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로마서 11장30-36 / 하나님의 의도와 긍휼

by 【고동엽】 2022. 11. 14.
■2022년2월6일(토)■
 
(로마서 11장)
 
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묵상/롬 11:30-36)


◆ 하나님의 의도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다.


불쌍히 여긴다는 뜻을 가진 '긍휼'이란 단어는 학생들 교과서나 사람들의 글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다.  별로 베풀려는 마음이 없기도 하거니와 또한 불쌍히 여김 받는 것 자체를 자존심 상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귀중한 덕목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생명줄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긍휼이 임하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인간들 자신이 긍휼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욥같이 대단한 의인도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자만과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게 하시고, 욥도 십자가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매일 정욕에 시달리고, 매일 넘어지며, 종종 고난과 역경에 처하게 되도록 허락하신 이유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겸손할 것과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함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일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심은 단순히 우리의 희생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더는 자기 의에 대한 헛된 희망을 갖지 말고, 오직 날마다 주님의 긍휼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만을 붙잡으라는 교훈일 것이다(눅 9:23, 갈 2:20).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 따위는 필요없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을 '개'로 비유하신 예수님 앞에서 자존심을 버렸다. 
내 자존심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내 딸이 귀신들려서 비참한 상황인데. 이것보다 더한 모욕도 참을 수 있다. 그게 어미의 마음이다. 
당신이 저를 뭐라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저는 당신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이 겸손과 이 절박함에 예수님은 정확히 응답하셨다. 딸의 구원만이 아니라, 이 여인도 구원받았다.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마 15:28)라고 하셨다. 누가 이 여인을 무시하겠는가? 온 세상이 이 여인을 칭찬한다. 
자격없다고 생각한 자들이 긍휼을 입고, 반면에 자격이 넘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버림을 받았다.


오 주님, 저는 주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긍휼이 제 생명보다 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만심으로 가득한 이스라엘을 부수셨다. 그리고 온 세계에 흩어지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을 없애지는 않으셨다.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과 의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거의 1900년 만에 기적적으로 나라를 되찾았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다. 이제 그들은 구주 예수님께 나아와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할 시점이다.


과연 그들이 십자가 앞에 굴복할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어림 없다. 그들은 여전히 헛된 민족적 자만심으로 꽉차 있다.  심지어 이방인 교회까지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이들에게 십자가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님을 일깨워야 한다.  자신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때문에 자신들이 살게 됨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때문에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시기에 예기치 않은 성령의 역사가 이스라엘에 일어날 것이다. 
이스라엘 온 민족에게 회개의 바람이 불 것이다. 부흥은 언제나 그렇게 일어났다. 성령의 압도하는 역사에 모두가 굴복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더는 민족적 자부심을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십자가의 은총과 하나님의 긍휼만을 자랑할 것이다. 그 때가 주님께서 오실 때이며, 이스라엘이 완전히 회복될 때이다.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여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바울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에 감탄할 때가 있다. 
아마도 신앙생활이란, 이렇게 하나님을 탐구하며, 감탄하고, 감격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함으로써 그를 기쁘게 하는 것 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탐구하고 그가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 감격해하는 것이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대접하겠다고 열심히 요리를 준비했지만,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 앞에서 깊은 존경과 경외함으로 말씀을 경청했다. 누가 예수님을 더 기쁘게 했을까? 당연히 마리아다. 마르다도 필요한 일이며, 좋은 일을 했지만, 마리아가 더 칭찬받았다. 그리고 후에 마리아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위해 결단한다. 300데나리온의 옥합을 사서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이다. 이런 헌신은 오로지 예수님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 잘하는 종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탄하며 경외하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 거기에서 진정한 희생과 헌신이 나온다. 


◆ 봉사와 헌금에 대한 올바른 태도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35)


우리는 약간의 봉사와 희생, 그리고 헌금을 하고는 얼마나 생색내는지. 
내가 이렇게 했으니 당신은 내게 복을 주어야 합니다라고 떼를 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주님께로 부터 온 것이다. 무엇을 한들 우리는 그의 은혜를 갚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께 채권자처럼 행동할 순 없다.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았다. 


우리가 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세금 내는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헌금이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다. 
한마디로 헌금이란 믿음과 감사의 마음에서 드려져야 한다. 그런 개념에서 드려지지 않은 헌금은 모두가 불손한 것이고 건방진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헌물을 바칠 때 이렇게 고백하라고 했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신 26:10)


우리도 헌금할 때나 봉사할 때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의 일부를 바칩니다."


주님,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 드려지는 삶이야 말로 복되고 보람됩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3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