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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눈구멍 두 개, 콧구멍 두 개, 귓구멍 두 개, 그리고 입구멍은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두루 잘 살피고, 깊이 숨쉬면서, 두루 잘 듣고, 그리고 말할 때는 두루 듣고, 두루 보고, 깊이 숨쉬면서 생각한 것의 절반만큼만 말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꼭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잘 보지 않고, 잘 듣지 않고, 잘 생각지 않고,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합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마구 토해 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 관계의 친밀도 측정은 <잘 말하기>가 아니라 <잘 듣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Say to Say Friend 가 있습니다. 그저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막 지껄이는 관계입니다. 연예인, 스포츠, 만화, 시시껄렁한 정치, 우스개 소리, 뭐 그렇고 그런 잡다한 소리나 하는 정도의 친구 관계를 말합니다.
Head to Head Friend 가 있습니다. 좀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입니다. 사업, 사상, 생각, 자문, 상담, 뜻 깊은 책, 음악, 미술, 연극, 영화, 건강, 책임, 등 무엇인가 뜻 있는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 관계를 말합니다.
Heart to Heart friend 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밤새도록 제 말만 하고, 한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밤새도록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때로는 둘 다 아무 말 없이 밤새도록 있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친구 관계를 말합니다. 마음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들어주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나의 인간 관계는 어떠합니까? Say to Say Friend, Head to Head Friend는 지천에 깔렸는데 Heart to Heart Friend가 없지는 않은 지요?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별별 소리 다 하면서 질탕하게 놀고 돌아와 자리에 누었을 때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단 두 셋이 모여 소박하게 지내고 돌아와 자리에 누었을 때 말 할 수 없는 든든함과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가 하는 잔잔한 기쁨으로 마음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실어 잘 들어주는 인간 관계였는가? 건성으로 들어주는 인간 관계였는가?의 차이입니다. 心在不焉이면 聽而不聞하고 見而不視하다고 하였습니다.
비전 있는 사람, 비전 없는 사람
트러디와 베스는 세계를 두루 구경하고 싶어서 스튜어디스를 지망한 입사 동기입니다. 베스는 스튜어디스 그 자체에 만족하였고, 트러디는 단순한 구경 이상으로 스튜어디스라는 특별한 직업을 통하여 호텔 체인이나 관광 같은 여행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베스는 스튜어디스 업무에 충실하였으나 트러디는 스튜어디스 직무뿐만 아니라 그녀가 가게되는 나라나 도시들을 돌아보고 그 곳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습니다. 이를테면 그 도시를 찾는 여행객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 도시의 특성은 무엇인지, 그 도시의 문화와 축제 유래, 그 도시의 구경거리, 먹거리 등에 대한 살아있는 정보를 차곡차곡 노트에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기내에서 승객들을 돌아보면서 그 도시를 찾아가는 여행객들에게 그 도시에 대한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근무하는 항공회사의 고급 간부가 직원들의 서비스 상태를 평가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현장 조사를 나왔는데 그 간부는 트러디의 그런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간부는 사장에게 보고하였습니다.
"트러디는 스튜어디스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입니다. 그녀는 우리 노선이 닿는 모든 도시를 샅샅이 꿰뚫고 있고, 각 도시들의 특성이 무엇이며, 그 특성에 따라 무엇을 하여야 할지를 미리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과 같았습니다".
트러디는 승진하여 본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맡은 직책은 각 도시에 대한 안내 책자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트러디는 여행대리점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대리점은 여행업계에서 알아주는 성공적인 사업체가 되었습니다.
한편, 베스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스튜어디스란 직업에 점점 싫증을 느끼고 어서 이 지겨운 직업을 벗어나 결혼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푸념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트러디와 베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였습니다. 베스는 비전이 없었습니다. 트러디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비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곧 트러디와 베스의 차이입니다. 비전이 있습니까?
<강헌구,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100-102쪽>
작은 교회 운동
하나님 은혜로 10살이 된 우리 수원 고등교회는 지금 작은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쯤해서 자기 정체성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로서의 자부심도 느낍니다. 그래서 감히 한국교회 앞에 작은 교회가 어떻게 자기 몫을 감당 할 수 있는가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큰 교회가 되지 못한 것이 작은 교회가 아닙니다. 아직 힘이 부족하여 교회가 작거나, 지금도 교회를 키우고 싶어 안달하는 교회는 그것이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그런 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교회는 큰 교회 되기 위한 과정의 교회거나, 큰 교회 되기 경쟁에서 낙오하고 주눅들고 열등감에 이지러진 교회입니다.
작은 교회는 제도화, 조직화 이전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 상 덜 필요한 요소들, 즉 건물, 제도, 관리, 형식 등을 최소화한 교회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 생명력을 상실한 것은 교회가 비대화하면서 부득이 제도화, 조직화함으로 그런 것들을 유지 운영하는 데 그 힘을 다 소진하였기 때문입니다. 몸집이 비대하면 자체 유지를 위하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골리앗이 다윗에게 패한 것은 그런 이치입니다. 작은 교회는 인건비, 관리비, 회의비 등을 절약할 수 있는 경제적인 교회입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는 사람이 우선입니다. 오늘 날 물질주의, 물량주의의 희생물이 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도 사람이 아니라 머릿수로 계산되는 실정이나, 작은 교회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교회는 공동체성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수만, 수천 명이 각각의 지극한 이기심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큰 교회보다는 작은 교회가 훨씬 더 공동체적 삶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큰 교회는 너무 굳어진 면이 많습니다. 한 공동체가 생명력을 분출하려면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한 법인데 이를 위하여서는 큰 교회보다 작은 교회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에 대비한 교회도 큰 교회보다는 작은 교회가 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교회 운동을 일으킵시다. 성서적 모습의 교회를 되찾고 통일에 대비한 교회로서 작은 교회 운동을 확산해 갈 필요를 강하게 느낍니다. 작은 교회 목회자여, 큰 교회 못되어 기죽지 말고,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는 거룩한 사역의 일꾼으로 같이 뛰어봅시다.
<박희영, 작은 교회 10년, 수원 고등교회, 1991, 274-276쪽 요약>
믿음 있는 사람, 믿음 없는 사람
어느 백화점 식품 영업부에서 소비자 소비심리 행태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실험은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똑 같은 10평 넓이의 쇼윈도 위에, 똑 같은 시금치 100단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A 코너 위에는 100촉 짜리 전구를 10개 켜 두고, B 코너 위에는 100촉 짜리 전구 6개를 켜 두었습니다. 3 시간 후 판매 실적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였을까요? 그렇습니다. 100촉 짜리 전구 10개를 켜 놓은 A 코너 쪽 시금치가 90단이 팔렸고, 100촉 전구 6개를 켜 놓은 B 코너 쪽 시금치는 70단이 팔렸습니다. 이 간단한 실험 결과가 말해 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밝은 것을 좋아한다. 밝은 쪽 시금치가 어두운 쪽 시금치보다 훨씬 싱싱하고 맛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도 꼭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부정적이기 쉽습니다. 어둡고, 비판적이고, 게으르고, 우울하기 쉽습니다. 확신이 없으니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사람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어둡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환난을 당하나 찬송합니다.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웃음, 여유, 부지런함, 청결, 끼끗함, 자유, 넉넉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있는 사람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밝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두컴컴한 것을 싫어합니다. 밝고 청결한 것을 좋아합니다. 더러운 하수도 진창 내 나는 어둡고 음산한 길을 좋아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은 꽃 피고, 싸리비로 정갈하게 쓸어낸 길을 좋아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갑니다. 그러나 겨자 씨 만한 믿음이라도 믿음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꾸준히 모여듭니다. 그리하여 그 모여 든 사람들이 마음을 하나로 합력하여 놀랍고도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길고 긴 편지, 짧고 짧은 답장
이번 떠난 길에 내 좋은 친구 구춘서 교수로부터 참으로 귀한 이야기 한 토막을 듣고 왔습니다. 구춘서 교수의 간증인 셈입니다.
구춘서 교수의 아버지는 목사님입니다. 아버지 구 목사님은 포천 음성 나환자 촌의 작은 교회를 목회 하신 분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목사라는 직업은 돈과는 거리가 먼 직업입니다. 그것도 옛날 목사님들은 더 하였습니다. 그러니 생활 형편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경제 형편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구 교수는 어릴 때 나는 절대 목사는 안되겠다. 나는 돈 많이 벌어서 부자로 살겠다고 수 없이 결심하였더랍니다.
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구 교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류 대기업 종합무역 상사에 취직하여 부자 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무역 업무, 경영의 실제, 바이어 상담, 관계 기관과의 인간 관계 만들기 등 부자 되는 정 코스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 살고 났는데 마음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부자의 삶보다 가난한 아버지 목사의 삶이 더 의미 있고, 더 힘있어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구 교수는 많은 고민과 갈등 끝에 목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답니다. 그런 결심을 한 후 구 교수는, 자신이 그 동안 가난한 목사 아버지를 몹시 원망하였던 것을 참회한다는 것, 이제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하여 목사의 길로 가겠다는 것, 그리고 지금 자신의 심경 변화 등을 장장 일곱 장에 걸쳐 눈물로 편지를 써서 그 아버지 목사님께 보냈더랍니다.
며칠 후 아버지 목사님으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편지 봉투를 뜯어보니 편지지는 단 한 장, 그리고 편지 내용도 단 한 마디만 써 있었답니다. 장장 일곱 장에 걸친 아들의 눈물의 편지에 아버지 목사님은 단 한 마디로 답신을 보냈다는 거지요. 길고 긴 편지에 너무나 짧고 짧은 답장을 쓰신 겁니다.
구 교수는 20년 전 그 단 한 마디가 적힌 아버지 목사님의 그 편지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구 교수의 아버지 목사님의 그 한마디가 무엇이었던가? 그 한 마디는...
<할렐루야!>
그리고 그 다음엔 뭘 합니까?
북방에서 온 부자 사업가는 남방의 한 어부가 자기 배 곁에 드러누워 담뱃대나 빨고 빈둥빈둥 한가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 왜 고기잡이를 안 나가십니까?
어부: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 놓았거든요.
부자: 오늘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잡아 놓으면 좋지 않겠소?
어부: 그래서 뭘 하게요?
부자: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요. 그 돈으로 당신 배에 알맞는 발동기를 달고 더 멀리 더 깊은 데로 가서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겠소.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나일론 그물도 새로 사고, 그래서 더 많은 고기를 잡고, 그만큼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는 거지요.
어부: 그리고 그 다음엔 뭘 합니까?
부자: 그렇게 되면 얼마 안 가서 큰배를 사서 선주가 될 수도 있고.....그렇게 나가다보면 어쩌면 거대한 어로 함대를 거느린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어부: 그리고 그 다음엔 뭘 합니까?
부자: 그렇게 되면 편안히 앉아 쉬면서 삶을 넉넉히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어부: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대답한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즐길 줄 아는 능력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슬기롭습니다.
그래서 옛 글에 이르기를 不是閑人閑不得 閑人不是等閑人이라. 마음이 스스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면 한가함의 여유와 맛을 즐길 수 없고, 한가한 사람의 그 한가함을 게으른 사람의 한가함으로 착각하지 말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주간에 읽는 時
올해 4월 8일-4월 14일은 고난 주간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꼭 읽어 두어야 할 좋은 詩 한 편을 소개합니다. 이 詩는 내 좋은 친구 권택명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시집 <첼로를 들으며>에 실려있습니다. 이 시집을 꼭 一讀하시기를 권합니다.
베드로전 2
닭이 울기 전에
나는 좀더 멀리 가야 하리라
그 분의 눈빛에서
더 멀리 도망쳐야 하리라
장닭처럼 벼슬 곧추 세우고
대제사장 집 뜰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지 못한 새가슴
고개를 떨구고
가능하다면 겟세마네 동산 지나
올리브 숲 저 너머까지에라도
나는 갔어야 하리라
닭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곳까지
한걸음에 내달았어야 하리라
그러나
모닥불 어스름 불빛 속에서도
눈썰미 좋은 계집종이여
그대는 알리라
이미 그대 눈썰미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 분의 그 눈빛이
나를 꿰뚫고 지나
골고다 언덕 너머
제국 로마의 심장부까지 가버린 사실을
오고 오는 세월 닭이 울 때마다
내 통곡의 눈물 방울 속에
그 분이 언제나 부활하고 있음을
<권택명, 첼로를 들으며, 모아드림, 2001, 142-143쪽>
삼십육계 줄행랑(走爲上)
천하의 병법은 손자, 오자, 사마법, 위료자, 육도, 삼략, 이위공문대 등 병법 칠서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 1941 중일 전쟁 중 섬서성 빈주 고서점에서 필사본으로 발견되어 널리 알려진 秘本兵法 三十六計가 있습니다.
이 비본병법 삼십육계는 제1계만천과해, 제2계 위위구조, 제3계 차도살인...이렇게 나가다가 제34계 고육계, 제35계 연환계 그리고 맨 마지막 제36계가 走爲上으로 그 뜻은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끔 "이런 때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야!" 하는 소리를 하는데 이 말은 바로 비본병법 제36계에서 나온 말입니다.
비본병법 제36계 走爲上은 도망하는 것을 상책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적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커서 싸워 이길 수 없다면 항복, 화해, 도망 치는 세가지 길뿐입니다. 이 경우 항복하는 것은 완전히 패배하는 것이고, 화해하는 것은 반쯤 패하는 것이고, 도망치는 것은 아직 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패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승리로 전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도망하는 것이 최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망치고 물러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大局의 전세를 무시하고, 눈앞에 局地戰에 사로잡혀 기책과 묘책을 도모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입니다. 대국적으로 보아 전세가 불리하다면, 미련 없이 물러서는 것이 현명한 일이란 말입니다. 국지전의 小策을 농하기보다는 속히 도망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나갈 줄만 알고, 물러갈 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물러갈 줄만 알고 나갈 줄 모르는 것도 어리석음입니다. 나가고, 물러감의 때를 바로 포착하는 것이 지혜요, 병법의 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그렇습니다. 가야 할 때 가지 못하고,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설 줄 몰라서 낭패를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삼십육계 줄행랑은 무슨 일이건 도망치는 것이 상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러날 때는 과감하게 물러날 줄 아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질풍노도와 같이 나갈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는 도망입니다.
창의적 사고 다섯 단계
과거에는 Know-How가 뛰어난 사람이나 기업이 주도권을 가진 시대였습니다. 컴퓨터 시대에는 Know-Where가 뛰어난 사람이나 기업이 주도권을 가지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2000년대의 미래 사회는 무엇보다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나 기업이 주도권을 잡는 시대입니다.
다음은 <창의력 개발>을 위한 탱크주의 배순훈의 5단계 제안입니다.
제1단계. 문제를 정의하라(Problem Definition)
자신이 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왜? 왜? 왜? 라고 세 번 자문하라. 그러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해지고 문제의 범위가 확실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지도 않고 대충 그럴 것이다라는 선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문제 자체를 정확히 알라.
제2단계. 철저히 공부하라(Preparation)
문제가 명확하게 정의되고 나면 그 다음 할 일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철저히 공부하라. 밤에 꿈을 꿀 정도로 철저히 하라.
제3단계. 까맣게 잊어버려라(Incubation)
원래 인큐베이션이란 닭이 알을 품고 부화를 기다리는 과정을 말한다. 무언가 창의적인 생각을 해 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철저히 공부한 그 모든 것을 마음속에 품고 아이디어를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빙산은 수면 위가 전체의 8.3%이고 수면 아래에 91.7%가 잠겨 있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비율도 그와 같다고 하겠다. 이 과정은 인간의 이 무의식의 능력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제4단계. 순간적으로 번쩍 하는 것을 포착하라(Illumination)
벌거벗은 줄도 모른 채 목욕탕에서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경우이다. 어느 날 문득 번쩍 하며 영감이 떠오르는 법이다.
제5단계. 반짝인다고 모두 황금은 아니다(Follow-Up)
번쩍 했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100번 번쩍 했는데 그 중 99%는 별 볼일 없는 것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 마지막 단계는 번쩍한 아이디어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공상에 불과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물불 가리지 말고 밀어붙이면 된다.
(배순훈, 기본으로 돌아가자, 중앙M&B, 211-245쪽)
족집게 칭찬은 하지 말라!
우리 목회자들은 생일 잔치, 회갑연, 심방, 특별한 날을 위한 마련한 잔치 자리에 초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전에 어떤 권사님의 남편 생일 축하 잔치에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잔치 상이 들어오기 전에 함께 심방 간 전도사님, 장로님, 집사님들과 함께 축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진수성찬의 잔치 상이 들어왔습니다. 특별히 그 권사님이 남도 출신이라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산해진미로 상다리가 정말 휘어질 정도로 잘 차린 생일 잔치 상이었습니다. 별거 별거 다 있었습니다. 모두를 한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야, 이거 참 있다 하였고, 누군가는 나는 저것이 참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라 나도 한 마디 쯤 하여야 할 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음식 가운데 나는 해파리 냉채가 제일 맛있었습니다.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해파리 냉채는 아주 시원하였고, 졸깃졸깃하고, 자근자근 씹히는 게 여간 맛깔진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해파리 냉채의 묘미는 겨자의 배합에 있는 법인데, 그 날 그 해파리 냉채는 일류 중국 집에서 만든 것보다 더 우수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해파리 냉채가 제일 맛있다 에서부터 시작하여 해파리 냉채 예찬을 한참하고 자리를 파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습니다. 그 잔치 날 이후부터 목사님 때문에 그 권사님이 시험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무엇 때문에 시험에 들었는가?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참 공교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날 차린 그 여러 가지 많은 음식들은 모두 그 권사님이 장만하고 손수 요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제일 맛있다고 예찬한 바로 고 해파리 냉채만은 그 권사님이 만든 것이 아니고, 그 남편 집사님의 친구 부인이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줄을 알았나? 거 참 곤란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얼마 후 그 권사님도 기분을 풀고 화평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어느 자리에 가서도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로 맛있다는 소리는 해도, 어느 한 가지를 족집게로 집어내어 요것이 그중 제일 맛있다는 칭찬은 결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얼마 짜리로 살고 있는가?
인도의 성자 나나크데브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사람의 참되고 진실한 가치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나나크데브는 "내일 다시 오시면 그 때 말씀드리리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나크데브는 그 사람에게 눈부신 보석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보석을 가지고 시장으로 가서 값을 물어보시오. 하지만 아무리 비싸게 준다해도 팔지는 말고, 그냥 가게마다 들러 값을 물어보기만 하시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과일가게 주인에게 그 보석을 보여주고 얼마로 쳐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과일가게 주인은 오렌지 두 알 값으로 쳐 드리지요 하였습니다. 다음은 감자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감자가게 주인은 감자 네 근 값으로 쳐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대장장이는 500냥 쳐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보석가게들을 찾아갔습니다. 그 사람이 새로 찾아간 보석가게 주인마다 천냥, 오천냥, 만냥 하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사람은 그 도시에서 제일 유명한 보석가게를 찾아갔습니다. 보석가게 주인은 그 보석을 보더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몇 번이나 감정을 되풀이하고 나서 말하였습니다. "손님, 정말 훌륭한 보석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보석은 값을 붙일 수 없을 만큼 귀한 보석입니다. 굳이 값을 매긴다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야겠지요. 파실 생각이시라면 저에게 파시지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보석을 챙겨들고 나나크데브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나크데브는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어떠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겠군요? 사람이란 존재는 오렌지 두 알 값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감자 네 근 값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500냥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돈으로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를 지닐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가치란 각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품은 생각을 어떻게 현실화 시켜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쓰레기 밭, 시금치 밭
그 부자의 으리으리한 집 앞에는 널찍한 빈터가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빈터에 갖가지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빈터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습니다.
부자는 많은 돈을 들여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그러나 며칠 못가서 빈터는 다시 쓰레기장이 되었습니다. 부자는 또 돈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고 "이 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고 큼지막한 팻말을 세웠습니다. 그랬는데도 별효과는 없었습니다. 부자는 또 돈을 들여 쓰레기를 치우고 철조망을 둘러치고,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고발 조치 함!" 라고 쓴 팻말을 세웠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효과가 있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내 부자는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붙들어 고발하고 벌금을 물게 하였습니다. 그제야 동네 사람들은 좀 조심하는 듯 하였으나 도로아미타불입니다. 부자는 이 동네 것들은 아주 쌍놈들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시골에서 부자의 아버지가 상경하였습니다. 노인은 부자 아들의 불평을 들었습니다. 노인은 다음 날 아침 빈터로 나가서 철조망을 다 걷어내고, 쓰레기와 함께 넘어진 팻말 판자도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삽과 괭이로 빈터를 땀 흘려 파헤치고 돌을 골라내고 두둑을 만들어 밭을 만들어 갔습니다.
노인은 빈터에 만든 밭에다 무엇인가 정성껏 심었습니다. 며칠 동안 노인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밭에다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촉촉한 비가 내리고 나자 빈터 밭에는 파란 새싹이 솟아났습니다. 그것은 시금치였습니다. 시금치는 며칠 사이 파랗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잘 자랐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빈터 시금치 밭둑에 "필요하신 분은 조금씩 뜯어 가십시오!" 라고 쓴 팻말을 세웠습니다.
노인은 부자 아들에게 "애야, 시금치가 다 쇠면 상추, 파, 오이 같은 것들을 심어두어라. 그리고 꽃도 좀 심고..." 그렇게 부탁하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부자 아들은 아버지가 일러 준 대로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사람들과 점점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쌍놈들이 아니었습니다. 쌍놈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참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빈터는 이제 더 이상 쓰레기장이 아니라 동네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다음 해 봄, 그 동네 그 빈터에서는 "동네 노인정 준공 기념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날 시골에서 올라 온 부자의 아버지 노인은 부자 아들에게 "애야, 내 기분이 그만이다. 내 술 한잔 받거라" 하며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건네었습니다.
<유성 온빛교회 허광오 목사, 1997. 6.29.주보>
山을 노래한 漢詩 명작 3편
예수께서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막9:2)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눅6:12)
예수께서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6:15)
敬亭山에 올라(獨坐敬亭山) / 이백
衆鳥孤飛盡(중조고비진)/ 새들의 무리 하늘 높이 다 날아가고
孤雲獨去閒(고운독거한)/ 외로운 구름 한가히 떠가네
相間兩不厭(상간양불염)/ 마주 보고 앉았으나 싫증나지 않는 것
只有敬亭山(지유경정산)/ 나 그리고 너 경정산
華山에 올라 / 구준
只有天在上(지유천재상)/ 화산 위로는 오직 하늘 뿐
更無與山齋(갱유여산재)/ 더불어 겨룰 산 없네
擧頭紅日根(거두홍일근)/ 머리 드니 붉은 해 한결 가깝고
回看白雲低(회간백운저)/ 고개 숙여 내려보니 아득한 雲海
種南山에 올라 / 왕안석
終日看山不厭山(종일간산불염산)/ 종일토록 山을 봐도 山은 싫지 않다
買山終待老山間(매산종대노산간)/ 아예 山을 사서 山에서 늙어갈까
山花落盡山長在(산화락진산장재)/ 山 꽃 다 진다해도 山은 그냥 그 모습
山水空流山自閑(산수공류산자한)/ 山 물 다 흘러가도 山은 마냥 한가롭다
<이병한,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민음사, 2000>
루돌프 오토의 누미노스 개념 정리
루돌프 오토의 중심 주제는 종교의 본질인 "거룩한 것"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오토는 이것을 <numinous experience: 거룩한 존재에 대한 체험>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철학과 신비적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습니다. 오토의 이 개념을 통상 누미노스라고 합니다.
오토는 종교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이론, 합리, 철학적 체계보다는 직관, 감정 그리고 미학적인 태도가 더 유용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존재론적인 맥락에서 이해되고 감응된 미학적 인식, 감정적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1917년에 출판된 그의 대표작 <Das Heilige>는 종교를 도덕주의적 이론으로 체계화하려고 하였던 그 시대 신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종교는 도덕주의 이상의 심원한 신비와 깊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었기 때문입니다. 오토는 이 책에서 종교에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요소보다는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측면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고, 종교에는 인간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토는 종교를 설명하는 데는 합리적인 개념보다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누미노제 개념이 하나님과 거룩한 존재에 대하여 가장 적절하게 설명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였습니다.
오토는 누미노제 개념이란 슐라이엘마허가 말하는 거룩한 존재에 대한 의존감정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고 심원한 감정, 즉 그 거룩한 존재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정말로 진실로 아무 것도 아닌 피조물임을 존재론적으로 통감 통감 통감하는 그런 감정적, 미학적, 직관적, 체험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 누미노제 체험 안에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신비하고 매혹적이며 두렵고 떨림의 요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토는 모든 종교의 시작에는 이런 누미노스적 차원이 실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바로 이런 누미노스적 체험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현존, 인간의 무상함, 죄의 더러움, 용서받는 감동과 감격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오토는 이런 누미노스 체험은 자연인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신비적 사건이며, 영적인 사람만이 자신이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신 거룩한 존재 앞에 서 있는 피조물임을 절감하며, 이를 통하여 참된 자기를 자각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루돌프 오토의 이 누미노스 연구를 통하여 종교 현상에는 합리적이고 도덕주의적 관념에 익숙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합리적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누미노스적인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오토의 누미노스 개념은 메마른 신학 체계를 세우고 안주하려는 신학자들에게 항상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웅혼한 종소리가 되고 있습니다.
나침반 이야기
2001년 1월 31일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길을 걷다가 건국대학교 앞 책방에 들러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가 1995년부터 1996년 8월까지 중앙일보에 기행 엽서로 연재했던 글을 묶어 낸 <나무야 나무야>를 읽다가 마음에 와 닿고 맥이 서로 통하는 글 몇 줄 약간 각색하여 여기 소개합니다.
하나. 나침판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이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그렇게 떨고 있는 한 그 나침반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가 살아 있음이 분명하며, 그리고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옳다고 믿어도 좋습니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운 그 떨림을 멈춘 채, 어느 한 쪽만을 가리키며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남침판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 역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며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셋. 갈채와 통곡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와 함께 막이 내리면 그는 분장실에 홀로 남아 통곡하였습니다. 당신은 그 통곡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갈채는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바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통곡하였습니다. "나는 왜 드라마의 그 주인공처럼 살지 못하고 무대 위의 그림자로 살고 있는가?" 이것이 그의 통곡의 이유였습니다.
텅 빈 분장실에 홀로 남아 쏟아내는 그의 통곡 때문에 당신은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통곡은 그를 인간으로 세워놓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1996, 돌베개, 52, 82, 128쪽>
중국 길림성에서 온 편지
중국 길림성에서 박창수 씨가 보내 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말씀의 샘물 교회 이정수 목사님께>
할렐루야!
말씀의 샘물(2)을 읽고 너무 많은 은혜를 받고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만나 뵙지는 못하였지만 너무 가까운 심정입니다.
주안에서 평안하십니까?
지금 저희 부부는 길림성 왕청현 동광진 교회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물질을 따라다니다가 10년이란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이제 하나님 앞에 나와서 목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신학교를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신학교에 가려면 너무 어렵습니다.
할빈 신학교 시작한지 2개월 됩니다. 2월 달에 개학합니다. 저희가 할빈 신학교에 입학하려고 기도 중입니다. 기도 부탁 드립니다.
지금 현재 50명 성도들이 모여 예배 드리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목회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때 목사님의 말씀의 샘물(2)을 통하여 너무 많은 은혜 받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목사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목사님으로부터 설교에 도움이 되는 자료와 성경 공부 자료들을 많이 배웠으면 기대합니다.
말씀의 샘물 교회에 문안 드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에 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안녕히 계십시오.
2001. 1. 11.
중국 길림성 왕청현 동광진 기독교회 박창수
알림 : 인천 제7교회 조승철 목사의 아들 조나단 연대 신학과 입학을 축하함.
봄의 궁전 모임은 2월 19일(월) 오전 11시 30분.
몽블랑 만년필 이야기
<名品>이란 그것이 옷이든, 자동차든, 악세사리든, 집이든, 골프채든,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그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리고 그것이 자기만의 것이라는 특별한 감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그 무엇에 붙이는 명예로운 이름입니다.
소련 고르바초프와 서독 콜 수상의 국제 외교 문서, 동독과 서독의 통일 문서, 등 국제 외교 문서 조인식에는 몽블랑 만년필이 쓰이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몽블랑인가? 몽블랑 만년필은 세계가 알아주는 만년필 계의 명품이기 때문입니다.
몽블랑 만년필은 1906년 독일 C.J. 휘스, C.W. 다우젠, W. 잔보아 세 사람이 설립한 문구 회사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몽블랑은 처음 심플로라는 이름이었는데, 1910년 유럽에서 최고의 만년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하여 이름을 몽블랑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몽블랑 만년필 펜촉에는 육각형의 하얀 눈송이 심볼과 함께 4810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숫자는 바로 몽블랑(Montblanc) 봉우리 높이 4810M을 나타낸 것입니다.
몽블랑 만년필 펜촉은 18K 금이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나 하나 만드는 수제품이란 점이 특징이고 자랑입니다. 이렇게 몽블랑 만년필 한 자루 만드는데는 6 주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몽블랑 마이스터튁 씨리즈로 나온 솔리테어 1497은 14,000달러에 팔려 만년필 판매가 중 최고 가격으로 1983년 기네스 북에 올라 있는데 2001년 현재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았습니다. 그리고 죤.F.케네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영국 에리자베스 여왕 등 세계적인 명사들이 특히 몽블랑을 애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몽블랑이 명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저 우연히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전통이란 그냥 저절로 물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명예로운 전통과 명성을 이어 나가기 위한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몽블랑은 그 명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척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다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만년필은 여러 회사에서 만든 여러 종류의 만년필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몽블랑 만년필을 명품이라고 일컫는 것은 다른 만년필이 따라올 수 없는 몽블랑만의 품격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Noblesse, 2000. 12월호, 210쪽>
기이한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2001년 1월 5일, 수은주가 영하 13도 이하를 가리키는 매서운 小寒 아침 7시 30분, 지하철 3호선으로 구파발 역에 도착, 연계되는 156번 버스로 북한산 국립공원 에 하차, 해발 836.5m 백운대에 올랐습니다. 지난번에 내린 눈이 그 동안의 강추위로 하나도 녹지 않고 그대로인 채 설경을 이루어 장관입니다. 백운대 정상에 올라서니 매서운 북서풍이 휭- 휭- 몹시 몰아쳐 얼굴이 따끔따끔합니다.
백운 산장에 내려와 싸 가지고 간 김밥을 먹으면서 25년 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본 기이한 현상을 회상합니다. 그 때도 꼭 이런 날씨였습니다. 친구들과 백운 산장에서 좀 떨어진 바위 위에서 본 기이한 광경입니다.
25년 전 그 날. 전 날 내린 눈이 한낮의 햇빛을 받아 녹아서 나무 가지 가지마다 물방울로 맺혔다가 그 날 밤 강추위로 물방울이 꽁꽁 얼어붙어 나무 가지가지 하나 하나가 투명한 얼음 속에 갇혀있습니다. 온 산에 나무 가지가지가 모두 투명하다못해 파르스름한 다이야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기에 찬란한 햇빛이 비추자 온 산이 오색 찬란한 영롱한 보석 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 정말 너무 너무 황홀한 풍광이었습니다. 숨막히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온 골짜기를 흔들어 놓는 바람이 불자, 나무 가지가지가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큰 물결이 소리치는 듯, 백만 대군이 눈보라를 휘날리며 광활한 설원을 질타하며 아우성치듯 다- 다- 다-, 따- 다- 닥- 따- 닥-, 우- 르- 르- 르- 릉-, 다- 다- 닥- 하는 소리에 넋을 잃었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인데도 그날 온 산에 가득한 그 얼음 막대기 가지가지가 연출한 그 기이하고 웅장하고 절묘한 풍광은 눈에 선합니다. 아,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 때 나는 이런 멋진 풍경은 겨울만 되면 아무 때나 산에 올라오면 언제라도 흔히 있는 일인 모양이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그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 때는 그 것이 그렇게 귀하고 귀한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후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풍광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산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런 현상은 자기들처럼 산에 매일 다니는 사람들도 수년만에 어쩌다 한 번 보는 정도로 지극히 드물고 드문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하나 하나가 그처럼 기이하고 기이한 일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사다 정신
이스라엘 사해 동편 황량한 벌판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마사다 성>에는 AD.73년 로마 군에 최후까지 저항한 용사들의 비장한 역사가 숨쉬고 있습니다.
<마침내 로마 군은 물샐 틈 없이 마사다 성을 조여갔다. 성벽은 불길에 무너져 내리고 탈출할 길은 전무하였다. 마사다 성의 용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뿐이었다. 이 때 마사다 최후의 지도자 엘리에젤 벤 야이르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연설을 하였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결단코 로마의 노예는 되지 않기로 결단하였네. 우리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라 믿고, 오직 하나님 앞에만 무릎을 꿇기로 맹세하였네. 이제 날이 밝으면 로마 군은 총공격을 해 올 것이며, 내일이면 우리는 로마의 노예가 될 것이네. 형제들이여! 우리의 아내가 욕을 당하기 전에, 우리 자식들의 보드라운 어깨에 노예 문신이 새겨지기 전에, 우리 모두 죽음으로 노예가 되지 않기로 하세. 노에가 되느니 죽음으로 자유를 택하기로 하세. 우리 손은 아직 자유롭고, 우리 손에 아직 칼이 있네. 노예가 되기 전에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랑하는 처자와 함께 이 세상을 하직하세!"
엘리에셀의 연설은 끝났다. 마사다 최후의 용사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그들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포옹하고 긴 이별의 입맞춤을 하였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찔렀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가련한 그 남자들은 비극의 집행자 10명을 뽑고 그들의 가족 곁에 누워 그 슬픈 일을 맡은 10명의 동지 앞에 자신의 목을 내밀었다. 10명의 집행자들은 소리 없는 오열을 삼키며 그 모두를 죽였다. 남은 10명 가운데 최후의 집행자 한 사람을 뽑고 모두 그 앞에 목을 내밀었다. 마지막 남은 그 사람은 죽기 위하여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가를 확인하고, 자신의 가족 옆에 앉아 스스로 자신을 깊이 찌르고 운명하였다. 죽음으로 자유를 얻은 사람들 위에 마사다 성터의 바람이 조용히 불어갔다.
다음날 아침 실바의 로마 군은 그토록 강인하게 저항하던 마사다 성을 철저히 파괴하리라 마음먹고 총공격을 시작하였으나, 마사다 성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실바의 로마 군이 마사다 성에 입성하여보니, 거기엔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기를 원하였던 마사다 정신이 푸른 하늘에 서릿발처럼 맴돌고 있었다.>
오늘날 현대 이스라엘 모든 남녀 청년들이 군에 입대할 때, 바로 이 마사다 성에서 군 입대식을 거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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