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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임종의 노래 삼하23:1~5

by 【고동엽】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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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23:5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잘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본문 삼하 23:1절 서두에 ‘이것은 다윗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5절까지, 마지막 유언 같은 그의 말이 이어지는데요.

 

다윗이 노쇠해서 죽을 때가 가까웠습니다.

다윗 왕의 마지막 유언,

아마 상상컨대 천사들도 빨리 날아와 날개를 접고, 다윗의 유언을 귀담아 들으려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다윗이요, 그것도 그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유언이었으니까요.

 

다윗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일평생 잘 섬겼던 성자가

세상을 떠나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을, 듣는 것은 매우 복된 일입니다.

그들이 침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정말 깊은 생각이 담긴 말이거든요.

 

저 스펄전도 한 번 그런 말을 들은 경험이 있는데요.

한 경건한 성도가 임종이 가까워, 그는 시편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시편17편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고는,

6절을 읽을 때 멈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귀를 제게 기울이사 내 말을 들으소서.” 시17:6

 

그리고 그는 가물가물한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오 주님, 저는 지금 말을 제대로 못 합니다.

말하기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주님, 당신의 귀를 제 입 쪽으로 기울이사, 제 기도를 들으소서!”

 

너무나 약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지금 자기 인생이 거두어지는 그 순간에

그런 아름다운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가, 천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남기는 말,

그들이 요단강 둔덕에 섰을 때 남기는 말은, 우리가 귀담아 듣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본문은 특별히, 다윗의 죽음 직전 마지막 말입니다.

이런 말은, 그저 인간적 생각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다윗의 입술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가 듣는 거죠.

*주님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니, 그의 말씀이 나의 혀에 담겼다. :2

 

생각건대, 그는 이 유언의 말을 남기는 중에, 천사들에게 들림 받았을 것입니다.

그가 이 지상의 침상에서 시작한 말을, 천국에서 마쳤을 것입니다.

유언을 말하는 중에, 돌아가셨다는 뜻입니다.

 

그는 특별히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제 집이 하나님께 훌륭하지는 않지만..”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5a

  개역은 이렇게 번역하는데요, 다윗이 자기 집을 자랑하는 것처럼 번역하지만

  KJV는 다윗이 자기 집을 허물이 많다고 낮추는 식으로 번역합니다. 스펄전은 KJV를 따릅니다.

  양면을 다 가진다고 보시면 안전하겠습니다. 다윗의 집이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지요.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잘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5b

 

비록 자기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자기 가정에 언약을 세우시고, 온전하고 견고하게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아마 그는 천국에 가서도, 위 5절의 자기 유언을 계속 찬송 불렀을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도, 제 스펄전이 바라는 것은,

위 5절의 다윗의 유언으로, 우리의 마지막 유언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약하면 ‘자기 집은 하나님 앞에서 비록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다. 언약이 자기 집을 붙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안심하며 눈을 감을 수 있다는 말이죠.

 

▲“비록 제 집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나”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완전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서전을 쓸 때는

“비록 ~하더라도, 비록 ~이었지만” 또는 “그러나”란 말을 쓰게 될 것입니다.

 

나아만은 아주 용맹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아주 인정을 받는, 정말 당시에 성공한 남자였습니다.

‘비록, 그러나’ 그는 한센병자였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이라도, 가까이 가서 보면 흠결이 보이기 마련이지요.

순금도 99.9%이지, 100%순금은 없습니다.

 

다윗도, 목동의 집안에서 일어나서,

용맹한 용사가 되고,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었지만,

다윗에게도 ‘비록 although’이나 ‘그러나 but’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윗의 연약한 점 중에 하나가, 그의 가정이었습니다.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 집 마당에도, 우리 집 현관에도

마치 맹수가 언제라도 덤벼들 자세로, 도사리고 앉아있는 것처럼

부모와 자녀 간에, 또는 부부지간에

가정의 분란과 전쟁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외국과의 전쟁보다, 내전이 더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왜냐면 낯선 사람과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동족과 전쟁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비참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나는 다윗과 같은 과거의 잘못이 없기 때문에

‘비록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나’ 라고 말할 필요 없다.

대신에 ‘우리 가정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다’ 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비록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나’ 라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 다윗 왕처럼 안정되고, 강성한 국가와 조정을 이끈 왕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주변 국가가 역사가들은 모두 한결같이 다윗을 ‘위대한 왕’으로 묘사합니다.

 

그렇다면 다윗도 ‘비록 우리 가정이 부족하지만..’ 이라고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잘못이 있었더라도, 아주 오랜 옛날의 일이고, 다 잊혀졌을 법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표현은, 그의 “겸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유언을 남길 때, 다윗처럼

‘비록 우리 가정은 연약하고 부족하나..’ 이렇게 말해야지,

‘우리 가정은 온전하고 완전했습니다. 어떤 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랑스럽습니다.’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 가정은 아무 흠이 없었습니다.’라는 그의 유언이,

완전 거짓으로 뽀록날 것입니다.

 

우리 가정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마지막으로 증언할 때도,

‘나는 부정하고 부정하다. 그렇지만 주님의 은혜로 깨끗해 졌다’ 이렇게 말해야죠.

 

만약에 ‘나는 아무 흠결이 없이 살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실제로 그가 크게 남들에게 비난 받을만한 일이 없이 살았다 하더라도,

그건 바리새인 적인 의로움이죠. 일평생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비록 제 집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나” 라고 언급한

가장 직접적 이유는, 아마 자기 자녀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자녀들 때문에 많은 환란을 겪었지요.

다윗과 마찬가지로 많은 선량한 부모들이, 자기 아들과 딸의 잘못 때문에

큰 고초를 겪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외부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인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그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날마다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그 자녀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 앞에서 부모가 헌신하게 된다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부모가 겪는 심적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비록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나”

경건한 어머니들은, 아마 눈물로 이런 고백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설교를 듣는 탕자, 탕녀들은

더 이상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십시오.

더 이상 아버지의 당신으로 인한 아픈 마음을, 더 짓밟지 마십시오.

 

뭐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당한 경우는 어쩔 수 없겠지만

자신이 잘못해서 부모를 괴롭게 하는 친구들은, 빨리 돌이키게 되시기 바랍니다.

 

혹시 부모의 뜻과, 자신의 뜻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그래서 부모와 대립하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결정하면 됩니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당신을 낳아주고, 젖을 먹이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키워준 부모의 뜻이

하나님의 뜻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부모와 대립되는 자신의 뜻이

아래쪽 뜨뜻한 곳으로 미끄러지는 길이 되고요.

 

‘당신의 부모의 흰 머리로, 무덤에 내려가게 하지 마십시오.’

걱정근심만 끼치다가, 부모를 늙어 죽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혹시 너무 돌처럼 굳어진 것이 아닙니까?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시오.

 

그리고 혹시나 자녀로 인해 눈물 흘리는 부모들은,

성경에도 그런 예가 많으니, 꼭 나만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니니

동병상련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대상7:20—22 

에브라임의 아들은 수델라요 그 아들은 베렛이요 그 아들은 다핫이요 그 아들은 엘르아다요 그 아들은 다핫이요 

 

    21.그 아들은 사밧이요 그 아들은 수델라며 저가 또 에셀과 엘르앗을 낳았더니 저희가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내려가서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고자 하였음이라 

    22.그 아비 에브라임이 위하여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 형제가 와서 위로하였더라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마엘을 내보내야 했을 때,

그는 그런 일로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도, 예수님 때문에

‘칼이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늘 받으셨습니다.

 

▲그럼 “비록 내 집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걸 기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집에 아무런 우환도 없고, 편안히 눕고 자기만 한다면,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겠습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겠습니까?

그럴 위인은 글쎄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가시를 주시는 것은,

우리보고 노래하라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섭리인 것입니다.

 

옛말에 ‘나이팅게일은 가시가 자기 가슴을 찌를 때,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 우환이 없으면, 다들 잠을 늦게까지 잘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에 자녀로 인한 우환이 생기면, 새벽이슬이 내릴 시간에 눈이 떠지고

일어나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찔리고 아프니까요.

 

자녀로 인해, 밥을 먹어도 마치 모래알 씹는 모양으로 아무 맛을 못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성경을 펴서 ‘하늘의 양식’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진정한 만나인 하나님의 말씀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물이 고여만 있으면 잔잔해서 좋지만, 계속 잔잔히 고여만 있으면 녹조가 생기고 썩게 됩니다.

가끔 태풍이 불고 회오리바람이 불어야, 물이 뒤집어지면서 신선해 지듯이

 

자녀로 인한 환란이 안 생기면 좋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 가정에 그게 닥쳐왔다 하더라도

그걸 허락하신 주님의 섭리를 신뢰하면서

오히려 기도하고, 찬송 부르고, 성경 읽고, 내 영혼이 신선해지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도가 강해지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자녀나 남편의 문제로 기도할 때, 쉽게 응답되지 않습니다.

장기적인 기도가 요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경건한 어머니, 경건한 아내가 그렇게 장기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인한 기도의 용사로 점점 변모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경건한 아버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자녀의 질병이라든지, 자녀의 문제로 오래도록 기도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경건한 아버지로 점점 변모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가정에 문제를 보내시는 섭리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더 깊이, 더 오래 기도하면서, 기도의 용사로 거듭나라는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위한 기도가 속히 응답되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자라나고, 당신의 믿음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개입하시고, 응답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믿음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기도의 씨를 심었는데, 거기에 눈물로 물을 주었는데,

거둠과 열매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눈물로 기도의 씨를 뿌린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거둘 것입니다.

 

부모의 눈물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그의 생전에 응답되지만, 만약 생전에 응답되지 않으면, 사후에라도 응답됩니다.

실제로 부모의 사후에, 지난 날을 회개하고, 훌륭한 자녀로 변화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모의 눈물의 기도 때문입니다.

부모의 탄식과, 회한과, 한숨과, 눈물의 기도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2. 비록 우리 가정은 온전하지 못해도,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 가정을 온전히 이끌어 주십니다.

 

삼하23:5b절이 그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다윗의 가정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대로

온전히 이끌어 주셨다는 내용이지요.

 

삼하23:5.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부족하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잘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6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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