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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인생 고후5:1

by 【고동엽】 2022. 10. 22.

www.youtube.com/watch?v=X3bSU95A9f0

◈임대 인생                                고후5:1                           

Our Lease on Life by Peter Masters

     

요즘 ‘임대로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서 다들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우리 인생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임대 인생’입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1. 집 건물도 "임대"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 각자를 ‘장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막이란 텐트인데, 지금은 비닐 합성섬유로 제작하지만,

그 당시에는 천이나, 짐승 가죽을 연결해서 만들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연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병에 잘 걸리고, 몸이 약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우리 몸이 마치 텐트처럼 연약하다’는 말보다는

이어지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는 말을 더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임대 인생”인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백세 인생’을 누린다 할지라도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 원래 주소지이고,

‘땅에 있는 집’은, 마치 텐트와 같이, 잠시 임대해서 사는 곳이지요.

 

위 본문 고후5:1절이, 지금은 시시하게 들릴지 모르나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정말 귀에 절절이 들리는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말씀을, 자기 마음에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지요.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여기서 ‘무너지다’란 헬라어는 ‘끈이 풀리다 loose’입니다. 텐트를 잡아매었던 끈이 풀리는 것이지요.

 

사실이 그렇지요. 늙으면 사람이, 마치 텐트 끈이 풀리듯이, 육신이 점점 느슨해집니다.

그러다가 끈이 완전히 풀리면, 텐트는 땅바닥에 주저앉게 되고,

그 때는 텐트를 접고 떠나게 되는데, 그때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인 것이죠.

 

텐트를 팽팽하게 잡아매었던 끈이, 아주 서서히 느리게 풀리는 사람도 있고,

그 끈이 늘 팽팽하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확 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텐트 끈이 풀리고 텐트를 접는다는 결론은 똑같습니다.

 

바울은 텐트를 만드는 장인이었으므로, 그 사실을 더욱 잘 알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학자라도, 어려서부터 자기가 먹고 살 수 있는

   생계수단을 한 가지는 가르친다고 하지요. 그래서 바울도 어려서 그 기술을 배웠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식으로 자녀양육을 하는 것은 좋은 방식입니다.

  아무리 자기 재능이 출중해도, 혹시 모르니까, 생계수단은 하나 조기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캠핑 가서 텐트 자랑하지 말라’고요!

아무리 값지고 비싼 텐트일지라도, 그저 텐트에 불과하니까요.

영원한 집이 아니잖아요.

 

당시에도 가장 값싼 텐트는 낙타 가죽을 이어서 만든 것이고,

또한 아주 값비싼 물개 가죽으로, 크고 웅장하게 텐트를 세우고,

실내외에 여러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텐트도 있겠지만,

결국은 다 똑같은 텐트입니다.

 

지금 텐트는 ‘우리 육신’을 비유하고 있는데요,

우리 가운데도 육신이 아주 약하고 늘 골골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정말 올림픽 경기에 나갈 정도로 육신이 강인한 사람도 있습니다만,

다 그게 그거입니다. 끈이 풀리면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지요.

 

또 자기 텐트(즉 육신)를 멋지게 장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요즘 이게 유행이죠.

자기 텐트를 아무 장식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거나 저거나 똑같습니다. 텐트 끈이 풀어지면 다 끝인 것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텐트가 크고 웅장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작고 초라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텐트는 ‘자기 키, 외모’를 생각하시면 되고, 확장해서 ‘자기 부동산’을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어쨌거나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서 임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 내 것, 내 소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인이 ‘반납해라’ 하시면, 그 텐트의 끈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니 강제로 풀어지게 됩니다.

 

요즘 잘 쓰는 말로 ‘템퍼러리 temporary’ 입니다.

임시직, 비정규직이라고 할 때, 영어로 temporary인데,

사실 세계 70억 인구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temporary 인생인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노메드 nomad’ 이죠. 유목민이란 뜻인데,

기독교적인 표현으로는 ‘순례자 pilgrim’입니다.

우리가 사는 백년 인생은, 잠시 거쳤다가 가는 장소이지, 영원히 정착할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여러 번 텐트를 폈다/접었다를 반복했습니다.

 

 

 

-한때 다들 십대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 텐트를 접고

-청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살다가 또 텐트를 접고

-중년기의 텐트를 폈습니다. 그러다가 또 텐트를 접고

-노년기의 텐트를 펴게 되지요. 그러다가 접으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누워있는 자기 육체를 보고서

“진흙으로 된 내 몸이여, 너는 내 일생의 동반자였구나.

그런데 이제는 너와 이별하게 되었구나. 나는 이제야 너를 떠나는구나!”

이렇게 말할 날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그제야 우리 육신이 “임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만,

만약 그 순간에야 비로소 “임대 인생”을 깨닫는다면, 그건 너무 늦겠지요.

왜냐면 하나님 앞에서 ‘계산’을 하게 되니까요.

 

*성경에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포도원을 맡기고 길을 떠난 주인 등의 여러 비유에서,

 계산하게 될 날이 올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 인생이 내 것이었던 적은, 사실 한 번도 없습니다. It never was mine!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었고, 나는 임대받았을 뿐입니다.

 

요즘 부동산을 임대로 사시는 분들이, 임대료가 자꾸 올라서 고민인데요,

그때마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은 내 인생 전체가 임대다!’ 라고요.

 

교회를 다니는 신자라 할지라도, 계속 주입을 받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내 것인줄 알고 삽니다.

그러다가 황급히 떠나게 될 때 (보통은 황급히 떠납니다.

내일 떠나더라도, 그 전날까지도 모릅니다. 그날 당일 아침에도 모릅니다.)

낭패를 당하게 되는 거죠. ‘임대 인생’임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면요!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닌 이유는,

원래 내가 창조하지도 않았고,

또한 예수님의 피값으로 다 사셨습니다...

 

여러분, 교통사고라든지, 빌딩이 무너지든지, 화재이든지

학생들 MT가서 자는데 산사태가 나서 매몰되든지.. 아니면 병원에서든지..

갈 때가 되면 순식간에 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되지 말란 법이 없고요,

운 좋게 백수를 살았다 하더라도, 그것도 되돌아보면 ‘인생은 잠깐’입니다.

 

 

◑2. 집 내부도, 가구도 "임대"입니다.

 

우리가 임대를 살 때는, 벽에 못 하나도 사실 마음 놓고 못 박습니다.

왜냐면 집주인은, 집이 늘 깨끗하고, 흠 없이 보존되기를 원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거짓을 행해도 안 되고, 탐욕스러워도 안 되며,

이기심으로, 우리 인생을 망쳐서도 안 되고, 더러운 것으로 우리 인생을 채워서도 안 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때문입니다.

 

만약 과거에 그런 과오가 있었으면, 빨리 수리해서 되돌려 놓으면 됩니다.

회개해서 우리 심령을 깨끗이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는 것이, 임대한 집 건물 안에 있는 가구와 실내장식을 잘 관리하는 길입니다.

 

    언젠가 TV광고에 보니까, 길에 사람들이 걸어가는데

    그 사람들 각자의 머리 위에 무슨 숫자가 빠르게 움직이더라고요.

    그게 무슨 광고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남은 수명의 숫자가, 실제로 그렇게 빨리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눈엔 안 보이지만, 천사들의 눈에는 그게 보이는 거죠.

    내 임대기간이 얼마 남았고, 언제 완료될 것이라는 게, 그들 눈에는 보이는 거죠.

 

그러니 이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내 인생이란 얼음 덩어리가 있는데, 내가 그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내 발아래 얼음 덩어리는, 빠른 속도로 녹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죄짓고 살다가 지옥갈 것 같으면, 차라리 안 태어나야지,

‘왜 하나님 나를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이렇게 하소연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태어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훨씬 더 좋은 것이기에

주님이 나를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리스크를 무릅쓰고요.

 

그런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에 관계된 것에, 내가 너무 관여하지 말고,

나는 자기 도리만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임대로 사는 사람들은, 사실 항상 불안합니다.

주인이 언제든지 ‘방 빼요!’ 할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임대료 때문에, 주인이 ‘방 빼!’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임대료에 그리 관심이 없으십니다.

 

대신에 세입자가, 너무 집을 엉망으로 관리한다든지

즉, 심신에 죄를 많이 짓는다든지

주인의 전화를 고의적으로 받지 않는다든지, 주인과의 만남을 회피하면,

주인은 할 수 없이, 세입자를 내쫓게 되는 거죠.

 

물론 갑자기 하루아침에 세입자를 내쫓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몇 차례의 ‘사전 경고’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세입자가 계속 그 경고를 거부하면, 주인은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세입자는, 항상 집주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집에서 편안히, 오래 살 수 있는 것이죠.

 

혹시 우리 주변에,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

습관적으로 냉소적, 비판적, 부정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집주인과 관계가 벌어지면, 그건 자기 손해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그런 분들은 ‘내 인생은 내 것이다’라고 착각하고 있지만요.

 

비유적으로 말하면, 그런 사람들의 ‘집’은

곰팡이가 끼고, 거미줄이 쳐져 있으며, 먼지가 가득한 집인 것이죠.

그러면 집주인이 경고를 보낼 것이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임대 계약 기간이 줄어들게 되죠.

 

요즘 현대인들, 특히 젊은 층 가운데,

‘신앙의 백 가지(모든) 것을 의심하고, 단 한 가지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 앞에서 거만한 태도입니다.

세입자가 너무 거만하면, 결국 주인이 내 쫓을 것입니다. 참다가 참다가 기분이 상하면요.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 모욕적 언사를 종종 일삼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속히 그 죄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살아있는 동안은, 세입자가 집을 수리할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관련글 기한이 차서 죽는 복

 

▲사실 우리 각자는, 자기 임대료를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소중한 피값을 뿌리심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밀린 임대료를 다 지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주님은,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위하여,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걸 진심으로 믿는 사람, 그 사실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자기 즐거움, 자기 쾌락, 자기 소유에 대한 집착, 내 인생은 내 것..

이런 식으로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내 인생 뿐만 아니라 내 가족, 내 자녀도.. 다 임대입니다.

주인이 ‘돌려 줘, 반납 해!’ 하면, 꼼짝 없이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겸손하게 사십시다.

세입자로 겸손하게 사는 것이, 내 소유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길입니다.

 

 

◑3.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종종 ‘기도를 전화에 비유’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전화 거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과 전화 거는 것이 틀린 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화>를 걸 때는, 무조건 다 신호가 가고, 무조건 연결이 됩니다.

상대방이 받지 않을 때도 있지만, 상대방이 받는다고 가정할 때,

죄인이 걸든지, 의인이 걸든지.. 세상 전화는 관계없이 다 연결됩니다.

그건 기계가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는,

신실한 사람의 기도만, 하나님께 연결이 됩니다.

신실치 못한 사람, 상습적 죄인의 기도는.. 연결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님은 기계가 아니시고,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의 집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집 건물(건강)을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내 집 내부(인격, 마음)를 정결케 해 주시도록, 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무너지고 부숴진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다시 세워주실 것입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오늘날 신자들은, 그저 ‘나는 믿고 구원 받았으니 그만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마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준비가 안 된 게 아니었습니다.

등을 가지고 있었다니까요. 빈손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세례도 받았고, 교회도 다니고, 형식은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아마 존경 받는 신자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다만 그 속에 ‘기름’이 없었던 것이지요. 기름도 처음에는 조금 갖고 있었는데, 그게 동이 났습니다.

 

그들은 천국 잔치에 아주 가까이 가 있었습니다.

다만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지요.

자기들은 빼 놓고,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낭패를 당한 것이지요.

 

요지는, 하루라도 내 생명이 살아 있을 때, 하루라도 내게 기회가 있을 때,

이 세상에서 내 장막 집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잘 가꾸는 것이,

하늘에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의 교훈으로,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다만 우리 각자가 ‘졸고 자면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나는 무조건 믿으니, 구원 받고, 천국에 간다’는 단순한 공식을 갖고서

신부 단장이나 신랑 맞을 준비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문이 닫히고 못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이 장막집이, 언젠가는 곧 무너질 집이지만,

그 집을 잘 단장하고, 가꾸고, 청소하는 사람은,

주인이 기뻐서, 그를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집주인은 자꾸 그렇게 하라고 고함치시고, 전화하시고, 노티스 notice를 주십니다.

다만 내 귀가 꽉 막혀 있고, 내 눈이 감겨 있으면,

‘나는 믿으니, 구원 받고, 천국 간다’ 하다가, 영원히 문 밖에 서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아멘.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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