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37장1-24 / 엘리후 -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야 할 때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2-1(수)■
 
(욥기 37장)
 
1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3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6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느니라
7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8 그러나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무느니라
9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10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11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
12 그는 감싸고 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그는 땅과 육지 표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느니라
13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15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16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17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18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21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22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23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묵상/욥 37:1-24)


◆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할 때


(7)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7절에서 '표를 주시다'라는 말은 이해가 어렵다. 오히려 이전 번역인 개역성경이 더 잘 번역했다. 개역성경은 '손을 봉하시나니'라고 했다. 킹제임스버전이나, 우리말 성경도 '봉인하다'라고 번역했다.  손이 묶인다는 것이다. 즉 큰 비가 내리면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새번역성경도 이를 감안해서 잘 번역했다. 
"눈이나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봅니다."(표준새번역)
 
천둥치고, 번개가 치며 큰 비가 내릴 때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다. 
인간들은 하루종일 자기 할 일에만 몰두하고, 자기 쾌락만 탐닉한다. 도대체 하나님을 바라볼 시간도, 생각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둥을 치시고 번개를 번쩍이신다. 정신차리라는 것이다. 그래도 정신을 못차리면 큰 비 곧 물을 퍼부어서 정신을 일깨우신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엘리후의 교훈이 흥미롭다.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15)
하나님께서는 자연현상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할 것을 교훈하신다. 




◆ 이 모든 일의 목적


(13)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엘리후는 비가 내리는 것은 단순히 징계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땅을 위하여, 그리고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이와같다. 고난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경외함과 그 앞에서 겸손해야함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사람 머리통 만한 인공태양을 만들고 30초 동안 유지한 것을 대단한 성과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구보다 백만 배가 큰 태양을 우주에 띄워놓으시고 수천 년, 수만 년을 비추셨다.  1초간 태양이 발산하는 에너지 양은 지구상의 모든 발전용량보다 1조배나 많다고 한다.
 
오늘날 지극히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서 온 세계가 쩔쩔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단순히 징계로만 결론 내릴 필요가 없다. 이것은 소모적인 활동을 잠시 멈추게 하심으로써 지구환경을 잠시 돌아보시는 것일 수 있고, 사람에게 무지와 연약함을 깨닫고, 겸손해질 것과 이제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시는 일깨움일 수도 있다.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서 우리가 신앙이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리고 교회가 더 정화되는 기회가 된다면 화가 아니라 복이다.


성도의 세계관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해야 한다. 엘리후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남풍과 따뜻한 햇볕(16-18) 등을 통해서 인간의 무지와 무력함을 잘 깨닫고 겸손해지길 요구한다. 


20절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는 너무 점잖게 번역했다.  속된 말로 번역하자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2절의 북쪽에서 나오는 황금 같은 빛이 무엇을 의미할까? 북쪽의 오로라와 같은 것일까? 아니면 북방에서 나오는 금을 의미할까? 우리는 모르지만 엘리후와 욥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북쪽에서 금빛이 나오듯이 하나님에게서는 위엄이 나온다. 우리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건방짐을 회개하고, 겸손하게 그를 경외하며 마땅한 찬양으로 그를 높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을 잃은 성도의 신앙은 볼 것도 없이 엉터리다.


엘리후의 말은 여기서 끝난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신다.


주님,
주님의 어떠하심을 제대로 알게 해주십시오.
나서기 좋아하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못된 버릇을 고쳐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시고, 진심으로 경외하는 성도가 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7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