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3월 13일] 이 사람의 선택과 그 운명(창 13:1~13)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rYKzBkV2Khs
📖 성경 봉독 및 설교 말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3장 1절로 13절에 있는 말씀드리겠습니다. 창세기입니다. 구약성경 15면입니다. 구약성경 15면. 창세기 13장 1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성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러 벧엘과 아이 사이에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능히 넉넉하지 못하니 이는 그들이 소유가 많아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이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쪽으로 옮겨가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 평지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아멘.
👂 설교 말씀
목회하는 경우에 교인들로부터 성경 진리에 대해서 때때로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주 난감한 질문, 대답하기 어려운 그런 질문도 많이 듣게 되는데, 지금도 아는 중에 제일 많은 질문을 하는 게 뭐냐 하면 이거입니다. 에덴 동산에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았나요? 아예 만들어 놨으면 따 먹지 못하게 절벽을 더 높이든가, 아니면 아예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으면 좋았을까? 왜 그걸 만들어서 따 먹을 수 있게 하고, 또 따 먹어서 이러이러하여 우리 인류에게 이렇게 큰 불행이 오게 했을까요? 왜 에덴 동산에 그 선악과를 만들어 놓았을까요? 하는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글쎄요, 누구도 정답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선택의 자유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생각, 판단력, 능력, 해방.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스스로 선택하는 걸 통하여 하나님은 기쁘시게 물었고, 영광을 얻고, 그래야 하고 싶으신 거예요. 그걸 한마디로 말하면 인격적 관계입니다. 소나 돼지나 짐승처럼 묶어 맨 게 아니에요. 자유롭게 놓아두었다가 자유로운 가운데서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따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이것이 간단한 말씀입니다. "따 먹지 말라. 먹으면 죽으리라."
이 간단한 말씀 속에 중요한 보물이 있습니다. 따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고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따 먹을 수가 있고 안 먹을 수 있어요. 따 먹어서 사망을 선택하든가, 따 먹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택해서 그 자유함을 누리든가. 그렇게 우리 인간에게 귀중한 선택의 존엄성, 선택의 능력, 선택의 가능성, 선택의 자유의지를 우리에게 주신 말입니다.
그것이 든 일단 선택을 한 다음엔 책임을 져야 됩니다. 성경 말씀대로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나와 있는 말씀을 믿었다면, 믿었다면 따 먹지 않았을 것이고, 따 먹지 않았으면 따 먹지 않으므로 해서 영원한 자유를 향유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먹는 날은 죽으리라" 이 말씀을 듣고도 따 먹었습니다. 그리함으로 인하여 인간에게는 큰 불행이 온 것이죠.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따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다고 하는 그 선택적 능력, 그 속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큰 인격적 관계, 아니 은총적 관계, 계약적 관계, 아 그 속에 신겨 높여 놓으신 말씀인 말입니다. 아, 그게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선택의 폭이 넓으면요 위험도 큽니다. 선택의 폭이 넓어서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아, 그 위험한 거죠. 그보다는 차라리 선택의 폭이 좁을 때, 곧 선택할 수가 없어 이것은 이럴 수밖에 없는 것. 오히려 그때에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은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그런 철학적 이론도 있습니다. 어쨌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에 있어서 선택이란 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가 **'choice'**란 말이 있어요. **'choice'**란 말은 여러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먹을까? 많은 음식 중에 하나. 또 무슨 옷을 입을까? 많은 옷 중에 하나. 많은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choice, 그 선택이 있고요. 또 하나의 선택은 **'decision'**이라고 하는 선택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버리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는 버려야 합니다. 그 버리는 용기가 없으면 이 선택마저 기죽고 흔들리는 겁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를 다 포기하는 것. 뒤 바로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 말씀합니다. 십자가 먼저. 예, 예수님을 선택하는 순간 그 외 모든 것을 버리는 겁니다. 그런 선택, 그런 decision. 이것이 있어서 그 영혼이 자유할 수가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또 묘한 것은 하나님을 선택할 때 우리는 세상을 버리게 됩니까? 믿음을 선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선택할 때 우리는 무한 감사하게 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선택한 다음에 선택한 것에 대한 자기 책임을 지는 겁니다. 오늘 전제되어야 될지 선택한 데 대한 책임을 져 나가는 것. 그 책임 의식, 인격적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세상이 어렵고 복잡한 것은 선택을 잘못 해놓고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는 것.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선택을 했으면 정중하게 모든 책임을 내가 지는 바로 그러한 믿음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75세 때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그리고 내가 네게 약속의 땅을 보여 줄게" 큰 약속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고향을 떠날 때 성경은 히브리서에서 말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고향을 떠납니다. 그 믿음입니다. 위대한 믿음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가나안 땅에 사는 동안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소와 양이 많고 모든 소유가 금은이 풍부한 한마디로 말하면 요새 말로 하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근데 조카 롯도 따라가거든요.
근데 이 조카 롯을 자기 종처럼 부리지 않고 똑같은 형제로 대우를 했다고요. 아들같이 대우를 했다고요. 그래서 성경에 보는 대로 아브라함의 그 많은 재산, 조카 롯의 재산, 이렇게 두 집안의 재산이 넉넉해졌어요. 그래서 이 땅이 좁아요. 이 가나안 땅이 좁아서 여기서 머물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이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퉈요. "이건 내 거고, 이 땅은 내 거고, 이건 네 거다." 아, 이런 어려움이 생겼단 말이에요. 이럴 때 아브라함이 고민을 하면서 문제 해결을 합니다. 아, 이러는 것입니다. "나를 떠나라. 우리 분가하자. 왜 이렇게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살려고 애쓰지 말고 떠나자. 나누자. 분가하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아브람의 선택은 확실합니다. 하나를 요구합니다. 이것이 근본적 해결의 징표입니다. 과감하게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선택합니다. 양보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자기 권리가 있습니다. 삼촌입니다. 자기가 말하자면 조카 롯은 "넌 내 덕에 여기까지 왔고 내 덕에 부자가 됐으니, 넌 내가 먼저 우선하고 넌 뒤따르라." 이래야 하지만은 아브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 삼촌이라는 권리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포기하고 조카 롯에게 일방적으로 양도합니다. 성경에 보면 화목을 선택합니다. "서로 다투지 말자. 다툼을 포기하지 말자." 평화를 화목을 선택. 불경보다 화목함이, 재물을 잃어 놓는 것보다 화목하는 것이 중요할 거라.
잠언에 있는 말씀과 같이 "채소만 먹으며 화목하는 것"이 살진 것을 먹으며 싸우는 것보다 낫다. 화평이 그냥 가정의 머리에도 깃드는 아 모범입니다. 아브라함은 화목을 선택했습니다. 재산보다 화평, 재산보다 화목을 택했고, 그러기 위해서 양보를 선택했습니다. 아, 여러분! 양보 없이 화목이 됩니까? 우리는 화목한다고 하다가 더 싸우는 사람들 많아요. 화목한다고 하다가 더 멋지게 커져요. 왜? 양보가 없으니까. 완전한 양보가 있어야 화평이 오는 것 같아요. 화목하기 위해서는 죄송합니다. 내가 손해를 좀 봐야 돼요. 내 인격적으로나, 내 물질적으로나, 내 지식으로나, 내가 손해를 좀 봐야 됩니다. 죄송하지만, 잘 났다고 하고 내가 다 안다고 하고 내가 제일이라고 그리고 화목이 됩니까? 내 가진 지식을 양보하고, 내 가진 권리도 양보하고, 과감하게 양보해야 화평이 이루어지더란 말이에요.
그분 아니라 아브람에게서 더 중요한 것은 **'scriptural insight'**입니다.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봅니다. 오늘 눈앞에 있는 물질이 중요하지 않을까? 소와 양과 금은보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넓은 땅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향한 영적 통찰력을 가졌어요. 아, 이 땅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복이요. 하나님 말씀에 따라가면 복이요. 하나님이 함께 있다고 하는 그 감격. 싸움이 하나님 앞에 가는 곳마다 제사를 드리며 살 때 그런 만족해요.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어디 가나 하나님만 섬길 수 있으면 돼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물질이 얼마냐, 돈이냐, 소냐? 그 중요하지 않아요. 이것이 아브라함의 선택입니다. 영적 통찰력. 'spiritual insight', 영적인 눈. 우리 믿는 사람으로서 영적인 눈이 있어야 돼요. 나라를 바라보는 천국 지향적 통찰력이 있어야 되요. 이 땅에 사는 나의 그리스도인의 생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야. 그게 중요하잖아요.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 앞에 충실하냐가. 그게 무슨 뜻이죠.
그리고 아브라함은 생각합니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지시한 땅. 그것이 가나안의 황무지 산골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다 양보합니다. 미래의 안전은, 보장은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아 양보해 버립니다.
그다음 성경을 자세히 보면 롯은 다릅니다. 조카 롯은 조금 달라. 생각이 달라요. 삼촌 덕에 여기까지 왔고. 창세기 14장에 보면 그가 아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아주 이 소돔, 고모라 이 근방에 있는 왕들한테 침략을 당했을 때 아브람이 318명 달하는 목자들을 데리고 가서 그 롯을 구출해 줍니다. 아주 위험한 전쟁을 해서 결국은 롯을 구원해 놓았습니다. 그 정도로 롯은 아브람 삼촌의 신세를 많이 진 거예요. 물질적으로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정치적으로도 큰 신세를 지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에 보면 롯이 자기가 우선권을 가지고 선택을 합니다. "삼촌 왜 그럽니까? 네 형님 먼저, 동생 먼저 해야 되잖아요?" 아, 그래서 "형님 먼저, 동생 먼저" 해야지. 내가 먼저. 조카다 이기. 내가 먼저. 삼촌 상관하지 않고. 그리고 자기가 우선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 보는 대로, 본문으로 보는 대로, 롯은 눈을 들어 본즉 마음에 걸리는 대로. 물이 넉넉하다 보니까 에덴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더라. 풍요하더라. 그거 아세요. 풍요함을 보았어요. 눈으로 본 대로 판단했습니다.
여러분, 이 본다는 거 조심해야 됩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제가 소망교회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교회에 아주 잘 나가고 잘생긴 집사님이 한 분 계시는데, 미스코리아와 결혼을 했어요. 아주 우리가 지켜요. 나올 때 보면 아주 그림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얘기했지요. "지금 집사님 행복하게 있구먼. 미스코리아와 살다니 얼마나 얼마나 행복할까." 한 마디 했지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목사님, 말 마세요. 세상에 이런 실수가 없습니다." 아침마다 화장대 앞에 3시간 앉을게요. 아, 흙을 찍어 바르는 것만큼 더 어려운 게 없이. 갈 줄도 모르고 무슨 말 할 줄도 모른다니. "이건 일생의 큰 실수가 없습니다. 다시 되돌아갈 수가 없어." 왜? 너무 예뻐서 거기에 반해버린 거예요. 눈에 보이는 끌리는 것만 따라가선 안 되죠. 생각해야죠. 신앙적으로 봐야죠. 예쁜 것만 보고 따라갔다가 아, 그 고생을 한다는 얘기를 나한테 한대요. 나도 많이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걸 아셔야 됩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것, 그 본 대로 가는 것. 성경에도 "눈에 보이는 대로 그곳이 여호와의 동산 같더라." 에덴 동산 같은 그 풍요로운 땅을 보고 그 선택을 한 거예요. 풍요를 선택했어요. 풍요와 도덕성. 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큰 과제입니다. 풍요, 돈, 자유. 그 시 선택의 기준이 아니에요. 진리가 먼저죠. 도덕함이 먼저죠.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롯은 물질만 봤습니다. 도덕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볼 때 그 지능을 볼 겁니까? 도덕성을 볼 겁니까? 능력을 볼 겁니까? 도덕성, 그 영성. 그것을 먼저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면세계를 봐야죠. 얼굴 하나가 다는 아니잖아요. 어떤 인격이냐가 중요하죠. 어떤 도덕성을 가졌느냐, 어떤 영성을 가졌느냐가 그 인간 가치 판단의 기준이란 말입니다. 외적인 부요함에 가려 내적인 중요한 도덕성을 잃어버렸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저들은 악하더라." 그랬어요. "저들은 악하더라." 악한 죄악을 보지 못했어요. 풍요함만 보았어요. 죄악 속에 산다는 걸 보지 못했어요. 잘 사는 것만 보았어요. 거기 잘못이 있습니다. 능력만 봤습니다. 내적인 교육과 각성을 우리 모두 잊으세요.
그리고 늘 성경을 읽을 때마다 드는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우리 속의 부분입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옮겨 갔더라. 마음은 아닐까요? 롯이 알아요.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이건 죄악이라는 걸 알아요. 결국은 하나님이 심판한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점점 점점 옮겨갔어요.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끌린 거예요. 세속화 되어가는 거예요.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세상으로 끌려가고 있었던 거예요. "점점 옮겨 갔더라."
아, 마음에 아, 저 이건 안 된다는 것, 이런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이고 이건 죄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그냥 남방으로 소돔 고모라까지 옮겨갔어요. 이 세속화의 덫입니다. 존 칼빈은 이 문제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롯은 장차 낙원 속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치욕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낙원처럼 생각했지만 아니에요. "지옥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존 칼빈이 했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유명한 얘기를 했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의 특징은 불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잊지 마세요. 불행한 사람들은 불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앞쪽에서 계속 가고, 향락 취향적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 아무리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알아요. 와도 나오질 못해.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지옥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롯은 이렇게 해서 그 소돔 고모라에 가서 완전히 소돔 아닌 소돔 사람이 돼버렸어요. 하나님께서 크게 심판하셨습니다.
근데 다행히 놀라운 것은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심판하신다는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주 잘 압니다. "의인 50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50명으로 인해서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다섯 명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45명으로 인해서 용서할 것." 아, 30명, 20명이 들어가죠. 하나님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10명만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10명으로 인해서 소돔 고모라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생각합니다. '그래도 10명은 되겠지. 내 조카와 그 식구들과 해서 10명은 되지 않을까?' 10명이 되지 못했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9장 29절에 중요한 핵심 말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해 냈다고 했어요. 아브람을 생각하사 아브람의 그 기도 때문에 그 조카 롯을 구원해 냈었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오늘도 하루하루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 열을 버려야 합니다. 보이는 대로 선택하고 느끼는 대로 선택한다면, 현실만 선택한다면 영혼을 포기하는 겁니다. 영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믿음은 먼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깊은 곳을 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깊은 곳에 있는 도덕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브람의 선택, 롯의 선택, 분명히 확인된 이 교훈을 오늘도 우리 민족이 바른 선택을 하고, 멀리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아, 탐닉하는 것에 영합하지 않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냐에 따라서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선택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저희들이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총을 감사하면서 예배할 수 있게 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주여, 롯과 같은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시고, 아브람 같은 신령한 눈으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판단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 봉독 및 설교 말씀 요약: 창세기 13장의 아브람과 롯의 선택
제공해주신 성경 봉독(창세기 13:1-13)과 설교 말씀을 구체적으로 요약해 드립니다.
1. 📜 성경 봉독 (창세기 13:1-13) 요약: 아브람과 롯의 분가
- 배경: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와 네게브를 거쳐 벧엘과 아이 사이, 이전에 제단을 쌓았던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이 풍성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 문제 발생: 아브람의 일행인 조카 롯 역시 양과 소와 장막이 많아 두 집안의 소유가 너무 많아 그 땅이 함께 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 아브람의 제안 (화목과 양보):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족이니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으니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며 선택권과 양보를 제시했습니다.
- 롯의 선택 (눈에 보이는 풍요):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니,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이라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으므로 롯은 그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쪽으로 옮겨갔습니다.
- 결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했고, 롯은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습니다. 성경은 소돔 사람이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음을 기록하며 봉독을 마칩니다.
2. 👂 설교 말씀 요약: 선택의 자유와 책임 (아브람과 롯의 비교)
설교 말씀은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주제로, 에덴 동산의 선악과 비유와 창세기 13장의 아브람과 롯의 선택을 대조하여 교훈을 제시합니다.
🍎 선악과와 선택의 자유: 인격적 관계의 존엄성
- 가장 많은 질문: "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았을까요?"
- 정답 (선택의 자유): 선악과는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 의지를 주신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짐승처럼 묶어 놓지 않고 자유로운 가운데 스스로 선택하게 하심으로 인격적 관계를 맺고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 선택의 존엄성: 선악과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선택적 능력 속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습니다.
- 선택의 책임: 일단 선택한 후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않는 선택을 했으면 영원한 자유를 누렸겠지만, 먹는 선택을 했기에 불행이 왔습니다.
- 'Choice'와 'Decision':
- Choice: 여러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예: 음식, 옷 선택).
- Decision: 오직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한 선택. 기독교의 근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Decision입니다.
- 책임 의식의 중요성: 선택 후 책임을 지는 책임 의식이 곧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세상의 문제는 선택을 잘못하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데 있습니다.
🚶♂️ 아브람의 선택: 영적 통찰력과 양보
- 아브람의 상황: 조카 롯과 함께 엄청난 부자가 되었으나, 소유가 많아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 아브람의 선택 (양보와 화목):
- 하나를 요구: 근본적 해결을 위해 **분가(분리)**를 요구했습니다.
- 양보를 선택: 삼촌으로서의 권리를 내려놓고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며 일방적으로 양보했습니다.
- 화목을 선택: 재물보다 화평과 화목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양보 없이는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화목을 위해서는 내가 손해를 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Scriptural Insight (영적 통찰력): 아브람은 눈앞의 물질이나 넓은 땅보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하나님의 약속에 충실한 것이 중요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곳이 황무지 산골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복이라고 믿었으며, 미래의 안전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 롯의 선택: 눈에 보이는 풍요와 세속화
- 롯의 선택 (우선권 행사): 삼촌 아브람의 신세를 많이 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우선권을 가지고 먼저 선택했습니다.
-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 롯은 눈을 들어 바라본 대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했습니다. 물이 넉넉하여 에덴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풍요함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 풍요와 도덕성의 문제: 롯은 외적인 **풍요(물질)**만 보고, 그 땅의 내적인 중요 요소인 도덕성이나 영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소돔 사람들의 악하고 큰 죄악을 간과했습니다.
- 세속화의 덫: 롯은 '점점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는 말씀처럼, 세상에 끌려가 세속화되었습니다. 존 칼빈은 이를 "낙원 속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치욕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고 표현했습니다.
- 링컨의 교훈: 불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향락적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불행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 결론: 아브람의 선택을 따르라
- 롯의 구원: 소돔 멸망 시, 롯은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의 기도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 교훈: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해야 하며,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나머지 열을 버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현실과 눈에 보이는 것만 선택하면 영혼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 참된 선택의 기준: **믿음은 먼 곳, 깊은 곳(하나님의 약속, 도덕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탐닉하는 것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는 아브람의 믿음과 선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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