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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3장1-10 /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메시아에 대한 예언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9월9일(금)■
 
(스가랴 3장)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묵상/슥 3:1-10)


◆ 대제사장 여호수아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수아'는 히브리어의 발음이 '예호슈아'인데, 의미가 '여호와께서 구원하심'이란 뜻이다.
여호수아는 후에 '예수아'(스 2:2)로 바뀌었고, 이 발음이 신약에서 그대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아'로 불리웠을 것이다.


성경에서 특별히 언급된 여호수아는 언제나 예수님의 예표였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입성한 것은 미래에 오실 메시아께서 성도들을 이끌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실 것에 대한 예표적 사건이었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여호수아도 마찬가지다. 그도 예수님의 예표다.
오늘 본문의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당시의 실존 인물이다.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을 세우는데 주축이 된 대제사장이다(학 2:2-4).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통해서 이 환상을 보이심은 당시 사람들을 위로하시기 위함과 동시에 미래에 오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말씀하시기 위함이다.


◆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2)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 사탄은 그를 대적하였다. 아마도 끊임없는 트집으로 하나님께 고소했을 것이다.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 여호수아의 모습은 마치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았다. 대제사장 자격이 없는 자다. 다 타지는 않았지만 사용할만한 목재로 간주하기도 어려운 초라한 모습이다. 무엇에 쓸 수 있으랴?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귀하게 바꾸시기로 하셨다.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고 하시며, 스가랴가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워주실 것을 간청하자 곧 그 머리에 씌웠다. 모름지기 대제사장이란 머리에 관을 쓴 것부터 정결한 세마포 옷을 온몸에 둘러야 한다.


오늘 본문의 광경은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탕자의 비유와 닮았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힐 것을 명했다(눅 15:22). 그에게 가락지를 끼우고 크게 기뻐하면서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가 받은 은총이다.


평생 사탄의 트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들은 늘 자학하며 슬픔과 비통에 잠겨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에 그슬린 쓸모없는 목재 정도로 여긴다. 그들은 그것이 불신이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겸손으로 착각하고 그러한 삶을 지속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죄악을 제거하셨다. 내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시고, 나를 기뻐하시며 잔치하신 분이시다.
나의 부족함에 자책하며 사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부족함에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은 나를 받아주시고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히셨음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삶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 전혀 반대로 신앙생활을 한다. 자기가 노력해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부족함이 없어야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종교 생활이 되고 어렵고 힘든 것이다.


음식이란 위로 들어가서 아래로 나오는 것이 순리다. 그것이 즐겁다. 그러나 아래로 넣어서 위로 나오게 하면 그때부터 고문이고 고통이다. 많은 사람이 방향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종교가 짐이 되고 고통이 되며 불행해졌다.


올바른 신앙의 방향이란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높이신 내 신분을 자각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즐거워하는 바로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후에 순종이며 예배며 봉사가 의미가 있게 된다.


지금도 종교의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저도 다 알아요.
알고 있었다고? 아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그것을 믿고 감격하며 감사해본 적이 없다. 그냥 지식으로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 그리스도의 예표


(8)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예표'를 새번역성경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표'라고 번역했다.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이러한 은혜의 광경은 미래에 오실 메시아께서 우리에게 이루실 사역에 대한 예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종 '싹'을 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새번역 성경은 '내가 이제 새싹이라고 부르는 나의 종을 보내겠다'라고 번역했다.


새싹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은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렘 23:5)


예레미야서에 언급된 의로운 '가지'(히/쩨마흐)가 곧 스가랴서의 '새싹'(히/쩨마흐)과 같은 단어다. 흥미로운 일은 이사야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가지'를 쩨마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네쎄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미래에 메시아 되신 분께서 '나사렛'사람임을 암시하는 말이었다고 한다(마 2:23).




◆ 새로운 시대


(9)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오늘 본문에 놀라운 약속이 있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9절)


이 말씀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서 하루에 온 인류의 죄를 제거하심을 예언하시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히 9:28)


이런 은총이 임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오늘 본문에는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한다고 나와 있다. 평화롭고, 풍성한 삶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거듭난 후에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성도들이 서로 화목하며,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서 원수마저 용서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복음의 진리를 전하게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 은총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고 있음을 잊지 말자.


주님,
저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저의 모든 죄를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루에 제거해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감사하며 저도 사람을 용서하고 살겠습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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