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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이 성전을 헐라(요 2:12~25)

by 【고동엽】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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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전을 헐라(2:1225)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신 이야기입니다.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사도 요한이 이 복음을 편집할 때, 역사적인 사건의 순서에 의해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것이 아니고, 사건보다는 내용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편집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장면을 고난주간(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의 시작으로 해서 바로 다음날에 성전을 깨끗이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비해 요한복음만은 복음의 첫 시작에서 성전을 깨끗이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순서가 달라, 혹시 두 번씩이나 성전을 깨끗이 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가 있기에 밝혀 두는 것입니다. 시간적인 순서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의미에 더 비중을 둔 것이 사도 요한의 편집 의도인 것입니다.

본문으로 가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니 그 곳에서는 장사가 한창이었습니다(2:13-14). 오늘날도 우리 교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로써 교회 내에서 성경이나 찬송가 또는 카세트, 신앙 서적 등을 파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물론, 신앙 생활을 돕고 성도들의 편의를 위하겠다는 좋은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어쨌든 성전 안에서 파는 행위는 문제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도 돈을 바꾸거나 소나 양을 팔았던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잠깐 예루살렘 성전을 살펴보면, 언뜻 생각하기에는 수만 명이 들어가는 커다란 성전 건물을 상상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넓은 뜰 가운데 조그마한 성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으며, 일반 성도들은 모두 성전 마당에서 선 채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는 돈을 가지고 오는데, 그 당시 일반적으로 쓰는 돈은 로마의 화폐로써 달란트였고 예배 시에는 히브리 사람들이 사용하는 세겔로 바꾸어서 헌금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환전은 본래 시장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성도들의 불편을 덜어주다 보니 성전 뜰까지 돈장사가 오게 된 것입니다. 또한 제물인 소나 양도 각 가정에서 정하게 잡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데,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다가 마침내 성전까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사의 시작은 예배를 돕자는 뜻에서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무비판적으로 성행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의 의식주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 예식만 갖추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내용이 있으면 의식은 자연히 따라가지만 내용 없는 의식은 외식입니다. ,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선물을 받았는데 사랑하는 마음으로 준 선물이라면 가장 좋은 것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선물이란 받지 않은 것만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뇌물로써 문제 있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은 내용을 돕는 것으로 필요하지만 의식만 남고 내용이 빠진다면 그 의식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함수가 작용하는데, 내용이 빈약하면 할수록 의식이 더 거창해진다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선물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주는 선물이 때로는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뇌물로써 선물의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언제나 거짓말은 참말보다 설명이 거창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진실과 내용이 빠졌으니 의식만 크게 남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장에 보면, 거창한 예식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엄하게 꾸짖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는 내 앞에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 내가 제물에 지쳤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의는 여전하고 죄는 그대로 행하면서 의식적인 제물로 죄를 은폐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본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2:17)고 한 말씀을 응하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그 열심을 제사장들이 이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성전을 사모하며 제사를 드렸습니까? 그들은 나라를 빼앗겼고 종교의 자유도 없었으며 민족적으로 아주 눌린 가운데서 오직 위로 받을 수 있는 길은 열심히 제사 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것을 제사장들이 이용해서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까지 이르게 한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밝혀 둘 것은(역사가들이나 주석가들이 이 점에 대해 별로 언급을 하지 않는 내용입니다만) 제사장들이 제사를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는 사실입니다. 제물은 티 하나 없는 아주 깨끗한 동물이어야 하는데, 이 제물을 검사하는 특권이 제사장에게 있었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제물이라도 제사장이 불합격이라고 판정하면, 몇 번이라도 다시 바꾸어와야 하는 까다로운 심사가 있었으므로 먼 시장까지 제물을 사러 다닐 수가 없어 성전 가까이 까지 장사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마당으로 들어와서 장사를 하는 데는 제사장의 허락이 있어야 했고, 자연히 제사장들의 권력은 늘어나고 그들은 중간 이익을 챙기거나 혹은 자신들이 직접 사람들을 시켜서 장사를 하게까지 된 것입니다.

순진한 사람들은 정성껏 먼길에서부터 제물을 들고 왔지만, 성전 마당에서 구입한 제물이 아니면 불합격이었으므로 다시 제물을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경위로 제사장들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인 줄 알았지만 조금만 더, 이번만 하고 미루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청년이 나타나서 채찍을 들고 양이나 소를 내어쫓고 돈을 쏟으며 상인들을 몰아내었을 때(2:14-15), 그들은 아무 말없이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책을 받으면서도 이권 때문에 장사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본래의 목적은 예배를 돕고 성도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었지만 방법이 좋지 않았습니다. 수단이 목적을 배신한 까닭으로 목적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책망을 받아 입장이 난처하게 된 제사장들은 궁여지책으로 한 말이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2:18)라고 묻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고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은 헤롯 성전으로써 46년 동안 지은 건물입니다. 이렇게 큰 성전을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는 예수님의 뜻을 그들이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주를 달기를,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육체를 가리킨 말씀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제물이나 성전이나 그 어떤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공로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다시 지음 받은 영적인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만나게 되므로 이런 의미에서 성전을 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없다면 성전은 소용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16에 보면 예수께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인격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성전됨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완전한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설명하기를 성전이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지성소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듯이 사람의 인격도 몸과 혼과 영으로 나뉘는데, 인격의 지성소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이나 혼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헐라고 하신 성전은 의식주의 성전이요, 장사하는 성전이여, 자기 공로를 세워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보겠다는 성전입니다. 우리들도 형식적이고 외식적이고 교만하며 내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음을 모두 헐고 하나님 앞에서는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자세이어야 합니다. 예배를 영어로는 Worship, Service라고 하는 이유도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는 예배의 바른 자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든, 성격을 읽든, 봉사를 하든지 간에 받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전을 헐라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은 후에도 헐지 못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회개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결국은 주후 70년에(예수께서 말씀을 하신 지 40년 후)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깨끗이 헐어버렸습니다. 그리고서, 이천 년이 흘렀지만, 아직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부패한 성전을 내가 헐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헐어버리심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17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우리들도 거룩해야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전에 들어갈 때는 거룩한 마음, 깨끗한 마음, 봉사하는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마음만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도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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