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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게 서서

by 【고동엽】 2022. 11. 18.

갈 5:1          

1. 오늘은 삼일절  삼일절 기념 주일입니다.
1909년 한일합방후 10년이 되던 1919년 3월1일 정오에 기독교계 대표 16명, 천도교 대표 15명, 불교 대표 2명 등 33인의 민족 대표가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함으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국 211개처에서 1542회의 집회가 이루어졌고 2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7,500여명의 사망자와 16,000여명의 부상자와 47,000여명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투옥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1945년 2차대 전을 일으킨 일본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항복함으로 1948년 우리는 대한 독립 국가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해방과 함께 38선이 그어지면서 남과 북은 다른 체제로 분단되어 하나의 민족이 근 반세기 동안 총부리를 겨루고 왕래를 끝인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오늘 우리는 삼일절을 다시 맞게 되었고, 북은 식량난으로 남은 외환 위기로 모두 경제적 멍에를 다시멘 상태에서 남북의 통치자들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된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본 교단 총회는 총회 장의 명의로 3.1절 목회 서신을 통하여 전국 교회들에게 삼일 정신을 이어 받아 사회 봉사 주일로 지킬 것을 당부해 왔습니다.

2. 그러면 삼일 운동의 정신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운동의 근거가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삼일 운동은 불의(不義)에 대한 정의(正義)의 항거(抗拒)이었습니다. 그 항거는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닌, 무저항적 평화 운동이었고, 양심에 대한 호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일 운동의 근거는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 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이 말씀에 근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불의를 용납치 않으시고 미워하시고 모든 불 의한 세력들을 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불 의한 국가, 불 의한 권력, 불 의한 재물, 불 의한 성공, 불 의한 향락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기미년 삼일 운동의 정신은 바로 그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구체적으로 행동화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 의한 세력에게 당하는 피압박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의 간 구를 들으시고 속박의 멍에를 꺾어 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 역사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시기에, 불의를 징벌할 때는 또다른 불 의한 세력을 들어 징치하군 하였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징계이기도 합니다. 그좋은 예들이 앗수르와 바벨론과, 애굽과 불레셋의 세력들이었습니다. 저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나라들이었기에, 서로가 서로를 들어 치게 하였고, 또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불의를 행할 때마다 이들 나라들을 몽둥이로 사용하여 저들의 죄를 회개토록 하였습니다.

3. 오늘 우리에게 주는 삼일 운동의 정신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불의(不義)에 대한 항거(抗拒)입니다. 삼일 운동의 민족 대표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희생하면서 속죄 제물이 되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굳세게 서서 종의 멍에를 떨쳐 버려야 하겠다” 는 의식이 남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신에 대한 거듭남의 결단입니다. 죄악의 세력에서 자 유함을 입은 내가 다시 그 죄악의 멍에를 멜 수 없다는 자기 성찰의 결단적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삼일 운동은 철저한 기독교 신앙인 들의 자기 성찰(省察)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 운동이 자발적이었고, 총검 앞에 두려움이 없었고, 고차원적 질서 운동이었습니다. 맨주먹으로 일어선 양심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에 있어서 삼일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역대정권이 바뀌고 국경일을 맞을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삼일 정신을 계승하여...’라는 말들을 자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삼일 정신이 얼마나 계승되어 왔는지 이런 기회에 다시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삼일 정신은 불의에 대한 항거 운동이었다면, 우리 사회의 오늘 불의한것들에 대하여 얼마나 우리가 저항하고 있습니까? 모두 구조적(構造的)으로 타락(墮落)하였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정권교체, 경제 개혁, 제도 개선, 고통 분담, 등등의 말에 이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사람을 바꾸고, 법을 고치고, 제도를 개선하려 해도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심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렵게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더 교만해지고, 안하무인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는 사람들이 재물을 가지면 허랑 방탕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입니다.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이 세상에서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온갖 불의(不義)를 다 행할 수 있는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들이 되는 것이 우선 과제입니다. 땅만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 것들만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새것을 기대하겠습니까? 그래서 잠언 서에 지혜 자는 벌써 이것을 간파하기를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죄로부터 거듭난 새사람이 아니고서는 새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란 말입니다. 있다면 정도의 차이일 뿐, 죄에서 해방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 새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엊그제 우리는 15대 대통령 취임 식전에서 이 나라 최고통수권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면면(面面)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얼굴 얼굴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었습니까? 모두 처음 취임할 때는 모두 애국 애족의 충정을 가지고 하나같이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감당하겠다고 다 서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들이 어떻습니까? 헌법을 준수하겠다던 사람들이 왜 자꾸만 헌법을 뜯어 고쳤으며, 국가를 보위하여 민생을 잘 살게 하겠다던 사람들이 왜 정경 유착이 되어 오늘날 이러한 결과를 낳게 하였는가? 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도서 기자의 말이 새삼 적중하게 느껴집니다. 정말로 해아래서 무슨 새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초대 제헌국회시 그래도 이 나라 헌법을 제정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을 항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나라를 되찾아 처음 국회 위원들이 처음 모여서 원구성을 할 때 임시의장이 된 이승만 의장이 순서에도 없이 이윤영위원으로 기도하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윤영 위원은 목사님이었고, 이승만 의장은 장로님이었음을 볼 때 다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 헌법은 탄생하였습니다. 지금 그 당시 국회회록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승만 위원 의장 석에 등단 일동 박수)
임시의장 이승만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던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위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윤영위원 기도 일동 기립)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문 전문이 지금도 의사록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세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보면 어떻습니까? 그 동안 경제 개발에 정신이 팔려, 모두 물신을 섬기는 일로 국민들 전체가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들 잘들 논다. 어디 너희들 힘만으로 되는지 한번 보라’고 이번에 IMF라는 바람에 떨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시금 삼일 정신을 되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굳게 서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리스도께로부터 자 유함을 얻은 참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임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불의에 대한 항거할 줄 아는 크리스천들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는 이 시점에서 크리스천의 책임이 더욱 커졌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를 온통 병들게 만들었던 것은 부정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정직이 사회 구석구석 마다,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우리를 얽어맨 힘은 이러한 불 의한 세력의 힘입니다.
이러한 불 의한 세력에 저항하는 운동을 누가 앞장서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이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거짓됨과 불 의한 수단과 방법을 내 몰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멍에는 총칼의 멍에가 아니라, 거짓됨의 멍에들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사회계층에서 모두 불 의한 관행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말들을 듣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그래도 정의의 보류요, 양심의 보류라 고할 수 있는 지도층들이 그러한 관행에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면, 어디에서 개혁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 스스로가 잘못된 관행들은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번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우리 사회의 <총체적 개혁>을 해 나가야 하겠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 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종교인들의 몫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바르게 사는 법>을 보여주어야 하는 불의에 대한 저항 정신입니다. 쓰레기 하나도 재대로 제 위치에 버리도록 모법을 보어야 할 것이고,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애국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손쉬운 것부터 감당하는 지혜를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민 단체 운동이 바로 크리스천들이 앞장서는 운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과 정의로움에 일종 저항 단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회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하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그것이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이 될 것입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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