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क्वाक पास्टर 1,910편

아름다운 면류관(잠언 1장 1절~9절)

by 【고동엽】 2024. 3. 19.
목차로 돌아가기

아름다운 면류관(잠언 119)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시골에 사는 한 어머니가 남편을 여윈 채 홀로 외아들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자신은 헐벗어도 아들에게는 좋은 옷을 입히려 했고 자신은 굶어도 아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 애썼습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자라면서 점점 아버지를 닮아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쁨이요 보람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마침내 서울로 유학을 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보고싶어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러나 하숙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어머니는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교문 앞에서 한나절이나 기다립니다. 드디어 많은 학생들 틈에 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들은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문을 나섭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 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고개를 돌립니다. "저 사람 누구예요?" 여자친구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우리 집 식모야." 남루하고 초라한 시골 아낙네를 어머니라고 하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를 피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공자(孔子) 의 제자 자유(子游)가 스승께 물었습니다.

"스승님, ()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합니다. "효란 봉양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쯤은 짐승도 할 수 있다. 효란 공경하는 것이니라." 효위백행지원(孝爲百行之源)-효는 인간의 모든 행위의 근본이 됩니다. 황새나 까마귀 같은 날짐승은 어미 새가 늙어 날 수가 없게 되면 제 둥지에 모셔놓고 죽을 때까지 모이를 물어다 먹인다고 합니다. 한낱 날짐승도 이러한데, 사람이 되어 부모를 공양하고 옷가지나 해드리는 것을 효도라고 착각할 것입니까? 198758일의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방영된 바 있는 앙케트 결과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효도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대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효는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 - 60%의 응답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극히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한다' - 겨우 6%의 응답자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젊은이들의 효에 대한 사고방식이 이렇다면 참으로 문제입니다.

언젠가 미국을 갔을 때, 저는 그곳에 살고 있는 옛친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친구도 만날 겸해서 오랜만에 그의 어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들 하나 데리고 피란 내려와 갖은 고생 다 한 그의 어머니를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부터 뵙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웬일인지 나중에 인사드리라고 극구 말립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나보다 생각했지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도 했습니다. 드디어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저는 만류(挽留)도 뿌리치고 그 어머니가 계시다는 방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는 구석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저를 보시더니 두손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저를 만나겠다고 했더니 주책없이 나서지 말라고 하면서 밖으로 못나오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음식을 주어 연명하게 해준다고 효도가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삶의 의미를 부여해드려야 합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드려야 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해드려야 합니다.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진작에 죽었어야 하는데……" "어서 죽었으면……" 이렇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자식된 자로서 이런 말을 한번이라도 들었다면 그는 불효자입니다. 어떻게 늙은 부모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습니까? 살고 싶지 않은 생을 살도록 했다면 엄청난 불효입니다.

성경말씀을 봅시다. 디모데후서 3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세의 증거를 들면서 지적합니다. "부모를 거역하며" - 부모를 거역하는 세대가 오리라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할 때의 일입니다. 중국사람들은 오랫동안 유교적인 배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기독교사상을 처음 대하면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기독교에는 조상에 대한 제사가 없고, 부모에 대한 효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그곳의 유명한 학자를 앉혀놓고 기독교와 성경에 대하여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그는 성경구절을 열거합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 신명기 2716절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2116절로 23, 잠언 155, 1920, 2020절에서는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은 정죄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잠언 3017절에서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115, 마가복음 710절로 12절에서도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합니다. 성경말씀이 이러하거늘 어찌 기독교에 효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선교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중국학자는 그 자리에서 예수를 믿겠다고 하였답니다.

효도는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우리는 축복과 구원이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불효자식도 언젠가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을 받는 것은 효도의 길을 통해서만 입니다. '효도하는 집안이 장수하고 범사에 형통하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보약을 먹는다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를 하십시오. 여기에서 출발해야 장수의 복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모는 구석방에 꼼짝못하게 가두어놓고 제자식 잘되라고 정성을 바치는 것은 헛일입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할 때에 비로소 내 자식이 내 말을 듣습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자신은 불효자이면서 효자 얻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약속 있는 계명 모든 복된 것들은 효라고 하는 기본적인 윤리로부터 시작되고, 여기에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잠언 전체의 주제가 나타나 있습니다. 잠언은 지혜자가 되게 하며, 지식을 얻게 하며, 형통하는 길을 가르쳐주며, 복된 자가 되게 하는 요지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 주제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 지혜의 근본이 이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첫 계명입니다. 둘째, '부모를 공경하라' - 부모의 훈계를 들으며 그것을 아름다운 면류관으로 여기라 합니다.

신학적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부모가 제2의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은 부모로부터 왔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2의 창조자인 부모를 통하여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생명의 창조 역사에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1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제2의 창조자인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생명의 근원에 대한 존경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모는 특별한 이웃입니다. 그 많은 이웃 가운데 혈연으로 맺어진 첫째 이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났고 제일 신세를 많이 진 이웃입니다. 그래서 이웃사랑의 제1조가 부모에 대한 공경입니다.

부모는 또한 하나님의 계시자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특별계시, 보통계시로 나누는데, 보통계시의 제1조가 가정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자매, 아내와 남편 --- 가정을 구성하는 모든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를 통해서는 공의(公義)를 배웁니다. 진노(震怒)를 배우고 징계(懲戒)를 배웁니다. 어머니를 통해서는 용서와 자비와 희생을 배웁니다. 옛부터 하나님을 아버지, 교회를 어머니로 고백하며 지내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며, 훌륭한 어머니를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지름길이 됩니다. 게다가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통하여 나를 창조하시고, 양육하시고, 교육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는 사랑의 원천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열정적인만큼 시기와 질투가 거기 있습니다. 형제의 사랑에는 거짓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의 사랑에는 배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질투와 거짓과 배신이 없는 사랑은 오직 부모의 사랑뿐입니다. 고려장(高麗葬)에 얽힌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내버리려고 지게에 업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등뒤에서 어머니는 손 닿는 대로 나뭇가지를 꺾어 자꾸 땅에 떨어뜨립니다.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나뭇가지는 왜 자꾸 꺾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산이 너무 깊어 네가 집으로 돌아갈 때에 길을 잃을까봐 그런다." 이 말을 듣자,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발걸음을 돌렸다고 합니다. 자기를 내버리려는 아들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어머니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우리는 어떤 때에 동생을 칭찬합니다. 그러면 형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편을 칭찬하면 아내가 싫어하더군요. 거기에는 시기와 질투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주례를 할 때에 저는 신랑 신부가 참으로 의젓하고 아름다워서 양가 부모님께 한마디씩 합니다. "신부가 아주 곱습니다" "신랑이 늠름하고 훌륭하더군요." 그 부모님들이 퍽 좋아합니다.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낫습니다" - 심지어 이렇게 말해도 좋아합니다.

이 말은 이 상황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지 형제간에나 부부간에는 해서 안 되는 말입니다. 질투가 없는 사랑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뿐입니다.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인도의 신비주의자요 성자인 선다싱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가장 좋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 신학교는 바로 우리 어머니의 품이었다"-어머니의 품 속에서 하나님을 배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장님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인 헬렌 켈러 여사에 대하여 잘 아실 것입니다. 그녀의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가르치고나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다가 드디어 하나의 소재를 찾아냈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나이가 많은 헬렌 켈러였지만, 어머니의 젖가슴에 손을 대게 합니다.

그리고 몇 마디의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오 하나님, 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라고 헬렌 켈러는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요 상징인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우리는 지금까지 자라왔습니다. 이러한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지 못하고 아픔을 드리는 것이야말로 큰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지혜서인탈무드에서는 무조건적인 효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의 자리에 아들이 앉아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해서 친구라고 부를지언정 아들이 아버지의 자유를 넘보아서는 안 된다' - 효는 수직적이기 때문에 부모의 위치를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께 말대꾸를 해서는 안 된다' -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요즈음은 부모 자식간에 대화한답시고 아이들 버릇을 다 버려놓았습니다. 들어주기 시작했더니 끝도 한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소금섬을 물로 끓이라면 끓이는 것이 효도이다' - 부모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이 효도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모는 선험자입니다. 실패와 성공을 다 경험했기에 그에게는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게다가 나를 사랑하기에 그 말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탈무드에서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논쟁할 때에 다른 사람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아버지를 옳다 여기고, 언제나 아버지 편에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의견을 너무나 존중한 나머지 효도는커녕 존경도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혼란과 무질서뿐입니다. 효의 개념이 무너졌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서양사람들은 성공적인 가정의 비결로 이른바 '3B'를 들고 있습니다. 'Built on the word of God' -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지고, 'Brought up by Godly parents' - 경건한 부모로부터 양육되고, 'Bound with church' - 교회생활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훈계를 들으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쉐마(Shema)'라고 하는 이 말은 상당히 동양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귀로 단순히 듣는다는 개념이라기보다 순종을 뜻하는 것입니다. 곧 부모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훈계를 듣는 것, 행동적인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버리지 말고 듣으라, 그리고 머리의 아름다운 면류관처럼 목의 금사슬처럼 생각하라.' 부모를 학대하면서 금목걸이를 걸고 다닌다면 그것은 개목걸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금목걸이요 금면류관이니, 이가 곧 자랑입니다.

우리 교회의 집사님들 중에는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나와 예배에 참석하는 분이 많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설 때에 저는 집사님하고는 악수를 안하고 그의 어머니하고만 악수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행복하시지요?" ", 좋아요.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는 일이 제일로 기쁩니다."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또 집사님께 말합니다. "참 복이 많으십니다. 연로하신 어머님과 함께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돌아가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복된 일이요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랑으로 명예로 영광으로 받아들이라, 금사슬이니라, 금면류관이니라.---여러분은 부모에 대하여 얼마만큼 자랑스럽게 생각해왔습니까? 효도라고 하면 종종 동양사람들의 가치관인 양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을 연구해보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효도가 모든 행위의 근본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대단한 재벌이기도 했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가족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처음 이주해왔을 때에는 가난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책상보 장사를 했고 어머니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카네기 자신도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청소부 노릇을 했습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의를 빨아 난로에 말립니다. 내의가 한 벌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래서 스스로 맹세합니다.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실 때까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 과연 그는 그로부터 40년 후인 52세에야 결혼을 하여 60세에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요즈음은 효도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잘되는 것이 효도이며, 내가 행복한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론인즉 그럴듯합니다마는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국가를 위할 것입니까? 교회를 위할 것입니까? 효도부터 하십시오. 어떤 분들은 가끔 교회에서 양로원을 운영해보자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기본적으로 양로원을 반대합니다. 왜 노인들이 양로원을 전전해야 합니까?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를 모시게 해야지요. 양로원 많고 고아원 많은 나라는 그릇된 나라입니다. 노인들은 자녀들이 모셔야 하고, 고아들은 양자로 가정에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양로원이 많은 나라의 청년들은 모두 히피족(hippie) 이 되어버립디다. 질서가 근본적으로 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면류관이요 목의 금사슬이니라 하였습니다.

부모님을 영광과 자랑과 행복의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들의 아들 된 것을 자랑하고, 그들의 딸 된 것을 영광으로 알고 기뻐할 때에 그것이 효입니다. 여기에 약속이 있는 축복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