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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마무리 행6:15

by 【고동엽】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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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youtube.com/watch?v=cSEcPh2jX54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            행6:15             출처

   

한국 전쟁 동안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때는 고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어느 학교 운동장에 그 전쟁 때인데도

아이들이 수 십 명 나와서 축구 공을 차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해가 늬엇늬엇 넘어갔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상당히 날이 어두워졌는데

학교 선생님이 퇴근하느라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보니까

누추한 옷을 입은 한 어린 학생이

운동장 한 가운데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너 왜 여기에 서 있니?’

그 아이는 ‘나는 갈 데가 없어요’

그 말은 ‘나는 고아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 집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는 돌아갈 집이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 인생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우리의 인생에

마지막 석양이 넘어갈 때가 옵니다.

그 석양이 넘어갈 때, 여러분 돌아갈 집이 있습니까?

 

‘나는 돌아갈 집이 있다!’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나요?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왜 신앙을 가집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뭘 의미합니까?

내 인생에 마지막이 올 때,

‘주님, 나 이제 가도 돼요?’

이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삶이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석양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을

너무나 많이 봐 왔습니다.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 ‘나는 절대로 안 죽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 최후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인생을 마무리합니다.

 

제가 1959년에 대전에서 군대에 복무했는데

그때 대전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죽는 모습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그 날 아침에 자기 죽음의 낌새를 알아차렸던지

계속 악을 쓰는데

“돈, 돈, 돈!”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녀들이 은행에서 돈을 현찰로 찾아서

그 아버지가 누워있는 방 안에 쏟아부었습니다.

 

그 부자는, 계속 자기 이불 밑으로 돈을 넣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마 저승길 노잣돈을 준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날 오후 3시 경에 그는 세상을 떠났는데

제가 보니까, 그의 이부자리 밑에는

돈이 아주 높이 수북히 깔려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죽을 때까지 자기 죽음을 안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안 죽어’ 하면서 죽는 유형이 있습니다.

 

▲2 두 번째 유형은 ‘내가 왜 죽어?’입니다.

‘내가 뭐 잘못했다고?’ 이렇게 생떼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도 많이 있죠.

‘네 놈이 내 속을 썩혀서 내가 이렇게 죽는다’ 하면서 악을 바락바락 씁니다.

 

또 남편들은 ‘아내 때문에 죽는다’며 아내를 원망하며 갑니다.

내가 장가를 잘못 들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떼를 씁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를 내가 잘못 만나서..’ 의사를 원망합니다.

그런데 결국 그러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하는데요

‘나는 교회도 안 빠지고 다니고, 헌금도 잘 드리고

교회 봉사도 나름 잘 했는데, 하나님 왜 저를 죽이시는 겁니까?’

 

어느 여자분이 기억납니다.

그 분이 살아있을 때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존경했습니다.

 

그 분이 새벽 2시반에 죽기 망정이지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그러니까 남편과 담임목사만 자기 곁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담임목사 앞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는데

그분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거품을 물고서 악을 쓰면서

악쓰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세상을 떴다는 얘기는 아무도 안 합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세상을 떴다는 얘기가 들리면

그분을 존경했던 사람들이 너무 실망할까봐요.

 

▲3  세 번째 유형은 마지막 순간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두 손을 모아서 싹싹 빌면서 ‘한 번만 살려주세요!’ 합니다.

이번만 살려 주시면 제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 하겠습니다! 별의별 서약을 다 합니다.

혹시 살아나면 약속을 또 안 지키기 쉽죠.

 

남부 지방에서 돈이 아주 많다는 어느 사람이

인생 마무리를 짓는데

뭐라고 계속 한 달 동안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내 병만 고쳐주면, 내 재산 절반을 다 주겠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저런 미친 사람을 봤나!’

‘자기 재산을 다 준다고 해도, 그 병을 고치기 힘든데

자기 재산 중 절반 준다고 하다니..’ 결국 죽었죠.

 

이렇게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제가 이제는 새벽기도 나가겠습니다.

별 약속을 다합니다.

‘하나님 이번만 살려주시면 십일조 안 떼먹고 꼭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한 분을 만났는데

당시 1960년대입니다.

나하고 같이 공부했는데, 안 믿는 분인데 군대를 갔습니다.

 

전쟁을 하는데, 중공군이 넘어오니까

그런데 중공군이 한 두 명이 넘어오는게 아니라

벌떼처럼 몰려오는데

감당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죽었구나 싶었습니다.

총을 버리고 ‘나는 죽었다’ 생각했습니다.

 

전혀 신앙도 없고 교회를 안 다니던 그 분이

그 중공군이 벌떼처럼 내려오는데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제가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런 서약을 했습니다.

그 전쟁 와중에요.

 

그렇게 포로로 잡혀도 죽는 것입니다.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중공군과 같이 내려오는데

그런데 중공군이 자기를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같이 내려온 것입니다.

 

저녁이 되니까 중공군의 행진이 중지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는 계속 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아군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3년 더 군대생활을 하다가

제대하고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제가 다니던 신학교(한신대)에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농촌목회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나 우리나

하나님한테 이 약속 한다고 다 들어주시면 어떻게 될까요

이 지구가 무거워서...

죽을 사람 아무도 없게 됩니다.

 

종종 가다가 꼭 필요한 사람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실지 모르지만

‘한 번 살려주시면...’ 이렇게 하나님한테 빌다가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습니다.

 

▲4 그런데 어떤 사람을 보면 딱 죽을 때

혼이 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죽는다니까 너무 충격을 받아서요!

 

여러분은 만약 그 순간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혹시 여러분, 그냥 거품 물고 하나님을 저주?

아니면 하나님 붙잡고 애원하겠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완전히 넋이 나가서 멍해 버리는데

그 분이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한 분입니다.

 

나는 그 분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병원으로 찾아갔더니

제가 말씀드렸죠

‘선생님 힘 내세요!’

 

그랬더니 저보고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로

‘소망이 없어요 소망이 있어야 힘을 내지..’

 

아니 믿는 사람이 뭐가 소망입니까?

아니 죽은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소망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 분은 그 소망도 없다는 것입니까.

 

결국 그 분은 죽을 때까지 그 넋이 나간 상태에서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아마 한 두 달 세 달은 더 살 수 있었는데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제부터 준비해야 하는 게

여러분에게 반드시,

반드시 여러분이 만아야 할 순간이 찾아옵니다.

마지막 순간입니다. 이건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때 넋이 나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 자녀들한테 보여줘야 됩니다.

여러분 다른 교인들한테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됩니다.

 

▲5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이 왔을 때

‘어떻게 저렇게 여유가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마치 이웃집에 가는 것처럼

저런 초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서울 신당동에, 옛날 얘기입니다.

1980년대 때인데 신당동에 남편이 법조인입니다.

아내는 당시 29세였어요.

그 젊은 나이에 결국 불치병을 얻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에 아들만 둘이 있었습니다.

6살, 4살 아들 둘을 두고서 엄마는 죽어갑니다.

 

그 29세된 강집사가 세상을 떠나는데

마지막 순간에 목사님하고 자기 남편을 불렀습니다.

다른 분은 방에서 다 나가게 했습니다.

 

자기 방에서 한 손으로 담임목사님 손 잡고

다른 손으로 자기 남편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꼭 무슨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목사님한테 하는 얘기가

‘목사님, 나 이제 가도 좋아요.

그런데 목사님, 제가 떠나고 난 다음에

우리 남편하고 우리 아이들, 목사님 꼭 돌봐주세요.’

그러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다음에 자기 남편에게 고개를 돌려보더니

임종 2분 전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요!

 

남편을 바라보며 하는 얘기가

‘여보, 나 당신을 좋아했어요.

내가 죽더라도 우리 아이들 사랑할 수 있는 여자

빨리 만나서 결혼해요!

저기 방 윗목에 옛날에 가난한 시절에 그 옷장 몇 칸이 있었는데

제일 윗 칸에 우리 큰 애 옷이 들어있어요.

그 다음 칸에는 우리 작은 애 옷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꺼내 입히세요!’

 

그러더니 빙그레 웃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잡았던 스스로 손을 놓았습니다.

 

어떻게 29세의 젊은 나이에

이렇게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옵니다.

나는 오늘 전철을 타고 오는데

전철을 타고 오면서도 생각했습니다.

’이 순간이 나에게 마지막 순간일 수 있다.‘

 

언제든지 버스를 타거나 뭘 하거나

내 마지막 순간이 올 때

나는 어떻게..

 

그러고 보니까 그 담임목사님 말씀을 들으니까

그 여집사가 교회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정말 헌신했다고 합니다.

 

그 신앙생활이나 가정생활이나

남편 받드는 것이나

정말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늘 감사하고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결국 마지막을 맞을 때

그렇게 여유가 있습니다.

 

자, 여러분, 요즘 내 몸에 이상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려면

또 폐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면 엑스레이를 찍습니다.

그 엑스레이를 발전시킨 의학자들이 많은데

초창기에는 엑스레이를 찍는데, 그 방사선을 막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는 의사는 그대로 다 노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죽는 것입니다.

그분들 때문에 결국 오늘날 이 엑스레이 기술이 발달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의학자가 일본 동경의과대학에

리기치 박사입니다.

리기치 박사가 그 엑스레이를 연구하고

엑스레이를 사람들에게 찍는데

그 때는 방사능으로부터 방호하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몇 년 동안 엑스레이를 찍으니까

그 방사능을 몇 년 동안 계속 쬐니까

그 의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말 성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이제 몸이 말을 잘 안 들으니까

결국 동경의과대학에서 진찰을 했는데

의사들이 뺑 둘러서서 말했어요.

 

’선생님, 선생님은 의사이시고 우리도 의사입니다.

우리가 선생님을 속일 수 없잖아요.

선생님은 앞으로 1년반 밖에 못 삽니다.

 

그때 이 리기치 교수는 누워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얘기입니다.

‘1년반이면 내가 아직도 우리 주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네요!’

   

 그렇게 꼭 이웃집 가는 것처럼 편안하게...

      

 

성경에 마지막을 맞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스데반!

스데반이 마지막 순교당해 죽을 때

그 얼굴에 천사의 얼굴 같더라고 그랬습니다. 행6:15

 

‘오 하나님! 저들이 뭘 하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워왔습니다.’

그 얘기는 ‘나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입니다.

 

나는 교회를 위해서, 우리 가정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지막이 올 때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빙긋이 웃으면서

‘하나님 나 이제 죽어도 좋아요!

왜냐면 내가 주님 앞에 갈 수 있습니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자, 우리가 정말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언제 우리한테 마지막 순간이 와도

그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우리 얼굴에 여유가 있고

 

‘주님 이제 나는 떠나도 돼요!’

나는 오늘도 내일도 어제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내게 마지막이 올 때도 조금도 두려움없이

‘나 가도 돼요!’ 이런 고백을 하려고

지금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멋있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신앙인이 되어 보십시다! 아멘!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7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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