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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5장1-11 / 날아가는 두루마리에 적힌 저주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9월12일(월)■

 

(스가랴 5장)

 

1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이니라 하시고 또 이르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니 그 때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8 그가 이르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귀 위에 던져 덮더라

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오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10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니

11 그가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것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것이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묵상/슥 5:1-11)

 

◆ 날아가는 두루마리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스가랴는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았다.

크기가 가로 20규빗, 세로 10규빗이다. 규빗은 45~46cm인데 쉽게 계산하기 어려우니, 앞으로 성경읽을 때 한 규빗을 0.5m로 간주하면 크기를 가늠하기가 쉽다. 즉 20규빗은 10미터(9.2m), 10규빗은 5미터(4.6m)로 상상하면 된다. 이 두루마리에 A4용지를 놓으면 680장 정도를 놓을 수 있는 크기다. 안팎으로 쓰였다면 A4용지 1360장의 분량이다.

 

이 크기에 가득하게 글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각 사람이 범하는 죄에 대한 저주다. 도둑질하는 행위에서부터 거짓 맹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죄에 대해 낱낱이 저주하고 있다. 이 저주는 그냥 스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사람과 그 집이 완전히 망하도록 한다.

 

하나님께서 이 환상을 보이심은 당시에 하나님에 대해서 냉담해지고 더는 경외하지 않는 자들을 경고하시고, 그들의 신앙을 각성시키기 위하심이다. 이들은 성전을 짓다 말았으며, 의욕을 잃었다. 그리고 죄를 지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죄를 짓고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말라. 죄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죄의 대가는 죽음이요, 저주다. 아무리 도망가도 저주가 쫓아다닐 것이다.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저주받으셨음을 믿고, 그분께 피난하는 길이다. 자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기가 막힌 저주와 사망에서 건지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오! 이런 놀라운 은혜를 내가 받았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갑자기 죽음이 내게 닥쳤을 때, 내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겠는가? 그동안 행한 봉사와 선행이 과연 나를 당당하게 할까? 어림없다. 거기에 비해 나의 죄악과 교만이 산과 같은데 어떻게 그 알량한 한 줌의 선행으로 나아가겠는가? 그래서 나는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하고 또 감격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어리석고 미련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그냥 뛰어난 선생,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의인정도로만 간주한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예수님이나 부처나 동일하고, 자기도 잘만하면 예수가 될 수 있다고 헛소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우주에서 유일하신 구주이시다. 예수님의 유일성을 잊지 말자.

 

주 예수께서 제 죄를 대속하셨음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유일한 구주되십니다.

 

◆ 에바에 갇힌 여인

 

(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니 그 때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에바는 '바구니'란 뜻이다. 보통 1에바의 크기는 22리터 정도로 간주한다. 즉 2리터 생수병 11개들이다. 그러나 그 정도 부피에 여인이 앉아있기에는 너무 좁다. 여기에서 에바는 부피 단위라기보다는 단순히 바구니라는 의미로 사용된 듯하다.

 

에바에 앉은 여인은 무엇을 비유하는 것일까?

천사는 '악'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즉 '악'을 바구니에 넣고 무거운 납 조각을 얹어서 봉인해버렸다. 그리고 학의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이 그 에바를 시날 땅으로 옮겨서 그것을 위한 집을 짓고, 그 집 속에 가두어버렸다.

 

시날 땅은 바벨론이 있는 땅이다(단 1:2). 바벨론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직선거리로는 870km나 떨어지고 도로 거리로는 1,100km나 떨어진 곳이다.  과거에 성전을 파괴했던 나라의 수도였던 바벨론은 이제 저주받은 땅이 될 것이다(사 13:19). 이 에바를 이런 바벨론땅으로 보내고 봉인함은 앞으로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자들이 더는 훼방할 수 없도록 하실 것을 비유적으로 보이심이다.

 

이스라엘은 성전을 지을 때 주변 이민족으로부터 많은 방해를 받았다. 가뜩이나 연약한 국력인데 주변국의 방해를 받자 좌절하고 건축을 멈추었다. 이제 손 놓고 있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격려하시고 방해를 제거해주실 것을 약속하심이다. 결국 이러한 격려에 힘입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완공하기에 이른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우리를 못살게 구는 세상의 악은 이렇게 봉인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심을 본다. 우리가 불가능하게 보이는 상황도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종종 우울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염려를 버리고 조바심을 내려놓자.  

 

주님,

제가 염려와 싸우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담대하고, 즐거워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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