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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rehensive◑/Seonhee

-[2022년 06월 05일] 성령 받은 사람의 속성(행 10:44~48)

by 【고동엽】 2022. 10. 22.

[2022년 06월 05일] 성령 받은 사람의 속성(행 10:44~48)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yElcIATE33w

 


지금 특별히 성령강림주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0장 44절로 48절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 206면입니다. 206면 사도행전 10장 44절부터 봉독하겠습니다. 이 귀한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아멘.

1960년에 제가 미국 유학을 갔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미국 장로교의 노회에서 저를 '비지팅 패스터(Visiting Pastor)', 방문 목사라고 하는 직명을 주어서 임명장을 제게 주었습니다. 공부하면서 주일이 되면은 미국 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방문 목사로 이곳저곳 교회 다니면서 설교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서툴고 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죠. 그래서 설교 시작할 때 미국 사람들이 설교는 대개 시작할 때 유머를 많이 합니다. 유머를 하고 설교하는 그런 습관이 있어서 저도 유머를 했습니다. 아주 심각한 유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이 충만해서 방언을 했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스피킹 인 텅(speaking in tongue), 방언을 했다는 말이 있는데 자세히 분석해보면 베드로가 방언을 한 게 아니고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방언을 한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입이 방언을 한 게 아니라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귀가 방언을 한 겁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나라 말로, 자기가 알아듣는 말로 들려지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방언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 내가 영어가 서툴지만 당신들이 성령 받았으면 잘 알아듣게 될 거요. 내가 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다들 웃으셨는데 그 재미있는 것은 예배 마치고 나갈 때 악수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하면 그 장로님들이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제게 와서 이런 얘기에요. 악수를 잡고 "저는 성령 받았기 때문에 다 들었습니다. 한 마디도 안 빼놓고 다 알아들었습니다." 이렇게 내게 인사하는 그 장로님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확실히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확실하게 우리의 중요한 신학적 논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멀리서 구경하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간섭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와 만나 주시고 우리와 교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이란 말이에요.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보시면서 우리더러 오라 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와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주시고 모든 사건 속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마틴 루터는 객관적 계시라고 말합니다. 오브젝티브 레벨레이션(Objective Revelation).

객관적 계시다. 이것은 객관적 계시다. 이걸 통틀어 말하면 창조의 역사, 또 우리 인간의 역사, 또 그리고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모든 사건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 우리가 듣는 소문, 이것 다 통틀어서 객관적 계시다. 하나님이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심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은 주관적 계시입니다. 이것은 서브젝티브 레벨레이션(Subjective Revelation).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냐?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도록 감동되도록 순종하도록 특별히 믿음을 가지도록 역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와서 친히 역사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 홍해를 가른 능력, 죽은 자가 살아나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 능력을 내가 믿지 아니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믿게 하는 역사 그것이 성령의 역사예요. 사건으로 다가오는 것은 객관적인 계시요, 우리 가운데 우리를 감동해서 받아들이고 알도록 믿도록 역사하는 것은 주관적인 성령의 역사다, 이렇게 루터는 확실하게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면 말씀이 들립니다. 편견 없이 잘못된 잠재의식이나 고집이 다 무너지고 오롯이 말씀이 다가옵니다. 알아듣도록, 감동

하도록, 충만하도록 역사해 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조심해야 됩니다. 다른 책을 보듯이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말합니다만, 성경은 누워서 보면 안 됩니다. 딱 앉아서 정좌하고 봐야 됩니다. 기도하고 봐야 됩니다. 왜요?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기 위해서 내가 소설책 보듯이, 무슨 재미있는 책을 보듯이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와 만나는 계시 사건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에요.

그러므로 내가 읽는 것은 역사서입니다. 옛날 성경책입니다마는 읽어가는 동안에 성령이 내 마음에 감동하셔서 이 말씀을 알게 하고 이 말씀을 믿게 하고 이 말씀 기억나게 하고 이 말씀과 함께 우리 영혼을 수선하사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성령과 함께 오롯이 내 고집이나 잘못된 편견, 의심이 싹 사라지고 확실하게 확고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다가오게 된단 말이에요.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성령이 조명할 때 성경 속에 있는 진리를 알게 됩니다. 큰 진리를 알게 됩니다.

여기 이적 기사가 있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이 있습니다. 이것은 곰곰이 한 얘기입니다. 오직 한번 나오면 정말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읽어 가는 동안에 성령이 역사하면 그 속에서 구약성경에서 예수를 만납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순교 직전에 설교를 합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역사를 시작해가지고 쭉 얘기합니다. 긴 관점 동안의 설교를 하는 중의 그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전이요, 그리고 특별히 말씀하시는 모든 사건 하나하나 그리스도와 준 바랍니다. 특별히 성전을 말할 때 그 스데반이 많이 사용한 용어 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광야 교회입니다. 깜짝 놀라운 얘기입니다. 교회, 광야 교회 속에 하나님이 위대한 역사하시는 역사가 있음을 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그 긴 역사 속에서 보고 느끼고 확신하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같은 구약성경을 보는데 유대 사람들은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못 봅니다. 성령 받은 스데반은 예수를 봅니다. 진리를 봅니다. 아니 영원한 생명을 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조명할 때 이 같은 역사가 가능합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이 함께하면 사람이 변하고 인간 관계도 변합니다. 인간 관계가 변합니다. 그래서 이방인 고넬료라는 사람과 베드로라는 사람은 이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겁니다. 옛날로 말하면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

금지입니다. 같이 음식을 먹는 일은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 방문하기도 않고, 동행하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는 겁니다. 그런 이방인입니다. 특별히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고넬료는 로마 군인입니다. 이 땅을 점령하고 여기 와서 통치하고 있는 로마 군인 대장입니다. 베드로는 더 갈릴리 사람입니다. 초라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두 사람이 만납니까? 두 사람이 하나 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성령에 의해서 성령이 그와 같은 인간 관계를 만났어. 로마 군인과 아 유대의 갈릴리 어부가 어떻게 하나가 될 뿐 아니라 베드로가 이 집에 찾아갔을 때 고넬료가 뭐라고 합니까? 얼마나 베드로를 높이 보면서 경배를 했었으면, 경배란 말입니다. 그냥

보통 절이 아닙니다. 절을 했는지 베드로가 원래 우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은 아 얼마나 황급했으면 고넬료를 일으키면서 "나도 사람이오. 이렇게 절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아요? 얼마나 경건한 모습으로 고넬료가 베드로를 대했는가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고넬료가 유유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던 말씀을 하세요.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이러한 경건, 놀라운 분위기죠. 이것이 성령의 역사, 원래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날 사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이, 성령이 역사해서 이 모든 무너진 이 큰 담이 무너지고 인간 관계가 완전히 원수가 친구가 되고, 서로 미워하던 사이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이 편견

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늘 읽을 때마다 감동스럽게 보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성령 받은 사람이 유무 상통했다. 유무상통했다, 별의별 말까지 있습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는 자가 없더라." 아 귀한 말씀입니다. 어디서 문제 갑니까? 내 것이 없어요. 원래가. 그런데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원래 내 것이 아닌데도 소리까지 내 것이라고 확고하게 하기 때문에 세상이 어려워지는 겁니다. 내 것은 없어요. 당신 가지고 있다가 다 손 놓아야 되는 거예요. 고만 생각만 해도 될 거 아닙니까? 그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옛날에 알렉산더 대왕이 세상에 죽었잖아요. 대왕이 죽은 다음에 장례식을 하는데 관을 메고 나갈 때 내 두 팔은 관 밖으로 내놓으라 명령을 했어요.

죽은 다음에 관을 메고 나가는데 보니까 두 팔이 이렇게 돼서 덜렁덜렁. 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저게 무슨 일이냐고 볼일이 죽을 때 유언한 거라고. 무슨 말이에요? 공수래 공수거. 아무 것도 가지고 가는 거 없다. 잘 돌보아라, 이놈들아. 그거 아닙니까? 아, 이걸 알아야 돼요. 그런데 유무상통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저 사람이 못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내가 그들에게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관계를 알았어요. 그 유무상통입니다. 이 이기주의가 없어집니다. 내 것을 내가 차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그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사정을 알아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동감할 수 있고 그래서 베풀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더 그 안에 마지막적인 귀중한 말씀이 있죠.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해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아 그렇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하늘의 일을 있는 것을 봅니다. 하늘이 열리는 것, 아 귀중한 겁니다. 하늘 문을 열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 받은 사람에게 그 심중에 하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걸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더 귀중한 말씀 마지막에 있죠.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더라." 아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천사와 같더라. 우리가 천사를 본 일은 없어요. 그러나 천사 같은 사람은 있어요. 천사 같은 사람은 많아요. 더구나 어린 아이들 노는 것 보고 그 잠자는 것

보면 천사 같아요. 그 평안이 천사 같아요. 그렇습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성령 받은 사람의 얼굴은 천사 같습니다. 우리가 뭐라고 말은 하지만 딱 보면 알아요. 풍문으로 알아요. 그,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마음이 변하고 생활이 변하고 인간 관계가 변하고 철학이 변하고 인간 가치관이 변할 때 그리고 영원한 하늘을 확고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이 되세요. 사도행전에서 귀중한 말을 합니다. 바로 이 얼굴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스데반이 설교할 때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려고 돌을 들어 풀려고 할 때입니다. 지금 막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데 쳐다보니까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와 같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순교를 앞두고 원수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돌을 내게 던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천사 같았대요. 그런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스데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연연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되니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 됐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사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 같은 사람은 있습니다. 얼마든지. 우리 얼굴 가지고 한번 거울을 봅시다. 무슨 얼굴일까? 얼굴이 변하고, 생활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신학자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가 세상에 순교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방 생활을 마치고 처형장으로 옮겨질 때 나갈 그때에 그는 그의 감방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페인 리스트라고 하는 동료에게 말합니다. "이제는 끝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삶의 시작이다." 처형당하는 날 동료 죄수들에게 이 성경 강의를 했습니다. 그가 다 담대해서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여" 이사야서 53장 5절을 강의했습니다. 53장 5절을 강의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을 외우면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살아있는 소망으로 거듭나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양할지어다."

순교 직전에 이런 그러한 말씀을 암송하면서 감방 동료들에게 전도하고 갑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사람, 성령에 이끌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베드로와 고넬료는 만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만나게 했습니다. 성령이 사귀게 했습니다. 성령이 존경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성령과 함께 말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이러한 경건한 분위기를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 중생이 있고 진실한 경건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 아버지, 오늘 특별히 성령강림주일을 당해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위대하고 그의 이끌림에 이어서 여기까지 온 것을 다시 한번 확정하며 감사드립니다. 주여, 남은 해도 인도하사 우리가 여생을 너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성령과 말씀에 이끌리어 순결하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겸손 지지하여 주어 주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령강림주일 설교 요약: 성령의 역사와 그 결과

이 설교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신약성경 사도행전 10장 44-48절 말씀을 중심으로 **성령의 역사(役事)**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인간관계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과 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성령의 강림과 이방인 세례 (본문: 사도행전 10:44-48)

  • 성령 강림: 베드로가 설교할 때, 말씀을 듣던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일행에게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 놀라운 현상: 할례 받은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지자 놀랐는데,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 이방인 세례 인정: 베드로는 이들이 유대인 신자들과 같이 성령을 받았으므로, 물로 세례 주는 것을 금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도록 명했습니다. 이는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이 열린 중대한 사건입니다.

2. 성령의 역사에 대한 경험적 예시

  • 유머를 통한 성령의 역사(설교자의 경험): 설교자가 미국 유학 시절 서툰 영어로 설교할 때, 유머로 "베드로의 입이 아닌 듣는 사람들의 귀가 방언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예배 후 성도들은 성령 받았기 때문에 한마디도 빠짐없이 다 알아들었다고 인사하며 성령의 역사로 인해 말씀이 분명히 들렸음을 간증했습니다.

3. 마틴 루터의 관점에서 본 계시 (성령의 사역)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계시를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성령의 역할을 설명합니다.

  • 객관적 계시 (Objective Revelation): 하나님이 천지창조, 인간 역사, 그리고 모든 사건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간섭하시며 다가오시는 역사(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포함).
  • 주관적 계시 (Subjective Revelation):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감동되고, 순종하고, 특별히 믿음을 가지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능력을 '믿게 하는 역사'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4. 성령 받은 사람의 구체적인 변화

A. 말씀에 대한 깨달음

  • 말씀이 들림: 성령을 받으면 편견이나 고집이 무너지고 말씀이 오롯이 다가와 알아듣고 감동되고 충만하게 됩니다.
  • 성경 읽는 자세: 성경은 소설책 보듯이 읽지 말고, 정좌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를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이 믿어지고 기억나며, 영혼을 수선하여 구속의 역사를 이룹니다.
  • 진리 조명: 성령이 조명할 때 성경 속의 큰 진리를 알게 되며, 구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 스데반은 구약 역사를 설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 영원한 생명을 보았음. 유대인들은 보지 못함).

B.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변화

  • 벽이 허물어짐: 성령의 역사는 사람과 인간관계를 변화시킵니다.
    • 고넬료와 베드로: 로마 군인 대장 고넬료(이방인)와 갈릴리 어부 베드로(유대인)는 율법적으로 만날 수 없는 사이였으나, 성령으로 인해 만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경배에 가까이 높였고, 베드로는 '나도 사람'이라며 겸손히 대했습니다.
    • 공동체의 하나 됨: 고넬료는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말씀하세요"라고 경건하게 말하며, 성령의 역사로 원수가 친구가 되고, 미워하던 사이가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 유무상통 (有無相通):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무상통했습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 하는 자가 없더라'는 것은 내 것이 원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남의 사정을 알아보고 베풀 수 있는 사랑의 관계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기주의가 사라집니다. (예: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처럼 '공수래 공수거'임을 깨달음).

C. 영적인 통찰과 얼굴의 변화

  • 하늘의 것을 봄: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순교 직전에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봅니다.
  • 천사 같은 얼굴: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더라는 것은 성령 받은 사람의 변화된 내면과 삶의 태도가 외모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 직전 원수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있을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평안과 용서(순교 직전 "이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라고 기도)를 담고 있었습니다.

5. 순교를 앞둔 믿음의 본보기

  • 디트리히 본회퍼: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처형장으로 옮겨지면서 동료에게 **"이제는 끝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끝이 아니다. 삶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순교 직전에도 이사야 53장 5절("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여")과 베드로전서 1장 3절("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살아있는 소망으로 거듭나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양할지어다")을 암송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에 이끌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결론적 메시지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성령의 역사는 말씀이 들리게 하고,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며, 중생과 진실한 경건을 이루게 함을 확인합니다. 설교자는 남은 여생 동안 성령과 말씀에 이끌리어 순결하고, 용서하며, 겸손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설교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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