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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전도서 3장 1-11절

by 【고동엽】 2022. 10. 23.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20001119 주일 낮예배

2001-12-08 17:53:01 read : 333

 

전도서 31-11

 

서울 강서구 신정동에 어떤 개척 교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개척교회라서 일꾼이 적었고 목사님은 사정하면서 직분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근처 아파트 단지로 이사가면서 급속도로 부흥했습니다.

일꾼이 꽤 있게 되었고, 장로 같은 중요한 자리는 서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아무나 직분을 맡기면 말이 나오게 생겼습니다.

할 수 없이 원칙을 세웠습니다. 경쟁이 많으면 원칙과 룰이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장로가 되려면 이것, 저것 정도는 해야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부에서 "목사님이 변했다. 이제 배짱이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과연 배짱일까요? 때가 달라져도 사람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합니까?

 

나쁘게 말하면 배짱입니다. 그 배짱이 교만에서 나왔다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좋게 말하면 리더십 스타일이 변한 것입니다. 그것은 필요합니다.

100명 교회에는 그에 맞는 프로그램과 리더십 스타일이 있어야 하고,

1000명 교회에는 그에 맞는 프로그램과 리더십 스타일이 있어야 합니다.

사려 깊은 사람은 그러한 때와 시기를 잘 맞추어 자기 삶을 담금질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100명 교회에서 1000명 교회의 프로그램과 리더십 스타일을 원합니다.

그러니까 프로그램이 초라해 보이고, 목사님의 겸손함을 리더십이 없는 것으로 봅니다.

반대로 1000명 교회가 되면 거꾸로 100명 교회의 프로그램과 리더십 스타일을 원합니다.

그러니까 프로그램이 방만해 보이고, 목사님의 리더십을 겸손함이 없는 것으로 봅니다.

이처럼 때와 시기에 대한 시야가 없으면 오해할 일이 너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자 목사님은 교회성장 세미나 유명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세미나에서 말했습니다. "목회자가 때로는 배짱을 가지고 목회해야 합니다."

그러자 그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개척교회 목사님이 강의의 앞뒤는 잘라버리고,

배짱이라는 말만 귀담아 듣고, 개척교회의 사정을 망각한 채 배짱으로 목회했습니다.

결국 그 교회는 목사님이 배짱으로 목회하지 1년만에 가족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때와 시기에 대한 시야가 없으면 실패할 일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와 시기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규모가 커지면 성도의 자세도, 목회자의 리더십 스타일도 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질서보다 무질서의 힘이 커지게 되고,

그처럼 무질서의 힘이 커지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때와 시기를 따라 진리나 사랑의 내용이 변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와 사랑이라는 내용을 변함없이 유지시키기 위해서

때와 시기에 따라 그것을 담는 그릇이 변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진리와 사랑을 잃어버리고,

형식주의, 외식주의, 율법주의, 그리고 매너리즘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있지만 때를 따라 사랑하는 방법이 세련되지 못하니까

결국 그 사랑이라는 내용을 담지 못하고 오해와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세 살 짜리 아이에게는 사랑할 때 그저 안아주고 뽀뽀해 주면 됩니다.

그러나 열 다섯 살이 된 자녀에게는 그에 맞는 방법으로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서서히 인생의 동반자로 여겨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세 살 짜리 아이에게 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이 전달이 안되고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내용을 유지하려면 사랑의 형식은 부단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를 거부하는 자가 바로 율법주의자요 외식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와 시기를 분별하며 산다는 것은 놀라운 삶의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모든 일에 다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1절이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사람은 올 때와 갈 때를 분명히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 때 기회를 잡을 수 있고, 갈 때에도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올 때만 좋아하는데, 사실상 갈 때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진리를 따라 당당하고, 멋있고,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새 길거리에 낙엽이 무수히 떨어져 있습니다. 갈 때를 아는 모습입니다.

겨울이 오는 것을 알고 나무는 스스로 잎을 떨어뜨리며 활동을 최소화합니다.

그처럼 갈 때를 준비하니까 그 나무는 봄을 활기차게 맞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생의 겨울이 올 때를 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추장스러운 세상적인 옷들을 낙엽으로 날려보내야 합니다.

요즘 같은 시기가 바로 그런 시기입니다. 고요히 자기를 돌아보며,

말을 절제하고, 얽힌 매듭을 푸는 사람들이 정말 그리운 시기입니다.

 

우리 주님은 갈 데를 알고 갈 때를 아신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삶이 복잡하지 않았고, 복잡하지 않았기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약해도 갈 때를 알고 욕심의 옷을 벗으면 강하게 됩니다.

 

이제 2주일 후면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이때 우리가 세상적인 옷을 벗어버리면 금년 성탄절이 더 기다려 질 것이고,

그 전에 우리들의 심령 속에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갈 때를 항상 분별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때를 안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때를 알고 사는 지혜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겸손한 삶

 

첫째, 때를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결국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다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까? 때를 아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힘이 있고 지위가 높을 때 겸손한 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천국은 겸손한 사람의 것입니다.

 

한 집사님이 천국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천사가 지극히 환대합니다.

그리고 수고했다고 팔보채, 양장피, 탕수육을 시켜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같이 간 장로님이 잔뜩 기대하며 음식을 기다리는데

조금 후에 천사가 나타나더니 짜장면 한 그릇을 탁 놓고 갔습니다.

 

장로님이 하도 기가 막혀서 천사를 붙들고 따졌습니다.

"잠깐만. 천사님! 저 집사는 저렇게 환대하면서 저는 이게 뭡니까?

제가 저 집사보다 헌금도 더 하고, 봉사도 더 했는데 좀 심하지 않습니까?

우리 목사님 좀 불러 주세요.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목사님이 다 압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너희 목사! 지금 짜장면 배달 갔어!"라고 말하더랍니다.

 

돈이 있을수록, 힘이 있을수록, 지위가 있을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높아질 때도 있지만 낮아질 때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2. 준비하는 삶

 

둘째, 때를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 9-10절 말씀을 보면 마치 우리의 수고가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우리의 수고를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결국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에 준비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수고의 대가를 바로 주지 않고 기다리게 하실까요?

그 기간을 수고하는 기간, 준비하는 기간으로 만들라는 뜻이 아닐까요?

기회를 잡아도, 준비가 없어서 그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현재의 시간은 준비하라고 주어진 시간이고, 준비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한정된 시간을 살기 때문에 시간 활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준비가 70% 이상을 좌우한다고 하는데, 그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면 됩니까?

벼를 베는 것이 목적이지만 벼를 잘 베기 위해서 낫을 가는 준비가 꼭 필요합니다.

 

오늘날 준비 없이 닥친 일만 열심히 하고, 활용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낫을 가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바로 말씀과 기도 시간입니다.

 

3.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는 삶

 

셋째, 때를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을 베틀 짜는 분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베틀을 짜시며 때로는 천연색 실을 사용하십니다. 기분 좋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검은 실을 사용하는데, 그것 가지고 "?"라고 묻지 마십시오.

베틀을 멈추고 비단을 펴실 때까지 하나님은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여러 가지 삶을 재료로 삼아 베틀을 짜시다가

어느새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한 폭의 비단을 우리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며 사는 삶이 바로 믿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계속해서 보십시오.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내일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사실입니까?

우리는 사건 너머에 계신, 사람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절망보다 훨씬 큰 힘인 하나님의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태양은 떠도 커튼을 걷어야 우리 눈에 찬란한 태양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도 희망의 커튼, 꿈의 커튼을 열고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희망이 어려움을 만나, 그 순간 희망이 절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특히 희망을 가졌던 자의 절망은 더욱 큰 절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헌신과 사랑을 꼭 기억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드라마는 항상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드라마는 지금도 멋있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패했다고 한탄하기에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을 친히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절망보다 더 큰 하나님의 희망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때로 살다 보면 우리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이 잘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다고 생각하고,

일이 잘 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현재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내일의 환상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환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다시 한번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십시오.

 

11절을 다시 보십시오. 거기에 나오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저는 그것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 중심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고백 아닙니까?

 

이 세상의 만물은 중심이 잡혀 있어야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팽이를 보십시오. 중심이 있으면 돌아가지만, 중심을 잃으면 쓰러집니다.

사람도 공동체도 중심이 잘 잡혀 있어야 건강한 공동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확고해야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새롭게 다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순수하게 기도해도 금방 내가 원하는 대로 열매가 맺어집니까?

아닙니다. 본문은 11절 마지막 부분에서는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 전혀 응답이 없고 하나님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고요한 때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숨어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야단맞을 일을 해서 야단맞을 것을 각오했는데

엄하신 아버님께서 그때는 야단을 치지 않고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저는 아버님의 더욱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때로 침묵은 깊은 사랑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기도에는 네 가지 종류의 응답이 있습니다.

1. "그래라"(Yes)는 응답 2. "안된다"(No)는 응답

3. "다른 것으로 주겠다"(Alternative)는 응답 4. "기다려라"(Wait)는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기다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기다리며, 하나님의 복된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최악의 상황을 만나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자세히 보면 나쁜 일은 틀림없이 좋은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스더를 보십시오. 에스더의 처음 처지는 썩 좋지 못했습니다.

페르시아에 끌려온 포로의 딸이었으나 고아가 되었다가

모르드개의 양녀가 되었던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나중에 페르시야의 왕비의 위치에 오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절망은 하나님의 복된 섭리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상황만 보지 말고 상황 너머의 희망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면서 침묵 가운데 기다려 보십시오.

 

전도서 5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너무 성급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침묵의 신비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침묵은 문제를 푸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성 빈체시오라는 수도사에게 한 여자가 상담을 왔습니다.

밤낮 남편과 싸우는데 어떻게 해야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수도사는 교회 뒤에 있는 우물가의 물을 떠 주고 성수(聖水)라고 하면서

남편이 싸우려고 할 때마다 그 물을 한 모금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삼키지 말고 있다가 남편의 말이 다 끝나면 삼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한달 후에는 가정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뒤 이 부인은 남편이 싸우려 달려들 때마다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 달이 지나자 가정이 화목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수도사에게 찾아와 간증했습니다. "정말 신비한 물이군요."

그러자 수도사가 말합니다. "물이 신비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 신비한 것입니다."

 

침묵은 신비한 것입니다. 기분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열이 받는 일이 생기지만 침착하게 냉각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좋은 사람됨과 인격성은 바로 그것을 잘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차와 나쁜 차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나쁜 차는 빨리 달리면 열을 받습니다.

그러나 좋은 차는 아무리 달려도 열을 받지 않는데, 잘 식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성도는 쉽게 열을 받지 않고 인내하고 기다립니다.

위인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그들에게도 기다림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영국 포목점에서 일하는 한 청년 서기가 있었습니다.

배우지도 못하고 부자도 아니었지만 이 청년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젊은 청년들이 방탕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그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해 보겠다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그는 기도부터 시작했습니다.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아침 7시에서 밤 11시까지 일을 마치고 다시 밤새

침대에서 자지 않고 앉아서 자고, 앉아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 끈질기도록 3년을 그렇게 했습니다.

3년 후에 하나님께서 기도 동지 12명을 붙여주셨습니다.

그 열 두 명이 함께 기도하며 만든 조직이 바로 YMCA입니다.

그리고 그 조직을 만드는데 헌신했던 포목점 서기가 바로 죠지 윌리암 경이었습니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아주 잘게 빻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금년에도 살다가 실망하고, 낙심하고, 어려운 일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잊어버리세요. 자포자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게 마무리져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고, 인내하고, 소망 중에 기다려 보십시오.

썰물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카네기에게는 평생토록 간직하고 있는 그림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단한 그림도 아닌데, 그 그림은 신비한 용기를 주는 그림이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외판원을 했는데 어느 노인의 집에 물건을 팔러 갔습니다.

노인과 대화를 하다가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해변가 모래 위에 고깃배가 박혀 외롭게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가 중얼거립니다. "배가 자리를 이탈했구나! 배는 물위에 있어야 아름답지."

그림 솜씨도 별로 신통치 않고 별로 큰 의미도 없어 그냥 지나치는데,

그림 밑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밀물 때가 오리라."

 

그 글귀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할아버지한테 그림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결국 할아버지한테 그림을 얻고 평생 그 그림을 간직했습니다.

 

지금 모래 위에 걸쳐진 외로운 고깃배의 모습입니까?

조금 기다리세요. 곧 밀물 때가 옵니다.

기다리면서 지금 배를 수리하고, 나사 조이고, 기름을 치십시오.

그리고 밀물이 되면 고기 잡으로 나가면 되지 않습니까?

 

밀물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밀어도 고깃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때 낙심하지 말고 그물을 깁고, 배를 수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면 됩니다.

기회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때가 올 것입니다.

기다리십시오. 그러나 준비하며 기다리십시오.

 

낮 시간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밤 시간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습니다.

낮이 지식을 얻는 시간이라면 밤은 지혜를 얻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는 낮 시간도 필요하고 밤 시간도 필요합니다.

낮 시간은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겸손하게 허리를 굽히는 시간이고

밤 시간은 내일의 희망을 바라보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내 중심적 시간 개념을 버리십시오.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일은 눈에 보이기보다 훨씬 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에는 이미 그 씨앗이 오래 전에 심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심은 씨앗은 먼 훗날의 생각 이상의 열매를 수확하는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알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철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철이 들어 그리스도의 계절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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