. 특별한 고독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보는 대로 배가 고팠습니다. 여러분, 배고파 봤습니까? 배고프면 배만 고픈 게 아닙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정말로 배고프면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인생이 슬퍼집니다.

오늘 엘리야에게 배고픔이 찾아 왔습니다. 주리고 목말랐습니다. 아, 이대로 죽는가보다 할 정도로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고독으로 이어집니다. 또 무기력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내가 극복할만한 그런 능력만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런데 ‘내가 아무래도 쓸모 없는 존재다.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스스로 무기력을 느낍니다. 내가 쓸모 없다는 걸 내가 알고 있습니다. 아니 많은 사람에게까지도 자신이 귀찮은 존재일꺼라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자식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도 ‘아이가 귀찮다고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아침이면 아침이니까 안 되고 저녁은 잠자리니까 안 되고 낮에는 바쁠 것 같아서 안되고 하루 24시간 중에 전화 한 통 걸지 못합니다. 왜요? 귀찮아 할까봐 입니다.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오늘 성경말씀대로 나 혼자뿐입니다. 다 죽었습니다. 다 끌려가서 사형을 당했습니다. 선지자 중에 나 하나만 남았습니다. 홀로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홀로, 나 혼자 뿐입니다. 현대인들이 이런 고독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욱더 오늘 본문에 특별한 점은 뭐냐 하면 허탈감입니다. 그가 가난하고 어렵고 병들어서 고독해진 게 아닙니다. 사실은 큰 승리, 큰 이벤트, 큰 사건 뒤에 고독해진 겁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신과 대결했습니다. 홀로 나가서 바알신의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항을 해서 이겼습니다. 마침내 850명의 바알신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끌어내다가 다 죽여 버렸습니다. 대승리입니다. 엄청난 승리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오늘 본문에 보는 대로 이를 갑니다. “내일 이때쯤은 네 시체가 저들과 같이 될 것이다!” 맹세를 합니다. “반드시 너를 죽이고야 말겠다.” 이래서 엘리야가 도망을 한 겁니다. 광야로 들어가서 지금 이렇게 고독해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 남았습니다. 하나님 나 죽여주세요.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는 큰 승리 다음에 다가온 좌절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면 실패할 때 고독할 것 같지만 성공할 때 더 고독합니다. 실패할 때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할 때는 친구가 없습니다. 고독합니다. 성공할 때 더 불안합니다. 견딜 수가 없이 불안한 것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현 노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되고 나서 며칠 안 되어 못해먹겠다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힘든 겁니다. 청와대 갇혀있으면 정신 없는 겁니다. 고독한 겁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 도둑놈 같고 사기꾼 같이 느껴지는 겁니다. 성공이 사람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큰 성공을 거두어 놓고 엘리야는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또한 조상과 자신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자신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이런 사람과 같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조상만 못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훌륭한 조상만 못합니다. 비교하면서 고독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들떠 있었습니다. 갈멜산의 승리 그 흥분된 시간에 아직도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허탈해 하고 고독해 하고 죽기를 원했습니다. “나 죽여주세요. 하나님, 나 죽여주세요.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태도가 중요하다

빅터 프랭클린은 「죽음의 수용소」라고 하는 책에서 인간의 가치를 말하고 있는데 전 가끔 이 글을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가치결정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 창조적 가치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것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구태의연하게 살아가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창조적 삶을 사는 것, 거기에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경험적 가치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넓혀갑니다. 이런 경험도 하고 저런 경험도 하고,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성숙해가고 공부하고 배워가는 것입니다. 경험, 아주 중요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받으며 경험하고 있습니다.

셋째, 태도적 가치입니다. 여기서 프랭클린은 이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적 가치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어떤 사건을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오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것을 소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태도적 가치,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타임 히스토리(Time History)」라고 하는 책에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 만일에 고민 없는 사람이 있다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은 고민이 있고 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고민과의 대결에서 어떤 태도와 자세로 임하느냐, 얼마나 적극적으로 얼마나 긍정적으로 얼마나 신앙적으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앤드류 마티스의 명언이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십시요. 제가 좋아하는 명구입니다.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즐기는 일만 하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마라.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라. 언제나 하고 싶은 일만 해라. 둘째, 네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해라. 오늘 만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라.” 그래서 제가 결혼주례하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혼은 이제부터 두 번째 단계다. 지금까지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하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항상 이 마음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가장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두 번째 단계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야가 바로 이 시점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엘리야가 쓸모 없다고, 그리고 죽여 달라고 하는 판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 너는 할 일이 있다. 아람 왕에게 기름을 부으라. 엘리후에게 기름을 부어라.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라. 너는 할 일이 있다.” 엘리야는 할 일이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해야 할 소중할 일이 앞에 있다고 말입니다. 또한 엘리야는 나 홀로 남았다고, 나 혼자뿐이라고 고독해 하는데 하나님은 오묘한 말씀을 하십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이 있다.” 이는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 다 잘못되고 나만 옳다는, 다 악하고 나만 선하다는, 다 거짓되고 나만 진실하다는 생각들, 모두 천만에 말씀입니다. 내가 모르는 곳에 7,000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가끔 우린 북한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북한에 교인이 있을까? 있구 말구요. 하나님이 예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나 혼자 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도처에 여기저기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훨씬 낫습니다만 한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때 제가 중국에 갔을 때 거기서 공산당 간부들과 회의를 하고 강연을 했습니다. 밤중에 호텔에 전화가 왔습니다. 서툰 영어로 그는 말했습니다. 회의 참석했던 공산당 간부라고 하면서 “I am baptism Christian. 나는 비밀로 세례 받은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공산당원이지만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그러냐고 반갑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못나가지만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하며 전화를 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조반을 먹었습니다. 조반을 같이 먹는데 그분이 가까이 와서 손을 잡으면서 “내가 어젯밤에 전화를 건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 그때의 감격이란!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있단 말입니다. 너무너무 좋은 거 아닙니까? 그 손을 흔들고 악수하고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숨겨진 기독교인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후계자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지만 더 위대한 사람 엘리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됩니다. 사람의 일은 중단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중단이 없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사람의 일은 망가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이제부터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요새 신문을 보면서 마음이 아플 겁니다. 자살자가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 타이틀에 놀랐습니다. 자살증가율이 세계 제일이라고 합니다. OECD나라 가운데 말입니다. 물론 자살하는 사람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헝가리가 10만 명당 24.3명, 일본이 20명, 핀란드가 20명, 그리고 한국이 18명입니다. 그러나 자살증가율로 볼 때는 세계 제일입니다. 이대로 나가면 머지않아 정말 세계 제일의 자살국가가 될 것 같습니다. 왜 이러는 것입니까?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자살을 사치라고 합니다.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사치하고 가장 멍청하고 가장 큰 죄가 자살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40년을 광야에서 헤맸습니다. 80년을 낭비했습니다. 80세의 노인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부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애굽생활의 새로운 의미가 생깁니다. 광야생활 40년이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을 다시 하나님께 바칩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과거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잃어버린 과거는 없습니다. 실패한 사건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는 버려진 실패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단 조용하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19장을 다시 한번 자세히 읽어 보세요. 그러면 거기에 중요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야 할 삶에 대한 보람과 의미가 있습니다. 나를 도와줄 동역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항상 나와 함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경륜 속에 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아는 사람은 절대 절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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