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창세기 37장12-36 /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리다

by 【고동엽】 2022. 11. 16.
■2022년 6월 3일(금)■
 
(창세기 37장)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묵상/창 37:12-36)


◆ 요셉이 노예로 팔리다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까지가서 양들을 치고 있었다. 야곱이 있는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100km가 넘는 거리다.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고, 이틀은 걸려야 하는 거리다. 양을 치려면 목초지를 찾아 헤매야 하므로 양을 먹이면서 이동하다가 거기까지 간 것 같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요셉을 보내기로 했다. 총명한 요셉이 형들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 솔직하게 잘 고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곧 드러난다.


요셉이 그 먼 거리를 가서 그 형들에게 도착했을 때, 형들은 절대 반기지 않았다. 이들은 오히려 꼴 보기 싫었던 요셉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열 명의 형들 중에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을 보면 평소에 이들이 얼마나 요셉을 미워했는지 짐작이 된다.


이때 이들의 나이는 요셉의 나이가 17세, 큰형 르우벤이 23세인 것을 고려할 때, 이 나이 사이에 11명을 늘어놓으면, 절반은 이십 대 초반, 절반은 십 대 후반일 것이다.


큰형 르우벤이 동생들에게 요셉을 죽이지 말고 구덩이에 던져넣을 것을 제시했다.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넣으면 자연스럽게 죽을 것이다. 직접 죽이지 않고 그렇게 죽이면 죄책감도 덜하지 않겠는가? 이런 논리는 동생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르우벤은 나중에 요셉을 몰래 빼내어서 아버지께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장남의 도리를 안 셈이다.


요셉이 오자 형들은 요셉의 옷을 벗기고, 그를 구덩이에 던져넣었다. 속옷 차림으로 구덩이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는 동생을 조소하고, 근처에서 시시덕대며 음식을 먹고 있는 이들은 정말로 무섭도록 잔인해 보인다. 이들의 사고 수준은 오늘날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철없는 나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이렇게 동생을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서 단 한 줌의 신앙적인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요셉은 내버려 두면 물도 없는 구덩이에서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유다가 꾀를 낸다. 그를 꺼내서 노예로 팔아버리자. 죽이는 것보다는 죄책감이 덜할 것이 아닌가? 유다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실행되었다. 형들은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20에 팔았다.




요셉의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은 말도 못 한 큰 상처이며, 하루아침에 아버지의 사랑받는 위치에서 이방인의 학대받는 노예로 전락했다는 것도 큰 고통이 될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 이제 요셉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꿈과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 야곱의 슬픔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형들은 자기 아버지에게 피 묻은 요셉의 옷을 보여준다. 야곱은 과거에 자기 아버지 이삭을 속였는데, 이제는 자기 자식들에게 속는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확신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열두 명의 아들 중에 가장 똑똑한 아들이었다.


요셉의 형들은 자기 아버지의 극심한 슬픔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공범인 마당에 누구도 정직하게 상황을 설명해줄 순 없었다. 이들은 한참 후에 자기들도 죽을 지경에 놓이자 자신들의 죄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다고 말했다(창 42:21-22). 이들의 깊은 의식 속에 요셉을 팔았다는 죄책감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죄를 짓고 행복하게 살 순 없다.


야곱은 무려 22년간을 요셉이 죽었다고 믿었다.
외동딸 디나의 겁탈,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그리고 요셉의 죽음, 근 2년 사이에 연달아 일어난 사건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창 35:11) 하셨다. 그런데 이게 뭔가? 현실은 전혀 달라보인다. 


과연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실까?
과연 하나님은 정말로 나와 함께 하시는가?


사람들은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대뜸 하나님부터 원망한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억울한 것으로 따지자면 하나님만큼 억울한 분도 없을 것이다. 온갖 잘못은 인간들이 저질러놓고는 그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하나님께 책임을 묻는다.


종종 인생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도 가슴 아파하심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자기의 선하신 뜻을 위해 정확하게 역사를 이끌고 계시지만, 전능하신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가장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도 그중에 하나다. 십자가만큼 당혹스러운 것도 없다. 하나님께 항의하러 갔다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린 것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


야곱의 슬픔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자녀들이 아무리 위로해도 야곱은 위로받기를 거절했다. 야곱은 정말로 죽고 싶어 했다(35).
세상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는 노인네가 되었다. 살아도 산 것같지 않은 인생.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게 야곱의 위대한 점이다.


요셉은 죽지 않았다.
그는 미래에 이스라엘을 위해 마련된 자였다.
이제 흥미진진한 요셉의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