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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로마서 12장6-8 / 교회를 위한 일곱 가지 은사

by 【고동엽】 2022. 11. 14.
■2022년2월9일(수)■


(로마서 12장)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묵상/롬 12:6-9)


◆ 모든 사람에게 은사가 주어졌다.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은사란 사전적인 의미가 '왕이 주는 선물'이다.  영어에서는 단순히 gift라고 썼지만, 은혜의 의미가 담긴 '은사'라는 말이 귀하다고 생각한다. 


왕이 주는 선물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지극히 높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셔서 봉사하게 하신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는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 등을 언급했다. 이런 은사는 교회의 일부에게 주시는 은사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은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시는 은사다. 


사람이 거듭나서 교회에 가입하면, 그에게 봉사를 위한 은사가 주어진다. 예외는 없다. 교회의 어느 누구도 은사가 없기 때문에 봉사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주어진 은사를 따라 충성해야 한다.




◆ 7가지 은사


오늘 본문에는 7가지 은사가 나열되어 있다.
자세히 살펴서 자신이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분별할 필요가 있다.


●예언 - 본래 선지자들이 담당하던 영역이다. 
앞 일을 미리 말하는 사역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역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언이란 말보다는 대언(代言)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이 은사는 성경 기록과 교회를 세우는 일에 매우 중요한 은사였다.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서있다(엡 2:20). 우리가 읽는 신약 성경은 모두 사도와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사도와 선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존재한다면 성경은 부피가 더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세워지고 난 뒤에도 예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록 오늘날 이 은사는 성경 기록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성도들의 영혼을 일깨우며, 말씀에 바로 서도록 하는 사역에 사용된다(고전 14:24). 


● 섬기는 일 - 이 단어는 '집사'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이다. 아마도 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많이 부어진 은사일 것이다.  남을 위해 봉사할 영역은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매우 즐겁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봉사에 임한다. 


● 가르치는 자 - 성경 교사다. 단순히 잘 가르친다고 교사의 은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옛 사람의 능력일 수 있다. 하나님의 은사로서 교사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남다른 안목으로 성경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진리의 말씀을 잘 파악하여 전달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진리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 위로하는 자 - 헬라어 '파라칼레오'라는 단어는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위로(마 5:4), 간구(마 14:36), 권면(고전 1:10) 등이다. 특히 바울은 '위로'와 '권면'의 의미로 많이 사용했다. 


교회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형제 자매들의 개인적인 권면과 위로들이 신앙을 바로 세우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여러 형제들을 믿음으로 잘 권면함으로써 교회를 활발하게 한다. 성경의 바나바가 그러한 사람이었다(행 4:36).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가서 상담한다.


● 구제하는 자 - 최초의 집사직은 구제하는 일때문에 생겼다. 사도행전에서 구제하는 일에 성도 간에 분쟁이 생기자 사도들이 일곱 명의 집사를 뽑고 그들에게 구제를 맡겼다(행 6:10-6). 
구제하는 자는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자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그러한 은사를 받은 자일수도 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해야 한다.  성실함에 해당하는 '하플로테티'는 단순한, 순전함이란 의미를 가진다. 즉 구제하는 자는 사심없이 공정하게 해야 한다. 친하다는 이유로 부잣집 아들 외국 유학에는 교회 헌금으로 후원하면서 정작 가난해서 대학 등록금조차 마련하기 힘든 사람에게는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성실이다. 


● 다스리는 자 - 이것은 교회의 감독과 장로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다. 교회가 맡기니 이 역할을 하는 자도 있지만, 하나님께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다. 하나님께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매우 탁월하게 교회를 잘 이끌어 간다. 성도들의 은사를 발굴하여 적합한 위치에 세우고, 봉사하게 만든다. 이런 은사를 받은 자는 부지런해야 한다.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게으른 자는 자격이 없다. 


과거에 청소년 사역을 할 때, 나는 교사의 은사는 있지만, 다스리는 은사는 없어서 조직이 미미했다. 그런데 대학 후배가 나를 돕겠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은사를 받은 형제였다. 그가 조직을 맡자 갑자기 조직이 커졌다. 여기 저기서 모임이 생기고, 활발해졌다. 나는 그때 은사가 함께 하면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알게 되었다. 


● 긍휼을 베푸는 자 -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 마음에 부어진 자다. 이런 사람들은 곤란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형제의 고통을  마음 속 깊이 동조하며 그들을 도울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한다. 그것이 물질적인 도움일 수도 있고, 시간을 내어서 함께 있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함께 우는 것일 수도 있고, 기꺼이 그를 위해 땀흘려 일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슬픔에 처했을 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보다 말없이 함께 슬퍼해주는 사람이 더 위로가 될 때도 있다. 긍휼의 은사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자들이 목자의 마음을 가진 자이며, 이런 자들로 덕분에 공동체는 가족과 같은 느낌을 주고 서로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진다. 


자, 당신은 위의 일곱가지 은사 중에서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는가?


위의 일곱 가지 은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일 수도 있지만, 교회가 그에게 일을 맡긴 것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행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일 수도 있다.  가령 가르치는 은사가 없어도 가르쳐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을 마다할 순 없다. 


다만 하나님께 은사를 받지 않은 자가 그 일을 해내려면 무척 고달프고 힘들 것이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 은사를 구할 필요가 있다. 은사가 임할 때 그는 훨씬 수월하게 일을 해낼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러나 은사가 없다면, 그 사역은 임시적일 뿐, 내려놓는 것도 형제들과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 


은사를 따라 협력하며 봉사하는 교회는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가!


교사의 은사를 가진 에스라와 다스리는 은사를 가진 느헤미야가 협력함으로써 유다는 재건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느 8:9).


하나님 앞에서는 은사가 모두 똑같다.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다. 


서로 싱데빙의 은사를 존중하며, 경쟁하기 보다는 협력함으로써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주님,
주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따라 힘껏 봉사하며, 충성하다가 주님 부르실 때 기쁨으로 갈 수 있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제대로 은사를 발휘하여 서로 세워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도록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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