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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로마서 12장3-5 / 믿음의 분량을 따라 지혜롭게 봉사하라

by 【고동엽】 2022. 11. 14.
■2022년2월8일(화)■
 
(로마서 12장)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묵상/롬 12:3-5)


◆ 믿음의 분량을 따라 봉사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성도의 믿음은 묘한 구조로 되어 있다.
내 믿음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다.
내 믿음이란 주님이 부르실 때 응답하고, 무엇을 주실 때 손을 내미는 정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능력이 나오는 믿음은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beautiful gate)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치자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몰려왔다. 그때 베드로는 자기가 높임 받는 것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그 믿음은 '예수로 말미암은 난 믿음'이다.
내가 믿습니다를 수백 번 반복해서 만든 내 믿음이 아니다.
인간의 믿음은 어느 종교마다 존재한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은 오직 예수 믿는 자에게만 임하신다.


사람이 구원받으면 기본적으로 동일한 믿음이 주어진다.
베드로는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벧후 1:1)을 주셨음을 말하며, 유다는 이 믿음이 '단번에' 주어졌음을 전한다(유 1:3).  우리는 이 믿음이 임하면서 창조와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이 너무나 당연하게 믿어 졌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성도들이 이런 부활 믿음이 있음은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신다는 증거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을 언급한다.
우리 모두 동일한 믿음을 받았는데,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니, 이것은 무슨 말씀인가?
믿음도 분량이 있는가?
이 말씀은 구원에 필요한 믿음이 아니라, 사역에 필요한 믿음이다.
모든 성도가 구원을 위한 믿음은 동일하게 받았다. 그러나 사역을 위한 믿음은 제각기 부여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면 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그에게 사역에 적합한 믿음의 분량을 주신다.  각 사람은 주님께서 주신 믿음을 따라 봉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간혹 교만해져서 그 믿음의 분량을 초과해서 생각하고 분수를 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이 형제들 간에 분쟁을 일으키고 교회에 어려움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가르치는 은사를 받지 못한 자가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에 강단에 선다고 생각해보자. 그의 말씀을 들어주는 것에는 성도들의 인내가 필요하다. 만일 자신에게 은사가 없는데 불가피하게 강단에 서야 한다면 교사로서 앞에 서서 무엇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하게 형제로서 권면한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전하는 게 좋다. 그리고 권면은 짧고 분명해야 한다. 장황하고 잡다한 권면은 청중에게 도움이 안 된다. 비록 새로운 것을 가르치지는 못해도 분명한 권면을 통해서 형제들은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마음을 품은 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말씀은 잘 전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것이 서툰 사람이 있다. 이런 자가 상담하면 오히려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오히려 상담은 사람을 잘 권면하는 자가 맡아야 한다. 단지 내가 강단에 선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저것 모든 것에서 탁월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믿음의 분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섬기는 것, 구제하는 것 모두 마찬가지다. 각 사람은 자기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을 따라 일해야 한다. 그게 아름답고 그런 겸손한 섬김이 하나님 앞에서 상을 얻는다. 겸손이 빠진 사역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 분수를 알고 겸손하자.
 
 
◆ 여러 지체와 한 몸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주지 않으셨다.
어떤 교회에 가면 한 사람이 말씀도 전하고 섬기기도 하고 상담도 하고, 재정도 관리한다. 몹시 나쁜 구조다. 우리는 서로 지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족하게 하심은 서로가 지체로서 도울 것을 교훈하심이다.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4)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이 크다.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저 사람이 나와 같이 일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 안 된다.  많은 공동체가 이 부분에서 실패한다. 손이 발 더러 자기처럼 행동할 것을 요구하면 안 된다. 
 
우리 교회는 이런 것이 부족하다고 험담해도 안 된다.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더러 그것을 보충하라고 하시는 교훈이다. 능력이 못 미치면 기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평생 자기를 만족시켜줄 교회를 찾아다닌다. 그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다. 교회는 내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내가 지체로서 드려지고, 함께 도우며 이 세상에서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실천하는 곳이다.
 
만일 목사가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교회를 반드시 떠나라. 목사를 불쌍히 여겨서 남아주거나 인간관계가 아까워서 남는 것처럼 멍청한 일이 없다. 내 영혼이 지옥에 가도 상관없다면 남아라. 왜곡된 설교를 계속 들으면 결국 나도 모르게 물들고 신앙이 왜곡된다. 내가 아무리 성경에 박식해도 그럴듯한 논리를 펼치며 제법 은혜가 되는 예화도 슬쩍 끼어넣은 설교를 듣다 보면 미혹을 피할 수 없다. 아무도 나는 그럴 일 없다고 큰소리칠 수 없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단지 사람들과의 갈등 때문이라면,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다. 기도하고 사랑하며 도와야 할 문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거꾸로 행동한다. 진리에 대한 문제는 참고, 사람과의 갈등은 못 참는다. 
 
주님,
주님께서 제게 주신 믿음의 분량을 따라 지혜롭게 생각하고, 은사를 따라 봉사하며, 분수를 넘지 않는 겸손함을 허락해주십시오. 형제의 부족함을 비판하지 말고, 오히려 도와서 채우려는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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