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3월 06일] 거저 주라(마 10:1~8)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iyhEmCYGYks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0장 1절로 8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13면, 14면, 마태복음 10장 1절부터 봉독하겠습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께서 이 열둘을 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아, 예수님 여러분 스스로 한번 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채권자입니까, 채무자입니까? 채권자로 살고 있습니까, 채무자로 살고 있습니까? 한번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잠시도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채권자냐, 채무자냐? 꼭 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인생은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이 채권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채권자로 여기고, "내가 쓴 것이고, 남이 준 것도 내 것이고, 나는 받아야 할 사람이다. 교회 할 일은 없다. 왜요? 받은 것은 적고, 준 것은 많기 때문에 나는 항상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사람도 받아야 되고, 부모로부터 받아야 되고, 힘들도 받아야 되고, 나는 받아야 할 권리가 충분한 사람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넉넉하게 살아도 산 평생에 감사함은 없습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향해서도 "부모님 감사합니다" 아는 마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낳았으니 당신이 책임져야지" 이런 마음입니다.
"왜 공부도 제대로 시킬 수 없는 경제력을 가지고 왜 나를 낳아서 왜 나를 낳아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 하고 심지어는 이렇게까지 말하는 불효자도 있습니다. "자기들도 살기 어려운 세상인 걸 뻔히 알면서 왜 나까지 낳아서 책임 못 질 왜 출산을 해서 내가 이렇게 할까? 이 고생, 저 고생을 갖게 만들었나?" 당연한 채권자입니다. 부모님을 향해서도 이렇게 굴림할 수가 없습니다. 채권자의 마음.
그런가 하면 아주 고립주의자가 있습니다. 아주 고립적이고 이기적입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나는 내 식대로 할 테니까 당신은 당신 것만 하시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이 하시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합시다" 고립적인, 독립적인 인간. 아주 제각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리고 반사회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불평이 많습니다. 아, 세상이 너무 각박하거든요.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되는 일 하나도 없거든요. 그래서 늘 마음 스스로 상하고, 세상을 저주하며, 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의, 산다는 자체에 의미를 부정하며 살아가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참 힘들게 삽니다.
그런가 하면 윤리적 인간이 있습니다. 늘 의리, 도덕에 최선을 다합니다. "나는 나로서 의를 다한다. 너는 네 갈 길을 가라. 나는 자식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부모의 도리를 다하세요. 나는 형제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당신들이 할 일은 당신들이 하세요. 나는 나로서 최선을 다했다" 하는 자부심, 아, 교만. 그리고 그 잣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합니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을 다하고 사는데 저 꼴이 뭐냐?" 심지어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나는 학생으로서 도리를 다하는데 쟤는 학생 자격이 뭐냐?" 사회적으로도 "내가 할 일을 다하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이 사회가 되어지는 일은 너무 못마땅하다" 비판하며, 위상을 비판하며, 그가 뭘요? 자기 자신도 피곤합니다. 지쳐서 절망하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교만합니다. 세상 사람 다 잘못했습니다. 자기만 잘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도 자유함이 없어요. 자책을 규합하고 고민에 빠집니다.
다음 하면 네 번째 인간이 있습니다. 만인의 채무자로 사는 겁니다. 늘 빚진 마음으로 삽니다. 일생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을 만큼 나는 빚을 졌다. 부모님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아, 너무 고맙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킹 저를 느끼며 살고 고맙고, 심지어는 내가 병들어 병원에 가서 그 수고하는 분들을 보면서 너무 고맙고, 그리고 늘 죄송한 마음이야. 후한 마음을 베풀 길이 없어요. 부모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그 거룩한 사랑을 이제 어떻게 보답하겠습니까? 그 보답할 수 있는 수단이 못 되죠. 그 어려운 고생을 하면서 우리를 키워 주었는데, 자, 이걸 이제 와서 무슨 방법으로 보답할 수 있겠는가? 일생을 가봐도 다 갚을 수 없다 하는 그런 마음. 그 감사한 마음으로 그 길을 사는 채무자 인생이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묻습니다. 채권자입니까, 채무자입니까? 내가 채권자 의식을 가지고 늘 남 불평하며 살아가는 겁니까? 아니면 채무자의 마음으로 참 미안하고,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겁니까?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저주를 받을까 봐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산다고 애를 씁니다. 사람이 볼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노하심과 권능을 두려워하면서 아주 겁먹고 삽니다.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면서 감기만 걸려도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는구나" 하고, 무엇이 잘못될 때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고, 내 죄를 심판하고 있구나" 하고 그렇게 느끼며 살아갑니다. 힘듭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앞에 벌벌 떨면서 그렇게 쫓기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한편 보상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선한 일을 해도 하나님이 상을 주실 거다." 보상 심리로 살아갑니다. 복을 받는 마음으로 삽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그런 거로 악을 심었냐, 있고 선을 심었냐 있고, 의를 심었고 선을 심어서 나는 보상을 받을 것이다. 나는 상금을 받을 거 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보상을 받을 거라고 하는 그 보상 심리, 아주 쪼개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한편 공로주의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채권자 쪽으로 "난 그에게 부른 사람이다. 그 은혜를 받지를 못했다. 나는 사랑을 한 사람이다. 사랑 받은 것을 어떠냐. 나는 봉사했다. 그 안에서 받는 봉사는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항상 큰 공로주의로 보물을 쌓아 나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크게 복을 주실 거다"고 믿고 사는 바리새 교인 같은 그런 마음 가지고 삽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마지막 말씀이 이겁니다. 거저 받은 마음에서 거저 주는 마음. 받은 바가 너무 많아요. 거저 받았어요. 그 조건이 없어요.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다 거저. 너무 많은 받은 거라 나는 줄 거밖에 없어. 한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가 없어. 그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마음으로 사는 그런 인생, 넷째. 우리가 동경하는 슈바이처 박사가 쓴 글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한 가지밖에 아는 바 없다.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섬기고자 자유한 사람이다." 섬겼다고 보람을 바라지도 않고,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다시 무슨 그 축복을 바라지도 않아요. 거저 받은 바가 너무 커서 어떻게 하면 섬길 수 있을까? 만에 하나라도 보답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 섬기는 마음에서 자유한 사람. 아,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는 듯. 그렇게 깨끗한 심령. 그 은혜의 마음이다. 여러분 이것이 자유인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어머니의 말씀, 심부름을 했습니다. 심부름을 갔다 오니 어머니가 아주 너무 귀엽고 해서 돈을 주었습니다. "너 수고했다." 그러니까 아이가 좋다고 받아 가지고 나갔습니다. 얼마 있다 또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아, 그리고 또 돈을 주었습니다. 아까는. 그 다음에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 어머니가 깜빡 잊어버리고 돈을 안 주었습니다. 했더니 애가 어머니 앞에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내가 심부름을 세 번이나 했는데 왜 돈을 안 주십니까?" 하는 글을 썼어요. 그걸 보면서 어머니가 한참 웃었습니다. "얘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아, 무슨 어머니가 또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뭐라고 썼습니까? "어머니가 너를 낳은 것 공짜로 젖 먹인 것도 공짜. 옷을 입혀 준 것도 공짜고. 밥을 먹여 준 것도 공짜. 하고 이것도 공짜고 이것도 공짜다. 다 공짜다." 얘가 이 편지를 보고 서로에게 들고 어머니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 은혜죠. 아, 은혜죠. 세상에 은혜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이걸 잊지 말아야 돼요. 그것이 바로 채무자 인생입니다. 나는 빚진 사람이다. 일생을 가 봐도 갚을 수 없는 많은 빚을 졌다. 빚을 졌어요.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특별히 어머니가 말 한 사례 드러났다. 정성을 다해서 저를 키워 줬고, 일어섰을 때 성경을 들려 주었고, 또 늘 "선 몸을 다하고 교회에 나가서 어른 예배에 꼭 참석을 하고" 그래서 참석했어요. 다들 애들은 애들 예배만 보러 가는데 나만 붙들려 가지고 그 옆에 앉아서 어른 예배에 참석을 했어요. 아, 그런데 겨울날 아이 눈이 오면 다음에 눈이 개이면 스케이트를 타러 가야 되는데, 아주 부지런했어요. 그 살짝 받아 가지고 스케이트를 타러 갔어요. 우리 어린이 예배는 보고 어른 예배는 빠지고 스케이트를 타러 갔는데, 한참 스케이트를 타는데 눈이 오고 있어요. 어머니가 달려와서 "자냐!" 소리를 질러요. 그 사과해서 "저 어른 예배는 어른 예배 참석했는데요. 어린이 예배만 빠지고 여기 왔는데" 그랬더니 어머니가 하는 말이 "안 돼. 너는 안 돼. 가자." 해 가지고 어머니하고 손을 잡고 교회 갔습니다. 그때는 예배 끝났어요. 그 눈이 오는 날 서리하고 부르는 어머니는 잊을 수가 없어요. 그건 무엇으로 오로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아, 참 박아 아주 단산한 모범입니다. 거저 줬습니다. 줄 것밖에 없어. 그렇다면 우리가 결여되어서 불평해서는 안 되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거지. 뭘 거기다 인정을 안 해 주니, 인사를 안 해 주니 그래서 약해요. 거저 주는 마음으로. 이러한 것을 신학적으로 정리해서 우리에게 말해 준 신학의 대가, 교훈 가르쳐 준 바가 있습니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 5대 강령이라고 해서 유명한 얘기입니다. 늘 목사님들 시험 볼 때마다 자주 나오는 현 문제입니다. 5대 강령. 칼뱅의 5대 강령. 교재가 되어서 TULIP. T, 총적 타락입니다. 알아볼 만한 게 하나도 없어. 존적 타락.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내 인간성, 내 자신은 절대적으로 타락한 사람이다. U, 무조건적 선택. 무조건적 선택. 여기 또 고리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또 꺼림 있는 게 아니야. 무조건적 선택.
그런가 하면 L, 제한된 속죄. 논리적인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면 I, 불가항력적 은혜. 유명한 얘기입니다. 불가항력적 은혜. 그 은혜는 능력입니다. 불가항력적 은혜에 당할 수가 없어.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어. 하루 바울이 예수에게 사로잡힌 것처럼 말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요. 불가항력적 은혜. E, 벗어날 수 없는 성도의 응답. 이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 성도의 응답이 있어요. 이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생명 뿐이죠. 구원도 은혜죠. 복음도 은혜죠. 사죄 받은 것도 은혜죠. 의롭다 함을 얻은 것 은혜죠. 오늘 말씀을 주시는 것도 은혜죠. 성령의 역사와 나와 함께 하는 것 은혜죠. 은혜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말하겠습니까? 공로가 있을 수 있어요? 단 한 권이라도 말입니다. 흔적도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다 받은 것 뿐이에요. 다시 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아, 깨끗한 말이다. 아무래도 여러분 특별히 요새 이렇게 흙을 나와서 어느 아이 일부 예배 나오시는 분들에게서 제가 생각해요. 어려운 여건에 이런 아침에 건강한 몸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것 동우입니까? 딱 털어 놓으세요. 딱 그러면 받은 것 뿐이죠. 그렇다면 이제는 거저 주고 이야기 당연히 그럴 거 아닙니까?
하물며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불렀어요. 갈릴리 바닷가에 가서 물고기 잡는 한심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불렀어요. "이제 가서 그물을 던져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막 고기 잡는 어부를 사도로 만들었어요. 사도로 불렀어요. 그 뿐입니까? 오늘 성경에 나옵니다만 세리 마태. 이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 그런 세리입니다. 가장 큰 매 맞는 세리, 용서와 가사가 없는. 그 마태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지나가다가 예수님 말씀합니다. "나를 따르라." 그 가는 겁니다. 예수님 나누어 내갑니까? 그럼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무슨 면접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오. "나를 따르라." 끝. 여기에 의롭다 함이 있고, 아, 손패가 쉬이 있고, 그 얘기에 참 큰 사명이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신학적으로 정리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Calling, Giving, Sending. 부르셔서, 역량을 주었어요. 그렇게 말한 거 아니에요. 부르셨으니까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었어요. 부르시고, 권능을 주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에게 권능을 주었어요. 주었어요. 우리 받았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저 받았어요. 병 고치는 능력 받았어요. 말씀 전하는 능력 받았어요. 그리고 보내심을 받았어요. 막 흔하게 가라고 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가라는 대로 가라. 아,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 사명. Calling, Giving, Sending. 세 가문이에요. 은혜 아닌 것을 하나도 없어요. 무조건적 은혜에 압력을 알았습니다. 작시하기 오래 전에 쪽에 은혜. 그러므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여러분, 거저 주는 마음만 가지고 비판하지 마세요. 거저 받았다는 마음을 앞세우고 해야죠. 받은 것이 너무 커요. 그걸 먼저 생각을 하면 주는 것은 오히려 자유예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세요. 거저 주는 것 당연히 줘야죠. 보상을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요. 인사 받을 것 있을까? 예, 받을 것도 사역.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들을 필요가 없어요. 받지 않는 애틋한 마음. 그래서 아무 부담도 없이 오히려 주면서 **"고맙다"**고 얘기하지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기사에 계실 때 귀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사도 바울은 참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이지만, 예수님하고 직접 만난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직접 들은 바가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인대 어떻게 해서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사도행전 20장 3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딱 한마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을 해요. 말씀을 하세요. 그 말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여러분, 받는 복을 기뻐하십니까? 아, 예, 주는 복이 기쁜 거예요. 다 큰 가정에서도 보세요. 어린 아이들 우리가 음식을 해서 먹여요. 잘 먹는 걸 보고요. 먹이면서 기뻐요. 머리가 기뻐요. 아이가 기뻐요? 그걸 잊지 말아야 돼요. 단지 꿈이 아니고 유치한 거예요. 풀에 깃든 그런 큰 게 없어요.
기다가 받은 마음에서 주는 거예요. 주는 자체가 감격하는 것. 그리고 자유하는 것이에요. 상대방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 없어요. 받은 바가 너무 크니까 감사할 것이 주는 것만. 주는 것만. 유미 안에 그래도 보도 물론 하더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향한 사다리"**라고 하는 유명한 얘기가 있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다리. 1단계는 자기를 위해서 자기 사랑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해도 자기 사랑을 했어요. 두 번째는 갚고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요. "다시 봉사하고 기도하고 하는가 돼요. 전부가 이것을 주세요. 복을 주세요." 축복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요. 3단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나 자신을 사랑하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나 자신은 너무 소중해요. 건강이 소중해요. 기회가 소중해요. 가족이 소중해요. **"하나님을 위하여 나아가"**는 거예요. 그 힘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니까. 거저 주는 자에게 거두어들여야죠. 거저 주는 자유함이 이것보다 더 욱 그러한 것은 없어요. 아, 그 바라는 마음 없이 착착 주는 것. 그 주는 마음 자체가 행복이요. 주는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요. 이 권한과 공방이요. 무엇보다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사는 것.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돌아봐야지. 받은 마음, 주마음. 그리고 자유한 마음. 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로 응답하는 마음.
그래서 이 신앙 간장하게 지자기 부탁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거저 받았다는 걸 잠시도 잊지 마라." 내 의도 아니고, 내 공로도 아니고, 내 소명도 아니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그리고 자유하라." 그때 은혜가 너와 함께 하는 살아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아왔습니다. 은혜에 너무 치룬 일을 받고 살면서도 잠시 잠깐 잊어버리고, 마치 자기의 소명으로 인해서 보답이라도 받은 것처럼, 또 그리고 "보상이 적었다"느니, "내 기도 응답이었다"느니, 내 손에 열매가 없는 것처럼 원망과 불평 속에 살아온 자기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상에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받은 것 이것을 어찌 우리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거저 받은 감격으로 거저 주는 행복. 그것을 누리며 간이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중하게 쓰여지도록 은혜를 우리에게 더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 내용 구체적 요약: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제시된 설교문은 마태복음 10장 1절로 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를 **'채권자'와 '채무자'**라는 두 가지 극명한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성경 본문 (마태복음 10:1-8) 요약
- 열두 제자에게 권능을 주심 (1절):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 열두 사도의 명단 (2-4절):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가룟 유다.
- 보내심과 사명 (5-8절):
- 대상: 이방인의 길이나 사마리아인의 고을이 아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 전파 내용: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십시오.
- 구체적인 사역: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십시오.
- 핵심 원칙: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2. 인생의 네 가지 유형: 채권자 vs. 채무자 의식
설교자는 '내가 채권자입니까, 채무자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인식에 따라 인생의 네 가지 유형이 나뉜다고 설명합니다.
1. 채권자 유형: '나는 받아야 할 사람이다'
- 특징: 자신이 세상에 기여한 것이 많고, 받은 것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사람, 부모, 세상으로부터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깁니다.
- 결과: 넉넉하게 살아도 감사함이 없고, 심지어 부모에게도 "책임져야 한다"고 비난하거나, 자신의 고생을 낳은 부모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2. 고립주의자 (이기적/반사회적) 유형
- 특징: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의식으로 철저히 고립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자신의 일만 하고 남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 결과: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불평이 많고, 늘 마음이 상하며, 세상을 저주하고 삶의 의미를 부정하며 힘들게 살아갑니다.
3. 윤리적/공로주의적 인간 (교만) 유형
- 특징: 의리, 도덕, 의무를 다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나는 내 도리를 다했다'는 자부심과 교만이 강합니다.
- 결과: 자신의 잣대로 타인과 사회를 비판하며, 스스로 피곤하고 지쳐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상 심리나 공로주의에 빠져, 자신이 한 일(봉사, 사랑)에 비해 받은 것이 적다고 불평하는 채권자 의식을 갖습니다.
4. 만인의 채무자 유형: '나는 빚진 사람이다'
- 특징: 늘 빚진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부모의 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 심지어 병원에서 수고하는 이들을 보며 죄송하고 고맙게 여깁니다. 일생을 바쳐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 결과: 이들은 감사함으로 기쁘게 살며, 설교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3.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자세: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설교자는 네 번째 유형인 **'채무자 인생'**을 강조하며, 기독교인의 삶은 **'거저 받은 마음에서 거저 주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 구원의 은혜: 구원, 생명, 복음, 사죄, 의롭다 함을 얻은 것, 성령의 역사 등 모든 것이 **은혜(공짜)**이며,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공로도 없습니다.
- 슈바이처 박사의 인용: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섬기고자 자유한 사람이다." (보상이나 축복을 바라지 않고 섬기는 사람)
- 신학적 근거 (칼뱅의 5대 강령: TULIP):
- T: 총적 타락 (Total Depravity): 인간은 절대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다.
- U: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조건과 상관없다.
- L: 제한된 속죄 (Limited Atonement): (논리적인 측면)
- I: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하나님의 은혜는 능력으로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는다.
- P: 성도의 응답 (Perseverance of the Saints): 이 은혜에 대한 성도의 응답이 있다.
- 결론: 예수님의 부르심(Calling)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은혜였으며, 부르심에는 감당할 수 있는 **권능(Giving)**이 따랐고, 그 권능으로 사명을 위해 **보내심(Sending)**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거저 받은 은혜이므로, 우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감사함으로 거저 주어야 합니다.
4. 주는 복의 강조
설교는 사도 바울이 인용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5): 받는 것 자체가 아니라, 주는 것 자체가 감격이요 행복이며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향한 사다리 (버나드):
- 자기를 위해서 자기 사랑을 한다.
- 복 받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한다 (보상 심리).
-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
- 최종적 자세: 거저 받은 것에 감격하여,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유한 마음으로, 주면서 오히려 **"고맙다"**고 감사로 응답하는 삶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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