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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창세기 35장16-29 / 라헬의 죽음과 르우벤의 패륜

by 【고동엽】 2022. 11. 16.
■2022년 5월30일(월)■
 
(창세기 35장)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묵상/창 35:16-29)


◆ 라헬의 죽음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자식을 낳음으로써 비로소 야곱은 아들이 12명이 되었다. 이로써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초가 완성되었다. 베냐민은 지금까지 11명의 아들 중 가장 막내였던 요셉보다 무려 15년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라헬은 그토록 자식을 더 낳기를 원했지만, 뒤늦게야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죽게 되었으므로 자신이 돌볼 수 없으리라는 슬픈 마음에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렀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야곱은 후에 그 이름을 비슷한 발음인 '베냐민'으로 바꾸었다.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오른손은 행복을 의미한다고 한다.


라헬의 죽음은 뜻밖이다.
라헬은 에브랏 근방에서 죽었는데, 에브랏은 후에 베들레헴과 같은 지역으로 취급되었다. 벧엘은 예루살렘 북쪽이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이다. 벧엘에서 에브랏까지는 도보로 대략 30km 거리다.


라헬은 베들레헴에 다가와서 죽었다. 이동 중에 죽은 것이다.
왜 야곱은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이동을 시작했을까? 서두를 이유도 없고,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이동을 강행했을까? 야곱의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라헬이 아들을 낳을 정도라면, 아직 젊은 나이다.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  대략 사십 대 중반에서 오십 대 초반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난산하고 죽었다.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야곱에게 특별한 슬픔이다.


28절에 보면 야곱의 아버지 이삭도 죽은 기록이 나오는데, 언뜻 보면 라헬의 죽음 직후에 일어난 사건 같지만, 사실 이삭의 죽음은 라헬의 죽은 지 13~14년 이후의 일이다. 오히려 이삭의 죽음보다 12년 정도 앞서서 요셉의 실종 사건이 먼저 벌어진다.




◆ 르우벤의 패륜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라헬의 죽음에 겹쳐서 이젠 장남 르우벤이 야곱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죄를 저질렀다. 기가 막힌 패륜이다. 장남이 이러하니 밑의 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그런데 야곱의 태도가 매우 모호하다.
단호하게 책망해야 하건만, 야곱은 단지 '들었더라'로 끝이다. 한마디로 자녀도 아내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유부단하고 속으로 구시렁대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못하는 겁 많고 소심한 사람이다. 이쯤 되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답답하고 본인도 답답했을 듯하다. 


야곱에게 계속되는 고난.
딸 디나의 겁탈 사건에 이어서, 이제는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그리고 르우벤의 패륜까지.
이뿐 아니다. 더 큰 사건이 야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는 것이다.


도대체 복을 약속하시고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야곱에게는 당시에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붙었고, 후대에는 메시아의 조상, 믿음의 선진,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은 자라고 칭송되었지만, 정작 야곱의 일생은 고난과 슬픔의 연속이었다.


야곱은 130살이 되어서 애굽의 바로를 만났을 때 자기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7:9)


험악한 세월 - 그것이 야곱이 스스로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한가지는 분명하다. 야곱은 그 험악한 인생길에서 신앙의 사람으로 살았고, 평생에 걸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배웠다.  비록 야곱은 자기 인생을 만족하지 못했을지라도 야곱의 인생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교훈과 위로를 남기고 있다.


야곱은 말년에 병들어서 죽어갈 때 하나님을 향해 이런 고백을 한다.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 48:15)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우리는 야곱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나를 기르신 하나님!


우리 인생은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 참 많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알아내려고 골몰하지만, 끝내 알 수 없는 일들이 태반이다.  안 풀리는 문제 붙잡고 있다가 그 뒤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시험이 끝나면 해설이 포함된 정답이 주어지듯이 천국에 가면 모든 것이 또렷해질 것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욥처럼 하나님을 함부로 판단하는 잘못은 저지르지 말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선하심은 변하지 않는다.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당신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을 신뢰합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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